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2월 8일 《우리 민족끼리》
혁명일화
겨레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시려고 (8)
조국통일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필생의 념원이고 간곡한 유훈이다.
분렬의 고통속에 신음하는 겨레를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최대의 애국으로 내세우시고 그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민족최대의 명절인 광명성절을 맞으며 위대한 장군님의 조국통일령도업적과 관련한 일화들을 련재로 소개한다.
친필비앞에서 무르익히신 구상
주체85(1996)년 11월 24일.
력사의 그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의 그날을 보시지 못하고 너무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어버이수령님이 못견디게 그리우시고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존함이 또 보고싶으시여 친필비를 다시금 찾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하신 존함을 우러르며 친필비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위업에 기울여오신 로고의 낮과 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 시기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민족의 분렬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를 다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로선과 방침, 방안과 제안들을 몸소 구상하시고 작성하시였으며 그것을 해마다 보고와 연설, 담화를 통하여 천명하시였는데 그 수는 수백건에 달할것이다. 북과 남이 합의하고 민족앞에 엄숙히 선언한 조국통일3대원칙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도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도 다 우리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가장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침이다.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이것이 조국통일의 3대기둥, 3대헌장이라고 말할수 있다. 우리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남조선과 해외의 각계 인사들과 외국인들을 만나주시고 나라의 통일문제에 대하여 강조하신 회수는 정말 헤아릴수 없이 많다. 항일혁명투쟁시기를 내놓으면 우리 수령님의 한생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한생이였다고 할수 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한없이 숭엄한 격정에 휩싸였다.
조국통일3대헌장에 어려있는 수령님의 크나큰 업적이 일군들의 가슴에 뜨겁게 되새겨졌던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누구도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에 거룩한 자욱을 새기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심중에서 어떤 위대한 구상이 무르익고있는가 하는것을 다는 알지 못했다.
그때로부터 한해가 지난 주체86(1997)년 8월 4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로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조국통일위업에 쌓아올리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전면적으로 집대성하시고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정립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통일3대헌장을 마련해주심으로써 우리 민족은 뚜렷한 목표와 방향, 신심과 용기를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의 숙망을 성과적으로 실현해나갈수 있게 되였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조국통일3대헌장이야말로 조국통일의 기치이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정당하고 현실적인 투쟁강령이라고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이렇게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헌장은 통일을 념원하는 우리 민족모두가 받들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이다.》
이 로작을 받아안고서야 일군들, 아니 전체 군인들과 인민들은 판문점시찰의 잊지 못할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앞에서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의 3대헌장으로 정립하여 공포하실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몸소 이름지어주신 《통일각》
주체85(1996)년 11월 24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판문점을 현지시찰하실 때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앞에서 일군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통일각》에 들리시였다.
《통일각》의 내부를 일일이 돌아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그 건설유래와 거기에 깃든 가지가지의 사연들을 감회깊게 들려주시였다.
사실 《통일각》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발기하시고 세심한 지도를 주심으로써 건설된 뜻깊은 건물이였다.
주체73(1984)년 초가을 공화국이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준것을 계기로 북남사이에는 여러 갈래의 회담들이 진행될것이 예견되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하여도 판문점에는 《판문각》이 있었지만 북남회담을 하기에는 매우 협소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관계부문의 한 책임일군에게 판문점에 북남회담을 할수 있는 집을 한채 잘 지을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많은 자금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설계도면이 완성되였을 때에는 그것을 친히 보아주시고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으며 건설이 빠른 시일안에 완공되도록 필요한 모든 조건을 최우선적으로 충분히 보장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공화국의 건설자들은 단 몇달동안에 이 집을 훌륭하게 완공하였다.
건물이 다된 다음 일군들은 집이름을 어떻게 짓겠는가를 의논하던 끝에 몇가지 안을 만들어 위대한 장군님께 보고드리였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보고를 받으시고 어버이수령님과 토론하시여 《통일각》이라는 이름을 친히 지어주시였던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회고하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통일각>이라는 이름이 좋습니다.
통일이 되기 전에는 통일을 념원하는 뜻에서 좋고 통일된 다음에는 통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좋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에는 수령님의 통일의지를 담아 《통일》이라는 이름을 단 집과 거리, 국가표창도 있다고 하시면서 평양에 《통일거리》가 있고 개성에도 《통일거리》가 있으며 또 《통일관》이라는 큰 국수집도 있고 《조국통일상》도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통일각》은 진짜 멋쟁이집이라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참으로 《통일각》은 그 이름으로 보나 건물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손색이 없는 멋쟁이집이였다.
《통일각》이 완공된 후 처음으로 진행되는 북남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통일각》에 왔던 남측기자들은 《통일각》이라는 현판과 건물외형을 사진찍으면서 회담장이 정말 멋있다, 이남당국자들은 통일의지가 없다보니 통일을 상징하는 이런 훌륭한 건물을 지을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통일각》이 준공된 후 판문점에서 진행된 북남회담들은 례외없이 여기에서 진행되였다.
하여 《통일각》은 우리 민족의 통일념원과 의지를 체현하고있는 뜻깊은 집으로 되고있다.
본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