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1(2012)년 1월 22일 《우리 민족끼리》
일반상식
설
《설》이란 새해의 첫날, 설명절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말에서 《설》은 나이를 셀 때에 쓰는 《살》이라는 말과 본래 같은 말이였다. 《설》이란 말의 력사적어원을 따져보면 《새것》을 의미하던 《사라(새)》라는 단어와 같은 뜻으로 써왔다는것을 알수 있다. 오늘 조선말에서 《설》은 《새롭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면서 《새해의 첫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있다.
우리 겨레는 고대국가시기부터 설명절을 쇠여오고있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초가 되면 강가에 모여 돌팔매놀이, 눈끼얹기와 같은 놀이들을 하면서 즐겁게 보냈다. 설명절맞이는 고려, 리조시기에 이어져 전통적인 풍습으로 더욱 고착되여 큰 규모로 진행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1896년부터 양력이 사용되였으나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오랜 민속전통을 이어 음력 정월초하루를 기본으로 설명절을 쇠고있다.
섣달그믐날에는 집안팎을 깨끗이 거두고 십장생그림을 그려붙이는 등 명절분위기를 돋구었으며 설옷(설빔, 세장)과 설음식을 준비하였다. 또한 이날 새해에 풍년이 들기를 념원하여 일부 도구들을 새로 장만하기도 하였다. 곳에 따라서는 섣달그믐날에 《묵은세배》라고 하며 웃어른들을 찾아가 마지막인사를 하였고 친구들사이의 정도 두터이하였다.
설맞이는 새해 정월초하루날의 이른아침부터 진행되였다. 설맞이행사로는 차례와 세배, 설음식대접, 민속놀이 등이 있었다.

세배풍습은 우리 인민이 웃사람을 존경하고 례의를 귀중히 여겨온데서 생겨난 풍습이다. 설날 이른아침에 조상에 대한 차례(제사)를 지내고 집안의 웃사람순서로 차례차례 큰절로 세배를 한 다음 마을의 웃어른들, 가까운 친척집의 웃사람들, 스승들에게 세배를 하였다. 이웃마을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곳에 사는 어른들에게도 세배하러 다니였는데 그때의 세배는 명절이 지났어도 보름전에 하면 례의를 지키는것으로 되였다. 친구들사이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덕담(앞으로 잘되기를 축복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만일 세배하러 집에 찾아갔을 때 그 집주인이 없으면 대문간안의 탁자우에 있는 종이에 자기의 이름과 새해 축하의 말을 적어놓고오거나 좋은 인사말을 적은 종이쪽지를 어린이에게 시켜 상대방집 대문안에 있는 탁자우에 갔다놓고오게 하였다. 그러면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새해의 세배를 한것으로 되였다. 이 방법은 글로 세배를 대신하는 례절로서 《세함》풍습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같은 시기 다른 나라에서는 볼수 없었던 류다른 세배풍습이였다. 웃사람을 존경하고 잘 모시며 이웃과 벗들간의 화목을 도모하는것을 미덕으로 지켜오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미풍은 바로 세배풍습에도 잘 반영되여있다.
설날에 하는 즐거운 일은 다음으로 설음식을 잘 차리여 친척들이 한곳에 모여 식사를 하고 찾아오는 세배군들도 잘 대접하는것이였다.
설음식으로는 떡국, 찰떡, 설기떡, 절편 등과 여러가지 지짐류, 당과류, 수정과, 식혜, 고기구이, 과실, 술을 마련하였고 특히 떡국은 설음식으로서 빠져서는 안되는것이였다. 설날아침의 식사는 대체로 부모들이 사는 집에 모여서 가족끼리 즐겁게 하였다.
설명절을 특별히 장식하고 즐겁게 한것은 민속놀이이다. 설날의 놀이로는 대중적인 놀이인 윷놀이와 장기, 어린이들의 연띄우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바람개비놀이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놀이는 우리 인민이 예로부터 즐겨온것으로써 정서적이면서도 체력단련에 도움을 주었다.


설명절은 우리 인민이 가장 크고 즐겁게 쇠는 민속명절의 하나로 해를 이어 오늘까지 계승되여오고있다.
설명절을 맞는 우리 인민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영생을 기원하며 백두산천출위인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따라 사회주의조국을 강성국가로 끝없이 빛내여나갈 의지로 가슴불태우고있다.
본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