주체102(2013)년 9월 25일 로동신문
혁명일화
닭알 한알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한평생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평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시였습니다.》
찌물쿠는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해 여름날이였다.
끊임없는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바다기슭에서 점심시간을 맞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잔파도가 일렁이는 도래굽이의 펑퍼짐한 바위우에 이르시자 동행한 일군들에게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준비해가지고오신 점심꾸레미를 펴놓게 하시였다. 너무도 검소하였다.
일군들은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하며 어느 한 곳에 준비시킨 점심식사때문에 아쉬워하였다.
그러한 일군들을 곁에 불러앉히시고 점심식사를 하고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의 얼굴을 보니 무슨 의견이 있어하는것 같은데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오늘 동무들과 함께 시원한 바다기슭에서 땀을 들이며 점심식사까지 하고나니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다른 생각은 말고 우리 재미나는 이야기를 좀 나눕시다라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그이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좋은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시였으면 좋겠다고 허물없이 청을 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시더니 자신께서 언제인가 수령님을 오래동안 모시고 일해온 한 일군의 집에 들린적이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나는 그때 그들에게서 평생 잊을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였습니다라고 서두를 떼신 후 깊은 감회에 잠기시여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
전후복구건설이 승리적으로 끝나고 온 나라가 사회주의공업화를 실현하기 위해 천리마를 타고 내닫던 때인 주체49(1960)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늦게야 댁으로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목이 쉰 음성으로 닭알이 있으면 한알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해종일 어느 한 건설장구내를 밟으시며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고 현지에서 협의회도 하시면서 말씀을 많이 하신탓에 그이의 목이 꽉 쉬였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목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시더니 닭알 한알을 시원히 마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좀처럼 하지 않으시던 청을 하시였다.
그런데 이런 변이 어데 있으랴.
그때 댁에는 어버이수령님께 드릴 닭알이 없었던것이였다.
주방에서 일을 보던 녀인은 너무도 딱하고 안타까와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얼른 옆집으로 달려갔다.
《저…닭알이 있으면 한알 좀 주십시오.》
《야, 어쩌나. 닭알이 없는데…》
닭알을 얻지 못한 주방녀인은 그달음으로 또 다른 집으로 달려갔다. 바로 후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찾아가셨던 일군의 집이였다. 그런데 그 집에도 남편의 점심반찬감으로 몇알 있던것을 다 쓰다보니 닭알이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모처럼 청하신 닭알을 드릴수 없게 된 주방녀인은 그 집부엌에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우리 수령님댁에 닭알 한알이 없어서 이렇게 이집저집 뛰여다니는걸 세상사람들은 꿈엔들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주방녀인은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모처럼 청하시였던 닭알을 드시지 못하신채 또다시 정력적인 사업을 이어가시였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그 집내외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수령님께서 인민들에게 고기와 알을 하나라도 더 먹이시기 위하여 나라의 곳곳에 닭공장을 건설하시려고 걸으신 길만 하여도 수천수만리가 넘는데 글쎄 수령님댁에 닭알 한알이 없어 모처럼 청하신것을 드리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이 나라 백성된 도리를 지켰다고 할수 있겠는가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억이 막히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있던 그들은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다고 하면서 흐느끼였습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인민을 위해 한평생을 깡그리 바치시는 수령님의 인민적풍모를 따라배우리라 마음다지였습니다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깊은 감회속에 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며 일군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따로 준비한 점심식사를 가져오지 못하도록 만류하신 그이의 깊은 심중을 깨닫게 되였다.
사상도 령도도 풍모도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날 이름없는 바다기슭의 바위우에서 우리 수령님께서 남기신 눈물겨운 이야기와 같은 혁명일화를 조용히 새겨가고계시였던것이다.
본사기자 김준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