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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진 이 (1516ㅡ?)
리조전기의 녀류음악가, 시인. 호는 명월, 다른 이름은 황진랑이다. 아버지는 개성에 살던 량반 황진사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개성의 빈한한 평민의 딸 진현금이였다. 황진이는 태여난 때부터 봉건적신분차별로 하여 불행하였다. 진현금과 황진사의 아들이 서로 남모르게 사랑하여 자체결심에 따라 결혼한 후 황진이를 낳은것으로 알려지고있다. 황진사가 자기 아들이 가난한 집의 딸과 결혼한것을 완강히 반대하여 강제로 갈라놓음으로써 젊은이들의 사랑은 파탄되고말았다. 진현금은 봉건적신분차별로 말미암아 사랑의 비극을 겪은 원한을 안은채 황진이를 낳아기르면서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어려서부터 용모자태가 보름달처럼 환하고 마음이 깨끗하고 인정도 많았을뿐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대한 자질이 뛰여났던 황진이는 어머니에게서 배워 점점 성장하면서 절색의 미인으로, 가야금 잘 타고 노래 잘하는 노래명창으로, 글에 유식하고 시조와 한자시에도 재능있는 시인으로 알려지게 되였다. 봉건적인 신분제도는 황진이의 출생과 성장에만 비극적운명을 강요한것이 아니라 그를 끝내 기생의 비참한 운명에 몰아넣었다. 황진이는 기생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머니처럼 가정도 이루지 못한채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하다가 40살을 전후한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황진이는 봉건적신분차별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의 인격적존엄을 지키여 덜된 량반들과 상층 승려들의 오만한 행동과 비행을 조소폭로하였으며 시가창작에서 뛰여난 재능을 나타내였다. 황진이는 자신의 불우한 생활처지와 노래로 불리워진 시조를 많이 창작한것으로 하여 시집 한권 남기지 못하였다. 지금 전해지는것은 시조 《내 언제 신이 없어…》, 《동지달 기나긴 밤을…》, 《청산은 내 뜻이요…》, 《어저 내 일이여…》, 《청산리 벽계수야…》, 《산은 옛산이로되…》, 한자시 《박연폭포》, 《반달》, 《꿈》, 《소판서 세양을 떠나보내며》이다. 송도의 이름난 기생이였던 황진이는 《송도3절》의 하나로서 노래명창, 시가창작가로 활동하여 리조전반기 민간음악과 시가문학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내 언제 신이 없어…》
평시조.
내 언제 신이 없어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
※ 월침삼경ㅡ달도 진 한밤 ※ 온 뜻이ㅡ오는 기미가
(뜻풀이) 내가 언제 신의가 없어서 님을 언제 속였다고 달도 진 깊은 밤에도 오시는 뜻이 전혀 없네 가을바람에 나무잎 떨어지는 소리가 하도 쓸쓸하여 난들 어찌할수 없구나
시조에서는 님을 안타까이 기다리는 녀인의 절절한 심정을 깊이있게 그려내고있다. 작품은 《월침삼경》, 《추풍에 지는 잎소리》 등 구체적이며 의미깊고 정서가 차넘치는 시적정황을 제시하여 녀인의 감정정서세계를 더 한층 짙게 보여주고있으며 풍부한 서정을 살리고있다. 순수한 애정세계에 치우친 제한성이 있으나 세련된 시조형상으로 하여 이 시가 시조문학의 대표작의 하나로 되고있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평시조.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헤내여 춘풍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구뷔구뷔 펴리라
(뜻풀이) 동지달 긴긴밤을 허리잘라 두토막을 내여서 봄바람같이 따뜻하고 정다운 이불속에 서리서리 잘 감아 고이 넣어두었다가 꽁꽁 언 정든님이 오신 밤이면 구비구비 펴서 덧붙여 긴긴밤을 더 길도록 펴놓으리라
작품에서는 님에 대한 녀인의 애절한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을 동지달 기나긴 밤과 봄바람과도 같이 따스한 이불과의 인상깊은 대조, 련관속에서 생동하면서도 여운깊게 보여주고있다. 시조에서는 《동지달 기나긴 밤》이라는 자연현상을 구체적인 사물처럼 형상화하여 감명깊은 시형상을 펼치였다. 또한 《춘풍이불》, 《서리서리》, 《구뷔구뷔》 등 형상적색채와 행동적인 느낌이 풍부한 시적표현들을 적극 살려 형상의 생동성과 정서적감화력을 강화하고있다. 순수한 애정을 노래한데 그친 제한성이 있으나 세련된 시조형상으로 하여 이 시기 시조문학에서 이채를 띤다.
《박연폭포》
한자시.
한줄기 내물 구렁에 내려꽂혀 백길 룡소에서 물살이 솟구치네
하늘의 은하수가 거꾸로 쏟아진듯 흰 무지개가 비껴드리운듯
물소리 골안에 우뢰를 일으키고 물방울 공중에 구슬되여 흩어지네
려산이 좋다고만 말하지 마오 천마산의 이 폭포 누리에서 제일일세
시는 박연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기쁨과 긍지에 넘쳐 노래하고있다. 시인은 넘쳐나는 환희와 솟구치는 서정을 안고 박연폭포를 노래하면서 하늘과 땅, 은하수와 무지개, 우뢰와 구슬에 견주어 폭이 크고 시상이 호방하며 시어구사가 랑만적인 필치로 자유분방하게 목청껏 자랑하였다. 그 자랑은 애국적사상감정이 깔려있는것으로 하여 격동적이다. 남의 나라 려산폭포가 아름답다지만 우리 나라의 폭포가 누리에서 제일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는것이 박연폭포를 노래하는 시인ㅡ황진이의 긍지와 자랑의 정신적바탕이였다.
황진이의 출생
황진이어머니의 이름은 진현금으로서 개성 아전의 딸이다. 그는 용모가 남달리 아름다웠다. 나이 18살이 되니 숙성하여 부풀대로 부푼 처녀였다. 어느 화창한 봄날. 병부교아래에서는 아낙네들의 빨래방치소리가 요란하였다. 거기에 섞여 진현금도 빨래를 하고있었다. 옆의 녀인들이 그를 보고 소곤거렸다. 《저것 봐, 현금이를, 한해 겨울에 다 자라버리고말았어. 저 앞가슴, 저 허리!》 이 시각 병부교우로 천천히 걸어가며 처녀를 뚫어지게 내려다보는 한 장부가 있었으니 그가 송도 황진사의 아들이였다. 《아, 절색이군.》 현금은 인기척에 끌려 다리우를 올려다보았다. 《과연 장부다운 사내로구나.》 빨래방망이질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긴 현금, 굽어보는 뜨거운 눈길, 올려다보는 수집어하는 맑은 눈길, 시내물에 부시는 해빛처럼 부딪쳐 작렬하는 두 눈길, 짫은 한순간이였으나 10년, 100년 맞잡이로 서로의 마음속에 뜨거운 정이 간직되였다. 다음순간 두사람은 무안한듯 서로 눈길을 피했다. 서산에 해가 기울었다. 빨래하던 녀인들이 하나둘 다 자리를 떴다. 현금이도 빨래가지들을 주섬주섬 담아서 나무함지를 이고 일어서려고 하였다. 이때 현금이의 눈동자에 따겁게 인박혀있는 그 총각이 불쑥 나타났다. 인적없는 시내가에서 두 남녀가 마주섰다. 총각이 먼저 말을 붙였다. 《안됐소만 물을 좀 마십시다.》 총각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현금의 가슴은 박연폭포의 룡추처럼 쾅 쾅 공이질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모르고 함지를 내려놓고 바가지로 개울가 박우물의 맑은 물을 떠서 내밀었다. 바가지를 든 그의 손은 후들거리고 심장은 튀여나올것 같았다. 총각은 그 물을 받아서 맛나게 마시고 바가지를 돌려주었다. 옛이야기에는 총각이 물을 마신 다음 그 바가지에 새 물을 떠 현금에게 마시라고 하였는데 현금이 그것을 받아마셨더니 그 물은 어느새 술이 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병부교밑의 개울가에서 물을 떠준것이 계기가 되여 현금이와 황진사의 아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고 자기들의 의사에 따라 결혼한 사실을 반영한것이다. 그후 1년만에 현금은 고운 딸을 낳았는데 사흘밤, 사흘낮 온 방안에 향기가 풍기였다고 한다. 황진이는 이렇게 태여났다.
사랑의 비극
황진이는 과연 어찌하여 기생이 되였던가. 황진이는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곱게 자라 어느덧 초봄의 매화송이처럼 피기 시작했다. 아들 가진 부모들이 탐낼만큼 착실하였고 총각들이 오금을 못쓸 지경으로 황홀하였다. 이럴수록 그의 어머니 진현금의 가슴에는 말 못할 시름의 성벽이 쌓였다. 《저것은 나처럼 님을 잃은 외기러기가 되지 말아야겠는데…》 현금이가 아무리 근심해도 세상은 모질게도 악착하고 무정했다. 황진이에게도 저의 어머니가 당한것만 못지 않는 사랑의 슬픈 운명이 다가오고야말았다. 아니 그보다 더 가혹한 운명이였다. 진현금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생리별을 강요당하였다면 황진이는 처녀의 몸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짝사랑하는 총각을 상사병의 희생물로 저승에 앞세웠던것이다. 어느날 황진이네 집앞으로 다가오는 구슬픈 상여소리가 들려왔다. 늘 서러운 마음을 안고사는 현금이가 마침 부엌일을 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애구 뉘집에서 또 상사가 났누…》하고 까닭모를 애수에 젖어 심란해졌다. 그런데 상여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자기네 집앞 사립문밖에서 웬일인지 빙빙 맴도는것이였다. 무슨 까닭인가 하여 부엌문으로 내다보는 현금이에게로 늙수그레한 상두군 한사람이 걸어들어왔다. 저멀리 있는 건너마을 농사군이였다. 《딱한 사정이 있어서 들어왔수다.》 현금이 당황하여 부엌문밖으로 나섰다. 늙은 상두군이 현금에게 딱한 사정을 자초지종 이야기하였다. 웃방에서 책을 보던 황진이도 무슨 일인가 하여 미닫이틈으로 엿들었다. 《저 상여는 우리 마을 부자집 머슴살던 총각의것이올시다.》 이렇게 허두를 뗀 늙은 상두군은 딱한 사정의 내용을 설명하였다. …이웃마을 머슴군총각은 일잘하고 마음씨가 무던한 사람이였다. 일찌기 부모를 잃은 그는 남의 집 머슴을 살면서 잔뼈가 굳어졌는데 혈혈단신이다나니 마음을 의지할 사람이 몹시도 그리웠다. 그는 건너마을 현금의 딸 황진이가 마음에 들었다. 짝사랑을 하기 시작했다. 성미가 콸콸한 사람이였다면 제발로 뛰여와서 현금이앞에 넙죽 엎드려 비위좋게 《장모님! 댁의 딸을 나에게 주시우. 그렇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을테요.》하고 떼질을 했을것이다. 그러나 고아로 자라서 머슴군이 되여 눈치밥만 먹다보니 총각은 마음속으로 짝사랑을 하면서도 입밖에 내지 못하고 저혼자 속으로 끙끙 앓았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날수록 짝사랑은 가슴속에 한숨을 피워올렸고 한숨은 마침내 상사병을 일으켰다. 머슴방사람들이 산과 들에서 좋다는 약초는 다 캐다가 달여먹였으나 총각은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는 눈을 감으면서 이웃들에게 《내 시신을 황진이네 집앞을 지나 그 집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산턱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고인의 소원대로 상여를 메고 이집 앞을 지나려니까 자꾸 그 총각이 한 마지막말이 가슴에 맺혀와 상두군들의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아이고, 이 일을 어찌노.》 현금은 이 소리를 하고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가슴을 쥐여뜯었다. 웃방 미닫이문짬으로 황진이의 흐느낌소리가 새여나왔다. 이윽고 정신을 수습한 현금이가 상두군에게 물었다. 《어쨌으면 좋겠나요?》 늙은 상두군이 거북하게 말을 뗐다. 《옛날부터 상사병에 죽은 사람을 그냥 보내면 앙화가 든다고 했수다. 좀 딱한 부탁같지만 이댁 처녀의 수건이나 치레거리라도 하나 주어서 떠나보내시우.》 《그거야 어떻게… 그보다 내가 술상 하나 성의껏 차려드릴테니 그것이나 대접해보냅시다.》 현금이가 정신없이 허둥지둥 술상을 차려서 상여앞으로 내보내는데 웃방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황진이가 무슨 흰천을 들고나왔다. 아름다운 그의 얼굴에는 찬기운이 돌고 맑은 눈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모두가 영문을 몰라 멍청하니 바라보고있는 가운데 황진이가 상여앞으로 다가가더니 흰천을 펼쳤다. 천이 아니라 속적삼이였다.
상두군들이 저마다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상여를 멨다. 구슬픈 상여소리가 저쪽 산기슭을 향해 멀어져갈 때까지 까딱않고 서있던 황진이의 입에서 심장을 쥐여짜는듯 한 아픔을 실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갈바에야 왜 살아생전 나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하지 못했소. 아ㅡ 이년의 운명이 어찌 이다지도 기구하단말이요.》 황진이는 자기의 운명이 기구한것을 한탄하고 불쌍하게 죽은 총각을 애닲게 생각하였으나 그 운명, 그 슬픔이 젊은 남녀의 사랑마저 이 지경으로 만든 량반세상의 탓인줄은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전하는 말에는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자기가 시집을 가서 한 남편만을 섬기고있으면 얼마나 많은 다른 남자들이 상사병으로 죽을지 몰라서 결혼을 단념하고 기생이 되였다는 소리가 있었다. 아니다. 자기를 짝사랑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은 총각의 운명에서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커서 그리고 자기같은 녀자가 시집을 간들 얼마나 행복하게 살수 있으랴 하는 슬픔이 하도 가슴을 우벼서 황진이는 기생이 되였던것이다. 덜된놈의 량반세상에 태여난 자신을 한탄하면서…
황진이가 사모한 남자
기생이 된 황진이는 고민하였다. 아름다운 처녀시절의 꿈이 다 깨여지고 마음의 의지도 생활의 기둥도 없이 남의 사나이들과 한자리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돌아와서는 몸부림치면서 잠못들었다. 물론 이 시기에 기생도 여러층이였다. 사나이들과 접촉하면서 시도 같이 짓고 노래도 부르며 춤추는것을 업으로 하는 기생, 술막같은데서 술과 함께 노래춤을 파는 기생, 아주 란잡한 생활을 하는 기생, 관가에 예속되여 벼슬아치들의 수청을 들어야 하는 관기 등이 있었다. 황진이는 기생이 되였으나 자기집에서 찾아오는 풍류남아들과 더불어 시를 짓고 노래하며 지내든가 《점잖은 좌석》에 초청되여가 시가와 무용으로 함께 즐기였다. 그에게는 흔히 기생들속에서 정해두던 기둥서방도 없었고 행실이 란잡하여 손가락질 받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기생은 기생인지라 그에게 지분거리는자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땅벌처럼 독하게 쏘아주어 쫓아버리군 하였으나 그런날 밤이면 분한 생각으로 잠들지 못했다. 어느날 황진이는 활터에 갔었다. 활터는 한량들, 풍류객들이 모여서 활쏘기내기를 하는 장소였다. 아직 무과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있는 무사들을 한량이라고 하였다. 무술을 련마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일종의 고급한 놀이터이기도 하여 한량들, 풍류객들은 활터로 나갈 때면 가끔 황진이를 청해서 같이 가군 하였다. 이날도 활터에 나갔던 황진이는 며칠째 잠을 설치다보니 그만 앉은 자리에서 풋잠이 들었다. 황진이는 자다가 꿈을 꾸었다. …달빛이 흐릿한 밤이였다. 길가는 사람도 없고 사방은 고요하였다. 황진이는 잠도 오지 않고 하여 밖에 나와 서성거리였다. 이때 한가닥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문득 백마를 탄 선비가 다가오다가 말을 멈추고 고려의 옛 왕궁 만월대쪽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선비는 이윽고 옷깃으로 눈굽을 찍고나서 시조 한수를 읊는것이였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듸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황진이도 알고있는 사랑하는 시조였다. 시조를 듣는 순간 《아! 길야은!》하고 꿈속에서 웨쳤다. 길재(야은은 그의 호)가 지은 시조였던 때문이였다. 이 시조를 노래부를 때마다 길재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것을 아쉬워한 황진이였다. 그가 만약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천리밖에 있다 해도 찾아가보았을것인데 길재는 고인이 된지 100년이 넘은 옛날 사람이였다. 그렇게 만나보고싶었던 길재를 꿈속에서 만났던것이다. 듣던바 그대로 소박한 선비였다. 꼿꼿한 사람이였다. 가까이에 황진이 자기가 서있었으나 눈 한번 돌려보지 않았다. 황진이가 《아! 길야은!》하고 웨치자 말도 길재도 간곳없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황진이도 눈을 번쩍 떴다.… 꿈에서나마 자기가 그렇게 존중하여마지 않던 길재를 만나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헤여진것이 여간 안타깝지 않았다. 황진이는 이 한토막 낮꿈을 두고두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의 리치를 깨닫게 되였다.
《옛날 도사들이나 큰 선비들이 도를 통한다고 하더니 이런 깨달음이 나에게도 통한것이 아닐가!》 그후로 황진이는 자기에게 지분대거나 미련을 두는 사나이들이 거절을 당하고 얼굴이 시뻘개져서 《도대체 명월이(황진이의 호)는 어떤 남자를 사모하는거요?》하고 빌붙을 때마다 도고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길야은같은분을 사모합니다.》 《그거야 너무하지 않나. 산사람이 죽은 사람을 사모하다니.》 황진이는 육신은 죽어도 뜻은 남아있다는것도 모르는자들과는 더 말하고싶지 않아 돌아서고말군 하였다. 산사람이 먼저 간 사람을 존중한 그 사모는 황진이의 생애에서 커다란 힘으로 되였다. 이 힘이 있었기에 그가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개방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어도 마음에 켕김이 없이 처신하였던것이다. 황진이는 먼저 간 길재를 존중하여 사모한 일화를 남겼다면 황진이가 생을 마친 후 림제(1549ㅡ1587)가 그의 무덤을 찾아 술을 붓고 추모한 이야기도 후날에 생겨났으니 이것은 황진이가 길재를 존중한 그 마음에 옳은것이 있었다는것을 말해주는 사실이 아닌가.
황진이와 리사종
한성에 리사종이라는 사나이가 살았다. 그는 선전관이라는 벼슬을 하였다. 선전관이란 왕이 행차할 때 군악, 노래, 군호, 전령, 호위, 형률 등을 맡아보는 벼슬인데 그 등급은 정3품으로부터 제일 낮은 종9품까지 각이하였다. 리사종은 선전관이라고 하지만 웃급은 못되였는데 노래를 아주 잘 부르고 예술에 조예가 깊은 인품있는 사람이였다. 그가 한번은 개성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짬을 내여 거리구경을 하고나서 시내가의 모래마당에서 잠시 쉬게 되였다. 그는 시내가에 벌렁 드러누워서 갓을 벗어 배우에 얹어놓고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신명나게 노래 한곡조를 뽑았다. 그래도 신명이 계속 동하여 한곡조, 또 한곡조 불러넘겼다. 마침 이때 황진이가 지나가다가 그 노래소리를 들었다. (저 노래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은데, 저건 우리가 마구 부르는것과는 달리 공들인 목소리가 틀림없어.) 황진이는 한동안 생각을 더듬다가 판단하였다. 《그렇지. 그분일수 있어, 서울에 사는 노래 잘하는 리사종이라는 이가 우리 송도에 왔다더니 그가 분명해. 그렇다면 한번 만나보아야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간 황진이는 곧 사람을 시내가로 보내서 노래하는 사나이를 청해오라고 하였다. 심부름하는 사람은 황진이의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겨졌다. 좀처럼 제스스로 다른 사나이를 자기 집에 초청하는 성미가 아닌 황진이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낯선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는가 하여 의아해졌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말 않고 시내가로 나가 황진이가 시킨대로 그 노래하는 사나이에게 말을 걸었다. 《저ㅡ 말 좀 여쭙시다.》 《무슨 말.》 《한성계시는 리사종분이시지요?》 누웠던 사나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되물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느뇨?》 《저 우리 댁 아씨가 모셔오라고 해서.》 《너희집 아씨가 누구냐?》 《송도명기 황명월인뎁쇼.》 《응?! 황진이가?》 리사종은 군말 않고 따라갔다. 황진이는 반갑게 그를 맞아들였다.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시와 노래에 수가 높은 사람을 만나면 그것을 배우기 위해 애쓰는 황진이인지라 노래 잘하는 사람을 만난 기쁨이 한량없었다. 시 잘하고 노래에 정통한 사람은 인품도 천하지 않다는것을 굳게 믿었기에 매일같이 오랜 시간 리사종과 함께 지내면서 노래와 가야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기도 하였다. 리사종은 사귀여보니 자기가 생각하는것처럼 점잖은 음악가였다. 황진이는 그가 떠나갈 때 길량식과 로자까지 푼푼히 마련해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여 황진이는 리사종과 가까이 사귀고 서로 오가군 하였다. 그런데 이 말은 한입두입 건너가서 송도로부터 한성으로 퍼지자 서울종로거리의 한량패들사이에서 고약하게 비틀어지게 되였다. 《황진이와 리사종이가 눈이 맞았대. 6년간 같이 살기로 했다나, 첫 3년동안은 황진이가 먹고살 량식과 돈을 가지고 리사종의 집에 가서 살고 나머지 3년간은 리사종이 그렇게 하기로 약조했다던가.》 이 말이 이번에는 한성에서 개성으로 전해졌다. 개성사람들이 펄펄 뛰였다. 《뭐 뭐 어쩌고 어찌여, 〈송도3절〉 황진이를 어떻게 알고 그따위 시시풍덩한 소리를 돌리는거야. 리사종이도 다시는 개성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것이거니와 그따위 헛소문을 내돌리는 종로거리 한량녀석들이 개성에 오기만 해보라지. 인두로 주둥이를 지져놓지 않나.》 거리에서는 이랬건만 당사자들인 황진이와 리사종은 말같지도 않은 헛소문에 귀도 기울이지 않고 자기들의 깨끗한 마음 그대로 그전과 다름없이 진실하게 사귀였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두사람의 진심을 알게 되고 그들의 성실한 우정관계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황진이와 소세양 사이에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소세양의 일화편에서 주었다.
《천마산의 이 폭포 누리에서 제일일세》
어느날 한무리의 량반들이 박연폭포에 몰려와 술판을 벌려놓고 시흥을 돋구고있었다. 아침해가 떠오르자 폭포에 젖빛안개가 감돌며 우아한 자연풍경이 펼쳐졌다. 아롱다롱한 무지개물보라가 선녀의 날개옷이런듯 내려앉고 풀과 나무잎새들이 령롱한 빛을 뿜으며 물기를 머금고 반짝이였다. 거기에 거세차게 날아내려꽂히는 폭포의 장엄한 물소리는 신선세계에서 울린다고 하는 비파의 신비한 합주곡같았다. 풍경과 음향이 하나로 조화되여 신비하게 펼쳐진 폭포, 얼마나 장쾌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날도 박연폭포를 찾아온 황진이는 그들이 노는 꼴에 눈살을 찌프렸다. (이런 명승지에 왔으면 즐겁게 음식이나 들고 점잖게 쉴노릇이지 이른아침부터 저들의 세상이라고 저렇게 란잡하게 굴다니, 어디 좀더 두고보자.) 그러는 때에 한 량반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더니 제법 목청을 뽑으면서 시 한수를 외웠다. 옆에 앉아있던 살집좋은 갓쟁이가 한마디 했다. 《자네 그 목소리가 아깝군.》 방금 시를 외우고난 량반이 으쓱해서 술잔을 끌어당기며 턱을 놀렸다. 《내 목소리에 반했나?!》 《여, 그런게 아니여.》 《그럼?》 《목소리는 분명 자네 어머니가 틔워준 이 나라 사람의것인데 하필이면 남의 나라 사람이 쓴 시를 읊을건 뭐람.》 《허 참 모르는 소리, 폭포시 치고 그 시보다 잘 쓴것이 어디 있어.》 《으응, 쯔쯔, 세상사람들이 그 시를 찬양하는 까닭은 말이네, 그 시인이 자기 나라 명승폭포를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때문이고 그 마음으로 시를 잘 지은 까닭이야. 그런데 여기는 박연폭포거든 박연폭포!》 《그럼 임자가 어디한번 읊어보게.》 이 말에는 갓쟁이도 목구멍이 막혔는지 말을 못하고 쩔쩔 맸다. 모름지기 입은 놀렸으나 시재간은 없는것 같았다. 황진이가 가만히 들어보니 첫번째 량반보다 두번째 갓쟁이가 눈이 좀 바로 박힌것이였으나 시짓기에서 남의 나라 시에 빠져 헤덤비는것이나 말만 하고 시는 짓지 못하는것이나 같고같은것이 가소로웠다. 그는 성큼성큼 그들이 있는 곳에 다가갔다. 《여러 량반님네들, 이 황진이도 한말씀 드립시다.》 개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황진이인지라 량반들이 반기면서 어서 그렇게 하라고 응했다. 《이 땅에 태를 묻고 자라난 사람이야 응당 제것을 더 귀중히 여기고 제것의 아름다움을 볼줄 알며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하오이다. 이 박연폭포만 보아도 얼마나 아름답고 장하오이까. 또 이 폭포에 깃든 박진사와 룡녀이야기는 얼마나 감동적이오이까.…》 량반들은 황진이의 해박한 지식과 사리정연한 언변에 머리를 끄덕이며 속으로 감탄을 표시했다. (한낱 천한 기생으로 노래만 잘 부르는줄 알았더니 어느새 저런 학식을 다 가졌는고…) 말을 마친 황진이는 폭포의 장쾌한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더니 조용히 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한줄기 내물 구렁에 내려꽂혀 백길 룡소에서 물살이 솟구치네
하늘의 은하수가 거꾸로 쏟아진듯 흰 무지개가 비껴드리운듯
물소리 골안에 우뢰를 일으키고 물방울 공중에 구슬되여 흩어지네
려산이 좋다고만 말하지 마오 천마산의 이 폭포 누리에서 제일일세
황진이가 시읊기를 마치자 량반들은 더는 아무말도 못하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더니 더 창피를 당할가보아 화제를 다른데로 돌려버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후 황진이의 고결한 애국심과 지조, 시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로 널리 전해지게 되였다.
박연폭포에 남긴 명필
황진이는 재능있는 시인이였을뿐아니라 뛰여난 명필이기도 하였다. 박연폭포의 소옆에는 룡바위라고 부르는 평퍼짐한 바위돌이 있다. 이 너럭바위에는 황진이가 썼다는 시구가 새겨져있다. 《비류직하삼천척 의시은하락구천》 (곧추 날아내리는 폭포의 길이가 삼천자나 되는것 같구나. 아니 저것이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진것이 아닌가라는 뜻) 이 글씨는 황진이가 박연폭포에 와서 머리를 감고 물에 젖은 머리태를 움켜잡고 단숨에 쓴것이라고 한다. 슬슬 흘려쓴 초서체의 글씨는 룡이 살아움직이는듯 하여 박연의 폭포풍치를 한층 더 돋구어준다. (머리태를 잡고 이렇게 잘 쓰다니!) 황진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글씨솜씨에 새삼스럽게 감탄한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고개를 약간 기웃거리면서 아쉬워하기도 한다. 박연폭포를 남의 나라 명폭포보다 훌륭하다고 시까지 지은 황진이가 어째서 바로 그 박연폭포의 바위돌에 남의 나라 시인이 그 나라 폭포를 두고 읊은 시구를 새겨놓았단말인가.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그 시구를 새긴것을 아쉽게 생각할건 없다. 그 글씨에 깃든 일화 하나를 들어보면 그 아쉬운 마음이 가시여질것이다. 그런 다음에 황진이가 글씨를 쓴곳이 폭포의 꼭대기나 쏟아져내리는 암벽이 아니라 룡추가 내리꽂히는 아래바닥 소옆에 있는 바위이라는것을 미루어보면 이 녀류시인의 고결한 마음씨를 리해하게 될것이다. 어느날 박연폭포에 나간 황진이가 명승지를 다 돌아보고나서 소옆에 있는 너럭바위가까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고있었다. 이때 한무리의 량반들이 기생들을 데리고 박연폭포에 놀러왔다. 이들은 오자마자 너럭바위가 있는 옆에다가 화문석돗자리들을 펴고 화로불에 고기를 구으면서 술추렴을 벌렸다. 몇잔술에 흥이 오른 그들은 시를 읊는다고 흥얼댔는데 한 사나이가 왜가리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매번 여기 놀러와서 시를 짓군 했는데 오늘은 글씨쓰기를 내기합세.》
《폭포에 놀러온바에야 폭포시로는 〈비류직하삼천척〉이라는 시구가 제일이니 다들 그 시구 한짝을 글씨로 써서 제일 잘된것을 남깁세!》 량반들은 그 소리가 씨도 먹지 않은 소리인지 어떤지도 모르고 제마끔 종이를 꺼내놓고 붓을 꼬나들더니 받으려는 소처럼 엉치를 치켜든채 머리를 쳐들고서 두리번거리다가 글씨를 썼다. 저마끔 있는 재간을 다 부려 쓰노라고 했으나 신통한 글씨가 나올리 만무였다. 한사람이 써놓으면 반대의견이 나오고 좀 나은가 하면 또 다른 작자가 비평했다. 그러다나니 어떤 사나이는 지쳐버려서 글씨쓰기를 단념하고 련거퍼 술잔만 기울였다. 그꼴들이 참말 볼성사나웠다. 저쯤에서 그들을 슬그머니 건너다보는 황진의 눈에는 써놓은 글씨들이 한심하게 보였다. (저따위 글씨를 여기서 쓴다는거야 이 박연폭포를 욕되게 하는거지 뭐야.) 황진이는 슬그머니 부아가 났다. 《제 글씨가 변변치 못하오나 여러분들이 허락하신다면 한번 써보고싶소이다.》 량반들이 어디한번 써보라는듯이 종이와 붓을 가리키면서 어서 와서 쓰라는것이였다. 그러자 황진이는 그 종이와 붓이 있는데가 아니라 물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너럭바위옆에 가더니 머리태에 폭포수를 묻혀 잡아쥐고 그 바위에다가 시구를 썼다. 그가 머리태를 붓처럼 휘두르니 우에서는 머리태가 살아움직이는 룡과 같았고 바위에서는 황진이 머리태로 쓴 글씨획이 룡이 꿈틀거리듯 힘있게 살아났다. 박연폭포를 끝없이 사랑하는 뜨거운 넋이 그의 숙련된 글씨솜씨와 얽히였으니 들여다보는 량반들이 아연실색할것은 더 말할것도 없었다. 마침 가까이에 있던 석공 한사람이 달려와보고 황진이가 머리태로 쓴 명필을 세상에 전하고싶어 허리춤에 찬 정과 망치를 꺼내서 그 획을 따라 바위면에 새겼다고 한다. 이 글씨를 보는 사람들은 감탄하기를 글씨도 명필이지만 세상에 명시구라고 하는 그 글귀를 새긴 바위가 밑에서 우로 폭포를 쳐다보고있어 박연의 천하명승을 우러러 찬양하는 뜻이 두드러져서 더더욱 좋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과시 황진이는 조선의 명기로다.》
량반들을 골려준 황진이
황진이는 고루하고 방탕한 량반귀족들이 오너라 가너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꼴이 보기 싫어 가끔 집을 떠나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구경하러 다니였다. 하루는 그가 어느한 고을에 들어섰는데 마침 고을원이 큰 잔치를 벌려놓고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량반벼슬아치들과 기생들이 서로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탕망탕 즐기고있었다. 술이 질펀하게 흐르고 고기가 숲을 이루듯 하였는데 량반들이 거드름스럽게 앉아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긴 소매자락을 너풀거리고있었고 기생들 또한 그앞에서 갖은 아양을 다 떨며 재간을 뽐내노라 소란을 피우고있었다. 그들이 노는 꼴을 지켜보느라니 여간만 가소롭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저 아니꼬운자들을 골려줄것인가 이리저리 생각하던 황진이는 문득 자기의 옷차림주제가 몹시 람루한데 눈길이 미쳤다. 집을 나선지 한동안이나 되였고 또 량반나부랭이들이 치근거리는 꼴이 보기 싫어서 저고리와 치마를 대충 걷어입고 나왔더니 그 차림새가 말이 아니였다. 신통히 농촌집 아낙네의 모습을 방불케했다. 얼굴에도 먼지때가 끼고 해빛에 그을은것이 얼굴과 차림새도 신통히 맞았다. 황진이는 혼자 싱긋 웃었다. 량반들을 골려줄 기묘한 생각에 저절로 흥까지 살아올랐다. (흥, 겉만 번지르르한 주제에 괜히 우쭐거리면서… 그럼 어디한번 당해보지.) 황진이는 곧 잔치판에 들어섰다.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잔치판을 쭉 꿰질러 웃좌석으로 나가 태연하게 앉았다. 《넌 누군데 무례하게 들어와 상좌에 마음대로 틀고앉는거냐?》 옆에 앉은 량반이 눈을 치뜨고 황진이를 노려보며 호통쳤다. 대번에 업신여기며 야단이다. 《즐거운 잔치판에 노래 한곡 불러 흥을 돋굴가하여 들어왔나이다.》 황진이는 일어나서 겸손하게 청을 드렸다. 량반관료들은 아연해졌으나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고 그럼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침묵을 지켰다. 한 기생이 아니꼬운 눈빛을 지으며 황진이에게 가야금을 내밀었다. 촌녀인이 가야금이나 알랴 하는 기색이였다. 태연하게 가야금을 받아 무릎우에 얹은 황진이는 익숙한 솜씨로 가락을 튕기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디서도 들어본적 없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노래였다. 하늘의 선녀가 비파를 안고 내려왔나 하고 자기 눈들을 의심할 정도였다. 어느 시골아낙네가 제흥에 겨워 뛰여든것으로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나오던 량반들의 눈이 순식간에 퀭해졌다. 한참 넋을 잃고 황진이만 쳐다보던 량반들은 한동안이 지나서야 황진이가 부르는 노래의 내용에도 주의를 돌리게 되였다. 그 내용인즉 항간의 쟁인바치들이나 들판의 농군들이 즐겨부르는 《상스러운》것이였다. 《허, 어디서 저따위 상스러운 소리밖에 모르는것이 굴러들어왔는고.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 내쫓으세.》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이구동성으로 떠들었다. 황진이는 가야금을 뜯던 손을 멈추었다. 노래소리도 멎었다. 자기를 얼없이 바라보는 량반들을 향하여 황진이는 조용하나 무게있는 음성으로 말하였다. 《여기 있는 이 산해진미와 풍성한 잔치가 농군들의 피땀에 의해 마련된것이 아니오이까? 그러니 오늘의 이 즐거운 잔치에서는 마땅히 농군들의 노래를 불러 그들의 수고를 헤아려줌이 마땅한줄로 아오이다.》 황진이는 다시 가야금줄을 튕기며 노래를 계속했다. 《저런?》 《어허, 고약한지고!》 량반들은 성이 꼭두까지 올랐다. 그러나 태연하게 노래를 부르는 황진이의 태도가 너무나도 당돌한지라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망설였다. 이틈에 노래를 마친 황진이는 움쭉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께로 향하였다. 량반들과 기생들은 넋을 잃고 바라만볼뿐 누구하나 막아나서는자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량반들은 저들의 사치와 위선이 부끄러웠고 기생들은 기생들대로 저들의 보잘것없는 재주가 부끄러웠다.
송류수의 첩
송가 성을 가진 관료가 개성류수로 와있을 때였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있고 예술을 사랑하는 풍류남아였다. 이런 사나이에게는 흔히 곱고 재간있으면서도 시기질투심이 센 녀자가 따르기마련이다. 그에게도 그런 성미사나운 첩이 있었다. 하루는 송류수가 술잔치를 크게 차리고 개성의 한다 하는 풍류객들과 기생들을 불렀다. 자기의 호기있는 기품도 과시하고 개성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겸 유명한 명기 황진이의 재주도 보고싶어서였다. 송류수의 첩은 또한 그나름으로 이 기회에 자기의 인물자랑, 음식솜씨자랑을 할겸 개성기생들을 압도할 주제넘는 생각을 가졌다. 송류수는 잔치판을 큼직하게 차리고 정면으로 자기가 앉을 자리를 약간 돋구어 마련한 다음 그 옆에 《송도3절》의 하나로 손꼽히는 황진이를 앉혔다. 음식들이 나오고 풍악이 울리며 연회석은 자못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송류수의 첩이 음식상 차리는 일을 감독하다가 흥성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끌려 문틈으로 내다보았다. 좌석에 앉아있는 기생들의 생김새며 그들이 부르는 노래소리, 흥에 겨워 우쭐거리는 어깨춤들이 그닥 눈에 차지 않았다. 눈귀에 알쑹달쑹한 웃음을 지으며 내다보던 송류수의 첩이 한곳을 주시했다. 송류수옆에 앉아있는 한 기생에게 눈길이 그루박힌 녀인은 아연해서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였다. (하늘에 선녀가 있다지만 그 어느 선녀인들 저 녀자만큼 의젓하고 아름다울수 있으랴.) 그 녀자는 불안해졌다. 자기는 열번 둔갑을 해도 도저히 견줄수 없는 미인, 송류수가 만약 저 녀인에게 마음이 끌린다면… 그 녀인은 송류수의 얼굴을 피끗 훔쳐보았다. 류수도 이따금 옆에 앉아있는 녀인과 무슨 말인지 한두마디씩 하고는 만족해서 웃군 하였다. 그 웃음이 무엇을 말하는것일가? 송류수첩의 불안은 어느새 시기와 질투로 물들어졌다. (랭정하자, 비록 첩이기는 하지만 명색이 류수의 안해답게 처신하자) 이렇게 자제하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연회석으로 나갔다. 분별을 잃고 나서기는 하였으나 자기의 처지와 체면상 차마 시기질투심을 그대로 드러낼수는 없는지라 자못 엄한 말투로 한마디 내뱉았다. 《네가 감히 어느 존전앞이라고 무엄하게 옆자리에 앉는단말이냐?》 그는 송류수에 빗대놓고 황진이에 대한 질투심을 쏟아놓았다. 하지만 당황한것은 황진이가 아니라 송류수의 첩이였다. 황진이가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자기앞에 사람이 없는듯이 태연자약해서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있었기때문이였다. 《얼른 일어나지 못할가!》 다시한번 꾸짖었으나 황진이는 그 소리를 들은둥만둥하고 음식도 들고 옆사람과 담소도 하였다. 너같이 상대가 안되는 녀자하고는 대상도 안한다는 배포였다. 아니 그뿐이 아니였다. 송류수와 아무런 사심이 없는 녀인만이 취할수 있는 담담한 태도였다. 일이 이쯤되자 송류수가 바빠졌다. 그는 첩을 얼른 나무라며 들여보내고 어석버석해지려던 좌석의 분위기를 풀었다. 그날밤 송류수는 첩을 자기 방에 불러다놓고 엄하게 책망했다. 《많은 사람들 있는데서 내 망신을 시킨것도 시킨것이지만 그래 황진이앞에서 네가 당한 망신은 또 얼마냐, 결단코 너를 용서치 않을것이다.》 낮에는 사람들이 있기에 송류수의 체면을 세우는척하는 소리를 하였으나 단둘이 있는 이 자리에서는 눈감고 아웅할 필요가 없었다. 《황진이를 그냥 두면 류수나으리께서 저같은 년을 개밥에 도토리만이나 여기시겠소이까. 저는 〈송도3절〉 황진이라고 하기에 얼마나 잘났으랴 했는데 그렇게 잘난 인물인줄 몰랐사옵니다.》 송류수도 도량있는 풍류남아이라 첩의 망녕된 버릇을 된 회초리로 다스릴 작정이였으나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는것이 기특해서 용서해주면서 자신이 대해본 황진이의 사람됨에 대해서 허심하게 말해주었다. 첩도 류수가 들려주는 황진이의 인품에 공감이 갔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황진이는 실지로 송류수를 대하는데서 류수라는 벼슬은 념두에 두지 않고 시와 예술을 사랑하는 풍류객으로 친절하게 사귀고 존중하게 위해주면서도 그 이상으로는 남녀간의 계선을 넘어서는 일이 없었다. 그것을 알게 된 송류수의 첩은 자신의 편협했던 선입견과 몰상식한 망동을 부끄럽게 후회하고 황진이의 고상한 인품에 진심으로 감복하였다.
산산쪼각난 벽계수의 허세
당시 서울에 벽계수라고 하는 왕의 친척이 있었다. 벽계수는 그 사람됨이 아주 교만하였다. 어느날 벽계수와 그 친구들이 모여앉아 한담을 하던중에 화제가 문득 송도명기 황진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황진이의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 명기를 한번 만나보면 모두가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말것이라고들 하였다. 그러나 교만한 벽계수만은 입가에 조소를 띠우며 황진이를 이리저리 헐뜯고나서 자기는 그 어떤 미인앞에서도 눈섭 한오리 까딱 않노라고 흰소리를 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벽계수가 황진이를 직접 만나 증명해야 인정하겠노라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벽계수는 이에 쾌히 응했다. (그까짓 한낱 기생이 뭐라고…) 벽계수는 곧 하늘소에 몸을 싣고 개경을 향해 호기있게 길을 떠났다. 별빛 총총한 밤, 둥근달은 동산우에 두둥실 떠올라 밝은 빛을 뿌리고 산골물은 조잘거리며 쉼없이 흐르는데 벽계수는 거들먹거리며 하늘소를 몰아 개경어구의 산모퉁이를 돌아들었다. 이때 어디선가 랑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녀인이 다름아닌 황진이인줄 그는 미처 몰랐다. 황진이는 미인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벽계수의 허세를 까밝히기 위해 그가 개경에 온다는것을 알고 기다리고있는 중이였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말아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오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여간들 어떠리
벽계수는 맑고 랑랑하게 울리는 목소리의 임자가 황진이임을 곧 알아차렸다. 그것은 《청산리 벽계수》는 푸른 산의 맑은 물을 의미하는 동시에 곧 자기인 벽계수를 가리키는 말이였고 《명월이 만공산》은 밝은 달빛이 온 산에 찼다는 의미와 함께 황진이를 가리키는 말이였기때문이였다. 황진이가 오만한 벽계수와 자기자신을 념두에 두고 지은 시조의 뜻을 풀이해보면 대체로 《그대 벽계수여, 함부로 장담말라. 한번 실수하면 사나이체면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한번 와서 만나보라》는것이였다. 벽계수는 황진이가 부른 시조의 깊은 의미를 새겨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냥 하늘소를 몰아 앞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생각하였다. (세상에 이렇듯 재간있는 아녀자도 있단말인가. 자연의 풍치를 교훈적으로 그대로 노래하는척하면서도 이렇게 묘하게 시구를 꾸미고 거기에 깊은 의미까지 심어놓다니…) 문득 벽계수의 눈앞에 녀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달빛아래 조용히 서있는 녀인의 모습은 벽계수가 이제껏 본적 없는 황홀한 미인이였고 그의 심장이 통채로 녹아내리게 하는 하늘나라의 선녀였다. 황진이의 아름다운 자태에 끌리여 넋을 잃고 쳐다보던 벽계수는 자기가 하늘소우에 올라앉은 몸이라는것도 잊고 허둥거리다가 그만 나떨어지고말았다. 이와 함께 벽계수의 허세도 진창에 딩굴어 산산쪼각이 났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황진이의 시적재능과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이 사람들속에서 더 크게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계률을 어긴 《생불》
황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송악산 안화사로 찾아갔다. 지금 그의 마음은 처녀시절처럼 즐겁고 기대에 부풀어올라있었다. 꿈많던 처녀때는 시를 짓고 노래를 익히고 글씨를 쓰면서 뜻대로 잘될 때마다 자기도 신사임당같은 사람이 될수 있을가 하는 기대속에서 기쁨에 겨웠다면 안화사로 찾아가는 지금은 스님에게서 가르침을 듣게 될것이 기뻐서였다. 그는 걸음을 다우치면서 안화사에 있다는 지족선사라는 중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그는 어떤 사람일가, 사람들이 《생불》(살아있는 부처)이라고 하는것으로 보아 아마 덕망이 높은분일거야.) 그는 또한 지족선사가 어떻게 생겼을가 하고 그의 생김새도 그려보았다. (틀림없이 석가모니불상처럼 이마가 번듯하고 두귀가 축 늘어졌으며 얼굴이 슬기있어보이는 불교계률에 성실한분일거야.) 황진이가 이런 천진한 생각을 기쁨에 겨워서 하게 되는데는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다. 그가 뜻하지 않게 기생이 되여서 살아가는 나날에 허전하고 서글픈 생각을 이겨내는것이 제일 힘들었다. 이 힘든 고통을 그래도 덜어주는 시각은 자기를 사람답게 대해주는 인간을 만나서 같이 즐겁게 지내는 때였다. 글로 사귄 소세양, 학문과 도덕으로 우러르는 서화담, 음악으로 친해진 리사종, 그들은 진실하고 깨끗한 사나이들이였다. 그들은 각각 시와 학문, 음악의 세계에서 황진이 자기를 글친구, 말벗, 예술동료로 대해주었고 기생이라고 지분거리려고 생각할줄 모른 사나이들로 여겨왔다. 이제 불교라는 신앙의 세계에서까지 그런 스승이 될만 한분을 만난다면 더 바랄것 없이 기쁜일이 아닐수 없다. 개성바닥에서 지족선사를 만석중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지족선사가 만사람이 물어도 어느것 하나 막힘없고 속이 시원하게 해석해준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거니 또한 유능한 중이 되여 불공드리려 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주드리는 곡식만 해도 만석이나 될만큼 이름높은 스님이 되여서 그렇게 부른다느니 하고 제나름으로 말들 하였다. 그리하여 황진이는 이 지족선사를 찾아가는 길이였다. 지족선사를 찾아가는 황진이의 마음은 이런 기대가 있어 기쁘기도 하였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야릇한 내기심사로 하여 호기심으로 부풀어오르고있었다. (소세양, 서경덕, 리사종을 알게 될 때도 그들이 사내들인데 길가의 실버들같은 기생인 자기를 업수이보지 않을가, 혹시 허튼수작을 하지 않을가, 어디한번 시험해보자. 내가 존엄을 지키나 그들이 방탕한 심사를 실현하는가를 말이야. 이 겨루기에서 량쪽은 다 존엄과 체면을 지켜냈고 그 지킴이 진실하고 깨끗한 사귐으로 되였던것이다. 지족선사도 그래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래주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틀림없이 그럴것이다.) 황진이는 얼마전에 지족선사가 여러 중들앞에서 황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동냥중들이 성안에 들어왔다가 황진이에 대해 찬양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절간에 돌아가서 한담할 때 우연히 들은 말을 외웠다. 그것이 원인으로 되여 중들이 시시풍덩한 소리를 했는데 그속에는 황진이가 아무리 천하절색이라도 지족선사의 마음은 털끝만치도 흔들지 못할것이라느니, 지족선사도 도가 통해서 욕심을 눌러서 그렇지 물건을 보면 욕심이 나고 미인을 보면 탐이 나는거야 생불이 다르고 땡땡이중이 다르겠는가느니 하는 소리도 있었다. 그 소리가 지족선사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그는 아무 응답도 않고 목탁을 치면서 《나무아미타불》만 외웠다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황진이가 어떤 녀자이든 자기 마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없는 표시였다.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황진이는 (길고 짧은것은 대보아야 알수 있고 옳고 그른것은 겪어보아야 판단할수 있는 법인데 어디한번 만나보리라.) 그리하여 오뉴월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를 찾아가는것이였다. 황진이가 안화사에 가보니 소문에 듣던바 그대로 지족선사는 법당에 앉아서 념불을 외우고있었으며 불공을 드리려온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들락날락하였다.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드리는 대가집 마님들, 돈을 벌게 해주십사 하고 소원하는 배뚱뚱이들, 아이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비는 장거리 녀인들, 참으로 천태만상이였다. 황진이도 그들속에 끼여서 잠자리방 한칸을 정해놓고 자기가 불공드릴 차례를 기다렸다. 그는 세상만물이 깊이 잠든 한밤중에 첫 불공을 했다. 황진이의 소원은 기생생활이 하도 고통스럽고 외로워 마음을 의탁할데 없어서 절간을 찾아왔으니 지족선사의 제자가 되여 부처님을 믿고 살게 해달라는것이였다. 그는 이날부터 지족선사가 불공을 드리면 함께 불공하고 선사가 벽을 마주하고 앉아 도를 닦으면 저도 옆에 앉아서 도를 닦았다. 하지만 황진이는 진짜 녀승이 되려고 온것이 아니라 이름있는 중과 사귀고싶어 온것이니 불공을 하고 참선(선도를 닦는 일)을 하고난 다른 시간에는 절간주변의 산천경치를 둘러보면서 자연을 감상하고 노래도 부르군 하였다.
… … 실망과 환멸이 어찌나 심하고 격렬하였던지 황진이는 날이 밝기를 기다리지 않고 한밤중에 절간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고말았다. 그후 개성일대에서는 덕물산을 비롯한 여러 민속놀이터들에서 《만석중놀이》라는 인형놀이가 생겼다고 한다. 옷을 벌거벗은 중이 제손과 발로 가슴을 치는 인형놀이인데 하루저녁에 《생불》로부터 파계승이 된 만석중을 조소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리워도 만날길은 꿈길밖에 없다.》 《있을 때엔 싫다 하고 없으면 다시 그리워한다.》 《시름은 흐르는 물과 같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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