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옥  봉

(16세기)

 

리조시기의 녀류시인. 전라도 옥천군수였던 리봉의 딸로 태여났으나 첩의 자식이라는 리유로 일생을 불행하게 생활하였다. 그는 자신의 눈물겨운 생활체험에 기초하여 많은 서정시들을 썼다. 당시 그의 많은 시들은 국내에 널리 퍼져 광범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리조말기의 많은 평론가들이 그를 수천년간에 걸치는 녀류시단에서 가장 뛰여난 시재중의 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명시종》, 《렬조시집》 등과 같은 작품집들에도 수록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들은 잃어져 전하지 못하고있다.

그의 시들가운데는 남존녀비의 악습으로 2중3중의 고통과 불행을 겪는 녀성들의 고달픈 처지와 심리정서세계를 노래한 시들이 많다. 시 《녀인의 마음》, 《7석》, 《운강에게》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서는 사랑을 귀중히 여기는 녀성들의 순진하고 인정깊은 생활세태와 깨끗한 애정륜리를 찬양하였다.

리옥봉의 시들가운데는 나라를 사랑하고 침략자들을 미워하는 애국적감정을 반영한 작품들도 적지 않다. 《외적을 막기 위해 서울에 가계신 남편에게》, 《계미년란리》, 《병사에게》 등 작품들은 침략자들에 대한 증오와 외적을 물리치는 남편을 지략으로 돕지 못하는 안해의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고있다. 리옥봉의 시들은 폭로비판의 기백이 약하고 애상적인 색조를 띠고있는 점이 있으나 녀성적인 소박하고 섬세한 필치로 천대와 멸시를 당하는 봉건사회녀성들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한것으로 하여 진보적인 의의를 가지며 우리 나라 중세녀류시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외적을 막기 위해 서울에 가계신 남편에게》

 

한자시.

 

싸움이 서생의 일은 아니라 하오나

나라근심에 그대 머리는 반쯤 희였사오리

 

원쑤 무찌를 용감한 장수를 찾나이까

이길 꾀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을 구하나이까

 

국경에선 피가 흘러 산과 물도 붉어지고

싸움터엔 먼지 일어 해와 달도 빛을 잃었다오

 

그리운 서울소식 들을 길 아득하여

호수가의 봄빛도 못내 쓸쓸하옵니다.

 

작품은 외적을 막기 위한 군사문제를 가지고 서울에 간 남편의 소식을 몰라 안타까운 마음 진정할길 없는 안해의 절절한 심정을 실감있게 전달하고있다. 시에서는 구체적인 감정정서를 타고 님을 걱정하는 서정적주인공의 다감한 정신세계와 나라의 운명을 두고 마음을 쓰는 고상한 애국적감정을 잘 결합시켜 깊이있게 보여주고있다.

님을 그리워하는 녀인을 서정적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의 심리세계를 폭넓게 개방하여 펼침으로써 시는 짙은 서정을 보장하고 사상적내용도 여운있게 보여주고있다.

인민적인 사상감정이 뚜렷하지 못한 제한성이 있으나 이 시기의 대표적인 애국주의주제의 시작품으로서 의의를 가진다.

 

《녀인의 마음》

 

한자시.

 

그리운 님 오마하고 왜 안오시오

뜰앞의 매화는 벌써 시드는데…

 

가지우에 재잭이는 까치소리 듣고도

거울 보며 서둘러 눈섭을 그립니다.

 

《노래》

 

한자시.

 

래일밤은 무척 짧아진대도

오늘밤은 그냥 길어주소서

 

닭 울어 먼동이 트려고 하니

님 보낼 설음에 눈물집니다.

 

《리별이 서러워》

 

한자시.

 

님 리별 한평생에 병이 되여서

술로도 약으로도 이 병은 못고치오

 

얼음밑을 흐르는 강물과 같이

내 눈물 흐르는걸 남들은 못보오

 

《녀인의 마음》, 《노래》, 《리별이 서러워》는 모두 님에 대한 녀인의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시에서는 녀인의 세심하고도 구체적인 생활적감정을 깔고들어가면서 님을 그리는 녀인의 깊은 서정세계와 님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려는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고있다.

뜻이 깊고 정서깊은 시적세부들과 표현들을 적극 살려 작품은 풍부한 시적형상을 창조하였다. 세속적인 감정에 머무른 제한성이 있으나 이 시기 녀류시문학의 발전면모를 보여주는 세련된 시형상으로 하여 의의를 가진다.

 

일생을 생명의 은인에게 맡긴 시인

 

리조시기의 이름난 녀류시인으로 허란설헌과 리옥봉을 함께 꼽는다. 옥봉의 어머니는 인물 잘나고 령리하며 시도 잘 짓는 딸을 부자집에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옥봉이가 18살나던 어느 여름날이였다. 훌륭한 사위감을 고를가 하여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친척벌되는 어느 한 량반의 집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옥봉이가 더위를 먹고 쓰러졌다. 인가도 없는 곳에서 당한 일이라 어머니가 어찌할바를 몰라 딸을 붙들고 울고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한 선비가 그 정상을 보고 자기몸에 지니고다니던 약을 꺼내주었다. 잠시후 옥봉은 정신을 차렸다.

딸을 데리고 가던 길을 계속 가겠는지 망설이고있는데 선비가 자기집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 같이 가서 딸을 더 치료해가지고 가는것이 어떤가고 하였다. 선비의 권고대로 어머니는 옥봉을 데리고 그가 거처하고있는 집(초당)으로 갔다. 이 선비의 이름은 조원이며 진사로서 거문고를 타고 낚시질을 하며 어수선한 세월을 보내고있는 인정있는 사람이였다. 잘 생긴 얼굴, 뜨거운 마음, 사람을 대하는 순박한 풍모, 허례와 가식이 없는 인정…

(이러한 곳에서 저와 같은 선비를 랑군으로 섬기고 살아보았으면…)

어느덧 옥봉의 마음속에는 젊은 선비가 들어앉기 시작하였다. 사람을 위압하는 알수 없는 힘이 젊은 선비에게서 풍겨나옴을 느낄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옥봉은 한번만이라도 더 그 초가삼간을 찾아가보고싶은 야릇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으며 날이 갈수록 더더욱 그리워지는 마음을 누를길 없어 밥맛까지 잃었다.

어느날 옥봉은 유모를 불러 이야기했다.

《내 괴로운 심정을 유모는 알아주겠지?》

《무슨 허물이 있겠소. 나하고야 허물이 없지.》

무슨 말인지 어서 꺼내놓으라는 유모의 따뜻한 태도에 끌려 옥봉은 자기의 마음속모대김을 털어놓았다.

《그래 그분을 지금도 생각하고있소?》

《그분은 벌써 제 은인 이상입니다.》

《그럼 그분에게 시집가려고?…》

옥봉은 대답대신 머리만 끄덕였다.

유모는 놀라웠다. 나날이 수척해가는 병의 근원을 안 이상 유모는 그냥 앉아있을수 없었다.… 유모의 말을 전해들은 조원은 자기는 이미 처자가 있는 사람이며 그들이 지금 시골에서 부모를 모시고있다는것, 어떻게 첩으로 들어오겠는가고 하였다. 유모는 돌아와서 그 사유를 옥봉에게 전하며 아씨가 첩으로 된다는것은 하늘이 뒤집어진다는 소리라고 하며 반대하였다.

《그럼 유모는 그분이 본처가 없는줄 알았수?》

결국 자기는 모든것을 다 각오하고있다는 말이 아닌가? 유모는 기가 막혀 다음 말을 잇지 못하였다.

《생각해보세요. 그분이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제 목숨이 지금 남아있을것 같은가요? 새로 생겨난 생명을 그분에게 바치는것뿐입니다.》

《아씨생각이 거기까지 미친줄 몰랐소이다.》

한달후였다.

항간에서는 옥봉을 욕하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는 이러저러한 말들이 돌았다.

《너는 내 딸이 아니다.》

《너는 내 동생이 아니다.》

어머니도 오빠들도 옥봉의 결심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옥봉은 유모 한사람을 데리고 조원의 초당을 찾아갔다. 뜻밖에 나타난 옥봉을 보고 조원은 입이 함박만큼 벌어졌다.

《다 버리고…》

《잘 오셨소.》

그들은 유모와 녀종이 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붙들고 말이 없었다.

《이젠 이 비단치마는 소용이 없어요.》

《낚시질이나 같이 하지.》

《채마밭은 누가 가꾸고요?》

《바쁠게 없지.》

《흰구름모양으로 한평생을…》

《그렇게 흐르면서 살지.》

《말없이 싸움없이…》

《옳은 말이야.》

《먹은 당신이 갈아요.》

《시는 당신이 읊으려고?…》

《호호호…》

《곱기도 하구만.》

《시골에 가끔 다녀오세요.》

《처자를 보고 오란말인가?》

《가엾지 않으세요?》

《허허. 당신은 정말…》

《비둘기처럼 사십시다.》

이리하여 옥봉은 한평생을 조원의 현숙한 부실(첩)노릇을 하였다. 생명의 은인에 대한 보답을 한생의 부실생활로 하였던것이다.

 

시의 힘은 권력보다 강한 법

 

옥봉은 조원에게 시집간 뒤에도 여느집 가정부인들이나 첩들처럼 집안살림에만 파묻히거나 거울앞의 분첩에 매달리지 않고 시를 즐겨 지었다. 그가 지은 한편한편의 시들이 얼마나 멋지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지 당시 시인의 한사람이였던 신흠은 리옥봉이 쓴 시 《죽서루에서》를 읽고 《예나 지금의 시인으로 이에 따라설만 한자가 없다.》고 찬양하였다.

리옥봉에게는 주옥같은 시가 많은데 그가운데서도 사람들의 많은 찬사를 받아온것은 《이웃집 녀인을 위하여》이다. 그 까닭은 시가 재치있게 잘된데만 있지 않다. 다름아닌 그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보여주는 일화가 전해지기때문이다.

리옥봉이 살던 집 이웃에는 가난하고 무던한 부부가 살고있었다. 하루는 얼굴이 먹장구름처럼 된 그집 녀인이 옥봉을 찾아왔다. 옥봉이 항상 살틀한 인정미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해주군 하였으므로 마을녀인들까지도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그를 찾아와 하소연하군 하였다. 이날 울면서 찾아온 이웃집녀인은 옥봉이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남편은 원래 어질고 순박하오. 그런데 관가에서 남편이 남의 소를 훔쳤다고 하면서 잡아갔으니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소. 소원이니 이 천만부당한 루명을 벗을수 있도록 진실을 밝힌 글을 써주옵소서.》

듣고보니 사연이 기가 막혔고 녀인의 처지가 불쌍하였다. 그의 남편은 또 지금 관가에서 무슨 고초를 치르고있을것인가… 녀인의 하소연을 주의깊게 들은 옥봉은 곧 붓을 꺼내들었다. 그는 먼저 서두에 이웃집녀인의 남편이 억울한 혐의를 받고있음을 밝히고 그 뒤에 시 한수를 써넣었다.

 

거울이 없어

소랭이물에 얼굴 비쳐보고

기름이 없어

물을 발라 머리를 빗습니다

 

나같은 촌녀자가

무슨 직녀이기에

저의 남편이

견우이겠습니까

 

시는 이웃집녀인이 하는 말로 되여있는데 나는 농촌의 가난한 녀자이지 하늘의 직녀성이 되지 못하는데 내 남편이 어찌 견우성, 즉 소를 끌어오는 사람일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견우성이 소를 끄는 별이라는데로부터 그것을 소도적과 련결시킨것이다.

옥봉은 시에서 비록 가난하게 살지언정 거울같이 깨끗한 마음씨를 고이 간직하고 순박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아름다운 정신세계를 보여주면서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리용하여 옥에 갇힌 남편을 걱정하는 녀인의 심정과 남편의 억울함을 재치있게 보여주었다.

옥봉이 써준 글과 시를 본 관가에서는 어쩌는수없이 녀인의 남편을 돌려보냈다. 진리의 목소리, 진실한 시의 힘은 이렇듯 무지막지한 권력의 힘보다 큰것이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일이 끝난것은 아니였다. 첫사랑이 움틀 때에는 자기를 그렇듯 금이야옥이야 쓸어주며 사랑을 주던 남편이 량반집 첩으로서 시를 지어돌리는것은 그릇된 처사라고 비난하면서 마감에는 옥봉을 집에서 내쫓았다.

옥봉은 생각할수록 야속하고 분했다. (녀자는 시를 쓸수 없단말인가. 누가 세상에 이런 불공정한 법을 정해놓았단말인가. 남자들의 정은 여러 갈래로 흘러 인차 밑창이 난다더니 그 소리가 사실인가보다. 아니다. 그것도 사람나름이겠지…)

처음 자기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사랑을 지킬테다. 변하지 않을테다. 녀인들의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열렬하고 다함없는가를 보여줄테다! 남편도 리해할 때가 있겠지!)

친정집에 몸을 옮긴 옥봉은 그곳에 머무르면서 남편이 마음을 돌리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흘러도 남편은 그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옥봉은 한번 정을 주었던 남편이 날이 갈수록 더욱 그리워졌다. 야속한 남편이였으나 쉽게 버릴수 없는 남편이였다. 웬일인지 날이 갈수록 그리움과 사랑의 정이 더욱 끓어올랐다. 어느날 옥봉은 자기의 이러한 심정을 담아 시 《운강에게》를 지어 남편에게 보냈다. 운강은 남편 조원의 호였다.

 

요즈음 우리 님

편안하신지요

창문에 달 비치면

시름이 많습니다.

 

오고가는 꿈길에

발자취 있다면

님의 문전 돌길이

절반나마 모래가 되였사오리…

 

옥봉의 절절한 심정을 담은 시는 곧 조원에게 전해졌다. 한때 안해를 그토록 랭대하던 조원이였으나 시를 읽어보고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와 맺었던 사랑의 정도 되살아나는듯싶었다.

(그러나 그는 시를 짓지 않고는 못배기는 녀자가 아닌가. 어허 안될 일이로다.)

옥봉에게 사랑이 가면서도 량반의 체면을 버릴수 없다고 여긴 조원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남편에게 돌아갈수 없었던 옥봉은 그후 불행속에 외로이 날을 보냈다. 그러나 자기를 불행속에 빠뜨린 시를 저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열심히 시를 지어 자기의 쓸쓸한 심정을 달래며 살다가 1592년 임진조국전쟁을 맞이하였다. 전쟁의 소요속에 파묻혀 그후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되였는지 누구도 알수 없었다 한다.

 

 

《녀인의 눈물은 얼음밑을 흐르는 강물과 같아 남들은 보지 못한다.》

《얇은 이불은 초저녁엔 좋으나 새벽에는 춥다.》

《보슬비는 쓸쓸하나 처마끝에 방울을 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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