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2월 18일 《우리 민족끼리》
혁명일화
은혜로운 태양의 품
소원을 성취한 목사
주체90(2001)년 11월 11일 조국에 체류중이던 재미동포 홍동근목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재미동포전국련합회 고문, 그리스도교목사인 그는 일찍부터 깨끗한 애국애족의 마음을 간직하고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한 애국자였다. 특히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홍동근목사의 흠모심은 남달리 강하였다.
이미 도서 《김일성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고》와 《백두산의 노래》를 집필한데 이어 당시 목사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90돐을 맞으며 《김일성주석 덕성일화 100》을 쓰고있었다.
그런데 그 도서의 마무리작업을 위하여 조국에 왔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된것이였다.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몹시 마음이 쓰리시였다.
7년전 자신을 만났을 때 책을 쓰겠다고 하던 목사의 모습이 삼삼히 떠오르시였다.
일군들은 목사의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서둘렀다.
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조용히 밀막으시며 미국에서 그의 가족이 조국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장례를 치르어주자고 이르시였다.
일군들은 뜨거운 동포애로 세상에 없는 관례까지 만드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눈굽을 적셨다.
그리하여 목사의 장례식은 근 1주일간이나 늦어지게 되였다.
조국에 도착하여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목사의 부인은 남편의 유해가 애국렬사릉에 이르자 북받치는 격정을 더는 참을길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돌려주신 사랑에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홍목사는 늘 말하기를 자기가 죽으면 조국땅에 묻어달라고 하였는데 그 소원을 위대한 장군님께서 풀어주시였습니다. 저의 주인은 <래세의 천당>이 아니라 현세의 천당인 장군님의 품에서 영생하게 되였습니다.》
이렇듯 이국에서 파란만장의 세파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홍동근목사는 조국의 품에서 생을 마쳤다.
근 60년만에
주체91(2002)년 1월 어느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건의 심상치 않은 보고를 받으시였다.
국제태권도련맹 총재인 최홍희선생이 그만 불치의 병에 걸려 조국에 와서 치료를 받고싶어 한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쩐지 그가 단지 병치료만을 념두에 둔것 같지 않으시였다. 불우한 타향살이에서 지친 생을 마감이라도 조국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편안히 맺고싶은 마음에서 그런 청을 했으리라고 생각되시였다.
어언 나이 84살, 고향을 하직한지 근 60년이 된 총재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즉시 선생이 조국에 오도록 대책을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그는 부인과 함께 조국에 도착하여 검진을 받은 다음 전문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되였다.
3월 16일 그의 병상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인사와 함께 여러가지 신선한 과일을 보내시여 그가 신심을 가지고 병치료를 해나갈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주시였다.
그는 큰 수술을 받기도 하였지만 로년에 맞다든 병이여서인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그는 얼마후 불편한 몸으로 외국에 나가 태권도와 관련한 문제를 성과적으로 처리하고 조국에 다시 돌아와 1개월만에 끝내 세상을 떠났다.
최홍희선생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통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최홍희총재는 우리 수령님께와 당에 태권도를 가지고 조국통일에 이바지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고 수십년동안 해외에서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태권도활동을 열정적으로 해오다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것을 알고는 조국의 품에 안겨 생을 마쳤습니다.
최홍희총재는 결국 인생의 마무리를 잘한셈입니다.》
그의 장례가 진행될 때 사람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품이야말로 조국통일의 길에 나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품에 안아 따뜻이 보살펴주시고 영생의 언덕에 내세워주시는 은혜로운 태양의 품이라는것을 심장으로 더욱 뜨겁게 절감하였다.
본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