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2월 6일 《우리 민족끼리》
혁명일화
겨레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시려고 (6)
조국통일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필생의 념원이고 간곡한 유훈이다.
분렬의 고통속에 신음하는 겨레를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최대의 애국으로 내세우시고 그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민족최대의 명절인 광명성절을 맞으며 위대한 장군님의 조국통일령도업적과 관련한 일화들을 련재로 소개한다.
뭐니뭐니 해도 민족이 제일이라고 하시며
주체73(1984)년 늦여름, 례년에 없이 많은 비가 쏟아져내려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의 여러 지역에 대홍수가 휩쓸었으며 그로 하여 단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수많은 수재민들이 생겨났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시고 남조선수재민들이 겪는 참상에 대하여 가슴아파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중히 송수화기를 드시고 어버이수령님께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주었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주는 조치를 취하자는 위대한 장군님의 발기를 적극 지지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즉시에 해당 부문 일군들의 협의회를 여시였다.
협의회에서는 수재민구호대책문제가 토의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어려울 때 형제라고 했는데 남조선인민들이 수해를 당하여 고충을 겪고있는데 우리가 가만있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수해를 입은 남조선리재민들에게 뜨거운 혈육의 정이 깃든 구호물자를 보내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지체없이 인도주의단체의 명의로 남조선의 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줄데 대한 결정을 발표하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리하여 주체73(1984)년 9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는 남조선수재민들을 구제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수해지역 리재민들에게 쌀 5만석, 천 50만m, 세멘트 10만t, 기타 많은 의약품을 구호물자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공화국이 보내기로 한 구호물자는 남조선당국이 최종집계하여 발표한 리재민수에 비추어보면 5인가족으로 계산하여 가족당 쌀은 약 250㎏(5가마니), 천은 17m 차례지는것으로 되며 세멘트는 3만동의 살림집을 신축할수 있는 량이며 의약품은 수해지역에서 발생할수 있는 각종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으로 쓸수 있는것이였다.
120여년간의 국제적십자구제운동력사에 최고기록을 남긴 구제금은 1983년에 스웨리예가 수해를 입은 인디아에 제공한 75만US$였다. 그런데 우리 공화국의 구호물자는 그의 24배나 되는 1 800만US$에 해당한것이였다.
언제나 혈육의 정으로 남녁동포들을 생각하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는 구호물자가 많기는 많습니다. 그러나 한 동포를 구원하는 일인데 구호물자가 아무리 많아도 아까울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저축해두었던것을 남조선동포들을 구제하는데 쓰지 않고 어디에 쓰겠습니까.
뭐니뭐니 해도 민족이 제일입니다. 도와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공화국의 동포애적조치가 발표되자마자 온 세계가 들끓었고 온 남녘땅이 감격에 설레이였다. 남조선수재민들은 이제야 살길이 생겼다고 하면서 서로 얼싸안고 돌아갔다.
남측이 북의 구호물자를 받아가기로 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남녘동포들을 생각하시는 수령님의 사랑은 나라가 분렬되여 40년만에 처음으로 분계선을 넘어가게 되였다고,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수령님과 우리 당의 사랑의 힘을 분계선도 감히 막을수 없다고 격정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어 일군들에게 구호물자를 준비하여 보내주기 위한 사업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는것은 한피를 나눈 동포애의 마음을 보내는것인데 거기에는 한점의 티도 없어야 한다고, 알알이 고르고 오리오리 다듬어서 보내야 마음을 놓겠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언제나 민족을 제일로 사랑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민족애에 떠받들려 구호물자를 실은 1 400여대의 화물자동차와 14척의 대형짐배들이 고동을 울리며 남녘땅으로 출발하였다.
세상사람들은 남녘동포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뜨거운 은정에 크나큰 감동과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임당수가 전하는 사랑의 전설
주체73(1984)년 9월 어느날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는 세멘트를 실은 마지막배인 《대동강》호가 인천항을 향해 가던중 장산곶부근에서 좌초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장산곶이라면 옛 전설에 나오는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제물로 자기 몸을 던졌다는 임당수부근으로서 물살이 사납고 암초가 많아 배군들이 피해다닌다는 곳이였다.
오죽했으면 배군들속에서 예로부터 동해에서 무수단과 함께 서해의 임당수를 무사히 지나가야 배군으로 인정받았다는 말이 전해오고있겠는가.
나라가 갈라져 근 40년만에 처음으로 가보는 그런 바다길이다보니 《대동강》호가 그런 뜻하지 않는 사태에 맞다들린것이였다. 그 배에는 1만 2 000t의 세멘트가 실려있었다.
일군으로부터 비상사고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대동강>호에 탄 우리 적십자대표일행을 다른 배에 옮겨태워야 하겠습니다. 세멘트는 다시 실어보내면 됩니다.》
엄청난 비상사고임에도 장군님께서 즉시 대책을 세워주시는데 놀란 일군은 사태의 진상을 다시 말씀드렸다.
일군의 설명을 듣고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시간이 모자란다는것은 결국 불가능하다는것인데 우리에게는 불가능이란 있을수 없다고, 이제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우리 적십자대표들을 《장산》호에 옮겨태우는것은 시간이 걸릴것도 없고 1만 2 000t의 세멘트를 배에 싣는것도 인차 할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일군의 생각은 복잡하였다.
그 많은 세멘트를 이제 남은 몇시간안에 어떻게 다시 실어보낸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가 무상으로 보내주는 구호물자인데 10만t의 세멘트에서 1만 2 000t쯤은 사정이 그러하여 못 보내주는것인데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서있는 그 일군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확신에 넘치시여 말씀하시였다.
《당의 결심이라고 하면 우리 인민들이 반드시 해낼것입니다. 나는 우리 인민을 믿습니다. 우리는 약속한대로 남조선수재민들에게 10만t의 세멘트전량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남녘인민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담겨진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조선인민군 군인들과 인민들은 바다와 륙지에서 긴장한 전투를 벌렸다.
파도사나운 임당수에서는 인민군군인들에 의해서 적십자일군들이 무사히 《장산》호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였다.
한편 륙지에서는 화차들이 순천세멘트공장으로 질풍같이 달려갔고 세멘트공장 로동자들은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전투를 벌려 세멘트를 실어보냈다.
남포에서도 항의 모든 로동자, 사무원들이 떨쳐나 실려오는 세멘트들을 두척의 배에 옮겨실었다.
순천세멘트공장과 남포항 종업원들이 긴장한 전투를 벌린 결과 1만 2 000t의 세멘트를 실은 《순천》호와 《룡남산》호는 9월 30일 저녁 10시 남포항을 떠나 10월 1일 아침 인천항에 닻을 내리게 되였다.
그리하여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는 공화국의 구호물자전량은 계획된 기간안에 남측에 성과적으로 전달되게 되였다.
하기에 판문점현지에서 구호물자인도인수정형을 직접 목격한 일본의 한 기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남조선수해지역 리재민들에게 보내준 구호물자량이 세계구제력사의 최고기록으로 될수 있은것은 김정일지도자의 품이 대해같이 넓으시고 인민을 위하시는 그 심장이 거대하고 뜨겁기때문이였다.》고 감탄해마지 않았다.
외국인의 반영이 이러할진대 구호물자를 직접 받은 남녘동포들의 감동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본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