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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무 적 (16세기)
리조시기의 시인. 자는 잠부, 호는 랑선이다. 생애와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전하지 않고 《호보》와 《패관잡기》 등에 약간의 자료가 전할뿐이다. 어무적은 봉건사회에서 제일 천한 신분에 속하였던 노비출신의 재능있는 시인이였다. 그는 김해의 관청에서 종살이를 하였는데 자신의 눈물겨운 생활체험으로부터 출발하여 착취받고 압박받는 당시 인민들의 심정을 대변한 시들을 많이 썼다. 원한품고 고생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통치배들의 가혹한 수탈행위를 폭로한 시를 쓴 죄아닌 《죄》로 하여 어무적은 체포령을 받고 이리저리 피하여 류랑생활을 하다가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다 잃어지고 《류랑하는 백성의 탄식》, 《매화부》, 《길주서가 살던 옛집을 지나며》 등 몇편이 《대동시선》, 《패관잡기》, 《속동문선》, 《국조시산》 등의 문헌에 남아 전해진다. 그는 자신이 겪은 체험과 생활처지를 통하여 자기 작품들에서 당시의 불합리한 사회현실과 봉건통치배들의 죄행을 예리하게 폭로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에는 봉건적지배계급들이 《군자의 마음》과 《군자의 귀》를 가지게 되면 백성구제가 가능한듯이 표현한 부족점을 가지고있다. 어무적은 당대인민들의 리해관계와 심정을 대변한 우수한 시작품들을 창작한 노비출신의 재능있는 시인인것으로 하여 중세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그의 작품들은 당시 진보적시가문학발전에 이바지하였다.
《 매 화 부 》
한자시. 시는 아전놈들의 성화에 견딜수 없어 뜰안에 있는 한그루의 과일나무마저 찍어버리는 농부의 억울하고 원한에 찬 사연을 통하여 봉건적수탈의 가혹성을 폭로하고있다.
누렇게 더덕더덕 열매야 적으랴만 검측한 아전놈의 욕심은 못따르리
가지에 달린 수의 곱절도 더 내라네 그것을 못낼 때는 닿는대로 매질일세
안해는 원망하며 낮번을 서고 아들은 울면서 밤새워 지키누나
이것이 뉘탓인고 매화나무 탓이구나 남산에 가중나무 북산에 도토리나무
관리는 상관않고 아전도 본체만체 매화나무 오히려 이만도 못하거든 내 어찌 너 베기를 사양하랴
시인이 김해관청에서 종살이를 할 때 어떤 집에서 매화나무 한그루도 원한의 화근으로 된다면서 사정없이 찍어버리는것을 보고 관료들의 악착한 수탈을 단죄하는 글과 함께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후 김해고을원은 어무적이 지은 시와 글을 보고 그를 잡아 처형하라는 령을 내렸다. 어무적은 몸을 피해다니다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한자시 《매화부》는 이러한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으로 하여 광범한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졌다.
《류랑하는 백성의 탄식》
한자시.
백성살기 어려워라 백성살기 어려워라 해마다 흉년들어 먹을것 없으니 너를 건져줄 내마음 간절하건만 내게는 아무런 힘이 없구나
백성살기 어려워라 백성살기 어려워라 날이 추워도 덮을것 없으니 저자들은 너를 건져줄수 있으련만 너를 건져줄 마음이 없단다
나쁜놈의 배속을 도려내고 착한 마음 넣어줄수는 없는가 높은 사람들의 거만한 귀속에 백성들의 말을 들어밀수는 없는가
백성들 피타게 하소연해도 저자들은 알지도 못하니 이 세상 백성들이 정말로 의탁할곳 없어라
나라에서 비록조서를 내려 가난한 백성들 걱정을 하나 고을관리들은 빈 종이처럼 돌려보고는 버리는구나
백성들의 사정을 알아볼양으로 서울에서 벼슬아치 내려는 오나 하루에도 300리씩 내달리는 빠른 말을 타고 지나가는구나
우리 백성들 기력이 없어 문에도 채 나가지 못하거니 어느 여가에 마주서서 말하랴 가슴속 서려있는 이야기를
한고을에 한명씩 원이사 있지마는 원은 귀가 없고 백성은 입이 없도다
어느때면 대바르고 용감한 신하 나타나 백성들 다 죽기전에 그들을 구원해주랴
※ 조서ㅡ왕의 이름으로 내려보내는 글
작품은 인민들의 굶주림과 헐벗음이 바로 량반통치배들의 학정때문임을 폭로하였다. 봉건관료들은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워 인민들의 아우성은 아랑곳도 않는다. 때로 조정에서 조서가 내려오나 고을관리들은 빈종이처럼 돌려보고는 내버리고 때로 인민들의 정상을 알아본다고 서울에서 관리가 내려오기도 하나 《하루에도 300리씩 달리는 말을 타고》 지나가고 만다. 시는 량반통치배들의 가혹한 수탈을 예리한 풍자적어조로 폭로하고있다. 작품은 제목그대로 류랑하는 백성들의 탄식을 형상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인민적시인으로서의 어무적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노비도 사람이다
어무적은 자기가 태여난 고향도, 자기를 낳아준 부모도 몰랐다. 알고있는것은 다만 퍽 어릴 때부터 김해에서 살았다는것뿐이였다. 태여나자마자 팔리워 부모들과 생리별을 해야 했고 소나 말처럼 혹사당하며 짐승취급을 받는 노비의 처지임에랴… 언제부터인지는 알수 없으나 그의 가슴속에서는 그자신도 알지 못할 그러한것이 서서히 자라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욕질과 매질을 묵묵히 그대로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을 피하려고 애썼으며 자기를 지켜보려고 노력하였다. 악에 대한 이러한 소리없는 반항심에서인지 차츰 눈도 트이기 시작했고 사회에 대한 제나름의 견해도 세워졌다. 그는 곧 글을 익히는데 달라붙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지라 쉽게 천자문을 익히고 어렵지 않은 한자시도 척척 지어내게 되였다. 한번은 그가 관가의 심부름으로 경상도의 깊은 산골 금오산아래를 지나가게 되였다. 거기에는 고려말엽의 이름난 학자였던 길재가 살던 옛집이 있었다. 길재는 리성계에 의해 고려가 망하자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경상도의 깊은 산골에 숨어살았다. 길재의 옛집을 보게 된 어무적은 그 자리에서 한자시 한수를 지었다.
아득히 높아라 마음 깨끗한 길주서여 금오산아래 이 집에서 길이 문을 닫고 살았도다
수양산 고사리를 캐여먹을망정 새나라 곡식 입에 대였으랴 전원에 깊숙이 숨어살며 하찮은 벼슬 돌아보지 않았네
천년토록 그 이름 빛나리 끝까지 정의를 지켰으니 지금도 지나가는 사람들 그대의 옛집에 절을 하는구나
이 세상에 남아로 태여났으니 그 누구에게 붉은 마음 없으랴 우뚝우뚝 솟아난 봉우리들도 굳세게 살아가라 우리에게 속삭이네
※ 길주서ㅡ길재를 가리킴
이때 일행을 끌고 동행하던 박원종이라는 사람이 어무적이 쓴 시를 보게 되였다. 비록 관리이기는 하지만 어무적의 남다른 재주를 알아주고 그의 노비신세를 늘 동정해주던 그는 그후 어무적을 노비신분에서 벗겨달라는 상소를 올리였다. 《…어잠부가 비록 천한 노비신분이나 학문이 높고 인품이 준수하니 어찌 시골선비따위에 비길수 있겠나이까. 부디 굽어살피시여 그를 노비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나라를 빛내는데 이바지하게 함이 마땅한줄로 아뢰나이다.…》 처음에는 쉽게 수락되지 않았으나 박원종의 거듭되는 절절한 상소와 노력에 의해 어무적은 마침내 노비신분에서 벗어날수 있게 되였다. 노비신분에서 벗어나 평민이 되였으나 어무적은 자기의 이름(자취없는 물고기라는 뜻)을 고치지 않고 자기를 《잠부》(물속의 사나이)라고 하면서 이 이름을 달고 많은 시를 지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흔히 어잠부라고 부르게 되였다.
《누렇게 더덕더덕 열매야 적으랴만》
김해에서 살고있던 어무적이 어느날 한 농가집에서 매화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리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때 지방관리들은 민가의 과일나무들을 조사하여 문서를 꾸며놓고 해마다 그 품종에 따라 일정한 량을 바치도록 하였다. 그런데 관리들은 그해의 수확이 잘되고 못 된것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정한 량을 바치라고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괴롭게 여기고 과일나무를 베여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관리들의 성화에 이젠 과일나무들까지 화를 입게 되였으니 이놈의 세상은 분명 망한 세상이로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낮에 목격한 일을 눈앞에 그리며 이런 글을 썼다. 《세상에는 고결한 선비가 적어서 호랑이나 뱀과 같은 포악한 법만이 횡행할뿐이다. 알품은 암닭이라고 무심히 보아버릴리 없고 새끼양이라고 그대로 남겨둘리 없다. 인민이 밥 한그릇을 배불리 먹으면 관리는 침을 흘리면서 공연히 화를 내고 또 인민이 옷 한벌 깨끗이 입으면 아전이 팔을 휘두르며 살점을 뜯겠다고 덤벼든다. 나 매화로 말하면 들판에 널려있는 송장의 넋우에 향기를 풍겨주고 류랑민의 뼈우에다 꽃잎을 뿌려준다. 내 마음 애달프기 이에 이르니 내 얼굴이 초췌해지는것쯤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그런데 농군이 무식하여 도끼와 칼로 나를 욕보이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바람이 스산하고 달빛도 찬데 두 동강난 나의 넋을 그 누가 불러줄것인가?》 생각할수록 두 동강난 과일나무가 농민들의 불우한 처지와 다름없었고 또 자기의 처지와도 별반 다를바 없었다. (내 비록 재주는 높다 하지 않겠지만 오늘의 일을 글로 남겨 포악한자들을 길이길이 징계하리라!) 마음을 다져먹은 어무적은 이어 붓대를 다시 틀어잡고 힘차게 시를 써나갔다. 그것이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한자시 《매화부》였다. 시를 다 쓴 어무적은 그것을 다시한번 읽어보았다. 널뛰듯 하던 가슴이 한결 가라앉았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랴! 며칠후 이 글을 보게 된 김해의 원이 노발대발하며 어무적을 당장 잡아들이라고 령을 내렸다. 가뜩이나 노비신세를 겨우 벗어난 몸에 이제 잡혀갔다가는 영낙없이 죽은 목숨이였다. 그날밤 어무적은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관가의 검질긴 마수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기를 위해주던 박원종에게로 가서 의지하려고 길을 떠났던 어무적은 도중에 병을 만나 한많은 세상을 저주하며 눈을 감게 되였다.
《나쁜놈의 배속을 도려내고 착한 마음 넣어줄순 없는가.》 《높은 사람의 거만한 귀속에 백성들의 말을 들이밀수는 없는가.》 《원은 귀가 없고 백성은 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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