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은 우리 민족사의 발상지이며 우리 나라 강과 산의 시원으로 되는 조종의 산이다. 이 산이 백두산으로 불리우기 전에는 시기에 따라 태백산, 불함산, 개마대산, 도태산 등으로 불리웠고 또한 백두산과 같은 시기이거나 얼마간 후시기에는 백산, 장백산으로도 불리웠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력사기록에 처음 나타난것이 《삼국유사》의 705년 기사이다. 후기신라의 왕자 보천은 이해 오대산(강릉)에서 죽으면서 《이 산은 백두산의 큰 줄기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놓고 볼 때 백두산은 고구려땅에 있던 산이므로 백두산이라는 산이름은 고구려에서 먼저 쓰인 이름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백두산이라는 산이름이 705년의 기록에 나타난 이후 후기신라때는 널리 쓰이지 않았다. 그것은 후기신라시기의 기록에서 의연히 고대시기부터 써오던 태백산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사실을 통하여 알수 있다. 《삼국유사》의 발해건국과 관련한 주석에서 인용한 《삼국사》(구삼국사)와 《신라고기》(두 책에서는 태백산이라는 이름만 쓰고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의 기록들에서는 대조영이 태백산밑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널리 보급된것은 고려시기였다. 그것은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국으로서 고구려때에 생긴 백두산이라는 이름에 대하여서도 친연감이 짙었던 사정과 관련되여있다고 해석된다. 《고려사》의 세계(왕조의 가계)에서 김관(12세기 중엽의 관리)이 쓴 《편년통록》의 기록에는 백두산이름이 세번 보인다. 이 책은 비록 12세기 중엽에 쓴 책이지만 거기에 실려있는 고려태조 왕건의 조상에 대한 전설은 이미 918년 고려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정리된것이다. 따라서 이미 이때부터 백두산이름은 고려왕조의 먼 조상인 호경의 발상지로 신성시되면서 널리 쓰이였다. 사시절 회백색의 부석과 흰눈을 머리에 이고 푸르른 창공을 배경으로 숭엄하고 장중한 메부리를 하늘높이 거연히 치솟구고있는 산이라는 백두산의 이름은 참으로 심오한 뜻을 담고있다. 아름답고 고상하며 성스러운 명산의 경관에 잘 어울리고 우리 겨레의 고결하고 강직하며 부드럽고 결백한 슬기로운 민족성을 그대로 담고있는 백두산, 오늘 백두산의 이름이 세계만방에 찬연히 빛나고있는것은 절세의 위인들이신 백두산3대장군의 위대한 애국애족의 력사,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혁명력사가 줄기줄기마다에 력력히 깃들어있기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유구하고 자랑찬 력사와 우리 혁명의 위대하고 영광찬란한 력사를 뿌리깊이 억세게 안고있는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 백두산은 무궁번영하는 선군조선의 앞날과 더불어 영원히 빛날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