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  명  설  화

 

후대들을 위해 바치신 숭고한 사랑

 

해방후 새 조국건설시기 후대들을 위해 바치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숭고한 사랑은 오늘도 온 겨레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지들을 위해 한생을 살았습니다.》

주체35(1946)년 1월 중순 어느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 평양시주변농촌에 나가 농민들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알아보실 때의 일이다.

그날 김정숙어머님께서는 한 농가에도 허물없이 들리시였다.

그때 방안에서는 마을의 어린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시던 김정숙어머님의 눈빛은 저으기 흐려지시였다.

어린 학생들이 모래판을 놓고 나무가지로 글을 쓰고있었던것이다.

조용히 방안에 들어서신 어머님께서는 그들의 어깨를 어루만지시며 연필이 없어 이런 모래땅에 글을 쓰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어린 학생들은 얼른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더니 한참만에야 한 학생이 머리를 들고 연필은 있지만 학교에 가서 쓰려고 아낀다고 대답올렸다.

어머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신듯 그애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학생들의 책보를 하나하나 펼쳐보시였다.

꽁다리연필뿐이였다.

어머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고 연필값은 얼마이며 연필이 없는 학생은 몇이나 되는가, 평양에 나가면 살수 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평양에 가면 살수 있지만 모래판에 글을 써도 공부를 할수 있어 좋다는 학생들의 대답을 들으신 어머님께서는 더욱 가슴이 아프신듯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이 사실을 위대한 김일성주석께 그대로 보고드리시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일제놈들이 오랜 식민지통치기간에 연필공장 하나 짓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나라에서 큰 연필공장을 건설하도록 하는 한편 당면하게는 중소기업가들이 곳곳에서 연필을 생산하여 보장하도록 하게 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뜻을 받드시여 어머님께서는 이날부터 중소기업소들에서 연필을 생산하도록 온갖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주석께서는 어머님께서 드리는 몇자루의 연필을 받으시였다.

연필을 받아드신 그이께서는 연필이 어디에서 났는가고 물으시였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평양시의 한 개인기업가가 자그마하게 설비를 차려놓고 수공업적으로 연필을 만들고있다는것과 위대한 주석께 보여드리려고 몇자루 가져왔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어머님께서 깎아드리신 연필로 글을 써보시더니 이만하면 됐다고, 우리 아이들이 쓸만 하다고 하시며 귀중한 싹을 발견했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위대한 주석께서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1차회의 의정으로 연필문제를 상정하도록 하시였다.

우리 학생들에게 차례진 연필마다에는 이렇듯 해방후 후대들을 위해 바치신 백두산녀장군 김정숙어머님의 다심한 사랑과 은정이 뜨겁게 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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