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9월 16일 로동신문
석탄공업발전에 쌓으신 크나큰 업적 강성국가건설사에 길이 빛나리
《직동》에서부터 《평양》까지
《직동》과 《평양》,
이것은 2. 8직동청년탄광 채탄공이였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로력영웅, 선군시대 공로자 김유봉동무가 막장에 그려놓았던 사회주의경쟁도표판의 시작점과 끝점이다.
중대의 매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고 이름우에 10만t이라고 쓴 《전기기관차》들이 《직동》에서 시작하여 《평양》까지 오르게 되여있었다. 《평양》이라는 표식우에는 붉은 당기발이 휘날리고있었다.
그는 탄부들모두가 그 경쟁도표에서 자기의 이름을 찾아보며 석탄증산을 위한 투쟁을 벌려나가도록 불러일으킨 참다운 애국자였다. 이 영웅탄부를 우리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마음속에 새겨두시고 온 나라에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김정일동지의 정치에서 기본특징을 이룬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주체98(2009)년 8월 굴지의 석탄생산기지인 2. 8직동청년탄광에 경사가 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기온이 30℃를 넘는 8월의 무더위속을 헤치시고 150일전투로 들끓는 탄전을 찾으신것이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일군들의 인사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사적표식비건립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고 먼저 석탄생산실적부터 물으시였다. 석탄생산실적에 이곳 탄부들의 사업과 생활의 모든것이 담겨져있다고 여기신 그이이시였다.
탄광의 석탄생산실적을 알아보신 후에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연혁소개실에 들어서시였다.
탄광을 현지지도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사진문헌을 보아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 8직동청년탄광은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개발되고 우리 나라 굴지의 대규모석탄생산기지로 발전하여올수 있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탄광의 발전력사에 어린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자욱을 되새겨보시는 우리 장군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은 숭엄한 격정에 휩싸였다.
잠시후 그이께서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시기 당의 선군혁명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온 탄부들과 가족들의 투쟁자료들이 게시되여있는 호실에 들어서시였을 때였다.
《탄광의 발전과 함께》라는 제목의 직관판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느 한 사진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러시고는 선군시대 공로자인 김유봉동무의 사진도 있다고 추억깊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첫눈에 알아보시고 잊지 못해하시는 김유봉동무로 말하면 당의 의도를 높이 받들고 탄광에 자원진출한 때로부터 수십년세월 대중의 앞장에서 많은 석탄을 캐낸것으로 하여 그이께서 선군시대 공로자로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내세워주신 탄부였다.
그는 희생되기 이틀전까지도 탄광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예술공연무대에 달려나와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5차회의에 참석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장내를 둘러보실 때 자기를 알아보시고 전선길을 가시면서 불빛꺼진 거리와 마을을 볼 때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석탄만 꽝꽝 나오면 백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을것 같다고 말씀하시는것만 같았다고 하면서 더 많은 석탄을 캐내여 장군님의 걱정을 직동의 탄부들이 맨 앞장에서 풀어드리자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오로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석탄처럼 자신을 깡그리 불태우다 희생된 사랑하는 전사의 모습을 마음속깊이 새겨두시려는듯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래도록 사진을 보고 또 보시였다.
탄광일군이 그이께 직동의 탄부들모두가 김유봉동무처럼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나가도록 이끌어나갈 결의를 말씀올렸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의 결의를 들으시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다시금 영웅탄부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그토록 잊지 못하시는 영웅탄부,
김유봉동무는 지금 우리곁에 없다. 하지만 어머니당의 기억속에 영생하고있다.
2. 8직동청년탄광 탄부들만이 아닌 온 나라 탄부들이 《평양》으로 향한 석탄렬차를 힘차게 달리도록 그들의 심장마다에 오늘도 석탄증산투쟁의 불길을 지펴주고있기에.
본사기자 리 금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