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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식
석탄리유적
석탄리유적은 황해북도 송림시 석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부락터유적이다. 유적은 집자리, 고인돌무덤, 돌상자무덤 등인데 석탄리부락앞의 언덕북쪽경사면에 집중되여있다. 언덕경사면아래쪽에 사철 많은 량의 샘물이 솟아흐르는 시우지소가 있다. 집자리들은 이 시우지소를 중심으로 그 두리의 언덕경사면에서 발견되였으므로 시우지소의 샘물은 여기에 대부락을 형성케 한 주요조건의 하나였다고 인정된다. 집자리의 총수는 100개를 넘으며 그 총면적은 약 10만㎡이다. 주체52(1963)년부터 주체62(1973)년까지 네차례의 발굴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 30여개가 발굴되였다. 그밖에 신석기시대 집자리 1개, 청동기시대 돌관무덤 2기, 고대문화층, 고구려시기의 작은 돌곽무덤 1기를 정리하였다. 신석기시대의 집자리는 거의다 파괴되고 바닥의 일부가 남아있다. 바닥에서는 둥근밑의 새김무늬그릇쪼각들과 납작하고 밑이 안으로 오무러든 3각형의 활촉 1개가 나왔을뿐이다. 새김무늬그릇쪼각은 아구리를 일직선으로 자른듯 하고 겉면에 간략화된 점선무늬를 돋구었다. 질그릇의 바탕흙질과 생김새, 간략화된 점선무늬수법 등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말기의 집자리로 인정된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는 구조형식과 배치상태에 따라 3개 류형으로 나뉘여진다. 첫째 류형의 집자리는 17개이상인데 대체로 3개정도를 단위로 반원형 또는 3각형으로 배렬되였다. 따라서 집자리들이 놓인 방위는 각양하다. 그러나 집자리의 평면륜곽은 네모가 뚜렷한 장방형이다. 크기는 최소 15㎡, 최대 55㎡이며 평균 30~40㎡정도이고 움의 깊이는 15~50㎝이다. 집자리들의 바닥은 진흙층을 다지고 흔히 불을 피워서 굳혔다. 화독자리는 집자리마다 한개씩 있는데 바닥을 파서 만든것은 2개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바닥에 불을 피운 흔적만 남아있을뿐이다. 이 류형의 집자리에서 공통한 특징은 바닥중심부에 기둥을 세운 흔적이 없고 다만 바닥변두리의 움벽가에 직경이 5~10㎝정도의 작은 기둥구멍 또는 기둥이 탄 숯이 드문드문 남아있은 점이다. 집자리들은 모두 불에 탔으므로 동시에 병존한 집자리로 인정된다. 거의 모든 집자리에서 아구리를 두겹으로 겹싼 팽이모양의 질그릇이 나왔고 그와 함께 돌도끼, 돌대패, 돌끌, 돌턱자귀, 돌단검, 돌활촉, 던지개식 돌창, 별도끼, 돌반달칼, 돌가락바퀴, 흙구슬, 돌그물추와 약간의 숫돌, 갈돌 등이 나왔다. 둘째 류형의 집자리는 8개이다. 역시 네모가 뚜렷한 장방형의 반움집으로서 움의 깊이는 30~60㎝정도이고 그 면적은 14~26. 4㎡이다. 이 집자리들의 공통한 특징은 바닥변두리의 움벽가에 작은 통나무기둥을 세운 기둥구멍이 산만하게 줄지어있을뿐아니라 바닥중심부에 직경 20~30㎝정도의 기둥구멍이 2~5개 줄지어있는 점이다. 또 화독자리도 대부분 바닥을 우묵이 파서 만들었다. 8개의 집자리가운데 불에 탄 집자리는 4개이다. 이 집자리들에서 나온 질그릇과 석기갖춤새는 첫째 류형의 집자리에서 나온것과 기본적으로 같다. 다만 주목되는것은 아구리를 겹싸지 않고 목이 달린 작은 단지가 나온 점이다. 밑이 납작하고 배가 동실한 모양은 평양시 승호구역 립석동유적, 황해북도 린산군 주암리유적 등 비교적 늦은 시기의 팽이그릇집자리에서 나온것과 기본적으로 같다. 셋째 류형의 집자리는 2개이다. 평면륜곽은 역시 네모가 방정한 장방형이다. 집자리의 크기는 50m×9m, 5. 15m×9. 8m로서 비교적 큰 편이다. 이 류형의 집자리는 바닥에 직경 30~40㎝의 통나무기둥을 세운 기둥구멍이 세줄로 질서정연하게 배렬되여있다는 점에서 우의 두 류형의 집자리들과 구별된다. 또 바닥이 수평지지 않고 한쪽 절반부분이 보다 낮으며 거기에 바닥을 우묵이 판 화독자리가 있고 한단 높은 반대쪽바닥에는 불피운 흔적만 남은 화독자리가 있다. 이 류형의 집자리구조형식은 평안남도 북창군 대평리유적 웃문화층의 2호집자리와 기본적으로 같다. 이 류형의 집자리는 불에 탄 집자리가 아니였으므로 바닥에 놓인 유물은 거의 없었고 집자리퇴적층에서 약간의 팽이그릇쪼각들과 돌도끼류, 돌턱자귀, 돌단검, 돌반달칼, 돌가락바퀴, 질그릇쪼각을 리용하여 만든 가락바퀴, 별도끼, 돌활촉 등이 나왔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곁에서 드러난 2기의 돌관무덤은 거의 다 파괴되고 바닥만 남은것이다. 돌관에는 유물도 겨묻거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고구려시기의 돌관무덤은 막돌을 3~4층으로 쌓아서 장방형의 벽을 만든것으로서 동서길이 215㎝, 남북길이 60~70㎝, 곽의 높이 60㎝이다. 돌곽안에서 회색단지 2개와 쇠관못, 문고리모양의 관장식쇠 등이 나왔다. 석탄리유적에서 기본을 이룬 청동기시대집자리는 청동기시대 초기의 개별적인 세대공동체의 독립촌락이 아니라 몇개의 세대공동체를 포함한 집합식촌락유적으로 인정된다. 첫째 류형과 둘째 류형의 촌락들이 거의모두 불에 탄것은 원시공동체붕괴기에 집단들사이에 모순과 대립이 격화되여 류혈적인 전투가 자주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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