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7월 10일 《우리 민족끼리》

 

강철의 령장, 위대한 전승업적  (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류력사에는 우리 수령님처럼 한평생 혁명의 총대를 틀어쥐고 반제대결전의 최전방에서 특출한 군사전략과 령군술로 백승을 떨쳐온 만고의 령장, 문무를 겸비한 장군형의 수령은 일찌기 없었다.》

력사가 알지 못하는 련전련승으로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산산이 짓부셔버리며 민족의 존엄과 기개를 남김없이 과시하고 전승의 축포를 높이 쏴올렸던 그때로부터 어느덧 61돌기의 년륜이 이 땅에 새겨지고있다.

이 시각 온 겨레는 독창적인 군사전략과 빛나는 전법, 탁월하고 세련된 령군술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굳건히 지켜주시고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신 강철의 령장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의 영구불멸할 전승업적을 가슴뜨겁게 새겨보고있다.

 

대전해방작전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으로 아로새겨진 대전해방작전은 오늘도 천재적군사전략가로서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불멸의 업적을 뜨겁게 전하여주고있다.

당시 적들의 무력증강으로 하여 조성된 군사정치정세와 전선정황을 예리하게 통찰하시고 대전지역에서 미제침략군을 포위소멸하기 위한 대담한 구상을 무르익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금강을 성과적으로 도하한 전선주타격집단이 대전방향으로 전과를 계속 확대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적들이 《림시수도》로 정한 대전은 령남과 호남지역을 잇는 군사전략상요충지로서 공화국남반부의 전지역을 해방하고 차후 남해안에서 벌어질 격전들을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수행하기 위하여 반드시 디디고 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지점이였다.

몸소 포연을 헤치시고 전선사령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전해방작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대전지구와 린접해있는 괴뢰군부대들이 미24보병사단을 지원하지 못하게 멀리 밀어내고 견제하는 한편 인민군부대들이 대전 북쪽과 서북쪽 그리고 익측에서 적들을 압축하여 타격하도록 하시였다. 이와 동시에 대전 동남쪽에 진출하여 포위를 진행하여야 할 련합부대가 적들의 집요한 저항으로 지체되는 경우 론산계선에 진출한 부대들의 일부 력량이 대전 동남쪽으로 신속히 우회기동하여 적의 퇴로와 증원부대의 진격로를 차단함으로써 대전의 적들을 빠른 시간안에 완전히 포위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작전적묘책에 따라 인민군련합부대들은 곧 대전포위를 위한 작전행동을 다그쳤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은 론산계선의 인민군부대는 대도로를 따라가도 100여리나 되는 거리를 험한 산발을 타고넘어 하루밤사이에 감쪽같이 대전 남쪽과 동남쪽에 진출하여 대전-금산, 대전-영동사이의 도로를 차단함으로써 적의 퇴로를 완전히 끊어놓았다. 때를 같이하여 대평리지역에서 공격하던 인민군련합부대는 유성을 해방하고 대전 서북쪽에 진출하였으며 청주방향으로 공격하던 련합부대도 적의 방어선을 뚫고 마침내 대전 북쪽에 도착함으로써 20일 새벽에 이르러 인민군부대들은 대전시를 중심으로 한 100㎞²의 지역에 적을 몰아넣고 완전히 포위하는데 성공하였다.

대전시가에 대한 공격에 앞서 먼저 기동한 인민군소부대들은 적소굴로 은밀히 뚫고들어가 중요대상물들과 유생력량들을 맹렬히 타격소멸함으로써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련합부대의 시가공격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였다.

주체39(1950)년 7월 20일 새벽 5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전시가에 대한 총공격명령을 내리시였다.

드디여 대전시가에 포위된 적집단에 대한 일대 섬멸전이 개시되였으며 총공격으로 넘어간 인민군련합부대들은 포위한 적을 대전시내 6∼7㎞²의 좁은 지역에 몰아넣고 맹렬히 타격하였다.

인민군대의 포위망이 조여들자 적들은 걷잡을수 없는 혼란에 빠져 갈팡질팡하면서 무질서하게 저항했다. 적들의 지휘체계는 완전히 마비되고 전투서렬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이번 전투에서 《시범을 보여 신뢰를 얻겠다.》던 미24사단장 띤은 대전싸움에서 또다시 졌다는것을 인정하고 사단에 퇴각명령을 내리지 않을수 없었다. 퇴각종대들은 땅크들을 앞세우고 대전-금산사이, 대전-영동사이로 빠져나가려 했으나 퇴로를 차단하고있던 인민군부대의 호된 징벌을 면치 못하였다. 여기서 간신히 도망친 띤은 병사옷을 갈아입고 산속으로 들어갔으나 얼마 못가서 인민군 한 전사에게 포로가 되고말았다. 《상승사단》은 완전히 괴멸되고말았다. 

이렇게 대전해방전투는 인민군대의 승리로, 침략자 미제의 참혹한 패배로 끝났다.

우리 식의 포위전법에 얼마나 혼이 났던지 조선전쟁에 참가하였던 미군장교 페렌바크는 실록 《한국전쟁》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그들(인민군대를 말함)은 방어군을 정면으로 공격해서 그 자유를 묶고 후퇴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한편 우회하거나 종심에 침투하는 방법으로 방어군의 후방에 나타나 퇴로를 차단하는 그런 전술을 썼다.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띤이건 또는 다른 지휘관이건 후방의 상황을 파악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것은 잘 정리된 전선을 유지하는 유럽식경험을 쌓은 군사지휘관들이 이미 때가 늦었을 때까지 파악 못한 전술이였다.》

페렌바크의 이 말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전해방작전에 적용하신 우리 식의 포위전법의 불패의 위력에 대한 솔직한 시인이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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