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세  양

(1486ㅡ1562)

 

리조전기의 문인. 자는 언겸, 호는 양곡이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총명과 재간을 가지고있었던 그는 18살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1509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은 전주부윤, 호조판서 등을 거쳐 우찬성에 이르렀다. 주로 서적정리와 력사편찬사업을 맡아하였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는 시와 문장으로 그 나라 문사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말년에 대관료 윤임 등과 사이가 나빠져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 시창작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의 시문집으로 《양곡집》이 전해진다. 대표작으로 한자시 《연경에서 느낀대로 읊노라》, 《형에게》 등이 알려져있다.

 

《연경에서 느낀대로 읊노라》

 

한자시.

 

열흘씩이나 맞고 보내는

  성대한 잔치를 차려주어

연경에 온지 벌써 석달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였네

 

날리는 버들개지

  내 머리칼보다 더 희구나

분홍 복사꽃은

  미인들의 얼굴처럼 고와라

 

려관방에 하염없는

  봄수심이 스며들고

생각은 훨훨

  고향산천으로 날아가네

 

하루바삐 맡은바

  나라일을 끝마치고

옷자락 날리며 선듯

  산해관을 나가야지

 

이 시는 소세양이 1532년 겨울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있던 시기에 지은 작품이다. 이때 그 나라 례부상서 벼슬에 있던 하연이라는 사람이 소세양의 높은 시창작재능에 대한 말을 듣고 직접 찾아와 시를 얻어 읽어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만큼 이 시기는 소세양의 시가 국내외에 널리 알려질 정도로 원숙한 경지에 이른 때였다.

이 작품에서는 외국에 나가서 간절하게 조국을 그리워하는 서정적주인공의 심정을 노래하고있다. 석달동안 외국에 나와서 체류하는 서정적주인공은 나라에서 맡은 일을 잘 수행할 일념으로 가득차있다. 이 나날 그의 생각은 언제나 그리운 고향산천으로 날아갔다. 그것이 봄을 맞으면서 고조되여 뜨거운 시적사상감정으로 분출되였다. 그 나라에서 돌려주는 환대도, 날리는 하얀 버들개지며 미인의 얼굴처럼 고운 복사꽃도 오히려 조국산천을 그리워하는 봄수심으로 된다. 봄날의 수심은 맡은 일을 끝내고 기쁨에 겨워 귀국의 길에 오를 일념으로 승화된다.

시는 소박한 시어구사, 생활적인 세부, 간절한 서정토로를 통하여 애국적사상감정을 진실하게 형상하였다.

 

소세양과 황진이

 

소세양은 50대에도 원기가 왕성하였다. 친구들과 한자리에 앉아있으면 마치 꽁지빠진 수닭들사이에서 돋보이는 큰 봉황새 같았다. 벼슬이 적었나, 살림살이가 구차한가, 지식이 없나, 언변이 없나, 거기에다 시 잘짓고 풍류에 능하며 호방하고 인정이 있어 친구들과도 잘 사귀였다.

이러한 소세양이 한번은 웃기기 좋아하는 친구들의 《낚시》에 걸려들었다. 누군가가 개성명기 황진이이야기를 그가 여러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슬쩍 꺼냈다. 친구들이 소세양을 한번 웃음거리로 만들 심산으로 미리 짜고 하는 소리였다. 이 말이 나오자 이 친구 저 친구들이 끼여들어 한마디씩 보탰다. 결국 이들의 말에 의하면 황진이가 인물 잘나고 글과 노래를 잘할뿐아니라 뜻이 높아서 웬만한 사나이는 비루먹은 망아지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소세양은 명색이 친구라는 사람들이 사나이의 자존심도 없이 그따위 소리나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런 소리를 하려면 내 집 문턱을 넘어오지 말라구. 녀자에게 밀려서 비실거리는것도 뭐가 방치만 한 사내야? 그따위 소리나 하려면 차고있는 장도칼을 뽑아 제손으로 고자신세가 되는것이 좋아.》

《허참,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되게 꾸중을 들었군. 하지만…》

《하지만이 어쨌다는건가?》

《하지만 소공도 미리 큰소리를 앞세울것은 아닌가 보네.》

친구들은 그의 분기를 돋구었다. 대감님이요, 나으리요 하는 소리를 듣는 친구들이지만 이렇듯 사사로이 앉아 한담을 할 때는 서로들 우스개질이 심했다.

《내가 큰소리를 앞세운다고? 기가 찰 지경이군. 그럼 내가 이 자리에서 약속을 하나 하겠소. 내가 송도에 가서 황진이를 한달동안 사귈테요. 하루도 에누리없는 꼭 서른날만에는 내가 그 녀자와 헤여져서 돌아올터인데 첫째로 사귀지 못하고 쫓겨나는 일이 없으며 둘째로 돌아올 때는 그 녀자를 떼놓고 온다. 셋째로 돌아온 다음 다시는 그 녀자와 사귀지 않겠소. 어떻소?》

《양곡이 지금 한 말을 어기면 어쩌려오?》

《그때는 나를 양곡(양지쪽 골짜기)이 아니라 음곡(음지쪽 골짜기)에 빠진 시라소니라 해도 할말이 없겠소. 그런데 만일 내가 말한대로 실행하면 어떻게 한다?》

《그 경우엔 우리가 큰 잔치를 차려놓고 양곡의 대장부기개를 찬양하겠소.》

《사나이 한마디 천금보다 무겁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소.》

소세양이 이렇게 다짐을 두고 큰 소리로 웃자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다.

말들은 이렇게 하였지만 소세양도 친구들도 그것을 한때의 롱담으로 여기고 그 약속을 곧 행동에 옮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후 소세양은 볼일이 있어 개경으로 가게 되였다. 길떠날 차비를 하던 소세양은 문득 그전날 친구들과 한담을 하던 일이 생각났다.

(이번 길에 어디 한번 황진이를 만나볼가?…)

소세양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음날 수수한 선비차림에 말을 타고 송도로 향했다. 송도에 도착하여 볼 일을 다 본 소세양은 황진이의 집으로 찾아들어갔다. 20대의 한창 피여나는 꽃같은 황진이가 인기척이 나는지라 미닫이문을 약간 비집고 내다보았다. 점잖은 중늙은이 하나가 말 한필을 문밖에 매여두고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고운 때가 살짝 앉은 무명바지저고리에 무명두루마기를 입고 곱게 삼은 짚신을 신고있었다. 황진이는 얼른 망건을 살펴보았다. 해빛에 번쩍하는것이 망건에 달려있었다. (아차, 큰 벼슬을 하는분이구나.)

황진이의 판단은 예민하였다. 해빛에 번쩍한것은 금관자였다. 옛날에 벼슬아치들은 상투를 둘러싸매는 망건을 쓰고 그 우에 갓을 썼는데 이마로 해서 머리둘레를 두른 가는 그물띠같은 망건을 벗어지지 않게 끈으로 상투에 비끄러맸다. 그 끈을 꿰기 위해 망건에 다는 작은 고리를 관자라고 하였다. 그 관자는 관직의 등급에 따라 만드는 재질이 달랐던것이다. 들어오는 나그네의 망건에서 해빛에 번쩍 빛나는것을 보면 분명 그것은 금관자인것이다. 금으로 만든 관자는 2품이상의 고위관료라야 달수 있었다. 소세양은 이미 판서라는 고관에 있는 사람이여서 금관자를 달고있었던것이다. (금관자를 단 고관이 어째서 저런 평범한 선비차림을 하고 혼자서 내집을 찾아오는것일가? 아무래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가보다.) 이렇게 직감한 황진이는 그에 대응해서 빗으로 머리나 대강 빗었을뿐 입던옷 그대로 나가서 나그네를 맞아들였다. 소세양도 대번에 황진이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옳지. 황진이가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구나. 숱한 량반들과 한량들이 황진이의 눈에 들려고 요란하게 차리고 드나들었을 터인데 나는 차라리 수수하게 차리고 가기로 마음먹었어. 그런데 저 녀인은 내가 저의 눈과 마음을 대번에 끌어보겠다고 이런 차림새로 찾아온 이상 자기도 수수한 모양으로 나를 맞음으로써 록록한 녀자가 아니라는것을 보여주자는것이겠지? 흠, 괜찮아. 이런 녀자라면 들리는 소문이 빈소리가 아닌것 같으니 한번 사귀여 볼만한걸.)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숨김없이 자기의 정체를 드러냈다.

《나는 서울사는 소세양일세.》

이 한마디에 황진이의 잔뜩 도사려졌던 마음이 봄눈 녹듯 하였다. (자기의 본심을 숨기지 않으려는 사람을 경계할거야 뭐람. 이런 사람에게는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주어야지.) 이와 같이 결심을 고쳐한 황진이는 당돌하게 물었다.

《대감께서 어찌 과객(지나가는 나그네)같은 차림으로 천한 소녀의 집을 다 찾아주시오니까?》

《한성에 앉아 듣자니까 개성 황명월(황진이)이가 하늘에 걸린 보름달같이 도고하고 맑다기에 나도 한번 사귀여볼 생각으로 찾아오자니까 별도리가 있어야지. 벼슬옷 입고왔다고 쫓겨가기보다 수수하게 입고와서 의합이 되는게 나을것 같아서이네.》

《호호호.》

황진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곱게 웃었다. 그 웃음은 열백마디 말보다 더 정다운 대답이였다. 소세양도 은근히 마음을 조이던 첫 관문 즉 사귀려왔다가 문전거절당하지 말아야겠다고 하는 근심은 무사히 넘긴셈이였다. 그래서 그도 호걸웃음을 지었다.

아담하게 차린 술상을 앞에 놓고 마주앉았을 때 소세양은 비로소 마음의 허리띠를 늦추어놓고 황진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미인이였다. 자기가 내 나라 삼천리강산과 나라밖의 만리대지를 밟으면서 숱한 미인을 보았지만 이처럼 황홀한 미인은 보던중 처음이였다. 얼굴이 반반하면 속에 독사가 들었든가, 생기기는 환한데 까막눈이라든가, 목소리는 고운데 글은 못하든가, 달고 큰 참외가 없다는 격의 미인들만 보아왔는데 황진이는 인물이 절색인데다가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하는것을 보니 천하의 명창이요, 글외우고 시짓는것을 보니 안팎으로 미인이요, 녀중호걸이였다. 성품도 마음에 들었다. 도고한것 같으면서도 겸손하고 함부로 다치면 사정없이 쏠것 같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인정이 있고 부드러웠다. 날이 갈수록 소세양은 황진이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럴수록 소세양은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그는 몇해전 외국에 사절로 갔을 때 지은 시에서 《연분홍 복사꽃은 미인들의 얼굴처럼 고와라》고 쓴 일이 있었다. 그 표현을 사람들은 잘된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황진이를 사귀고보니 복사꽃같은것을 황진이에게 비길바가 못되는것임을 절감했다. 이처럼 그의 마음속에는 점점 더 황진이의 모습과 인품이 밝고 둥근 보름달처럼 환하게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소세양은 황진이를 한갖 명기로서가 아니라 아주 친근한 시의 벗, 음악의 벗으로 가까이 사귀게 되였다. 이것은 한생을 문인으로 살아온 소세양, 한때 장악원이라는 음악관계의 일을 보는 관청에서 첨정이라는 중간급 관직을 지낼만큼 음악에도 어느 정도 리해가 있는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한편 황진이도 소세양과 사귀는 나날에 그에 대한 생각이 판판 달라졌다. 첫 대면에서는 자기를 기생으로 여기고 잠간 술시중이나 하게 하고 떠나갈 사람으로 알았는데 매일같이 사귀는 사이에 그런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잊을수 없는 시의 스승처럼 여겨졌고 그 계선도 넘어서서 때로는 더 친한 벗처럼 생각하게끔 되였다.

두사람의 깨끗한 정이 뗄래야 뗄수 없을만큼 깊어가는 가운데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 소세양이 황진이를 만난지 어느덧 한달을 하루 앞둔 날이 왔다. 래일이면 황진이를 뒤에 남겨두고 떠나가야 하였다. 이때 소세양의 머리속에서는 언젠가 친구들이 시까스르던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떠나가자니 발걸음이 떨어질것 같지 않고 남아있자니 친구들앞에 체면이 서지 않게 된 소세양의 마음은 번거로워졌다. 그렇지만 소세양은 친구들과 한 약속은 지키고싶었다. 그리하여 마음은 내키지 않았으나 강심을 먹고 황진이에게 자기가 이곳에 오기 전에 친구들과 한 이야기를 사실그대로 고백하였다. 황진이는 자기에게 터놓는 소세양의 말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놀랍고 원망스러웠으나 차츰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소세양에게 자기에 대한 생각을 잊고 친구들앞에서 장담한 남아의 체면을 세우라고 말하였다. 황진이가 진심을 담아 말하였으나 소세양의 마음에는 납득되지 않았다. 가야 한다거니 떠날수 없다거니 서로 상대방을 리해시키려고 애쓰면서 정겨운 싱갱이를 하다가 나중에는 소세양이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황진이의 권고를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황진이는 리별의 슬픔을 가슴깊이 묻어두고 소세양이 가지고갈 길량식과 로자를 마련하고 입고갈 옷도 깨끗이 손질해놓았다. 그리고 떠나갈 때 대접할 술과 안주까지 정성다해 마련하였다.

이날 저녁이였다. 아침에 왔다가 래일 떠나기로 의사를 맞추고 숙소로 돌아갔던 소세양이 다시 찾아왔다. 방에 들어와 묵묵히 앉아있는 소세양을 바라보는 황진이의 마음은 찢어지는듯 아팠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며 소세양을 바라보는 잠시동안에 황진이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였다. 언젠가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황진이 너는 어떤 사람을 사모하는가고 물었을 때 백여년전에 죽은 고려말의 문인 길재를 사모한다고 하여 산 사람이 죽은 옛날 선비를 사모한다고 괴이한 소문을 낸 일이 생각났다. 그런데 지금 만약 누가 자기를 보고 황진이 너는 어떤 사람을 사모하는가고 묻는다면 자기는 길재와 함께 소세양을 사모한다고 대답하여 또다시 소문을 낼 생각이였다.

소세양, 자기보다 30살이나 우인 로인을 사모한다고 하면 소문이 날만 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자기의 량심은 떳떳했다.

(사모한다는것이 꼭 남녀간에 서로 사랑하는것만이겠는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리워하면 그것이 곧 사모하는것이지.)

황진이는 말없이 가야금을 가져다가 한곡조 탔다. 그 가락에 심취되는듯 소세양도 손에 들었던 부채로 무릎을 살짝살짝 쳤다. 방안에 차넘치는 선률을 타고 고조되던 석별의 정을 더는 누를길 없게 된 황진이는 끝내 《둥ㅡ》하고 가야금을 타던 손을 멈추었다. 누구든지 다치기만 하면 울음이 터질것만 같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사이 흐트러지려는 감정을 겨우 다잡은 황진이가 소세양에게 물었다.

《상공을 전송할 래일을 앞두고 바라옵건대 지을줄 모르는 시이오나 소녀 진심을 담아 한수 짓도록 허락해주시겠소이까?》

《내 어찌 그보다 더 큰것을 바라리오. 어서 그렇게 하세.》

황진이가 종이를 펴놓고 붓을 들었다. 《소판서》라는 석자를 쓴 황진이의 붓이 말뚝처럼 뚝 멎어섰다. 그 다음을 뭐라고 써야 제목이 될것인가 모색했다. 원래대로 하면 《소판서를 떠나보내며》라고 하면 될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황진이는 그렇게 하고싶지 않았다. 더 다정한 감정을 나타내고싶었다. (《소판서 양곡》이라고 호를 쓸것인가, 아니다.) 황진이는 대담하게 자기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여 《소판서 세양을 떠나보내며》라고 썼다. 한낱 기생이 시를 지으면서 판서벼슬을 지내는 고관의 이름을 쓰다니, 안될 말이다. 그러나 그 안될 말이라도 해야만 마음이 좀 풀릴 황진이였다. 제목을 써놓고나니 시의 본글은 저절로 슬슬 풀렸다.

 

달빛아래 오동잎 다 떨어지고

서리맞은 들국화 떨고있는데

하늘은 지척인듯 다락은 높고

사람은 흠씬 술에 취했구나

 

흐르는 물소리 가야금과 어울리고

매화향기 피리소리 함께 흐르나

래일 아침 우리 서로 헤여지면

내 시름 저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소세양은 황진이가 부어주는 석잔째 술을 단숨에 마신 다음 그 시쪽지를 접어 품에 간직하고 일어나 숙소로 돌아왔다. 날이 밝았다. 황진이가 길떠나보낼 차비를 다해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소세양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을 보내보았으나 소세양은 숙소에도 없었다. 해가 거물거물 넘어갈 때에야 소세양이 나타났다.

《어디에 가계셨소이까?》

《갑갑해서 온종일 이곳저곳 다니면서 바람을 쏘였지.》

《오늘 떠나시지 않으면 서울에서 친구들 만나기로 한 일이 랑패되지 않겠소이까.》

《랑패가 되겠으면 되라지.》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나는 오늘 떠나지 않기로 작정했네.》

《예?》

《나도 꽁지빠진 수닭이 될 결심이네.》

《그게 무슨 뜻이오니까?》

《내가 서울에 있을 때 들으니 자네가 시시한 사나이따위는 꽁지빠진 수닭만큼도 여기지 않는다고 하던데 나도 그 시시한 사나이가 되고싶어졌네.》

《무슨 그런 죄돌아가실 험담을 하시오니까? 소녀가 언제 그런 말을 한적이 있다고…》

《아니, 아닐세. 이제 한 말은 롱담이네. 사실은 내가 한성을 떠나기 전에 친구들은 자네가 나도 잘 사귀여주지 않아서 꽁지빠진 수닭꼴이 돼서 돌아올거라고 시까스렀네. 그래서 내가 큰소리를 친 일이 있는데 자네가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었네. 내가 친구들앞에 위세를 보이자고 떠나고싶지 않은길을 떠나겠나? 자네를 두고 당장 떠나고싶지 않네.》

소세양은 어제 아침만 하여도 오늘 떠나기로 했는데 저녁때에 황진이가 써준 리별시에 자기의 이름을 밝힌것을 보고는 차마 떠날 마음이 없어졌다고 솔직히 말하고싶었으나 그것만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 …

한성에 있는 친구들은 소세양으로부터 그동안에 있은 사연을 다 듣고는 그의 진실한 사람됨과 황진이의 아름다운 정신세계 그리고 그들 두사람의 남다른 사귐에 감탄하여마지 않았다고 한다.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