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9월 21일 로동신문
로동당시대와 더불어 더욱 빛나는 민족문화유산-수인화
수인화!
먼 옛적부터 전해오는것으로서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이 독특한 미술형식은 로동당시대에도 련면히 이어져 주체미술발전과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적극 기여하고있다.
바로 여기에도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열화같은 민족애, 인민사랑의 손길이 력력히 깃들어있다.
주체73(1984)년 9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수인화를 발전시킬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때로부터 30년세월이 흘렀다. 이 시각 못 잊을 력사의 나날들이 더욱 가슴뜨겁게 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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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화는 조선화와 같은 회화작품들을 원작과 꼭같이 종이에 찍어내는 독특한 그림이다.
다시말하여 물채색을 쓰는 나무판화기법을 리용하여 주로 조선화작품을 비롯한 회화작품들을 종이에 찍어낸 그림을 말한다.
수인화는 현대인쇄기술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색채, 붓자리 등의 효과를 훌륭하게 나타냄으로써 붓으로 직접 그린 원작과 꼭같이 생동한 느낌을 준다.
힘있고 아름답고 고상한것을 특징으로 가지고있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미술형식인 조선화가 가지고있는 선명성과 간결성을 그대로 재현하는 수인화는 오랜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 와서도 우리 인민이 이루어놓은 우수한 미술유산들을 그대로 생동하게 형상하는 능력을 가지고있다.
수인화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부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묘향산에 보관되여있는 고려시기의 《팔만대장경》에 새겨진 그림들이 모두 수인화기법에 의한 창조물이라는 하나의 사실만 놓고보아도 수인화의 오랜 력사에 대하여 잘 알수 있다.
이처럼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의 하나인 수인화는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민족애와 과학적인 통찰력에 의하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미술의 한 종류로 발전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해방후 첫 시기부터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킬데 대한 방침을 내세우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왔습니다.》
민족문화유산을 적극 보호하고 계승발전시켜나가는것을 우리 민족의 우월성과 전통을 살리고 빛내여나가기 위한 중요한 문제로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수인화를 귀중히 여기시고 우리 인민이 향유할 또 하나의 재부로 안겨주시려 크나큰 로고를 바쳐오시였다.
1960년대초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속에서는 수인화의 기법적특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데로부터 수인화를 발전시켜나가는데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않은것은 물론 그 존재가치조차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런데로부터 오랜 력사와 전통을 이어오던 수인화는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 력사적인 유물로만 남아있게 되였다.
이러한 시기 나라의 미술발전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술부문에서 수인화를 시대적미감에 맞게 발전시켜나가도록 현명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주체54(1965)년 3월 11일 조선미술박물관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7세기에 창작된 조선화 《룡을 낚는 사람》과 19세기에 창작된 조선화 《모란과 닭》을 복제한 수인화를 보아주시고 원화와 꼭같다고, 수인화는 확실히 좋은 미술형식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수인화를 다시금 주의깊게 살펴보시며 앞으로 문화생활수준이 높아지면 누구나 다 집에다 걸것이라고 의미깊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명철하게 밝혀주신 수인화에 대한 새로운 평가는 오랜 세월을 거쳐오며 발생발전한 민족문화유산의 하나인 수인화에 대한 력사적인식과 예술형상의 미학적의미를 더욱 돋구어주고 시대적미감에 맞게 발전시켜나가는데서 뜻깊은 계기로 되였다.
이렇게 되여 력사에서 영영 자취를 감출번 하였던 수인화는 다시 태여나 민족문화유산의 귀중한 재부로,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이바지하는 독특한 미술형식으로 주체미술의 화원을 더욱 풍만하게 장식하게 되였다.
그러나 수인화의 계승발전은 순탄하게만 이어진것이 아니였다.
수인화는 미술부문의 일부 일군들의 그릇된 견해와 복고주의적경향에 의하여 자기의 독특한 미술형식을 살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들은 수인화는 본래의 고유한 속성으로부터 묵화를 기본으로 형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먹으로만 형상하도록 하였다.
이로 하여 수인화는 아무런 미학적의미와 미술의 종류적특성도 없이, 우리 인민들의 사상감정과 시대적미감에 맞지 않게 옛날그림들만 형상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깊이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나라의 민족문화유산인 수인화를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킬데 대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주체73(1984)년 9월 만수대창작사의 일군들을 몸가까이 부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념비창작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새로 창작한 수인화작품들도 몸소 보아주시였다.
이날 수인화작품들인 《참대》, 《진달래》, 《참새》를 주의깊게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인화가 괜찮다고, 참대와 진달래, 참새를 그린 수인화가 아주 좋다고, 진짜 원화같다고 만족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사실 그때 전시된 작품들은 오랜만에 처음으로 형상하다나니 미숙한 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점한점의 작품을 보시면서도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의도가 어린 작품들이 창작된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이렇듯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주신것이였다.
잠시 깊은 사색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는 수인화는 원가가 적게 들고 원화보다 형상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수인화는 원화를 그린 다음 그것을 나무에 새겨 도장을 찍는 식으로 쭉쭉 찍으면 되므로 품도 적게 들것이라고, 수인화는 한번 해볼만 한 미술형식이라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확실히 수인화는 직접 붓으로 그린 원화와 꼭같은 생동한 느낌을 나타내는것으로 하여 품도 원가도 적게 들어 인민들의 문화정서적수요를 충족시키는데 크게 기여할수 있었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수대창작사에 수인화창작실을 꾸려놓고 수인화를 많이 만들어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이바지하도록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원래 수인화는 나무판의 찍음효과를 미리 예견하고 원화의 색채와 붓자리 등을 종류별로 갈라내여 본따 그린 다음 여러개의 나무찍음판에 그 그림들을 각각 새기고 원화에서 쓴것과 같은 종이와 색감으로 물기를 맞추어가며 찍어낸다. 그렇기때문에 수인화를 찍어내는 과정은 단순히 기계적인 생산이 아니라 섬세하고도 정교한 예술적기교를 요구하는 하나의 예술창조과정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수대창작사에 수인화를 창작할수 있는 미술가, 기능공들이 얼마 없다는것을 아시고 평양시와 지방에서 수인화를 만들줄 아는 미술가들과 기능공들을 받아 수인화를 발전시키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후에는 만수대창작사에 수인화창작실을 새로 꾸리는 사업과 창작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풀어주시며 오랜 민족적전통과 력사를 가진 수인화를 새롭게 발전시켜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의 손길이 있어 수인화는 미술의 여러 종류와 함께 당당히 자기의 독특한 기법적특성을 살리며 새롭게 발전할수 있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민족문화유산의 계승발전이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다.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고 인민을 제일로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을 모셔야 유구한 력사와 문화도 보석처럼 빛날수 있음을 민족문화유산-수인화에 비낀 사연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거니 그래서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영원한 민족의 어버이이시라고 목메여 부르는것이다.
오늘 경애하는 원수님의 천재적예지와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날로 개화발전하는 주체미술의 화원속에서 민족의 자랑인 수인화도 더욱 만발하여 우리 인민들의 생활을 사회주의문명으로 보다 아름답게 가꾸는데 적극 이바지하게 될것이다.
만수대창작사 실장 공훈예술가 조 동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