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경  덕

(1489ㅡ1546)

 

리조전기의 철학자, 시인. 자는 가구이고 호는 화담, 복재이다. 수의부위 서호번의 아들이다.

가난한 선비집안에서 출생하여 사마시에 한번 응시하였을뿐 과거에도 응시하지 않았고 1524년 후릉참봉으로 임명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봉건통치에 불만을 품고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으며 은거생활을 하면서 20여년간 침식을 잊고 객관세계의 원리를 찾기 위한 학문탐구와 후대교육에 힘썼다. 그는 성리학적관념론과 종교철학 등 선행한 철학가들의 사상을 비판하고 기일원론으로 자기의 철학체계와 내용을 구성하였으며 그것을 심화시켰다. 서경덕은 세계의 시원을 《기》(물질적인것)라고 보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기》란 《태허》(크게 빈것이라는 뜻으로 하늘을 이르는 말)이고 《기》는 《음, 양》의 호상작용에 의하여 변화발전하며 그것을 외적요인의 산물이 아니고 《기》의 형태는 변해도 《기》의 존재자체는 불멸하다는 유물론적이며 변증법적인 사상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기일원론적인 소박한 견해는 당시 세계의 시원을 《리》(추상적인 원리)를 선차로 보는 객관관념론적성리학에 타격으로 되였다. 그는 사람의 정신, 심리적인 활동도 기의 작용으로 봄으로써 유물론적인 인식론의 견지에 서있었다. 기와 리의 호상관계에서도 기가 리보다 먼저 존재하고 리는 기속에 있으며 기를 운동할수 있게 하는 운동원리, 법칙과 같은것으로 리해하였다. 그러나 륜리적, 사회정치적견해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립장에 있었다. 그는 봉건적인 신분제도와 유교도덕을 음, 양의 필연적법칙이라고 합리화함으로써 봉건통치질서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는 왕이 신하를 지배하고 남편이 안해를 지배하는것은 음, 양의 리치이기때문에 마땅한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기의 일차성을 주장한 소박한 유물론적이며 변증법적인 사상을 내놓았으나 시대적제한성으로 하여 과학성과 철저성을 보장할수 없었다. 그는 일생을 학문연구에 바쳐 중세 우리 나라의 유물론철학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는 녀류시인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3절》로 후세에 알려졌다. 저서로서 《원리기》, 《리기설》, 《태허설》, 《귀신사생론》 등과 문집으로 《화담집》이 있다. 서경덕의 시작품들가운데서 《물질을 읊노라》, 《글을 읽으며 느낀바 있어》, 《칼새소리 들으며》, 《시내물소리》, 《옷을 준 두 서생에게》 등이 널리 알려졌다.

서경덕은 생을 마치는 마지막순간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학문에 관한 뜻이 깊은 말을 남기였다.

《…배워서 의심이 없는데 이르니 참으로 쾌활함을 느꼈고 일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니 마음이 만족하다.》

서경덕은 성거산의 호젓한 골짜기에 집을 짓고 일생을 보냈으므로 당대 학자들이 그를 화담선생이라 불러 그의 호가 되였다고 한다.

 

《글을 읽으며 느낀바 있어》

 

한자시.

 

세상을 건지자고 글을 읽나니

  가난한 살림이사 기쁨으로 알리라

말썽많은 부귀공명 손대지 말지어다

  초야에 묻혀 살면 이 몸 편안하리

 

산나물 물고기로 배를 채우고

  풍월을 벗삼아 마음 즐기자

학문이 깊어지면 속도 넓어져

  한생을 값있게 살아가리라

 

시는 학문탐구의 목적과 의의가 어디에 있으며 글공부를 하는 사람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를 노래하고있다.

시에서는 말썽많은 부귀공명을 멀리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전심하는것이 어지러운 세상을 건지기 위해서이며 한생을 값있게 살기 위해서라는것을 통속적으로 알기 쉽게 밝히고있다.

뜻이 깊은 경구적표현들을 적극 살려 시의 사상적내용을 부각시키는것과 동시에 형상적여운을 조성하고있다.

현실도피적인 목가적색채가 일정하게 나타나고있으나 당대의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경향과 진보적인 사상으로 하여 이 시기의 시가문학에서 의의를 가진다.

 

《물질을 읊노라》

 

한자시.

 

1

물질이란 생기고 생겨

  끊임없이 또 생기는것

겨우 다 생겼나 하면

  또다시 생겨난다오

 

생겨나고 생겨나도

  그 시작은 없는것

너 물질이여 말하여보라

  시초가 어디서 마련되였느냐

 

2

물질이란 사라지고 또 사라져

  끊임없이 또 사라지는것

겨우 다 사라졌나 하면

  또다시 사라진다오

 

사라지고 사라져도

  그 끝은 없는것

너 물질이여 말하여보라

  언제면 다 사라지는가를

 

이 시는 서경덕이 자기의 유물론적주장인 물질은 영원하다는 리론을 형상적으로 반영하고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물질은 끝없이 운동한다는 리치도 밝혔다. 그러므로 신이나 조물주라는것에 의해서 물질이 만들어지고 세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유신론적립장을 반대하는 시인의 사상감정이 깔려있다. 이 시는 중세기에 철학적견해를 직접 반영한 많지 않은 철학시로서 이채롭다.

 

《칼새소리 들으며》

 

한자시.

 

새야 너는 이른새벽부터

  식칼로 무얼 다지라고 권하누나

칼로 저미고 다지는거야

  부자집 부엌에나 있는 일 아니냐

 

해마다 내 밥상에는

  고기반찬이란 오른 일 없다

칼새야 가난뱅이 움집에 와서는

  목아프게 울지를 말아라

 

시인은 이 시에서 칼새라는 새의 울음소리에 의탁하여 불공평한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였다.

시에서는 칼새의 울음소리를 식칼로 음식을 다지는 소리에 비기고 칼로 값진 반찬을 저미고 다지는 일은 부자집부엌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잘먹고 잘 입으면서 놀고먹는자들을 은근히 비난하였다. 시에서는 가난한 선비네집 음식상에는 고기반찬이 오른 일이 없다는것을 이야기하면서 빈부의 차이가 심한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가하였다.

시는 당대현실을 비난하고 인민대중의 생활과 직접 결부시키지 못한 제한성이 있으나 사회적모순을 잘먹고 잘사는 통치배들과 가난한 사람간의 대조적인 생활을 통하여 드러내보여주고있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관찰하는 소년탐구자

 

서경덕은 집이 가난하여 철들 나이때부터 부모를 따라 들일을 하러다녔다. 그는 책읽는 공부보다 낫질, 호미질하는것을 먼저 배운 소년이였다.

속담에 될상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하였듯이 미래의 큰 학자가 될 서경덕은 부모의 일손을 도울 때부터 자연현상을 무심히 대하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였으며 생물의 성장과정이라든가 습성, 사물현상의 운동법칙들을 파악하는데 남다른 흥미를 가지였다.

어느해 봄이였다.

경덕은 그날도 부모를 따라 뒤산기슭의 비탈밭에서 김을 매고있었다. 그런데 등뒤에서 포드득하고 낮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가 돌아보니 도랑을 사이에 끼고있는 밭뚝에서 봄에 일찍 깐 새새끼 한마리가 둥지에서 나온듯 날지도 걷지도 못하면서 연약한 날개를 포드득거리고있었다.

서경덕은 동심이 솟구쳤다. 앞서서 밭고랑을 타고나가는 아버지, 어머니의 뒤모습을 흘끔 바라보고난 그는 살그머니 새새끼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새새끼가 여간 곱지 않았다. 말똥말똥한 눈, 노란 부리, 보드라운 날개털, 연한 발톱, 짹짹거리며 우는 소리… 소년은 두손으로 살그머니 새새끼를 떠올려 얼른 펼친 저고리자락우에 올려놓았다. 집으로 가져가서 동리아이들에게 자랑삼에 보여주고싶어서였다. 다음 순간 그는 망설였다. (지금은 밭일을 하고있다, 새새끼를 가지고 놀 때가 아니다, 그보다도 내가 이것을 가지고 가면 어미새가 얼마나 속상해할가.) 서경덕은 주위를 살폈으나 어미새가 안보였다. (어딘가 먹이 구하러 간 모양이지, 그럼 둥지라도 있겠는데…) 그가 다시 둘러보니 움푹 패인 개울방천의 오목한 덩굴짬에 아늑하게 튼 작은 둥지가 보였다. 그는 새새끼를 얼른 둥지안에 넣어놓고 돌아와서 부지런히 김을 맸다. 점심참에도 도시락에 밥 한술을 남겨두었다가 새새끼에게 가져다먹였다.

그날부터 경덕은 밭일을 도우면서 새새끼를 관찰하는데 재미가 붙었다. 점심때면 밥을 남겼다가 가져다가 먹여주었고 부모들이 하루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슬그머니 떨어져서 한참씩 지켜보다가야 돌아갔다.

며칠 지나니까 새새끼도 경덕을 보고 반기는것이 알렸다. 또 얼마간 지나니 새새끼가 밭뚝에 나와서 제법 여러번 파득거렸다. 어제는 땅에서 한뽐쯤 뜨더니 인차 내렸고 오늘은 한뽐쯤 떠서 날개를 제법 몇번 퍼덕거리다가 내려앉았다.

한번은 뒤에 떨어졌다가 돌아오는 어린 아들이 근심되여 아버지가 물었다.

《너는 이즈음 왜 혼자 떨어졌다가 오느냐? 혹시 무슨 지각없는 장난을 하는게 아니냐?》

서경덕은 부모가 근심하는것이 죄스러워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사실은 새새끼 한마리가 밭뚝밑에 있어요. 그것이 자라나서 날기 시작하는데 그 높이와 나는 거리가 처음에는 조금씩 늘더니 그 다음은 매일 조금씩 더 크게 늘어나는게 아니겠어요. 오늘은 제법 어미새를 따라 큰 나무가지에 날아오르기까지 했어요. 그동안 새새끼가 커가고 나는 힘도 늘어나는것을 매일매일 살펴보고 알아내느라고 떨어져있었습니다.》

하바닥무관인 수의부위의 경력을 가진 투박하고 무뚝뚝한 그의 아버지 서호번은 이때 아들이 너무 기특하여 윤기도는 아들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어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서경덕은 남들같으면 과거시험에 응시할 나이인 14살부터 공부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학자천품》

 

어린 시절 서경덕은 말이 매우 떠서 부모들의 실망을 자아냈다고 한다. 딴 애들은 말을 쉽게 번지는데 그는 낑낑 갑자르며 좀처럼 말을 하지 못했고 한참이나 세세히 들여다보거나 골똘히 생각한 후에 말을 하군 하였다. 그런데 하는 말 한마디한마디가 매우 엉뚱하면서도 속이 깊었고 또 한번 기억한 말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았다.

《여보 실망할건 없소. 저게 진짜 학자천품이요. 무엇 하나 보고도 쉽게 대충 흘려버리는것이 아니라 꼼꼼히 들여다보고 세심히 관찰한 후 파악이 생긴 다음에야 말하는 저 품성이야말로 진짜 학자천품이 아니겠소. 진짜 학자는 자기가 터득하지 못한것은 말하지 않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다.

서경덕의 꼼꼼하고 진지한 성격은 후에 대학자로 될수 있는 바탕으로 되였다.

그가 서당에서 공부할 때 있은 일이다.

한번은 공부를 마친 후 글방선생이 서경덕을 불렀다.

《저 선반우에 꽂혀있는 책을 좀 내려다 다오.》

《알겠소이다.》

서경덕이 선반가까이에 다가가서 책을 뽑으려 했으나 키가 자라지 않았다. 발돋음하여도 도무지 거기까지 팔이 닿지 않았다.

한참동안 선반을 올려다보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던 서경덕이 씽하니 밖으로 나가더니 인차 길다란 회초리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회초리로 어떻게 책을 내리나?》

《글쎄, 무엇하려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의아쩍게 여기며 수군거렸다.

경덕은 이에는 아랑곳없이 들고온 회초리로 선반우를 한번 쭉 훑었다. 그러자 책우에서 무엇인가 《쟁그렁》하고 소리를 냈다.

씽긋 웃음을 지어보인 서경덕은 곧 밖으로 뛰쳐나가 발판을 가져다놓고 책우에 덧놓은 물사발을 들어내렸다.

선생이 대견한 눈으로 그를 보더니 물사발을 받아들었다. 다시 허리를 편 경덕은 이번에는 선생이 부탁했던 책을 뽑아들었다.

책을 받아든 선생은 옆에 둘러선 아이들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들아, 이자 다들 보았느냐? 학문을 닦아 성공하자면 경덕이처럼 꼼꼼하고 침착해야 하며 진지하고 섬세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학문탐구에서 성공할수 없다. 경덕을 보아라. 그는 아무일이나 시켜도 덤비거나 실수가 없다. 그런 성격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내 오늘 경덕이의 성격을 다시한번 시험해보고 또 너희들에게 보여주려고 우정 책우에 물사발을 놓았다. 책우에 물사발이 있는줄 어찌 알았겠느냐?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행동하여 물을 쏟지 않았다. 너희들도 앞으로 경덕이처럼 매사에 꼼꼼하고 침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학문탐구의 첫걸음이니라.》

아이들은 모두 경탄어린 눈으로 경덕을 쳐다보았다. 미래의 이름높은 철학자의 첫 걸음마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필요없는것을 왜 글로 썼나이까?》

 

어느날 서경덕을 가르치던 선생이 글을 배워주다가 《서경》의 《기삼백》이라는 장에 이르러 읽는것만 가르쳐주고 그 뜻을 풀이해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 글은 매우 어려워 선생자신도 잘 알수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서경덕이 선생을 빤히 올려다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이 장은 왜 뜻을 풀지 않고 넘기나이까?》

대답이 궁해진 선생은 말끝을 얼버무리며 말했다.

《건 알 필요가 없다. 그닥 필요한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필요없는것을 왜 글로 썼나이까?》

서경덕의 학문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맑은 눈동자앞에서 선생은 사실그대로 말해주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 이 부분은 잘 알수 없어서 그런다. 그러니 앞으로 네가 잘 연구해보아라.》

선생의 말을 심중히 들은 서경덕은 자기가 이미 알고있는 지식과 다른 사람에게 물어가며 익힌 지식에 기초하여 그 부분을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자자구구 따져가며 연구를 깊이 한 결과 그는 15일만에 그 장의 내용을 완전히 터득할수 있게 되였다.

그길로 선생을 찾아간 서경덕은 자기가 풀이한 책의 내용을 말하였다.

서경덕을 기특하게 여긴 선생은 무릎을 치면서 거듭 칭찬해마지 않았다.

《넌 앞으로 나보다 열곱절은 앞설수 있겠구나. 나도 학문을 탐구하느라고 했다만 너처럼 그렇게 진지하게 파고들지는 못했다. 넌 앞으로 큰 학자가 될수 있다.》

선생의 말대로 그후 서경덕은 20대에 이르면서 벌써 당당한 일가견을 가진 학자로, 문장가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탐구ㅡ진리를 터득할 때까지

 

서경덕은 큰 학자가 된 사람이다. 그의 학문이 도달한 높은 경지는 머리가 비상하고 타고난 천품이 월등한 수재여서 이루어진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는 어릴 때 다른 아이들보다 말도 늦게야 하기 시작했고 글공부도 10살이 넘어서야 하게 되였다.

매우 높은 수준에 오른 그의 지식, 그것은 탐구의 결실이였다. 탐구하고 탐구하고 또 탐구하면서 진리를 터득하고야마는것이 서경덕의 학구적태도였다. 그는 생활에서 소박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이였으나 탐구하는데서는 욕심이 굉장한 사람이였다.

18살 잡히는 해에 철학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에게는 남다른 생활습성, 공부방식이 생겨났다.

그는 늘 《학문을 닦으면서 격물(사물의 리치를 연구하여 끝까지 파고드는것)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은들 어찌 쓸모가 있으랴》고 말하였으며 그런 내용의 글귀를 자기의 방 정면바람벽에 큼직하게 써붙여놓았다.

그 밑에다가는 천지만물의 각종 중요한 명칭을 하나씩 따로 적은 종이쪽지들을 벽면 가득히 써붙여놓았다. 앉아서도 보이고 서서도 보이고 누워서도 보이게 쭉 붙여놓았다.

서경덕은 매일 매시각 그 종이쪽지들에 써놓은 이름을 하나씩 차례로 연구했다. 책을 읽다가도 그 사물과 관계되는 내용이 있으면 그것을 곧 그 사물의 다른 현상과 결부해서 사색하였고 자리에 누워서도 그 사물을 벽에 써붙여둔 다른 사물이름과 련관시키면서 본질을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끝까지 하나의 사물에 대한 본질을 파악한 다음에야 다른 사물에 대해 써붙인 이름을 두고 사색하는데로 넘어갔다. 그에게서 탐구란 리치를 파악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응용을 해보고 막힘이 없어야 진리를 터득한것으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학문탐구가 매번 얼음에 박밀듯이 쉽게 될수는 없었다. 탐구과정에 딱 막힐것 같으면 밥을 먹어도 그 맛을 몰랐고 누워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다가 풋잠이 들었어도 그 문제를 푸는 꿈을 꾸었다. 서경덕은 이와 같이 꿈을 꾸다가 막힌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잡아쥐고 소스라쳐 깨여나서는 탐구를 심화시켜 문제를 푼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사색하고 탐구하기를 3년, 그는 그만 몸이 약해져 문밖출입도 할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였다. 온 집안이 근심하면서 병부터 고치고 공부를 적당히 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럴 때마다 서경덕은 어설픈 웃음을 띄우면서 《너무 근심마십시오. 한창 젊은 나이에 이만한 병이 두렵겠습니까. 내 병은 공부가 약입니다.》라고 얼버무리였다. 그가 앓기 시작하면서 또 3년세월이 지났다. 서경덕은 앓으면서도 글읽기와 사색하기를 하루도 중단하지 않았다.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자연과 사회의 사물현상에 대한 진리만 폭넓게 터득한것이 아니라 자기의 쇠약해진 몸을 추세우는 치료법도 찾아내여 제손으로 약을 썼다. 강의한 서경덕은 이처럼 피타는 탐구의 련속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20대 중반기에는 일가견을 가진 학자로 성장할수 있었다.

자기의 철학적주견이 서고 사물의 리치를 깨닫게 되자 서경덕은 국내외의 고전도서들을 더 폭넓게 읽었으며 남들이 몇해씩 낑낑거리면서 읽은 까다로운 도서들도 쉽고 빠르게 그리고 어느정도 비판적으로 소화하였다.

서경덕은 이때의 경험에 대하여 후날 이런 내용으로 말하였다.

내가 그때까지 일찌기 리해하지 못한것들을 옛날책을 읽고 깨달은바가 많았다라고.

그는 또 이런 내용의 말도 하였다고 한다.

나는 공부할 때면 반드시 단정하게 꿇어앉아서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색이 하나같이 집중되지 못하고 사색이 하나같이 집중되지 못하면 사물의 본질을 터득할수 없는 까닭이다.

 

서경덕과 황진이

 

서경덕과 황진이는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3절》로 널리 알려져있었고 서로 존경하는 관계에 있었다. 서경덕은 황진이에게 있어서 가장 존경하는 학문의 스승, 생활의 스승이였다. 그것은 다같이 한고장사람이고 세상에 《송도3절》로 손꼽혀서만이 아니였다. 서경덕은 황진이의 뛰여난 재능과 권세있고 잘사는자들에게 비굴하게 머리숙이지 않는 도고한 성품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겼고 황진이는 높은 지식과 고결한 성품을 지닌 서경덕을 성인으로 우러러보았다.

두 사람의 이러한 관계는 실생활을 통하여 맺어진것이였다.

그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어느날 황진이는 송악산기슭에서 술판을 벌리고 흥청거리는 한무리의 량반들과 맞다들게 되였다. 량반들은 황진이앞에서 공연히 허세를 부리며 그래도 이 세상에서 도덕이 있고 고상한것이 량반이노라고 떠들어댔다. 그들이 노는 꼴이 보기 역겨워 황진이는 이렇게 내쏘았다.

《허지만 량반들이 아무리 도덕이 밝고 고결하다고 해도 소녀는 지금까지 색에 빠지지 않는 량반은 한번도 보지 못했나이다.》

황진이의 말에 량반들은 얼굴이 벌개져 서로 마주보며 입을 삐쭉거렸다.

이때 한 량반이 제법 용기를 내여 황진이앞에 나서서 씨버려댔다.

《모르는 소리, 색에 빠지지 않는 량반이 있단 말이다. 량반이라고 어찌 다 그렇겠는고?》

황진이는 입가에 조소 비슷한 느슨한 웃음을 담고 물어보았다.

《그럼 그런 량반이 대관절 뉘시나이까?》

《우리 개성에 계시는 화담이시지, 누군 누구겠나.》

《화담?!…》

당시 화담 서경덕은 벼슬살이를 단념하고 개성에서 학문연구에 전념하고있었다. 이 일을 모두 알고있던 량반들인지라 살수가 생겨난듯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댔다.

《그렇구 말구. 그분은 주색을 모르는 고결한 량반이시지.》

그래도 까마귀무리속에 백조가 하나 있는것이 그토록 자랑스러운지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왁짝 떠들었다. 황진이도 유명한 송도선비 서화담을 한번도 만나보지는 못했으나 그의 명성과 덕망에 대해서는 들은지 오래였다. 황진이는 이번 기회에 화담을 찾아가서 한번 만나보고싶어졌다.

《알겠사와요. 그럼 그 서화담선생님을 소녀가 한번 만나본 후 론해보사이다.》

《아무렴, 그것도 좋고…》

《만나보아야 뻔한걸.》

가재도 게편이라고 그래도 량반들이랍시고 량반편을 들며 야단이였다.

며칠후 황진이는 진짜로 서경덕을 찾아갔다. 아무리 색에 빠지지 않는 량반이노라 해도 어떻게 그 헛까풀이 산산이 부서져나가는지 량반네들앞에 단단히 보여주고싶어서였다.

서경덕을 찾아가면서 황진이는 기생이라는 신분으로 찾아가면 문전에서 배척받을것을 타산하고 남을 즐겨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서경덕의 후한 성품을 리용하여 제자가 되고싶어하는 서생의 차림으로 찾아갔다.

갓쓰고 두루마기를 입은데다가 미투리를 신은 색시같은 얌전한 젊은이가 불쑥 찾아가자 서화담은 기쁘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였다.

서화담은 글을 배우러왔다는 곱살하고 아련하게 생긴 서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저런 녀자가 무엇때문에 남복을 하고 글공부를 하러왔을가 하는 의문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서화담은 모르는척 덮어두고 서생이 요구하는대로 낮에도 밤에도 글을 가르쳤다.

이렇게 며칠간 접촉한 황진이는 서경덕과 흉허물없이 지내게 된척 하면서 나중에는 글공부를 하다 밤이 깊어지면 그의 곁에 자리를 펴고 눕고말았다. 그러면서 은근히 교태를 부려가며 서경덕의 마음을 떠보기 시작하였다. 잠을 갈개자는척 하면서 자기의 흰팔을 서경덕의 가슴우에 올려놓기도 하고 우정 개여올린 흰다리를 서경덕의 배우에 올려놓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서경덕은 《허, 몹시 곤한 모양이군.》하면서 그의 팔과 다리를 조심히 들어 제자리에 놓아주군 하였다.

황진이는 마음속이 안달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서경덕에게 접근하여 때로는 봉긋한 앞가슴부분을 눈에 알릴정도로 약간 헤쳐놓기도 하고 잘룩한 허리부분을 눈에 더 잘 뜨일수 있게 바투 졸라매였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감각이 마비되여버렸는지 서경덕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여전히 글을 가르치는데만 정신을 집중했다.

여러밤을 보냈으나 끝내 서경덕을 유혹하지 못한 황진이는 마침내 시험을 단념하고 자기의 신분을 밝힌채 그에게 거듭 사죄하였다. 그러자 서경덕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난 자네가 녀자인줄은 알고있었으나 학문을 지향하여 서생으로 변복한 녀자인줄로만 알고있었지 황진이인줄은 차마 생각 못했네. 글을 배우고싶어하는 한 아녀자의 마음을 귀히 여겨 글을 가르쳤을뿐이지.》

황진이는 서경덕의 고결한 인품에 다시한번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과시 성인은 성인이시구나. 내가 녀인이라는것을 알고있으면서도…)

황진이는 너무나 감탄한 나머지 《아니 그럼!》 이 한마디밖에 더 하지 못했다.

그러자 서화담은 석연히 자기의 심중을 드러내보였다.

《나라고 왜 색이 싫겠나. 그러기에 장가도 갔고… 하지만 색도 즐길 때 즐길수 있는 사람과 즐기는거지. 더우기 자네야 글을 배우러온 내 제자가 아닌가. 난 자네가 글을 배우러온 그 마음씨가 더없이 기특했다네.》

이후 황진이는 그전에 한담을 나눈적이 있던 량반들을 다시 찾아가 자기가 겪은것을 그대로 실토하였다.

《과연 색에 빠지지 않는 고결한분이 있사옵니다. 나의 스승 화담 서경덕이 바로 그런분이였사옵니다.》

그러자 량반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뽐내기 시작했다.

《그것보라구. 이젠 우리 량반들이 누구나 다 색을 좋아한다고 함부로 말할순 없겠지?》

량반들을 넌지시 건너다보던 황진이는 침착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그루를 박아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분은 량반이여서가 아니라 학자님이기때문에 그렇듯 고상한줄로 아나이다!》

황진이의 이 기지있는 말은 그후 사람들속에서 일화와 함께 널리 전해졌다.

 

탄복한 고성군수

 

서경덕이 젊어서 금강산을 유람할 때에 있은 일이였다.

어느날 그는 바다를 끼고 길을 가다가 도중에 길량식이 떨어져 할수없이 고성군수에게 찾아가 쌀을 빌게 되였다.

서경덕의 행색을 보고 벼슬없는 선비임을 알아차린 고성군수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자리에 누운채로 그를 맞이하였다. 게다가 무관출신인지라 말투도 여간 거칠지 않았다.

《음, 그래 산놀이에서 무슨 구경이 제일이던고?》 군수는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틀을 차려 물었다.

《불정대에 올라 해뜨는것을 보았는데 그게 제일 장관이였소이다.》

서경덕은 선자리에서 공손히 대답하였다.

《그래 그것이 어떻던고? 나에게 말해줄수 없겠나?》

《그리하리다. 새벽께쯤 산우에 나는듯이 걸어올라 만리를 굽어보니 안개가 자욱히 덮인것이 하늘과 바다가 맞붙었습니다. 그야말로 태고적혼돈(사물이 서로 뚜렷이 갈라져있지 않는것)상태를 방불케 하였소이다.

이윽고 새벽빛이 점차로 열려 아래, 우 사방이 걷히더니 가볍고 맑은것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흐린것은 땅이 되였다는 말그대로 하늘땅이 제 위치에 놓이고 만물의 모양이 제각기 분별되였소이다.

이윽고 오색채색구름이 바다를 누르고 붉은 기운이 하늘을 찌르고 파도가 겹겹이 일어나 흔들리더니 어머어마한 불타는 둥근것이 둥둥 떠받들려 솟았소이다.

이리하여 삽시에 바다는 밝아지고 구름은 흩어졌으며 불덩어리의 휘황한 빛이 차마 볼수 없게 눈에 비쳐들어 부시였소이다. 그것이 구을며 점차 높이 솟아오르니 마침내 우주가 밝아지고 먼 봉우리와 가까운 산들이 알쑹달쑹 수놓은듯 선명하여졌소이다.

이것은 붓으로 그려낼 재주도 없고 입으로 형용할 말도 없소이다. 이것이 으뜸가는 장관이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서경덕의 말을 넋을 잃고 홀린듯 듣고있던 군수는 그만에야 자리를 차고 닁큼 일어나 앉으며 서경덕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비록 화려한 의관은 차리지 않았으나 준수한 외모에 영민하게 반짝거리는 눈이 어딘가 범상치 않은 감을 주었다.

《그대는 대관절 누구요?》

《서경덕이라 하옵니다.》

《서경덕, 아니 그럼 화담? 이거 미처 몰라봐서 안됐소. 요즈음 젊은 재사가 나왔다고 사람들속에서 말이 오가더니… 과시 소문이 그른데 없군!》

군수는 얼른 뜰아래까지 버선발로 내려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불정대의 경치도 장관이겠지만 내 보기엔 그대의 말이 더욱 장관이구려. 나로 하여금 세상을 잊고 천지간에 우뚝 솟은 감을 주오그려! 자, 어서 올라가서 상봉주나 듭시다.》

군수는 서경덕을 위해 음식상을 크게 차려주었다. 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가 돌아갈 때에는 식량까지 푼푼히 지워 먼길까지 바래주게 하였다.

 

다시 살아난 살구나무

 

서경덕의 호를 화담(꽃늪이라는 뜻)이라고 한것은 우연하지 않다. 그만큼 그는 꽃과 나무, 산과 물을 사랑하였다.

서경덕이 화담에 정자를 짓고 학문탐구에 여념이 없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책속에 파묻혀있던 서경덕이 머리쉼을 하려고 뜰에 나왔는데 봄을 맞아 온갖 꽃들이 만발한중에 살구나무 한그루가 홀로 생기가 없었다.

그는 곧 심부름군을 시켜 그 살구나무밑의 흙을 긁어내고 뿌리를 드러내게 한 후 물을 주어 깨끗이 씻게 하고 거적을 덮어두게 하였다.

그랬더니 며칠 안되여 그 살구나무에서 움이 돋아나왔다.

이것을 본 제자들이 모두 감탄하여 물었다.

《어떻게 이 나무를 살리셨나이까?》

서경덕은 빙그레 웃으며 제자들에게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여기엔 이상할것이 하나도 없네. 무릇 초목들의 생장은 각기 특성과 기능에 알맞는 조건이 요구되는데 지금 이 나무를 보면 북을 돋궈준 흙이 너무 많네. 아침저녁으로 뜰을 쓸어내여 덮으니 흙은 점점 높아지고 기운은 점점 통하지 못하게 되였네. 그래서 생기를 내지 못한것일세. 그래서 이를 헤쳐 양기를 통하게 하여 다시 살아난것이니 이는 당연한 리치건만 단지 사람들이 이것을 아직 몰랐을뿐이지. 사람도 마찬가지네. 건강에 좋다 하여 계속 보약만 쓰면 양기가 성해져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잘할수 없고 계속 정신만을 도사리면 음기가 넘어 몸을 지탱하기 어렵게 되네. 결국 건강과 장수란 음과 양의 조화로운 배합에 있는것일세!》

제자들은 서경덕의 해박한 지식과 고결한 성품에 다시한번 감탄해마지 않았다.

 

 

《세상을 건지자고 글을 읽나니 가난한 살림을 기쁨으로 알라.》

《말썽많은 부귀공명 손대지 말지어다.》

《학문이 깊어지면 속도 넓어진다.》

《진리를 찾는데 재미를 붙이면 가난해도 굶주려도 근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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