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10월 24일 로동신문

 

집단과 동지를 위해 바친 삶은 영원하다

동림식료공장 장작업반 당세포비서였던 김철훈동무

 

우리 사회에는 아름다운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많다.

동림식료공장 장작업반 당세포비서였던 김철훈동무에 대한 이야기도 경애하는 원수님의 인민사랑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우리 시대의 인간은 어떻게 살며 일해야 하는가를 만사람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세포비서는 자기 집일보다 동지들과 군중속에서 제기되는 일들을 먼저 생각하여야 하며 자식들을 위하여서는 피와 살도 지어 생명까지도 서슴없이 바치는 어머니처럼 집단을 위하여 심신을 다 바쳐야 합니다.》

김철훈동무는 29살의 당세포비서였다.

살아온 나이보다 누려야 할 삶이 더 많은 청년이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꽃다운 청춘을 바쳐 4명의 혁명동지를 구원하고 희생되였다.

그가 군사복무를 마치고 공장에서 일한 기간은 길지 않지만 그 나날에 그는 사람들에게 우리 당의 참된 당원, 당세포비서는 어떤 사람인가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여기도 나의 전호이다

 

김철훈동무가 동림식료공장에 배치된것은 2년전 2월이였다.

그때 공장의 일군들은 일터를 돌아보고 자기가 일할 곳을 정하겠다는 김철훈동무의 말을 쾌히 승낙하였다.

공장의 여러곳을 돌아본 김철훈동무는 장작업반의 원료투입공으로 일하겠다고 일군들에게 말하였다.

일군들은 놀랐다. 그리고 그를 다시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은 육체적으로 힘든 직종이기때문이였다.

김철훈동무의 가슴속에는 용암처럼 끓고있는것이 있었다.

탄광이나 광산, 대건설전투장에는 뛰여들지 못하더라도 공장에서야 왜 어렵고 힘든 직종을 택하지 못하겠는가, 여기도 사회주의를 지키는 나의 전호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되여 그는 장작업반의 원료투입공이 되였다.

어제날의 총대병사의 자세로 맡은 일을 억척스레 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혁명적군인정신의 참된 체현자를 보았다.

그의 이런 일본새는 두해전 봄 마성리일대의 빈땅을 원료기지로 개간하기 위한 투쟁과정에서도 높이 발휘되였다.

그때로 말하면 그가 공장에 들어온지 한달이 되나마나한 때였다.

엉켜붙은 갈뿌리들을 들춰내고 감탕을 파헤치면서 물길을 째고 두둑을 쌓아가는 30여정보의 원료기지개간전투가 얼마나 힘겨웠던지 많은 사람들이 공사기간 교대를 하거나 며칠씩 휴가를 받군 하였다.

하지만 김철훈동무는 60여일이나 되는 공사기간 교대도 없이 휴가도 받지 않고 마지막까지 일을 직심스럽게 하여 종업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지난해 7월 도적으로 진행되는 태천군버섯공장건설에 동원되게 되여있던 한 로동자가 몸이 불편하여 동원되지 못하게 되자 그를 대신하여 건설장에 달려나간 사람도 김철훈동무였다.

그는 휘틀조립을 책임지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렸다. 공사의 나날 뜻밖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그는 장례를 치르고는 다시 건설장으로 달려나왔다. 그때 공장의 일군들은 교대를 해주려고 하였지만 김철훈동무는 공사를 마감까지 성과적으로 끝내고야 공장으로 돌아왔다.

그의 투신력은 군당학교에 다니는 기간에 동원되였던 큰물피해복구전투에서도 발현되였다.

두해전 8월 장마비로 군소재지의 참천에 물이 불어나면서 주요도로의 콩크리트다리가 물에 떠내려갈 위험이 조성되였다.

이때 군당학교학생들이 이 다리를 큰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전투에 동원되였는데 당시 이 학교에 다니던 김철훈동무도 여기에 참가하였다.

사품치는 강물에 뛰여든 학생들은 강바닥으로 굴러내려온 돌들을 들어내여 다리를 보호하기 위한 뚝을 쌓아나갔다. 큰돌들이 물살에 굴러내려오면서 학생들의 다리를 사정없이 때리군 하여 매우 위험하였다. 몇몇 학생들이 부상을 당하게 되자 깊은 곳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말라고 교원들이 만류하였지만 김철훈동무는 주저없이 뛰여들어 큰돌들을 꺼내오군 하였다. 이 과정에 그의 다리는 여러군데나 찢기여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물속에서 전투를 벌렸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군당학교때 김철훈동무의 담임교원이였던 리명철동무는 말하였다.

《제가 숱한 학생들을 맡아 교육하였지만 말이 적고 일에서는 한몸을 내대는 이런 동무를 처음 보았습니다. 지금도 사품치는 물속에서 마지막까지 돌을 건져내며 전투를 벌리던 김철훈동무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르군 합니다.》

창고장 최경진동무는 창고에 원료들이 들어오면 남먼저 달려와 50㎏이나 되는 원료마대를 두개씩 지고 나르던 김철훈동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장작업반 반장 장명일동무는 언제나 힘든 일에 뛰여들어 일자리를 푹푹 내는 김철훈동무를 작업반원들은 우리 세포비서라고 정답게 부르며 따랐다고, 그래서 공장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은 잘 몰라도 장작업반 세포비서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통하였다고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김철훈동무는 지난 7월 공장을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자재가 부족하다는것을 알고는 어머니없이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어려운 속에서도 그전에 부모들이 아들의 새살림을 위해 마련해놓았던 물자를 아낌없이 내놓아 일군들과 종업원들을 크게 감동시키였다.

이렇듯 김철훈동무가 어렵고 힘든 일에 남먼저 뛰여들어 맡은 일을 잘하면서 공장을 위해 모든것을 다하였기에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그를 사회주의수호전의 앞장에서 달려온 우리 당의 참된 제대군인당원으로, 당세포비서로 그리도 잊지 못하고있는것이다.

 

동지는 곧 제2의 나

 

두달정도 당세포비서로 사업하였을 때인 지난해 1월 김철훈동무는 조선로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에서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강령적결론을 격정속에 받아안았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을 자자구구 새기며 김철훈동무는 당세포비서로서 사람과의 사업을 잘해갈 결의를 다지였다.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숭고한 뜻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의도대로 동지들을 제2의 나로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나의 모든것을 바치리라.)

그의 이런 결심은 당세포비서로 사업하는 나날에 실천으로 구현되였다.

지난해 여름 공장의 원료기지에 김매러 나갔던 종업원들은 뜻밖의 정황을 목격하게 되였다.

원료기지옆으로 흐르는 청강의 물이 장마철이여서 몹시 불어났는데 자전거를 메고 강물을 건너가던 한 사람이 그만 사품치는 깊은 물속에 빠져 떠내려가고있었던것이다.

이때 누군가가 물속에 뛰여들어 사품치는 물결을 헤가르며 물에 빠진 사람을 향해 헤염쳐가는 사람이 있었다. 김철훈동무였다.

그는 희생적으로 물에 빠진 사람도 구원하고 떠내려가는 자전거도 건져내였다.

이 모습을 보면서 공장의 종업원들은 물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김철훈동무를 칭찬하였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였는가고 묻는 사람들에게 김철훈동무는 흔연히 말하였다.

《그도 경애하는 원수님을 어버이로 모시고 사는 우리의 한식솔이 아닙니까.》

김철훈동무는 바로 이런 뜨거운 심장을 지닌 사람이였다.

지난 8월 작업반의 리정철동무가 고열로 출근하지 못한다는것을 알게 된 김철훈동무는 멀리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그의 손에는 아버지의 병치료에 쓰려고 마련해두었던 꿀과 치료에 좋다는 보약과 입맛을 돋구어줄 여러가지 식료품들이 들려져있었다.

홀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기를 위해 먼길을 달려온 당세포비서의 진정에 환자는 감동을 금치 못하였으며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참으로 동지를 위해 바친 김철훈동무의 진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하자면 끝이 없다.

지난 9월 27일이였다.

그날 김철훈동무는 처녀의 집에 선을 보러 가게 되여있었다. 아침일찍 출근한 그는 외출복과 신발을 깨끗이 빨아널었다. 홀아버지에게 빨래같은것을 시키지 않고 자기가 늘 빨아입군 하는 그였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부엌일을 맡기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온 아버지를 기쁘게 해줄수 있게 되였다는 생각으로 그는 하루작업을 흥에 겨워 해제끼였다.

하루일을 끝내고 퇴근길에 오르려던 그의 발걸음이 문득 굳어졌다. 물엿생산공정을 새로 꾸리는 현장에서 지배인을 비롯한 로동자들이 무거운 응축탕크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김철훈동무는 지체없이 탕크를 옮기는 작업에 뛰여들었다.

바줄을 응축탕크에 매고 그것을 눕혀 옮기는 작업에 여념이 없던 지배인을 비롯한 4명의 성원들은 자기들의 뒤에 서있던 높이 3m, 직경 1. 3m나 되는1. 2t짜리 당화탕크가 넘어지는것을 볼수 없었다.

이것을 발견한것은 김철훈동무였다. 소리를 칠 사이도 없었다.

김철훈동무는 몸을 날려 있는 힘을 다하여 4명의 성원들을 밀쳐냈다.

쓰러졌던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당화탕크가 넘어지면서 김철훈동무의 몸을 덮어버린것이 아닌가.

지배인과 로동자들은 순간에 벌어진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온 공장종업원들이 달려와 애타게 그를 찾고 또 찾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김철훈동무는 지배인과 리정철, 윤일남, 김금혁동무들을 구원하고 영웅적으로 희생되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지배인 조강건동무는 말하였다.

《그의 희생정신은 순간의 충동에 의해 발휘된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평시에 동지들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것을 더없는 락으로 여기며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공장을 위해 헌신해왔기에 위기일발의 순간에 서슴없이 자기 한몸을 내대여 동지들을 구원할수 있었다고 봅니다.》

김철훈동무는 이렇게 동지들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우리가 김철훈동무에 대한 취재를 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공장의 종업원들은 너도나도 찾아와 그에 대한 감동깊은 사실들을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하였다.

김철훈동무의 공장생활년한, 당세포비서사업년한은 비록 짧았지만 종업원들에게 남긴 그의 인상은 너무도 컸던것이다.

김철훈동무는 자기의 영웅적희생으로 우리 당의 당세포비서는 어떻게 살며 투쟁해야 하는가를 만사람에게 보여주었다.

김철훈동무와 같이 집단과 동지를 위해 한목숨 서슴없이 내대는 이런 당초급일군들이 있어 우리 당, 조선로동당이 그처럼 강하고 경애하는 원수님을 어버이로 모신 우리의 일심단결은 그처럼 강위력하고 억센것이다.

본사기자 리 종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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