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2월 7일 《우리 민족끼리》
혁명일화
겨레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시려고 (7)
조국통일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필생의 념원이고 간곡한 유훈이다.
분렬의 고통속에 신음하는 겨레를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최대의 애국으로 내세우시고 그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민족최대의 명절인 광명성절을 맞으며 위대한 장군님의 조국통일령도업적과 관련한 일화들을 련재로 소개한다.
중대조치
어버이수령님께서 너무도 뜻밖에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중대보도가 나간 주체83(1994)년 7월 9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된 중대한 조치를 취하시였다.
당시 관계부문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심으로써 북남최고위급회담은 자연히 무산되는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을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속에서도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운명과 전도를 두고 생각하시였다. 장군님의 심중에는 그토록 환희에 휩싸여 기대와 희망을 안고 기다려온 북남최고위급회담문제를 놓고 겨레가 받게 될 좌절감과 실망감이 가슴아프게 안겨왔다.
어버이수령님의 념원과 민족의 소망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뒤를 이어 자신께서 민족의 운명, 조국통일문제해결의 결정적국면을 열어놓으실 의지밑에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중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를 전면중단하고 손맥을 놓고있는 관계부문 일군들에게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일단 연기할데 대한 전화통지문을 남조선당국에 보낼데 대해 지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7월 9일과 10일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므로 11일에 전화통지문을 보내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해당 부문에서는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회 위원장의 명의로 주체83(1994)년 7월 11일 오전 10시 사정에 의하여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일단 연기한다는것을 남측에 전화통지문으로 공식통고하였다.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연기조치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과 념원을 받들어 조국통일성업을 반드시 이룩하시려는 결사의 의지를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내리신 대결단이였으며 최고위급회담의 유효성을 천명하는 애국애족적이며 통일지향적인 중대조치였다.
중단되지 않은 범민족대회
온 겨레가 어버이수령님을 뜻밖에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으로 하여 피눈물의 바다에 잠겨있던 주체83(1994)년 8월 5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제5차 범민족대회와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원래 제5차 범민족대회는 주체83(1994)년 5월 26일 제2차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에서 합의한대로 8. 15에 기본대회를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의 주관밑에 서울에서 하면서도 평양과 도꾜에서도 각기 대회를 진행하며 서로 대표단을 교환, 파견하기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그해 7월 민족사에 일찌기 없었던 대국상을 당하게 되자 범민련 북측본부와 관계부문의 일군들은 이런 때 어떻게 범민족대회와 같은 행사를 벌려놓겠는가고 하면서 8. 15범민족대회를 그만두는것이 마땅한 도리로 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이 모든것을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8월 5일 해당 부문의 책임일군에게 이번에 진행하는 8. 15범민족대회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범민족대회인것만큼 수령님의 생전의 뜻인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의 사상을 받들어 특색있게 크게 하는것이 좋겠다는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주저앉으려던 일군들을 안아일으키는 거대한 힘으로 되였다.
일군들은 비장한 각오를 안고 범민족대회준비를 다그쳐나갔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주체83(1994)년 8월 11일 범민련 북측본부 대변인은 제5차 범민족대회를 계획대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동안 진행하게 된다는것과 북측이 해외측 범민족대회에 참가할 5명의 대표들을 8월 13일에 일본 도꾜로 보내며 8월 14일에는 서울대회에 참가할 10명의 북측대표들을 판문점을 통하여 서울로 파견할것이라는것을 선포하였다.
8월 13일 평양에서는 겨레의 통일의지를 과시하며 모여온 1만 5 000여명의 대회참가자들과 평양시민들이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앞에서 수령님의 유훈을 받들어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밑에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겨 실현할것을 다짐하는 통일실천결의집회를 진행하는것으로 제5차 범민족대회의 막을 성대히 올렸다.
이어 대회기간에 여러 주제의 다채로운 통일축전행사들이 벌어졌다. 한편 서울대회에 참가할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이 판문점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은 민족공동의 통일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나가려는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의 판문점통과를 가로막았으며 제5차 범민족대회(서울)자체를 《리적행위》로 《범죄》시하고 대회관련자들을 체포구속하면서 서울대회를 탄압해나섰다.
하지만 그 어떤 폭압으로써도 남조선인민들의 통일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남녘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서울대학교 정문앞에 바리케드를 쌓고 치렬한 공방전을 벌리면서 제5차 범민족대회를 강행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일본 도꾜에서도 제5차 범민족대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피눈물속에서도 중단없이 진행된 제5차 범민족대회는 어버이수령님의 생전의 념원대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말 7천만겨레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고 온 강토에 통일열기를 더욱 북돋아준 력사적계기로 되였다.
본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