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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 임 당 (1504ㅡ1551)
리조전기의 녀류시인, 화가. 호는 사임당, 임사재. 신명화의 둘째딸이며 이름난 유학자 리이의 어머니이다.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대바른 성격, 정력적이고 부지런한 성품의 녀성이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익히고 그림과 글씨, 수놓이와 바느질 등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화조화를 특별히 잘 그리였는데 풀벌레, 포도, 기러기, 물오리, 쏘가리, 백로, 매화, 가지 등 집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소재들을 취급하였다. 그림 《가을풀》은 당대의 화단에서는 물론 궁중에까지 널리 알려져 궁중자수의 밑그림으로, 궁중도자기의 문양원본으로 쓰이였다. 《가지》와 《물오리》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형상의 사실주의적생동성으로 하여 현실감과 향토미를 자아내고있다. 이밖에도 《쏘가리》, 《포도》, 《로안도》(기러기), 《련앙도》(련못가의 해오라기), 《초충도》, 《산수도》, 《자리도》(금붕어), 《백로도》, 《추초군접도》(가을풀과 나비무리), 《화첩도》(참대, 오이, 물고기를 그린 화첩) 등 수많은 작품들이 알려져있다. 신사임당은 화가로서뿐아니라 시인으로서 문학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기였다. 그는 주로 녀성들의 지조와 도덕을 찬양하는 인정세태적인 시들을 많이 창작하였는데 《어버이생각》, 《대관령을 넘으며》 등이 그 대표작으로서 시인의 섬세하고도 꾸밈없는 서정세계를 잘 보여주고있다.
《어버이생각》
한자시.
옛집은 천리밖 첩첩이 산이 가려 그리운 이 마음은 꿈결에나 가보네
한송정 언덕에는 달 돋아 물에 어리고 경포대앞에는 맑은 바람 불어오는가
모래우에 갈매기는 흩어졌다 모이고 강기슭 고기배도 오락가락 하련마는
어느때나 다시 강릉 옛길 달려가 부모님 슬하에서 즐겁게 놀아볼가
시는 멀리 천리밖의 아름다운 고향땅 강릉에 계시는 부모님을 꿈결에도 못 잊어하는 자식의 간곡한 심정을 녀성다운 섬세한 필치로 생동하게 그려내고있다. 시는 부모님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고향산천에 대한 구체적인 추억과 결부시켜 노래함으로써 시의 정서적여운을 짙게 하고있다. 인정세태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제한성이 있으나 세련된 시형상으로 하여 이 시기 문학에서 의의를 가진다.
《대관령을 넘으며》
한자시.
머리 흰 어머니 강릉에 외로이 계시는데 이몸 서울 향하여 홀로 가는 마음이여
다시한번 머리 돌려 옛 살던 마을 바라보니 흰 구름 갈앉은곳에 저문 산만 푸르르구나
시는 시인이 강릉에 있는 친정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대관령을 넘으면서 읊은 작품이다. 시집에 있을 때는 못견디게 그리워지고 보고싶은 친정부모들의 모습이여서 언제면 강릉친정집에 달려가 부모님들을 기쁘게 해드릴가 걱정하던 서정적주인공은 마침내 기회가 생겨 친정집을 찾아 부모들과 뜻깊은 상봉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갈수 없는 행복이다. 시집간 몸이라 또다시 헤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시에서는 자기를 낳아 키워준 부모님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과 함께 부모님들을 두고 떠나온 가슴아픈 심정이 서정깊게 노래되고있다. 시는 부모님들을 지극히 위하는 조선녀성들의 아름다운 정신세계의 일단을 보여주고있는것으로 하여 중세녀류시문학의 대표적작품의 하나로 되고있다.
치마폭에 그린 포도그림
신사임당은 포도를 심어 가꾸며 포도를 그리기를 좋아했다. 어려서 그림공부를 할 때 앞뜰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청신한 열매가 주렁져달리던 포도를 즐겨 그렸다. 출가한 후에도 고향집 어머님이 그리울 때면 시원한 포도송이를 어머님께 올리고싶은 심정을 담아 소담스럽고 싱그러운 포도를 그림에 옮겼다. 어느때인가 신사임당은 친척집 잔치에 간 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집 일손을 도와 잔치음식상 차리기에 분주하게 돌아치고있었다. 그런데 말쑥한 옷차림을 한 한 녀인만은 주방 한쪽구석에서 치마폭을 감싸쥐고 주밋거리는것이였다. 얼굴에는 근심스러운 그늘이 잔뜩 실려있었다. 무심히 그 옆을 지나치던 신사임당은 그 녀인의 울상이 된 얼굴을 보았다. (무슨 근심스러운 일이라도 생긴것일가?) 사려깊고 인정많은 신사임당은 녀성다운 심정으로 그 녀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혹시 몸이라도 불편하신가요?》 신사임당의 친절한 물음에 녀인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채 《아, 아니예요.》하며 대답하기를 피하는것이였다. 《무슨 일인지? 혹시 제가 도움을 줄수 있는 일이나 아닌지요?》 녀인은 신사임당의 물음에 《저 사실은 이 치마를 못쓰게 만들어서…》 하며 겉치마를 펼쳐보였다. 녀인이 펼쳐보이는 치마는 새로 지은 비단치마인데 몹시 덞어져있었다. 녀인은 《잔치집에 오느라고 남의 치마를 잠간 빌려입고왔는데 이렇게 망쳐놓았으니… 새것으로 장만하여주려고 해도 집안형편이 어려워 그럴 힘이 없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나요?》하며 근심하는것이였다. 신사임당은 가난한 집 녀인의 딱한 사정을 들으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든지 녀인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 비단치마를 다시 살펴보았다. 신사임당은 재능있는 화가의 안목으로 그 비단치마폭에 그림을 그려 덞어진 곳을 지워줄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이 다 그려졌을 때 녀인은 끝없는 선망과 존경이 어린 눈길로 신사임당을 쳐다보았다. 소박하고 수수한 차림새를 한 이 녀인이 어쩌면 이렇듯 훌륭한 그림을 그릴수 있는것일가 하는 의혹을 감출수 없었다. 신사임당은 녀인에게 권했다. 《이 그림을 저자에 내다 팔면 새 치마감과 바꿀수 있을것입니다.》 녀인은 그림을 가지고 장마당에 나갔는데 저저마다 이 그림을 보고 다투어 사겠다고 값을 높이 불렀다. 그리하여 새 치마감을 사고도 돈이 오히려 더 많이 남았다. 그후 녀인은 신사임당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신사임당은 여전히 소박하고 진실한 웃음을 담고 《댁에서 기뻐하니 저도 마음이 놓이는군요.》라고 할뿐이였다.
닭의 화를 입을번한 《풀벌레》
신사임당보다 후세기 사람들속에 한 그림애호가가 있었다. 그는 당대의 명화로 알려진 여러장의 그림들을 보관하고있었다. 그의 그림들중에는 신사임당의 그림 《풀벌레》도 있었다. 어느해 여름철이였다. 그림애호가는 지루하게 계속되던 장마가 걷고 해빛이 뜨겁게 비치는 날 비단족자에 올려 걸어두었던 그림들을 누기를 말리고 바람을 쏘이려고 마당으로 내왔다. 주인은 마침 포도나무그늘밑에 놓인 상이 있어 거기에 의지하여 《풀벌레》족자를 걸어놓았다. 그는 족자를 걸어놓고 멀찌기 물러서서 다시금 그림을 감상하였다. 방안에 걸어놓고 볼 때보다 자연풍경속에 내다걸어놓고보니 그 그림의 풀벌레는 마치 살아서 그림옆에 서있는 포도나무를 향해 기여가는듯 하여 그 생동한 형상이 실물처럼 보였다. 《과시 명화로다!》 주인은 새삼스레 감탄을 하며 그림을 감상하다가 마음이 흐뭇하여 코노래를 부르며 다시 서재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병풍을 내다 바람을 쏘이려는것이였다. 때마침 마당에는 올봄에 갓 까나온 병아리들이 어느새 중닭이 다 되여 오구구 모여서 분주히 모이를 쫏고있었는데 울타리에 훌쩍 날아오른 수닭이 금빛깃털을 호기있게 푸드득거리며 목청을 돋구어 《꼬끼요!》하고 울었다. 그러더니 문득 날아내려 쏜살같이 포도나무밑으로 달려가며 암닭들을 부르는 꾸꾹꾹꾹 소리를 연방 질렀다. 좋은 먹이가 있으니 어서 와 먹으라고 찾는것이였다. 병풍을 안고 방안을 나서던 주인은 암닭들이 달려가는쪽을 무심히 돌아보다가 그만 화닥닥 놀랐다. 그는 들고나오던 병풍을 그자리에 놓자 다급히 소리치며 닭들이 달려가는쪽으로 뒤쫓아갔다. 《후여! 이놈, 이놈들!》 포도나무밑으로 달려가면서 주인은 닭떼를 사정없이 휘몰아 쫓아버렸다. 일은 참으로 맹랑하게 될번하였다. 능청스러운 수닭이 울바자우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포도나무로 기여가는 먹음직스러운 《풀벌레》를 보았던것이다. 수닭은 그것을 노리고 암닭들을 부르는 한편 껑충한 두발을 겅정겅정 디디며 상으로 다가들고있었다. 이제 한발자국만 더 가면 그리고 그 우악스러운 부리로 사정없이 《풀벌레》를 쫏는날에는 귀중한 그림에 구멍이 나고 족자가 찢어질판이였다. 바로 이 찰나에 주인은 손에 땀을 쥐고 엎어질듯 다가가며 닭들을 쫓았던것이다. 닭들을 쫓아버린 주인은 구원된 《풀벌레》를 보고 안도의 숨을 크게 쉬였다. 《하마트면 이 〈풀벌레〉가 닭의 화를 입을번했구려, 허허허. 하하하…》 주인은 한바탕 유쾌하게 웃었다. 그림의 풀벌레가 얼마나 신통히 실물 같았으면 자연속의 벌레를 가려보는데 능수인 저놈의 수닭이 진짜 벌레인줄 알고 달려들려 했겠는가 지내놓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림을 닭의 피해에서 건져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그 주인은 그후 송상기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하여 다시금 그림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명작의 비결
당시의 학자였던 어숙권은 《패관잡기》에서 이렇게 썼다.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는데 포도나 산수의 그림은 특히 뛰여나서 비평하는 사람들의 말이 세종때의 화가 안견 다음은 갈만 하다고 한다. 그 어찌 부인네의 붓이라고 하여 업신여길것이며 또 어찌 그림그리는 일이 녀자에게는 당치 않은 일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또한 《동계집》에서는 신사임당의 그림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있다. 《솜씨가 그윽하고 고우면서도 고상하니 이것은 그린 사람이 녀성인 까닭이고 채색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그의 천재성과 높은 향기를 크게 찬양하지 않는이가 없다.》 뿐만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그가 그린 그림은 벌레, 나비, 꽃, 오이 등 모두가 실물과 꼭 같으며 맑은 기운이 산뜻하여 마치 살아움직이는것 같아 세상의 저속한 화가따위는 감히 따르지 못하리라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하였다 한다. 어느날 신사임당이 남새밭에서 포도넝쿨을 가꾸고있는데 뒤따라나온 아들애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매일 밭에서 오이랑 가지랑 가꾸시나요?》 《응, 그건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포도넝쿨이랑 오이잎이랑 만져보면서 눈에 깊이 익혀야 그것을 그대로 그림에 옮겨놓을수 있단다. 시를 짓는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생활에 몸을 푹 잠그고 구체적인 감정변화와 속마음까지 잘 알아야 그것을 섬세하게 그릴수 있고 사람들을 웃길수도 울릴수도 있단다. 그러니 무엇을 보든 또 무슨 일을 하든 대충 하려고 하지 말고 깐깐히 따져보면서 착실하게 하거라. 그래야 너도 앞으로 훌륭한 시인이나 화가가 될수 있다.》 어머니의 친절한 가르침에 어린 률곡은 머리를 끄덕였다. 신사임당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였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시와 그림이 모두 구체적이면서도 생동한것이 특징이였다. 오늘까지도 사람들의 감탄속에 전해오는 명화들인 《가지》, 《물오리》, 《쏘가리》, 《기러기》, 《련못가의 해오라기》, 《포도》들에는 사물에 대한 그의 섬세하고 치밀한 관찰력과 풍부한 표현력이 잘 나타나있으며 그중에서도 《잉어》는 고기비늘의 한쪼각에 이르기까지 생동하게 묘사되여 금방 살아움직이는 고기를 보는것만 같다. 심지어 가을풀밭에 뭇나비떼들이 날아드는 모양을 형상한 《추초군접도》에서는 나비들의 수염, 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세부들을 놓침이 없이 세밀하게 그려내였다.
밤나무를 가꾸며 률곡을 키운 어머니
률곡 리이가 6살이 되던 해였다. 금강산의 어떤 중이 률곡의 얼굴을 눈여겨보더니 《이애가 장차 나라의 큰 인물이 될 기상을 타고났구만. 그런데 혹시 범에게 물려가지 않겠는지…》 《그게 무슨 말이요?》 신사임당은 웃으면서도 스칠 말이 아닌지라 다우쳐 물었다. 중은 잠시 머뭇거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 애의 산림기상(학식과 도덕이 높은 선비의 기상)을 보태주려면 어데든지 시골에다 밤나무 1 000그루를 심어 그 그늘에서 이 애를 키우되 10년동안 그 밤나무를 한그루라도 죽여서는 안되오이다.》 중은 오금을 박았다. 중은 갔어도 신사임당은 생각이 깊었다. (아무렴 밤나무 1 000그루가 범에게 물려갈 팔자를 면하게 해준다는건 허황한 소리이지. 그러나 그만큼 밤나무를 공들여 키울만한 지성을 가진 부모여야 장차 큰일을 할 아들을 키울수 있지 않겠는가? 우선 우리 부부가 그만한 일을 할수 있는 정성이 없다면 자식도 큰 사람이 될수 없을것이다.) 마침내 신사임당은 남편과 의논한 후 리이를 데리고 다시 시골집에 내려가기로 하였다. 그는 부모의 고향인 파주 림진강 가까운 마을에 집터와 밤나무를 심을 땅을 마련하고 나무모를 길렀다. 2년후에 나무모가 떠옮길만하게 되였을 때 그들은 이사를 하였으며 근처에 구뎅이를 파고 있는 정성을 다해 1 000그루의 나무를 줄지어 심었다. 그리고 한그루라도 죽지 않도록 땀흘려 가꾸면서 공을 들이였다. 이 일에 어린 아이들도 참가시켰다.
그러므로 고향마을사람들은 신사임당부부와 리이형제들을 좋게 대했고 그들에 대한 여러가지 일화들을 전설에 담아 전하였다. 그들은 자기네 마을을 밤나무골(률곡)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신사임당부부가 심고 가꾼 수많은 밤나무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마을의 풍경을 돋구었으며 마을의 자랑으로 되였기때문이였다. 그들은 신사임당가족이 정성다해 가꾼 밤나무숲에 대해서도 잊지 못할 이야기를 전하였다. 신사임당의 온 집안이 밤나무를 알뜰히 가꾸어놓았을 때 그전날의 금강산 중이 찾아왔다. 그는 밤나무가 숲을 이룬 정경을 감동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이왕 온김에 밤나무 1 000그루가 다 살았다는것이 사실인가 세여보고싶은 충동을 누를수 없었다. 그는 정중한 자세로 《한그루, 두그루》하고 세여나갔다. 그러던 중은 《구백 아흔 아홉》이라고 한 다음 더 세지 못하였다. 아무리 다시 세여보아도 밤나무 한그루가 모자랐다. 《이럴수 없어, 이럴수 없고말고.》하고 중얼거리면서 딱해하는 중의 귀에 뜻밖의 이상한 음성이 들렸다. 그 소리는 분명 밤나무숲속에서 나는것이였다. 중은 이상해서 《뭐, 〈나도 밤나무다〉라고? 어디 한번 보자.》하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다. 그 나무는 여느 밤나무와 좀 달라서 아까 나무를 셀 때 번지고 지나쳐버린것이였다. 중이 너무 기뻐서 《그래그래. 너도 밤나무다.》라고 웨쳤다. 그리하여 후날 이 나무이름을 《너도밤나무》라고 하였다는것이다. 이것은 물론 꾸며낸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신사임당과 그 가족들이 각종 밤나무를 심었다는 뜻이 깃들어있고 나무도 감동되여 변호해나설만큼 이들이 밤나무가꾸기에 극진하였다는 찬양의 마음도 담겨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밤나무골에는 또한 이런 이야기도 전하여지고있다. 후날 호랑이가 리이를 잡아 해치려고 이 밤나무골에 나타났다. 그전날 금강산 중이 어린 리이를 보고 범이 해치지 않겠는지 하고 우려했다는 그런 범인것이다. 그런데 범은 밤나무숲에 들어서자마자 얼혼이 빠지고말았다. 그것은 숲을 이룬 밤나무들이 전쟁에서 군사들이 진을 치듯 배치되여있어서 그속을 뚫고들어가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도망쳤다는것이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러면 여기에 나오는 범은 어떤자를 말하는가 하는데 관심을 돌렸다. 그 범을 임진왜란때 침입한 왜적의 상징으로 볼수도 있었다. 리이는 왜적침입을 예견하고 10만양병을 주장했고 임진년에 왕이 이 밤나무골옆을 지나다가 화석정에 불을 피워놓고 림진강을 건넜다는 전설도 있어 그렇게 볼 근거가 있다. 다른 한편 왜적과 함께 당파쟁이들도 범에 비유한것으로 볼수 있었다. 이자들은 리이와 그의 사상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고 해치려고 했으나 끝내 해치지 못했다. 그러니 밤나무 1 000그루를 가꾼 이야기는 결국 아들을 애국자로 키우기 위한 어머니의 정성과 교양이 리이를 큰 인물로 되게 하였고 그를 적수의 간계와 도발로부터 지켜준 밑거름이 되였다는 뜻깊은 내용을 담고있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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