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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구 (1211ㅡ1278)
고려의 학자, 시인. 처음 이름은 백일, 자는 차산, 호는 지포이다. 어려서부터 시와 글을 잘 지었으며 젊었을 때 과거에 제2위로 급제하였다. 지공거(책임시험관) 김인경이 그를 첫자리에 놓지 못한것을 몹시 한탄하였다는 말이 전해질만큼 유능한 인재였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 후 제주판관으로 되여 여기서 선배문인 최자(이때 그는 제주부사ㅡ고을 부장관이였다)와 같이 지내면서 많은것을 배웠고 우수한 시적재능을 발휘하였다. 그후 외교사절단의 서장관(서기관)이 되여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때 《북정록》이라는 기행문을 집필하였다. 8년간 한림원에 있다가 일련의 관직을 거쳐 국학직강벼슬에 올랐다. 이때 김구는 당시 무신정권의 실권자인 최항이 《원각경》이라는 불경책을 찍어내면서 거기에 발문(책뒤에 써붙이는 글)을 쓰라고 강요하는것을 거역하고 그대신 풍자시를 쓴것때문에 박해를 받아 10년동안이나 강직당하였다. 1263년에 왕의 잘못을 충고하는 관청의 관리로 임명되였다. 이런 벼슬을 할 때 그는 사대굴종행위를 하는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날카롭게 대결하였다. 그후 중서문하성(최고관청)의 참지정사와 중서시랑평장사에까지 벼슬이 올라갔는데 이때 《통문관》이라는 관청을 내오고 유능한 번역관을 키워내여 나라의 대외적위신을 높일수 있게 하는데 이바지하였다. 김구는 성품이 소박하고 충실하며 겉치레를 하지 않았다. 말이 적었으나 일단 국가사업을 론하게 되면 바른말을 절절하게 하고 어물쩍 피해버리는 일이 없었으며 나라의 권위와 관계되는 일에서는 한몸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지키였다. 그는 신종, 희종, 강종의 실록을 편찬하고 고종실록을 다듬는데 참가하였다. 이웃나라의 학자, 문관들은 그가 써보낸 외교문서를 읽어보고 매번 그 정정당당한 내용과 비단결같은 문체에 매우 감탄하면서 이런 명문장을 쓴 필자를 한번 만나보았으면 소원이 풀리겠다고 하였다 한다. 작품으로 풍자시 《〈원각경〉을 조소한다》, 한자시들인 《리원정을 찬양함》, 《떨어진 배꽃》 등이 있다. 김구가 창작한 시와 집필한 글은 문집 《지포집》(3권)에 올라있다.
《리원정을 찬양함》
한자시.
그 옛날 모진 원쑤 국경을 넘어들어 40여개 고을에서 란탕을 부렸네
산기슭 외로운 성 적의 앞길 가로막아 만명의 적들이 삼킬듯이 덤벼들제
얼굴 흰 선비가 이 성을 지키면서 나라 위해 자기 몸을 아낌없이 바쳤다네
일찍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세워 장사들 하늘땅을 웨치며 일어섰네
맞서싸운 반달동안 해골을 불태우며 밤낮없는 공방전 용사들은 지쳤어라
세력이 진했으나 여유를 보이자고 루우에서 울린 풍악 그 소리도 슬펐다네
창고가 하루밤 불길에 싸이고 처자들과 더불어 몸을 태워 죽었으니
의롭고 장한 넋 어디로 갔는가… 천고에 이 고을만 철산이라 부른다네
※ 외로운 성ㅡ철산성을 가리킴 ※ 얼굴 흰 선비ㅡ리원정을 가리킴. 리원정은 장수가 아니라 문관이였다. ※ 철산ㅡ철산이라는 고을이름이 철산방어자들의 철같이 굳은 의지와 걸맞는다는 뜻
이 시는 우리 인민의 반침략애국투쟁을 찬양하고있다. 시에 반영된 소재는 외적이 불의에 쳐들어와 철산성을 포위공격하자 철산고을의 애국적인민들과 군사들이 군수인 리원정의 지휘밑에 반달나마 악전고투하면서 성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력사적사실에 기초하고있다. 시인은 철산군민의 헌신적애국투쟁을 노래하면서 리원정의 투쟁공적을 중심적으로 형상하였다. 리원정은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힘이 진하여 더는 싸울수 없게 되자 놈들에게 한알의 식량과 하나의 물품도 략탈당하지 않기 위하여 관가의 창고에 불을 지르고 외적에게 굴복하지 않으려고 처자들과 함께 불속에 뛰여들어 최후를 마치였다. 이 사실은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지리지에 올라있다. 시인은 인민들이 높이 찬양하여 구전으로, 지리지의 기록으로 남긴 내용을 집약화하여 16행의 서정시에 담았다. 그러기 위하여 애국적군민투쟁을 배경으로 하고 중심주인공의 공적을 리원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세워 충천한 기세로 항전에 궐기시키고 밤낮없이 반달나마 공방전을 벌린 투쟁과 간고한 속에서도 여유를 시위하자고 다락우에서 풍악을 울린 사실, 형세가 더는 성을 견지할수 없을만큼 매우 불리해졌을 때도 창고를 불태우고 가족과 함께 불에 뛰여들어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는 형상에 초점을 두고 노래하였다. 시는 주인공들의 불굴의 투쟁과 고결한 정신을 서정시적풍격에 어울리게 형상하기 위하여 마지막 두개 시행에서 의롭고 장한 주인공들의 넋은 어디로 갔는가고 반문함으로서 그들의 넋은 살아있다는것을 열렬히 주장하였으며 철산이라는 고을이름과 결부시켜 철산방어자들의 철같은 굳은 의지와 공적을 가슴벅차게 노래하였다. 시는 13세기 반침략애국투쟁을 형상한 시가문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떨어진 배꽃》
한자시.
꽃잎이 펄펄펄 날아가고 날아오네 피였던 그 가지에 다시 올라보려는듯 아차, 한잎이 거미줄에 걸렸구나 거미가 기여오네 나빈줄만 알았던지…
시에서는 제처지도 모르고 헛된 욕망에 잠겨 지난날의 부귀영화를 꿈꾸는 어리석은 선비들을 비웃으면서 이런자들이야말로 잘못된 일에 걸려들기 쉽고 또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혀있다가는 더 큰 봉변을 당하게 된다는것을 폭로하고있다. 시는 바람에 흩날리는 신세로 나무가지에 다시 피여날 헛된 꿈에 사로잡힌 배꽃과 먹이감인줄로만 알고 기여오는 거미에 대한 재치있는 비유와 은유적표현으로 시의 내용을 감명깊게 펼쳐보이고있다. 인민적인 사상감정에 기초하지 못한 제한성이 있으나 진보적인 사상적내용과 세련된 시형상으로 하여 이 시기 시문학에서 일정한 의의를 가진다.
최자가 격찬한 시의 모범
김구가 제주판관으로 가있을 때였다. 하루는 서울(그때 도읍지는 개성이였다)에서 한 관원이 내려왔다. 그 사람은 과거시험장에서의 부(시형식의 하나)를 짓는 제목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그 제목의 내용은 옛날에 온 나라안이 싸움으로 소란스러운 때 한개 소국의 통치자가 험한 지형조건에서도 정치를 능숙하게 하여 천하를 다스렸다는것을 가지고 시를 지으라는것이였다. 우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야 알수 있는 그다지 유명한 이야기도 아니였고 또 그런 내용을 가지고 통일고려의 현실과 결부시켜 주장할 문제점을 똑바로 잡아쥐기도 어려웠으며 그런 내용에 맞게 형상을 시적으로 다듬기도 쉽지 않았다. 최자가 그 제목을 보고 시짓기가 어렵다는것을 느끼고 옆에 앉아있는 김구를 얼핏 곁눈질해보았다. 김구는 그 제목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앉아있었다. 배심이 든든해서일가? 아니면 제목이 시시해서일가? 최자는 야릇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이 김구라는 젊은이가 과거시험장에서부터 명성을 냈다는데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의 시솜씨를 한번 시험해보는것도 괜찮아.) 《여보게, 내보기에는 이 제목을 가지고 시를 짓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것 같네. 자네가 어디 한번 나의 이 의혹을 풀어주기 위하여 이 제목으로 시를 하나 지어주게나.》 김구는 그 청에 웃음으로 동의를 표시하였다. 그러면서도 년장자에 대한 례절을 지키여 얼른 붓을 들고 시짓기에 달라붙는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여 마감을 지은 다음에야 글을 써내려갔다. 단붓질로 다 쓴 시를 최자에게 내놓으면서 《갑자기 짓다나니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하고 미안쩍게 웃었다. 김구가 내놓은 종이장을 들여다보던 최자의 눈이 놀라움으로 빛났다. 그는 자기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참으로 훌륭하오. 점 하나, 아니 반점도 덧붙일것이 없네. 내가 이 시를 기념으로 가지겠네.》 그는 김구의 동의를 얻으나마나 하다는 태도로 그 종이를 건사하였다. 얼마후 최자는 그 아들에게 이 종이를 내주면서 신신당부하였다. 《이 시는 그저 잘된 시라고만 해서는 불충분하다. 이것은 시의 교범이다 교범! 그러니 너는 이것을 공손히 받들어 잘 간직해두어라.》 큰 학자이고 작가인 최자가 자기의 아들 나이인 젊은 시인 김구가 즉흥적으로 지은 시에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김구의 비상한 시재능에 다시한번 감탄하는 동시에 후대시인에 대한 최자의 뜨거운 사랑과 소탈한 태도에 경탄하였다.
한수의 풍자시때문에 10년동안 추방당했던 김구
《이놈, 네가 감히 내 령을 거역하고 그냥 무사할줄 아느냐. 김구. 이 죽일놈같으니라구.》 조용하던 최항의 넓다란 사랑방에서 갑자기 벼락치듯하는 호령소리가 터져나왔다. 최항은 고려중기의 무신집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권세가 당당하였다. 대대로 권력을 틀어쥐고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최가네 집안의 전횡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최씨가 앉았던 자리에는 풀도 안날것이라고 하면서 이들을 저주하였다. 늘 기세가 등등해있는 최항은 제 손아귀에 틀어쥔 권세의 칼을 휘둘러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란도질하였다. 《이놈! 이 죽일놈!》 최항은 목에 피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김구네집 사람이 전해주는 편지를 받아보고 몹시 노한것 같았다. 그의 호령소리에 밑창문이 드르르 떨렸고 온 집안의 심부름하는 사람들의 간이 콩알만해졌다. 방금전에 편지를 전해준 그 심부름군은 얼이 나가서 목을 잔뜩 움츠리고있었다. 이때 약삭바른 상노아이 하나가 화로에 불을 담아들고 나오다가 어떤 사람이 아침부터 된꾸중을 듣는가 하여 미닫이틈으로 살그머니 엿보았다. 가만히 살펴보자니 어떤 점잖은 벼슬아치 어르신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쩔쩔맬줄 알았는데 천만뜻밖에도 방안에는 최항이 혼자 앉아서 펄펄 뛰고있을뿐이요 욕을 당하고있는것은 말못하는 편지종이 한장이였다. 편지종이 한장을 앞에 놓고 미친 사람처럼 고래고래 호령질을 하고난 최항은 분을 종시 삭일수 없었던지 방바닥에 내버렸던 편지종이를 다시 와락 집어들었다. 그것은 방금전에 김구가 보내온 편지였는데 거기에는 아무런 사연도 적혀있지 않고 다만 시 한수가 있을뿐이였다.
《뭐 어쩌고 어째. 〈원각경을 조소한다〉? 김구 이놈! 원각경을 조소한다는 말이야 곧 이 최항을 조소한다는 소리가 아니야.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더니… 네놈이 이따위 소리를 함부로 써보낸단 말이냐?! 그리고 이 마감구절은 또 무슨 버릇없는 소리냐?》 최항은 김구가 써보낸 시의 마지막구절을 글자마다 불태워버릴듯이 눈에 불을 환히 켜고 훑어내려갔다. 《뭐 입을 다물고 가는 봄을 보내는것만 같지 못하다구? 이건 나를 보고 입을 봉하고있으라는 소리가 아닌가. 고약한 놈!》 그는 갑자기 경풍을 만난듯 제풀에 와들와들 손을 떨더니 쥐고있던 편지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편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는 이를 가는 소리가 소름이 끼치도록 흘러나왔다. 별안간 후닥닥 일어선 최항은 안절부절못하며 우리에 갇힌 승냥이마냥 울부짖었다. 《내 네놈의 사지를 이 편지신세로 만들지 못하면 성을 갈겠다.》 문틈으로 올방자를 틀고앉은 주인이 말 못하는 종이장과 사생결단을 하듯이 날뛰는 거동을 엿보며 저도모르게 작은 혀를 뾰족이 내밀던 상노아이가 최항이 벌떡 일어서자 깜짝 놀라서 얼른 옆에 놓았던 화로를 들고 허리를 폈다. 그 시각에 최항을 노발대발하게 만든 김구는 방안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집안팎에는 무겁고 괴로운 침묵과 근심이 겹겹이 서려있었다. 처음에는 김구가 누구도 모르게 혼자서 한 일이기때문에 그의 부인도 아무런 기미를 알아차리지 못하였었다. 집안의 근심은 김구가 써준 편지를 가지고 심부름갔던 사람이 최항이 대노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와 알린 때부터 시작되였다. 김구의 부인은 과묵하고 강직한 남편의 대쪽같은 성미를 잘 아는지라 혼자서 속을 태우다가 너무도 가슴이 답답해서 심부름하는 아이를 시켜 좀 와달라고 전하게 하였다. 잠시후 문밖에서 무거운 발자국소리가 들리였다. 그린듯이 생각에 잠겨 앉아있던 부인이 급히 일어나 문밖에 나와 남편을 맞았다. 김구는 부인을 따라 방안에 들어가 앉더니 무슨 의논할 일이 갑자기 생겼는가고 물었다. 부인은 조금도 근심스러워하는 기색을 찾아볼수 없는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듯 태연한 모습을 보니 그동안 혼자서 마음고생을 얼마나 모질게 하였으랴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 아침에 편지를 보내신후 불길한 소식이 있사온듯 하오나 과히 근심하지 마시오이다.》 부인은 남편을 위로한다기보다 오히려 자기의 마음을 다잡는 심정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조금이라도 불안한 빛을 보이면 오히려 모진 마음고생끝에 태연해진 남편을 더 괴롭힐것 같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김구는 부인의 따뜻한 이 한마디 말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사실 그는 현숙한 그의 부인이 옳게 판단한것처럼 그동안 혼자서 많은 마음고생을 하였다. 그것은 최항이 《원각경》에 《발문》이라고 하는 글을 지으라고 요구하였기때문이였다. 김구는 당시의 학자이고 문필가였다. 그는 자기의 글재주를 가지고 외교문서도 많이 만들었고 외국에 사신으로도 다녔다. 그는 나라의 요새를 지나다니는 길에서 외래침략자를 물리치는 싸움에 온 집안이 목숨을 바친 애국자의 장한 기개를 생각하며 《철주를 지나면서》를 비롯한 여러편의 시도 지었고 얼마간 이국땅에 머물러있을 때도 고국산천을 그리며 붓을 들군 하였다. 이렇듯 우국지심이 높은 그는 나라의 정사를 어지럽히는 간신들을 극도로 증오하였고 언제나 나라일을 근심하여 애를 태웠다. 간신의 무리들은 어리석은 왕을 조종하면서 제 리속을 채우고 향락을 누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최항과 그의 무리들은 불교를 극력 내세웠으며 서로 앞을 다투어 저들의 복락을 빌기 위한 미신행위에 헤아릴수 없이 많은 돈과 재물, 량식을 탕진하였다. 그러느라니 죄없는 백성들에게서 량식과 재물을 깡그리 빼앗아갔다. 이런 란장판에서 《원각경》이라는 불경책을 찍어낸 최항은 김구에게 발문을 쓰라고 지시하였다. 그 속심은 청렴결백하고 글재간으로 이름이 높은 김구를 시켜 제 공적을 찬양하는 글을 쓰게 하자는것이였다. 더 중요하게는 그처럼 강직한 인물도 자기의 령은 군말없이 시행한다는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심산이였다. 《원각경》의 발문을 쓰라는 최항의 지시가 내려왔을 때 김구는 그자의 이같은 속심을 꿰뚫어보았다. 그러니 37살의 한창시절인 강직한 그가 어찌 그 지시에 순종할수 있었겠는가. 그는 최항의 소행에 괘씸하였다. 나라의 정사는 말이 아닌데 저 하나의 리속과 향락, 공명에 미쳐날뛰는 최항이 참으로 밉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나라의 이른바 대신이라는자가 타락한 중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돌아가는 꼴은 눈뜨고 차마 볼수 없을만큼 역겨웠다. 김구는 학문을 닦고 글을 짓는 선비로서 글을 가지고 그런자의 권력앞에 굴종한다는것은 천추에 씻을수 없는 수치로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조를 지킨다는것은 여간만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최항의 령을 거역하면 목숨을 빼앗길뿐아니라 온 집안이 다 망하는 화를 입게 되는것이다. 자기 한몸이 죽는것은 받아들일수 있다 하더라도 조상의 신주들이 마구 흩어져 불타는 치욕을 당하고 죄없는 안해와 자식들도 죽지 않으면 종이 되리니 그 모든것을 어찌 허용할수 있겠는가. 그가 이렇게 여러날동안 괴롭게 몸부림치는 사이에 정해진 날자는 오고야말았다. 그래서 온밤 뜬눈으로 밝힌 김구는 마침내 결심을 내렸다. 온 가족이 도륙을 당해도 지조를 굽히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나니 마음은 폭풍뒤의 바다처럼 태연해질수 있었고 최항의 무리가 발밑에서 꿈지럭거리는 지렁이처럼 여겨져서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최항에게 회답을 보내자고 막상 붓을 들고보니 그따위 사람값에도 가지 않는 작자에게 긴 글을 쓰고싶지 않았다. 어른은 어른으로 대하고 아이에게는 아이에 맞게 대해야 하듯이 타락하고 추악한자에게는 실컷 비웃어주는것이 제격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리하여 김구는 편지를 쓰려는 생각을 돌려 붓가는대로 풍자시 한수를 적었다.
벌은 붕붕 나비는 훨훨 백가지 꽃 다 피였네 뚱땅거리는 화장사에는 모두가 진귀한것들이구나
온종일 주절주절 듣기도 싫다 원각경 읽는 저 소리 차라리 입을 다물고 가는 봄 보내는게 어떠냐
시를 다 쓰고 한번 읊어본 김구는 마음이 후련하였다. 그는 큰 소리로 그 시를 읊고 또 읊었다. 시를 읊을수록 마음이 점점 더 통쾌하여졌다. 그는 소리내여 껄껄 웃었다. 그것은 최항에 대한 조소의 웃음이였고 자기의 지조를 고수한 승리자의 웃음이였다. 김구는 시를 읽어보고 눈알이 뒤집혀돌아갈 최항의 몰골을 눈앞에 그려보며 앞머리에 《원각경을 조소한다》라는 활달한 필체의 글을 써넣었다. 통쾌한 풍자시 한편을 최항에게 보낸 김구는 아침이슬을 머금은 꽃잎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지나온 37년간을 조용히 돌이켜보았다. 어린 시절에 고향에서 소꿉동무들과 더불어 즐겁게 뛰여놀던 일이며 아명을 백일이라 부르고 자는 차산이라고 하여 별로 번잡스럽게 생각되던것까지 전에 없이 새삼스러운 회상으로 떠올랐다. 12살 어린 나이에 진사가 되고 22살때 문과에 올랐던 희망에 부푼 젊은 시절도 생각났다. 권세있는 집의 자식들이 좋은 옷에 기름진 음식을 차려가지고 요염스런 녀인들과 함께 화장사절간으로 가서 온종일 온밤 뚱땅거릴 때 외교문서를 붙들고 씨름하던 일도 어제런듯 싶었다. 지난날을 하나하나 더듬어보느라니 늘 집안에서 고생만 시킨 부인을 대하기가 더욱 미안해졌다. 김구는 그 무슨 가느다란 가시로 찌르는것처럼 가슴이 짜릿하였다. 어쩌면 이제 20년가까이 고락을 같이 한 안해와도 리별해야 하는것이다. 지금 그 불쌍한 안해의 청으로 안방에 들어와 앉은 그는 예전보다 더 각별한 정을 느꼈다. 불길한 소식이 있다고 하여도 과히 근심을 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안해의 심정이 눈물겹게 고마왔다. 김구는 목구멍으로 치미는 뜨거운것을 꿀꺽 삼키고나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맙소. 겨죽을 먹으며 고생할 때 맞이한 안해는 각별히 존중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부인은 한평생 못난 남편으로 하여 고생만 하였구려.》 과묵한 남편의 살뜰한 말은 쇠라도 녹일듯한 열을 가지고 부인의 가슴에 새겨졌다. 부인은 뭉클 솟아나 쏟아지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여 고개를 수그리고 옷고름을 눈에 가져갔다. 김구도 눈을 슴벅거리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남들은 이런 때 선비가 된것이 한스럽다고 한다지만 글하는 사람인 나는 믿는바를 글로써 지키는것이 얼마나 떳떳한지 모르겠소. 내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소.》 《아무리 포악한 무리인들 차마 사람의 목숨이야 해치리까.》 부인은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걸고 말했다. 이에 김구는 껄껄 웃었다. 《최항이 나를 죽일수는 있을것이요. 하지만 그자가 칼을 가지고 협박하며 달려들 때 나는 붓을 들고 그의 숨통을 먼저 눌렀소. 그러니 숨통이 눌린자의 칼이 감히 내 목을 치지는 못할것이요. 그렇다고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리요. 그것은 내 이미 각오한 바이니 부인은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김구의 판단은 정확하였다. 풍자시 한수에 된매를 맞은 최항은 감히 김구를 죽을 생각을 못하고 왕을 강박하여 그를 멀리 내쫓도록 하였다. 과연 그날이 저물기도 전에 어리석은 왕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은 김구를 바다 한가운데 있는 제주도에 판관으로 임명하는 령이였다. 그때로부터 10년 세월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10년동안 김구는 바람 세찬 제주도에서 최항의 음으로 양으로 되는 갖은 박해를 다 받았다. 혈기왕성하던 그도 이제는 제주도의 거센 바람속에서 귀밑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풍자시 한수로 부패와 타락, 부정의를 규탄하고 그 대가로 10년을 박해받은 김구, 아니 10년세월 모진 고생속에서도 그 장한 기개를 굽히지 않은 시인은 끝끝내 승리하였다. 조정이 뒤집혀 최항이 거들먹거리던 시기가 드디여 끝장났던것이다. 그해에 김구는 고달픈 추방생활에서 놓여나왔다. 제주도를 떠난 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살같이 달리는데 배전에 서서 옷자락을 펄펄 날리며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준수한 얼굴에는 자기의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은 시인의 드높은 긍지가 어려있었다.
《…어찌 이놈을 탄핵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김구가 과묵한 성격을 가지고있었지만 나라의 존엄과 리익을 위해서는 무섭게 싸웠다는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김구가 대간이요, 리부상서요 하는 벼슬을 할 때 있은 일이다. 한번은 조정에서 외교의례가 있었다. 그것은 이웃나라와의 외교상 필요에 따라 진행된 그 나라 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모임이였다. 모임에 우리 나라에 와있는 그 나라 사람들도 참가시켰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고려의 신하 내수 상장군 강윤소라는 얼간망둥이가 말썽을 피웠다. 내수란 궁중을 지키며 왕의 시중드는 일을 맡은 내시이고 상장군은 우두머리급 무관벼슬의 하나였다. 이런자가 사대바람에 물젖어 원나라의 침략세력에 빌붙어 출세해볼 어리석은 망상을 하였다. 이 외교의례에 이자가 참가하였는데 그 꼴이 역겨웠다. 그는 좋은 조선옷대신에 어울리지도 않는 호복(몽골복장)을 입었으며 머리는 변두리머리칼을 깎고 정수리부분의 머리칼만 남겨 땋아늘인 개제모양을 하였다. 이렇게 하고온 주제에 부끄럽게 생각할 대신 무슨 큰 자랑거리이기나 한것처럼 외국사절들이 서있는 위치에 가서 끼여섰다. 이자는 이렇게 하고도 모자라 의례행동마저 고려신하들과 함께 하는것이 아니라 외국식으로 하려고 하였다. 왕이 의례식장에 들어왔을 때였다. 고려의 신하들은 자기 왕에 대한 례절을 지켰으나 강윤소는 신하로서의 례절을 지키지 않고 다만 외국손님들과 행동을 같이 하였다. 왕이 신하들의 인사를 다 받은 다음 외국손님들과 인사를 나눌 때에야 사대에 물젖은 이자는 어색하게 호배(몽골식 절)를 하였다. 왕이 성이 나서 그자의 절을 받지도 않고 외면하였다. 하지만 장소가 외교의례석상이라 강윤소라는자를 속시원히 처벌하지 못하였다. 례식을 담당한 벼슬아치들도 감히 비난하려고 하지 못하였다. 이들은 그만큼 외부의 큰 나라재세를 하는자들과 거기에 아부추종하는 사대행위의 병신들을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이였다. 이 외교의례에 참가하였던 김구가 그 꼴을 보니 눈에서는 불이 일고 가슴은 분노로 터질것만 같았다. 아무리 외교의례석상이라도 그 모임은 고려측이 마련한것이니 어디까지나 주인은 자기네였던것이다. 이러한데서 고려무관이라는 놈이 제나라왕앞에서 감히 외국사람행세를 하는것을 그대로 내버려둘수 없는 일이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라의 존엄을 손상시키는 짓이였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김구가 살펴보니 왕이나 신하들이 속으로는 성이 났으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벙어리 랭가슴 앓듯 하고있었다. 더우기 한심한것은 일부 비겁한 사람들은 이 석상에서 말썽이 일어나는 경우 그 불티가 자기에게 튀지 않을가 하여 조바심을 하고있는것이였다. 김구는 외교의례석상이라는것을 가려볼 생각이 꼬물만큼도 없어졌다. 《네 이놈 강윤소, 이 죽일놈 같으니!》 김구는 벼락치듯 큰 소리로 그자의 역겨운 이름을 부르면서 손가락 하나를 곧추 편 주먹으로 강윤소의 얼굴을 찌르는듯 가리켰다. 의례식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여기가 어디고 뉘 앞이라고 그따위 역적행실이냐! 이놈!》 과묵한 그의 입에서 련달아 강윤소의 죄행을 하나하나 까밝히며 닦아세우는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일이 이렇게 번져졌으니 왕이나 기가 나약한 신하들은 자기들이 하지 못할 소리를 김구가 속시원하게 내뱉아준것이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으나 앞으로 일이 복잡해질것 같아 얼굴빛이 흐려졌다. 그런가 하면 일부 원나라 벼슬아치들은 저들이 된매를 맞기라도 한것처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더우기 일을 저지른 강윤소는 당장 제 목에 시퍼런 칼날이 내리찍히는것 같아 바들바들 떨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서 외교의례도 대충 치르고난 뒤에 대국행세를 하는데 이골이 난 외국의 어떤자가 들고일어났다. 그들의 론조는 《강윤소가 남들이 안하는 개제도 먼저 하였고 의례석상에서도 원나라의 례식을 따라 행동하였는데 이것이 어째서 규탄받아야 하는 짓으로 되겠는가, 그런데 도리여 강윤소가 공격을 받았으니 그를 규탄한 김구야말로 엄하게 처벌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사태는 점점 더 험악해져서 김구를 엄격히 처벌하겠는가 아니면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가 정상이 아니게 되는가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였다. 그들은 집요하게 김구를 위급한 궁지에 몰아넣고 해치려고 날뛰였다. 원나라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사대병에 걸린자들도 내부에서 쏠라닥거렸다.
그의 말을 들은 김구는 태연자약하였다. 《도적이 매를 든다는 말이 있소. 그 사람들이 아무리 이발을 갈아도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소. 이 몸이 비록 잘못된다고 하여도 나라를 위한 일에 목숨을 바쳤다면 떳떳한 일이 아니겠소.…》 김구는 잠시 말을 끊고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결연히 단언하였다. 《차라리 내가 벌을 받을지언정 어찌 이놈(강윤소)을 탄핵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김구의 이처럼 당당한 립장과 언변에 힘을 얻은 봉건정부는 외세의 어리석은 압력을 단호히 물리치고 오히려 그를 참지정사라는 더높은 관직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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