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  대

(1190ㅡ1266)

 

고려중기의 애국적무관, 시인.

처음 이름은 중룡이였다. 경상도 청도사람으로서 몸이 우람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였다. 젊었을 때부터 큰뜻을 품고 공부를 착실히 하였다. 거란침략군을 격퇴하는 강동성탈환전투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하였다. 공로에 의해 전주사록으로 되였다. 여기서 그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구제하기에 힘쓰고 토호들의 강탈행위를 억제하였으며 사건처리에서 범인적발을 정확히 하였다. 그는 법집행에서 엄정하였고 부당한것에 대해 굽히는 일 없이 자기의 립장을 지켰다.

몽골침략군이 나라의 북부변경을 침범하였을 때 무능하고 부화방탕한 지병마사 홍희가 파면되고 김지대가 대신하여 나가 40여개의 성을 안착시키고 국방에서 공로를 세웠다.

1260년에 정당문학, 리부상서라는 고위급관료로 되였다.

그는 문학에도 조예가 있어 시를 잘 썼다. 그의 시가운데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싸움터에 나가며》, 《유가사에서》가 널리 알려졌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싸움터에 나가며》

 

1217년에 지은 한자시.

 

나라의 걱정은 신하의 걱정이요

아버지의 근심은 아들의 근심이라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라 위해 싸우면

충성과 효도를 함께 다함이로다

 

이 시는 거란침략군을 격퇴하는 전투장에서 지었다. 시는 외적을 물리치는 싸움에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출전하는것은 충효를 다하는 길이라는 애국정신을 진실하게 토로하였다. 이것은 김지대가 자기의 심정과 각오를 사실그대로 표현한것으로서 전장에 나온 군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잘 말해준다.

거란침략군을 물리치는 전투준비가 완료되였을 때였다. 원수 조충이 아군진지들을 돌아볼 때 군사들이 들고있는 방패의 꼭대기에 사나운 짐승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이 그림은 아군이 지닌 멸적의 기세를 상징하고 사기를 고무하는 반면에 적들에게는 정신적위압감을 주기에 넉넉하였다. 그것을 보고 조충은 기분이 좋았다. 통쾌하게 웃으며 활달하게 걸음을 옮기던 조충은 한 군사의 방패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동시에 웃음소리도 뚝 멎었다. 그 군사의 방패에는 사나운 짐승그림이 아니라 시가 한수 적혀있었던것이다.

조충이 군사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청도사람 김중룡이올시다.》

《너는 왜 방패에 시를 썼느냐?》

《아버지를 대신하여 출전한 군사로서 충효를 다할 결심을 적어들고 나가서 적과 싸울 때 용맹을 떨치자고 이 시를 썼습니다.》

《음, 그러니까 손에는 검을 들고 마음은 시를 외우며 충신, 효자답게 싸우겠단 말이지. 어허, 이 가슴도 격동되노라.》

조충은 그를 군막에 데리고 가서 중요한 임무를 맡기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김지대는 그후 전주사록으로 되였다고 한다.

 

무신정권의 실력자와 대결한 김지대

 

이 이야기는 김지대가 전라도 안찰사로 있을 때부터 시작된다. 무신정권의 실력자 최이의 아들 만전이 진도의 한 절간에 와서 흥청거리고있었다. 도읍지에서도 굴레벗은 망아지처럼 제마음대로 돌아치던것들이 지방에 왔으니 그 방종함은 이를데 없었다. 만전은 심복졸개들을 내보내여 백성들의 집을 략탈하고 관가에 저들의 요구를 강요하도록 하였다. 심복들가운데서도 통지라고 부르는자가 몹시 불손하고 악착하게 놀아댔다.

안찰사 김지대는 만전이 무엇을 내라고 부당한 강요를 할 때면 굽어들지 않고 듣기 좋은 말로 물리치거나 묵살해버렸다.

그러는 가운데 한번은 김지대가 만전이 들어있는 절간을 찾아갔다. 한개 도의 안찰사가 찾아갔는데도 교만하고 방자하기 이를데 없는 만전은 성이 잔뜩 나서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욕을 퍼붓고 만나지조차 않을 잡도리였다.

김지대는 속으로 《흥!》하고 코방귀를 뀌였으나 겉으로는 태연자약한 태도로 텅 비여있는 마루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여러가지 악기들이 놓여있었다. 방에 들어선 김지대는 악기들중에서 저대를 하나 집어들고 배포유하게 몇곡 불었다. 그가 저대를 불며 슬그머니 곁눈질해보니 어떤 총각애 하나가 창틈으로 들여다보다가 홀짝 돌아서 나가는것이였다. 틀림없이 만전이가 보낸 심부름군이였다.

(속이 클클해진 모양이군.)

김지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모르는척하고 이번에는 거문고를 들어다 무릎우에 놓았다. 웅글게 울리는 거문고소리가 비장하게 흘렀다. 원한에 사무친 뜻있는 사람들의 울분인양 비장한 거문고소리는 천정에 부딪쳐서 산산이 부서지며 쏟아져내렸다.

거문고를 타던 김지대의 손이 뚝 멎었다. 자기의 배심은 든든하다는것을 보여주었으니 이제는 만전이가 나와 만나겠으면 만나고 안만나겠다면 돌아서 갈판이였다. 이때 만전이가 유들유들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살살 눈웃음을 웃으며 마루방에 들어섰다.

(그러면 그렇겠지. 송곳방석우에 앉은 놈이 엉치를 먼저 들기 마련이지.)

이러한 속마음을 감추고 김지대는 마주 웃으며 그를 맞아들였다. 두 사람이 다같이 속에 시퍼런 칼을 품었음에도 인사말들은 귀맛을 돋구었다.

《내가 몸이 좀 불편하여 자리펴고 누워있다나니 공이 여기에 온것도 미처 몰라 안됐소이다.》

《병환에 계신줄 알았으면 미리 찾아뵙는것인데 이 사람이 늦게 와서 도리여 송구합니다.》

술상이 뒤따라 나오고 잔이 몇순배 돌자 만전은 제버릇 개에게 주지 못한다고 또다시 이것을 내오, 저것을 처리하오 하며 잔뜩 요구하였다. 김지대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것은 그 자리에서 풀어주고 나머지 요구들은 돌아가서 처리하겠으니 통지를 다시 보내라고 대답하였다.

돌아온 김지대는 만전의 요구따위는 잊어버린 사람처럼 전혀 해결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만전이 소식을 기다리다 못하여 또 통지를 보내왔다. 통지는 오자마자 뻣뻣한 말투로 독촉하였다.

김지대는 벼락같이 호령했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묶어서 란장을 쳐라!》

군졸들이 달려나와 통지를 형틀에 꽁꽁 묶었다. 김지대는 통지놈의 죄행을 하나하나 따지며 단죄하였다. 당장에 형장이 스산해질 판이였다.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저놈이 고약한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 뒤에 최씨가문이 있는줄 어찌 헤아리지 못하십니까.》

《뒤에 누가 있든 국법은 어기지 못한다. 무엇을 하느냐! 되우쳐라!》

그날 란장을 맞고 늘어진 통지는 강물에 던져져서 죄많은 목숨이 끊어졌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가도 김지대와 만전이사이의 팽팽하던 분위기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잦아들고 말았다. 김지대는 끄떡하지 않았고 만전은 또 자기나름대로 《이놈, 어디 두고보자.》하고 벼르기만 했을뿐이였다.

만전이란자는 후날의 최항이였다. 최이가 물러나고 최항이 실권을 잡았을 때 김지대는 여전히 벼슬길에 있었다. 최항은 김지대를 앙갚음하려고 이발을 갈았으나 일은 제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지대 역시 최항에게 조금도 굽어들지 않았다. 최항도 제아무리 김지대에게 오라를 지우고싶었으나 워낙 청렴결백하고 매사에 근실하며 조금도 실수가 없는 김지대를 잡아가두거나 내쫓을수는 없었다.

 

로인의 부탁을 잊지 않고

 

김지대가 젊었을 때였다. 한번은 성남에 간 일이 있었다. 길을 가는 그를 어떤 늙은이가 붙들더니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것이였다.

《로인님, 왜 그러십니까?》

《아, 늙은것이 하도 귀인상을 한 귀공자를 만나 너무도 신기해서 그럽니다. 참, 이 늙은이는 성남에 사는 천민이올시다. 관상쟁이는 아니오나 귀하게 될분은 가려볼줄 압지요.》

로인은 김지대의 한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소리쳐 불렀다.

《예.》하는 대답소리에 뒤따라 길옆에 있는 초막의 부엌문이 열리며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가 달려나왔다.

《내 외동딸이올시다.》

로인은 이렇게 소개하고나서 딸에게 독촉했다.

《어서 이 귀인에게 절을 올려라.》

로인은 김지대를 억지로 저의 오막살이로 데려가더니 마당에 자리를 펴고 간소하게나마 식사대접을 하였다. 헤여질 때 로인은 딸과 함께 마을어구까지 따라나와 헤여지기 섭섭해하면서 부탁하는것이였다.

《후날에라도 귀인께서 이 고장 천한 사람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 일이 있은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전라도 안찰사로 되여 전라도에 내려가보니 《도적패》라는 루명을 쓴 농민 여러명이 옥에 갇혀있었다. 김지대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장에 나가 뼈가 굵어진 사람으로서 그때 함께 싸우던 군졸들 대부분이 농사군이였던 생각이 나서 무슨 사연으로 옥에 갇혔는지 알아보았다.

《도적이란 말이 어인 소리오이까. 저희들은 관가가 등살을 깎고 토호들이 오장을 녹여 살래야 살수 없어 조세를 낮추어달라고 호소하였을뿐이올시다.》

사회의 밑바닥에 차고넘친 이 원한이 착취사회제도에 뿌리를 두고있다는것을 그가 어찌 알수 있었으랴. 그러나 무신통치의 악페와 탐관오리들때문이라는것은 짐작하고있었다. 옥에 갇힌 죄없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가슴은 답답했다.

수염이 시커먼 수인이 나가고 다음으로 불리워나온 사람은 중년기에 들어선것 같은 수척한 녀인이였다.

(저 녀인도 도적패란 말인가?)하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데 들어서던 녀인이 얼어붙은듯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것이였다.

《너 어째서 그러느냐?》

김지대의 엄엄한 물음에 녀인은 울먹이면서 대답하였다.

《대인께서 저를 모르시겠소이까.》

《너 그게 어인 말이뇨?》

《대인께서 20여년전 성남에서 한 로인의 집에 들리셨던 기억이 나시오이까?》

생각났다. 그러나 그것뿐이였다.

《생각난다.》

《천민이 그때 그 로인의 외동딸이올시다.》

《무엇이?!》

김지대는 너무도 놀라워 벌렸던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때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며 꿇어앉아 자기를 올려다보는 녀인의 얼굴과 합쳐졌다.

《그런데 너의 아버지는 어디 가고 너는 무슨 까닭으로 옥에 갇힌 몸이 되였느냐?》

녀인은 한동안 어깨를 떨면서 섧게 울고나서 띠염띠염 대답하였다.

《천민의 아버지는 농사군들이 들고일어났을 때 따라갔다가 관가에 잡혀가 돌아가시고 저는 애매하게 도적의 딸이라고 하여 도적패라는 루명을 쓰고 옥에 갇혔소이다.》

《네가 도적이라고?!》

김지대는 노했다. 당장 죄없는 이 농민들을 다 놓아주어 바쁜 농사철에 낟알을 가꾸게 하고싶었다. 그렇지만 당장은 참아야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역적의 루명을 쓰고있는것이다. 도적패는 역적과 같다. 잡으면 효수(목을 베여 높은 곳에 매다는것)을 해야 한다. 이러한 중죄인들을 놓아주었다가는 놓아준 사람도 역적을 도와준 공모자로 처벌되여야 한다.

김지대는 입을 다물고 앉아있다가 드디여 결심하였다. 그는 누가 보기에도 뻔한 도적 아닌 녀수인부터 석방시키라고 결연히 령을 내렸다. 김지대의 타산은 이 녀인부터 석방하여 역적의 루명을 벗겨줌으로써 20여년전에 후날에 가서도 자기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하던 늙은이의 부탁을 들어주며 석방된 녀인을 통하여 갇혀있는 《죄인》들의 무죄근거와 증인들을 알아보게 하자는것이였다.

녀인이 석방되자 사람들속에서 별의별 소리가 다 나왔다.

《아무개 아버지인 그 로인은 본래 점쟁이였는데 지나가는 한 선비의 관상을 보고 후날 귀인이 되여 옥에 갇혀 죽게 될 자기 딸의 운명을 부탁했다나. 그 귀인이 지금 전라도에 내려와있는 관찰사라누만.》

《무슨 소리인지. 아무리 점쟁이인들 20여년후에 있을 일까지 어떻게 알아서 그런 부탁을 했을라구.》

《그러기에 점쟁이가 용하면 하늘의 큰 뜻도 다 안다는게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네. 그 로인은 그때에도 무던하게 생긴 선비들을 보면 누구든 자기 집에 데려다가 소박한 음식이라도 대접하면서 나라위해 옳은 일을 하고 농사군 백성들의 억울한 처지를 위해주는 사람이 되여달라고 부탁하였대. 이번에 온 안찰사도 그중의 한 선비래. 그 선비가 오늘에 와서 로인의 딸을 구원해준거야. 민심이 천심인때문이지.》

그렇다. 김지대의 곧은 품성과 성실한 태도는 이렇게 오래전에 받은 농사군의 부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있었으며 이번에 안찰사로 내려와서도 역적의 루명을 억울하게 쓴 불쌍한 농민들을 구원해주었는데 그 가운데 20여년전에 만났던 농민의 딸도 들어있었던것이다. 그 농민의 딸을 이렇게 만난것은 우연이였다. 그러나 그 우연한 기회에 백성들의 억울한 처지를 동정하는 김지대의 곧은 품성이 나타났던것은 필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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