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안  국

(1478ㅡ1543)

 

리조전기의 시인. 자는 국경, 호는 모재이다. 25살에 문과에 급제한 후 문건작성, 도서관리 등을 맡은 벼슬을 거쳐 30대에 대사간(왕의 정치를 충고하는 기관)의 우두머리, 경상도와 전라도의 관찰사를 지냈다.

1519년 《기묘사화》때 리천과 려주 등지에서 은퇴생활을 하면서 독서와 창작, 후비육성에 힘썼다. 1537년에 다시 벼슬길에 나서서 판서, 좌찬성, 대제학 등의 높은 벼슬을 하였다.

김안국은 성격이 강직하고 정밀하여 학문에서나 문필활동에서도 빈틈이 없었다. 그는 학문에서뿐아니라 후비교육에서 사람들의 높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또한 시에도 능하였는데 민간생활이나 민속을 반영한 여러편의 좋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아이들을 위한 《동몽선습》, 농업부문의 《농잠서》, 륜리관계의 《이륜행실》 등의 저서와 한자시 《7석》 등을 남기였다.

 

《7석》

 

한자시.

 

까막까치 날았으니

  이날 상봉 끝이로다

즐거움은 한밤이오

  시름겨운 일년이라

 

은하수에 눈물뿌려

  가을물결 불어나고

애끓는 아픔으로

  밤이 더욱 어둡다네

 

비단장막 유심하여

  달빛 향해 열렸건만

무정할사 반달님은

  주렴우에 숨는구나

 

억만년 지나간들

  이 원한 가실손가

남북으로 갈라져서

  소식조차 아득하네

 

 

시는 7월칠석에 대한 민간전설을 소재로 하면서 봉건적개성억제를 비판하는 사상주제적내용을 반영하고있다.

시인은 7월칠석에 대한 민간전설의 내용과 결부하여 서정적주인공의 원한을 노래하였다. 널리 알려진것처럼 7월칠석과 관련한 견우직녀이야기는 고구려전설로서 우리 나라 고분벽화에 회화적으로도 반영되여있다. 하늘세상에 살고있는 부지런한 농사군 견우(소를 끄는 사람)와 알뜰한 살림군 처녀 직녀(베짜는 녀자)가 남몰래 사랑하였는데 이것을 안 하늘의 통치자 옥황상제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짓을 한다고 대노해서 그들을 은하수 이쪽 저쪽에 갈라놓고 못만나게 한것을 까치들이 불쌍히 여겨 7월 7일날 밤 은하수에 모여서 까치의 다리를 놓아주어 그들이 1년에 한번씩이라도 만나게 해주었다는것이 이 전설의 기본내용이다.

시에 등장하는 서정적주인공은 칠석날 저녁 잠간 만나고 헤여진 슬픔과 그 슬픔속에 또 1년을 보낼 시름을 안고 괴로워한다. 전설에서는 직녀가 뿌리는 눈물이 그대로 내려 칠석날 밤에 비가 오고 직녀의 원한이 그대로 한숨이 되여 그날밤엔 구름이 낀다고 하였다. 시에서는 까치와 눈물, 구름덮여 밤이 더욱 어두워진다는 세부를 잘 살려 서정적주인공의 사상정신세계를 형상적으로 부각하고있다. 시인은 서정적주인공의 사상정신세계를 일반화하고 그것의 사회적의미를 심화시켜 억만년 지나가도 이 원한을 가실수 없다고 하였다. 그 서정적주인공은 전설속의 직녀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남북으로 갈라져서 소식조차 모르고 리별과 슬픔의 밤, 7월칠석날 저녁을 고독하고 슬프게 보낸다. 그의 슬픔은 억만년 지나가도 가셔지지 않을 원한으로 차있다. 여기에 바로 전설의 소재를 예술적으로 잘 살리면서 청춘남녀의 사랑할 권리, 개성해방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는 봉건사회의 질곡과 봉건륜리도덕의 반동성을 비판한 작품의 진보성이 있다. 남녀간의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만 노래한 제한성이 있으나 인간사랑의 자유를 강권으로 짓밟아서는 안된다는것을 주장한 진보적인 내용과 그러한 내용을 7월칠석전설과 결부하여 노래한 민족적특성, 민속적색조로 하여 일정한 문학사적의의가 있다.

 

성인의 마음은 세밀한 법이다

 

김안국의 특징은 정밀하고 상세하며 부지런하고 마른 일 궂은 일 가리지 않는 성미였다고 한다.

한번은 가을걷이정형을 감독하러 나간 일이 있었다. 그가 어찌나 깐깐하게 굴고 수확한 뒤거둠을 심하게 단속했던지 논밭에 이삭 하나 떨어진것만 보아도 야단을 쳤다. 그래서 수확한 논밭을 올리훑고 내리훑고 하여 말끔하게 이삭을 다 주어들이게 하고야 말았다.

수확이 끝나자 이번에는 거두어들인 곡식을 잘 말리워서 방아를 찧게 하였는데 그때도 싸래기 한톨, 벼겨 한줌도 허실할세라 다 걷어들여 고간에 넣고 장부에 깐깐히 적어넣었다. 조금이라도 이 일을 소홀히 하는것이 눈에 띄우기만 하면 그는 엄하게 나무랐다.

《천지간에 생물치고 유용하지 않는것이 어디 있겠나. 무엇이든 되는대로 마구 없애버리는것은 상서롭지 못한 짓이다. 싸래기라고 하여 마구 다루고 겨라고 하여 함부로 버리는것은 살림살이하는 일본새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점잖은 어른이 좁쌀생원처럼 너무 콩이야 팥이야 따지면서 성가시게 군다.》고 돌아서서 시비질을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너무 린색하다고 뒤소리를 하였다. 그런 소리가 본인의 귀에 들어갔다. 그래도 김안국은 껄껄 웃고 그 말을 탓하지 않았다.

이듬해 봄이 되여 굶주린 사람들이 퉁퉁 부어 보리고개를 넘기기 힘들어할 때 김안국은 고간에 저장했던 싸래기요, 쌀겨까지 다 내다가 골고루 나누어주어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였다.

그때에야 사람들은 김안국의 깐진 생활태도에 감탄하였다. 그러자 김안국은 정색하여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자고로 성인의 마음은 세밀한 법이다. 성인을 따라배워 우리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 형에 그 동생

 

기묘사화때 밀려난 김안국은 리천에 내려가있으면서 후대육성에 힘썼다. 이때 고향에 있는 동생 정국이 오래간만에 형을 만나러 리천에 찾아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이 큰 벼슬을 하던 관원이 자기 마을에 와서 아이들 글공부까지 시켜주는것이 고마워 저마끔 손에 보자기며 다래끼를 들고 김안국의 집에 왔다. 마침 여름이였다.

《귀한 동생분이 모처럼 오셔서 반갑겠소이다. 저희들 마음도 기쁘기 한량 없소이다만 가난하다나니 성의가 이것뿐이옵니다. 한끼 비지나 해서 대접해주시오.》

《우린 채마밭에 달린 참외밖에 못가져왔습니다.》

누구는 강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왔고 누구는 산에 가서 나물을 뜯어왔다.

그 광경을 본 동생 정국은

《형님,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얻으셨군요. 부럽습니다.》라고 말하는것이였다. 김안국은 동생의 말이였지만 제자랑을 할줄 몰랐다.

《내가 인심을 얻은게 아니라 마을사람들의 인심이 후해서이네.》

그러면서 김안국은 찾아오는 사람마다 그가 어른이든 아이이든 차별하지 않고 친절히 맞이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을뿐아니라 그가 들고온 물건을 크던 작던 다 기록장에 꼭꼭 적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동생이 조용한 때에 의아한 낯빛으로 물었다.

《그런데 형님, 뭘 그런것까지 다 적어두시오?》

《대사가 있을 때 찾아오는 사람을 적어두는거야 우리 조선사람의 례절이 아니냐.》

《아무리 그렇더라도 오늘이야 대사날도 아닌데 무엇에 쓰자고 적으십니까?》

김안국은 의미깊게 자기의 생각을 말하였다.

《사람들이 오늘같은 크지 않은 일에도 찾아오는 그 성의야 대사때 찾아오는것보다 더하다고 할수 있네. 그러니 비록 풋콩 한단이나 참외 몇개라도 그것을 많지 않은것이라고 볼게 아니라 크게 여겨야 할게 아닌가. 내가 그것을 적어두지 않으면 후에 혹시 잊어버리게 될수도 있지 않겠나. 사람의 고마운 뜻을 잊어버리는게 얼마나 사람답지 못한 행실인가. 그래서 나는 적는거라네.》

정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탄복하였다.

(나는 형님에게서 따라배울것이 많아.)

형제간에 즐겁게 보낸 며칠이 꿈같이 흘러갔다. 이제는 김안국이 동생을 떠나보내야 할 시각이 다달았다. 리별이 아쉬워 형 김안국이 동생 김정국의 손을 부여잡고 말하였다.

《나도 이미 늙고 동생 또한 병이 많아 세상살이도 이제 얼마 남은것 같지 않네… 여생도 이제 얼마 없는듯하니 만나면 기쁘고 리별하면 이렇게 서러울것 없이 함께 모여사는것이 어떻겠느냐?》

형의 말에 동생은 한참이나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머리를 가로 저었다.

《제 뜻은 형님과 다르오이다. 형제가 모여사는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오나 만약 그렇게 하면 두 집의 종들이 혹시 리간이 있을수도 있고 또 녀인들이라도 간혹 성질이 편협하여 서로 의심하기 쉬우니 화기를 잃을수 있소이다. 이리하여 만약 오해와 반목이 있게 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것이니 지금처럼 각기 헤여져 사는것보다 못하게 될수도 있소이다.

그리고 오래 갈라져있으면 그리운 정이 생기게 되고 또 서로 만나면 즐거우니 이것이 오래 계속되면 형제간의 우애도 항상 변치 않을것이고 날로 더욱 두터워질것이므로 지금처럼 갈라져사는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오이다.

우리가 비록 서로 떨어져서 산다 하여도 형님은 저를 사랑하시고 저는 형님을 공경하는 마음만 극진하면 천리도 지척이 아니겠습니까.》

《거참 명담일세. 하하하…》

김안국은 즐겁게 웃으며 떠나가는 동생을 바래웠다. 이후 이들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형제간의 우애를 더욱 지극히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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