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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승 휴 (1224ㅡ1300)
고려후기의 학자, 문인. 자는 휴휴, 호는 동안거사이다. 어려서부터 강직한 성격을 지닌 그는 학문에 힘써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살이에 뜻이 없어 두타산 구동에 가서 10여년간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 그는 이 시기에 자신의 생활체험에 기초하여 《무릉도를 바라보며》, 《병과시》 등 시편들을 창작하였고 다방면적인 지식을 습득하였다. 그후 개경에 이사하여 경흥부 서기를 지내다가 도병마록사로 되였다. 이때부터 벼슬길에 나선 그는 합문지후, 감찰어사, 우정언 등의 관직을 거쳐 밀직부사, 감찰대부 등의 높은 벼슬을 하였다. 그는 관료생활기간에 두차례에 걸쳐 사절단의 서장관으로 원나라 수도 연경에 다녀왔다. 이때에 리승휴는 문필가로서 이름을 날리였다. 리승휴는 무질서한 부역으로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덜어줄데 대한 문제, 당시 국가정사에서 나타난 페단을 바로 잡을데 대한 문제들을 조항별로 묶어 여러차례 왕에게 올렸으며 충청도의 안렴사로 되였을 때에는 탐관오리 7명을 규탄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그의 대바른 성격은 국왕과 간신들의 미움을 받아 벼슬살이에서 고충도 많이 겪었다. 그는 곡절많은 관료생활을 거쳐 생의 말년에는 고향에 내려가 학문연구와 창작으로 여생을 보냈다. 대표적작품인 《제왕운기》도 그가 파직되여 구동의 옛집에 내려가 있을 때 지은것이다. 《고려사》렬전에서는 리승휴의 생애를 평하면서 《그는 성질이 정직하여 세상사람들과 같이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불교의 교리를 아주 좋아하였다.》고 쓰고있다. 그의 저서로 《내전록》, 《제왕운기》(2권)와 함께 《동안거사집》이 전해지고있었다.
《제왕운기》
1287년에 쓴 장편서사시. 문학작품으로뿐아니라 력사문헌으로도 평가되는 책이다. 2권 1책으로 되여있다. 이 책은 1295년ㅡ1296년에 경상도 진주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였으며 제2판은 1360년에, 제3판은 1417년에 각각 경주에서 다시 간행되였다. 주체19(1930)년에 영인본이 나왔고 주체49년에 과학원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제왕운기》의 하권에서는 우리 나라 력대왕조들의 력사적사실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앞부분의 《동국군왕세계년대》에서는 고조선으로부터 삼국, 발해 등 시기까지의 력사적사실을 7언시형식으로 서술하였다. 뒤부분의 《본조(고려)군왕세계년대》에서는 고려태조로부터 25대 충렬왕시기까지의 력사적사실을 5언시형식으로 서술하였다. 《제왕운기》는 고조선과 발해가 차지하는 력사적지위를 해명하였으며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조선민족의 단일성과 유구성을 특히 강조하였다. 《제왕운기》의 시 본문의 해당부분들에는 주석자료들이 있는데 삼국시기의 력사연구에서 기본사료로 인정되여오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사들에 못지 않는 자료들이 적지 않다. 마한의 왕검성과 백제의 호진성 등에 관한 력사지리적인 주석들은 다른 사료들에서 찾아볼수 없는것들이다. 《제왕운기》는 력대제왕들을 찬미하고 봉건충군사상과 사대주의사상을 고취하는 본질적결함도 가지고있다. 특히 반고로부터 금나라에 이르는 34개 왕조의 력사를 취급한 중국력사부분을 상권으로 앞에 서술하고 우리 나라 력사부분을 하권으로 뒤에 서술한것을 비롯하여 그밖의 일련의 부족점들이 있지만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우리 민족의 력사를 왕조사체계로나마 정리체계화하고 우리 나라 중세력사연구에 가치있는 자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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