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인  경

(?ㅡ1235)

 

고려중기의 관료. 합문지후 김영고의 아들이다. 처음 이름은 김량경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직사관, 기거사인, 추밀원 우승선, 형부상서, 리부상서 등을 거쳐 중서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 1218년 12월 서북면원수 조충의 중군판관이 되여 출전한 그는 자진하여 몽골군과 동진군의 동정을 정찰하기 위해 정병 1 000명을 이끌고 그들을 찾아갔으며 기묘한 전술로 강동성전투(1219년)를 승리적으로 결속함으로써 거란침략군을 물리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몽골군과 동진군의 합진과 자연 등은 고려군의 명사격술과 위용에 위압되여 감탄하면서 연회를 베풀어 그를 웃자리에 앉히고 극진히 환대하였으며 고려와 몽골 두 나라가 형제적인 화친관계를 맺자는 편지를 그에게 주어보냈다. 1227년 9월 김인경은 리규보, 임경숙, 유승단, 권경중 등과 같이 수찬관이 되여 《명종실록》을 편찬하였다. 이해 10월 동진군이 침입하였을 때 중군병마사로 출전하여 의주(덕원)전투에서 패전한 죄로 충주목사로 강직되였다. 곧 다시 형부상서로 등용되여 중서시랑으로 있다가 죽었다. 그는 문무를 겸비하고있었고 행정실무도 잘 보았으며 예서를 잘 쓰고 시부도 잘 지었다. 그러므로 당대 류행한 시부는 량경시부체라고까지 불리웠다. 고려때의 가요작품으로 《한림별곡》이 있는데 거기에 《량경시부》라는 말마디가 들어있다. 그가 지은 시들가운데서 《룡상뒤 장지에 쓰노라》, 《돌의 굳음을 빼앗지 못하리》가 유명하다.

 

《룡상뒤 장지에 쓰노라》

 

한자시.

 

화원의 붉은꽃은 거울속의 그림이요

궁안의 버들가지 비단실을 늘였는데

목구멍과 혀바닥이 천가지 재간을 다 부리니

꾀꼴새가 도리여 사람들을 비웃네

 

이 시는 당시의 왕의 두리를 맴도는 간신들을 풍자하여 지은것이다.

룡상은 왕이 앉아서 신하들의 조회(아침 모임)를 받던 의자이다. 장지는 종이나 비단같은것을 발라서 큰 병풍처럼 만든것인데 이 시에서 룡상 뒤에 있는 장지란 왕의 주위인물들을 상징하고있다.

이 장지에 울긋불긋 그린 꽃은 요염한 녀자들을 가리키고 궁안의 버들가지는 간사한 신하들의 관복에 둘러있는 술대를 념두에 두고있다. 그리하여 시의 첫 두줄에는 왕의 두리에 온통 간사한 녀자들과 간신들이 에워싸고있다는것이 강조되고있다. 이것은 말을 바꾸어하면 왕이 요사한 녀자와 간신만 좋아하고 그런것들만 자기 주위에 끌어당겨놓았다는것으로 된다.

왕을 둘러싸고있는 이런자들이 어떤짓을 하는가 하는것이 시의 제3행ㅡ4행에서 폭로풍자되고있다. 그자들은 온갖 미사려구와 험구로 왕을 녹여내고 사람들을 쏠아댄다. 그들의 나풀대는 혀놀림은 꾀꼴새마저 비웃을 정도이라는것이다.

시에서는 단어들이 가지고있는 2중의 뜻을 살려 폭로풍자하는 내용의 본색을 생동하게 강조하는 수법을 적용하고있는 점에서 우수하다.

화원의 빨간 꽃은 거울속의 그림이라는 시행은 꽃이 녀인을 상징하는것으로 하여 왕의 두리에서 알랑거리는 요염한 녀자를 폭로풍자하고있다.

궁안의 버들가지 비단실을 늘였다는 시행에서 비단실을 늘였다는 말을 《사륜》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사륜》은 실을 늘인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왕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명령이나 지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시행은 간신들이 쏠아대는 말에 넘어가서 왕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것을 폭로하기도 하고 간신들이 왕의 지시요 뭐요 하면서 저들의 그릇된 짓을 합리화하는 행실을 신랄하게 폭로풍자한것으로도 된다.

시의 제3행에서 《목구멍과 혀바닥》을 《후설》이라고 표현하고있는데 이 말은 간신들이 목구멍 아프게 혀바닥을 놀리는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후설》은 《후설지신》 즉 왕의 두리에서 언론사업을 담당한 신하를 의미한다. 따라서 왕의 두리에 있는 후설지신들이 간신행위를 한다는 말뜻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돌의 굳음을 빼앗지 못하리》

 

한자시.

 

하늘땅이 열린 다음

만가지 물질이 생겼네

그중에서 돌은 성질이 굳어

누구도 그 굳음 빼앗지 못하리

 

세게 치면 깨여지긴 해도

쪼각마다 성질은 그대로 남나니

모습은 땅을 닮고

굳은 성질은 하늘에서 받았도다

 

쇠는 녹아 그릇됨을 딱해하고

구리는 변해 돈 되는것 부끄러워하거니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여

그 마음 돌처럼 변하지 말라

 

시는 어질고 착한 사람이라면 어떤 역경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주제사상적내용을 노래하였다. 시인은 그렇게 하는것이 곧 세상만물의 리치에 맞고 인간의 본분을 지키는것이라는것을 강조하였다.

시인은 자기의 주장을 형상적으로 강조하기 위하여 돌의 굳은 성질을 두가지 사물현상과 련결시키고있다.

하나는 돌이 강한 타격을 받는 경우 깨여져 쪼각돌들로 될지언정 절대로 굳은 성질은 잃지 않는다는것이다. 이것은 어떤 역경속에서도 한번 다진 맹세와 굳은 지조는 절대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사상을 담고있다.

다른 하나는 돌을 쇠나 구리에 비긴것이다. 쇠는 굳다. 그러나 그 굳은 쇠도 불에 녹여서 그릇들을 만들면 그 성질이 달라지니 부끄러운 일이고 구리는 귀한 금속이지만 녹여서 거푸집에 부으면 돈으로 만들어지는것이 수치스럽다. 사람은 그 어떤 경우에나 그 성질이 달라지지 않는 돌처럼 변함없는 굳은 마음을 간직하여야 한다는것이다. 이처럼 그 어떤 모략과 간계에도 끌려들지 않으며 어질고 착한 마음 간직하고 대바르고 성실하게 살려는 시인ㅡ서정적주인공의 지향에는 나라를 위험한 궁지에 몰아가고있는 간신들에 대한 저주의 감정과 함께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는 우국의 마음이 깃들어있다. 시는 참된 인간들이 청렴결백하고 성실하며 굳세게 살것을 호소한것으로 하여 당시의 진보적인 시문학에 속하게 되였다.

 

애국충정이 낳은 대담성과 지략

 

1219년 1월 조충, 김취려장수들이 고려군을 인솔하고 강동성에 침입한 거란군을 쳐서 항복받을 때 있은 일이다. 조충이 김인경을 중군의 판관으로 임명해달라고 추천하였다.

거란침략군이 국경을 넘어 침입해올 때 그 꼬리를 물고 몽골군 원수 합진이 군사 10 000명을 이끌고 뒤쫓아왔으며 동진국에서도 원수 자연이 20 000의 군사를 끌고 달려들었다. 합진과 자연은 서로 합세하여 겉으로는 거란을 치겠다고 표방했으나 속심은 우리 나라 서쪽 내륙의 요충지들을 장악하자는것이였다. 그들은 화주, 맹주, 덕주를 거쳐 곧추 강동성으로 육박하였다.

거란군이 침입했을 때 조충 등이 고려군사를 진격시켜 동곡에서 적군에게 타격을 가하고 곧추 성주로 나가 적과 격전을 벌렸다. 격파당한 적군이 달아나려고 기도하였으나 고려군이 퇴로에서 요격할것이 두려워서 강동성을 강점하고 그 안에 들어박혔다. 이리하여 강동성을 향해서 이쪽에서는 고려군의 창날이 서슬푸르고 저쪽에서는 몽골군과 동진군이 시시각각으로 등살을 노리며 다가들었다.

이런 때에 큰 눈이 쏟아져내렸다. 산도 벌도 눈에 파묻히고 길조차 막혔다. 이렇게 되자 몽골군과 동진군에서는 군사들이 극도로 피곤해지고 군량미가 떨어져서 굶주림에 시달렸다. 진퇴량난에 빠진 그들은 고려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조충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식량을 대주어 거란군격파전에 참가시키는 한편 몽골과 동진의 군대내부의 기도와 실정도 파악할 결심을 하였다. 결심은 섰으나 누구를 보낼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복잡한 임무를 감당해낼만 한 적임자를 얻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던것이다.

고심하고있는 조충에게 김인경이 찾아와서 자기에게 그 어려운 임무를 맡겨달라고 자청하였다.

조충도 김인경을 지목해보지 않은것은 아니였으나 그를 지금 하고있는 일에서 뽑는다는것도 선뜻 명령하기 어려워 망설였던 노릇인데 막상 본인이 자청하자 숨김없이 묻지 않을수 없었다.

《막중(참모부)에서 작전을 계획하며 참모일을 하는것이 그대의 직책이고 또 거기서 그대가 한몫을 크게 맡고있다. 그런데 위험을 무릅쓰고 정찰하는것은 그대에게 익숙한 일이 아닌지라 어째서 감히 가겠다고 자원하는가, 그리고 그대가 하던 참모일에 나는 구멍은 누가 메꾸겠는지 생각해보았는가?》

김인경은 이런 질문에 대답할 말을 미리 준비하고있었는듯 웃음띤 얼굴로 여유작작하게 자기 생각을 내놓았다.

《누구든지 나라를 위한 이 정찰에 한몸을 내대야겠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막중작전이야 제가 없어도 여기 남아있는 백전로장들이 할수 있지만 거란군을 치는 싸움에 몽골군과 동진군을 끌어들이는 한편 이 두나라 군사가 우리 나라에 대하여 어떤 기도를 가지고있는지 그 속을 뽑아내는 이 어렵고 위험한 일이야 우리 젊은 사람들이 맡아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라고 루루이 설득시켰다.

조충은 그래도 안심치 않아서 몽골진중의 군사적움직임을 보고 그들의 복잡한 속심을 판단하는 일을 문관인 그대가 감당할수 있겠는가고 근심하였다.

김인경이 그에 대해서도 확신성있게 대답했다.

《일찌기 듣건대 몽골군은 진을 펼 때 옛날 중국의 손오병법에 의거해서 작전한다고 합니다. 나도 소시적에 병서들을 읽었으므로 손오병법의 내용을 알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번 일에는 제가 직접 가려고 합니다.》

조충은 고마워서 가슴이 뭉클했다. 자기가 고심하던 적임자가 스스로 나서서만이 아니였다. 보다 중요한것은 자기가 이 싸움을 지휘하게 되면서 김인경을 종군판관으로 추천했는데 사람을 잘못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가슴가득히 차올랐기때문이였다.

조충은 정예군사 1 000명과 쌀 1 000석을 김인경에게 맡기면서 부디 살아서 승전하고 다시 만나자고 고무격려하였다.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떠났으나 김인경네 부대가 가는 앞길은 그야말로 어렵고 험난한 길이였다. 깊은 눈을 헤치고 묻혀버린 길을 열면서 가는 길이였으므로 정예병들도 말들도 몇리를 못가서 헉헉거렸다. 언제 거란군이 기습해올지 모를 일이였다. 그리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몽골군과 동진군에게 고려군사의 위용과 체모를 과시하자면 이 행군길에서부터 기진맥진하지 말아야 하였다.

김인경네 부대는 부단히 이동하는 몽골과 동진의 군대를 추적하다가 대주성 가까이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때 몽골군 장수 합진과 동진군 장수 자연은 거란군을 추격해오다가 대주성에서 한바탕 싸울 계획을 세우고 그 고을 서편에 있는 독산에 군대를 주둔시키고있었다.

김인경이 1 000명군사를 이끌고 쌀 1 000석을 고스란히 수송해가지고 도착하자 합진과 자연은 한편 기쁘고 한편 놀라워 어쩔바를 몰랐다. 김인경의 눈앞에 보이는 몽골과 동진군사들의 몰골은 기가 찰 지경으로 한심했다. 굶주린 얼굴색, 해여진 옷, 사기가 떨어져서 주눅이 든 대오, 이 상태로는 거란군과의 싸움에 끌어들인다 해도 크게 기대되는것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즉시에 이것을 간파한 김인경은 단호하고 기발한 결심을 채택하였다. 우리 고려의 정예병이 앞장서서 싸우자, 그래서 먼저 우리 군사의 기세를 올리자. 그리하여 거란군의 꼭뒤를 내리 누르는 한편 몽골군과 동진군에게도 고려군의 위세를 보여주자. 그러면 몽골군과 동진군이 거란침략군을 치는 고려군에게서 사기를 얻어 합세할것이고 우리 나라를 넘보는 몽골이나 동진의 장수들에게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길것이다. 김인경이 이런 결심을 한것은 정당했으나 당장 그의 휘하에는 겨우 먼길에 지친 군사 1 000명이 있을뿐이였다. 너무나 적은 인원이였다. 아무리 조건이 간고해도 그들의 힘을 발동해서 자기가 결심한 일을 기어이 해내야만 하였다. 기어이 넘어가겠다고 결심품고 나서는 사람앞에는 험산준령도 길을 열어주기 마련이다.

김인경은 마침내 묘한 수를 생각해내였다.

김인경은 고려군사로 고을의 서문밖에 네모박이 공격대형인 방진을 쳤다. 그것을 독산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라보던 합진과 자연 두 장수는 김인경의 작전의도를 몰라 의아한 눈길로 차후 전투행동을 궁금하게 기다렸다. 그런 가운데서 김인경은 넓은 전장에 1 000명이라는 작은 인원으로 방진만 쳐놓았을뿐 그들을 전투에 내밀 기색이 아니였다. 다만 20명의 사수가 활을 가지고 진지전방에서 사격위치를 차지할뿐이였다. 그러더니 한무리의 재인(예술인)이 북치고 쇠소리 웅장하게 울리며 진의 선두에 나왔다. 그들은 신바람이 나서 군악을 울리고 노래를 부르고 희한한 놀이 한마당을 벌려놓았다. 여기가 싸움판인지 야외예술공연장소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였다. 방진을 치고있던 고려군사들이 그 예술놀이에 맞추어 기세를 부쩍 올렸다. 몽골과 동진의 군사들도 언제 사기가 저락되였던가싶게 웃고 떠들었다. 성안에 매에게 쫓긴 까투리처럼 잔뜩 대가리를 틀어박고있던 거란군사들도 때아닌 풍악소리와 웃고떠드는 소리에 웬일인가 하고 성가퀴(성우에 쌓은 낮은 담)짬으로 머리를 내밀고 구경하였다. 바로 이때 사격태세를 취하고있던 궁수(활군)들이 성안으로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활쏘기에서는 한다하는 명수들이 날리는 화살은 얼굴을 내미는 거란군의 상판을 맞추었다. 나머지 적병들은 기절초풍하여 대가리를 싸쥐고 꽁무니를 뺐다. 고려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돌격했고 몽골과 동진의 군사들도 기세가 올라서 공격에 가담했다.

적을 무찌르고 대오를 정비한 합진과 자연은 김인경이 지휘하는 고려군사들이 규률이 째이고 전투행동이 정연하며 애국헌신의 기개가 높은데 탄복하여 김인경을 저들의 진영에 초청하여 웃자리에 앉히고 전승을 경축하였다. 전승고를 높이 울린 고려군사들은 몽골과 동진의 군사들을 굶어죽고 얼어죽을 위기에서 구원하여주었고 거란군을 격파하는 싸움에로 어깨겯고 나아가서 마침내 강동성전투에서 섬멸전을 들이댔다. 죽을 고비에 몰린 거란침략군은 성문을 열고나와 무릎꿇고 항복하였다.

 

어려운 고비에서도 배심이 든든하여

 

고종 14년(1227년)에 《명종실록》편찬을 끝낸 김인경은 또다시 북쪽으로 출전하여 외적을 격퇴하고 돌아왔건만 그 이듬해에 참소(남을 헐어서 웃사람에게 꾸미여 바치는 일)를 당하여 경상도 상주목사로 강직되여갔다.

전장에서 겹쌓인 피로를 풀사이도 없이 들이닥친 재난이였지만 김인경은 조금도 락심하지 않고 배심이 든든하여 길을 떠났다. 자기의 정당성과 결백함을 믿고 나라에 외적이 또다시 기여들어오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용약 달려나가 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지킬 결심이 되여있는 사람에게는 락심이란 있을수 없었던것이다. 아무리 강직한 사람에게도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의 감정은 있는것이니 김인경은 떠나가는 자기를 어느 친구하나 바래워주지 않고 다만 제자들 몇몇이 교외에까지 따라나와서 편안히 가시라고, 꼭 다시 만나자고 목메인 소리로 송별인사를 하자 가슴이 뭉클하고 심정이 쓸쓸함을 금할수 없었다.

이때만은 자기의 심정을 감추어두고싶지 않아서 김인경이 시 한수를 지어서 읊었다.

 

한 채찍으로 호적(거란적)을 거의 소탕했더니

뜻밖에 머나먼 남쪽땅에 쫓겨가는 신하되노나

귀한 제자들이 많이 전송하여주니

아! 감회도 깊어 눈물이 수건을 적시도다

 

하지만 김인경은 이런 서글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눈물을 흘린 감상세계에 오래 잠기지 않았다. 그는 교훈을 찾을줄 아는 사람이였다. 좋은 때 백날을 친한 친구가 어려울 때 순간을 사귀는 벗만 같지 않구나 하는것을 절감하였다. 그러면서 자기의 앞길은 제 힘으로 열어나가야 한다는 결심을 더욱 굳히면서 길을 다그쳤다.

그가 가는 길도중에 덕도라는 역이 있었다. 거기서 쉬여가게 됐을 때 김인경은 길을 오면서 생각한 교훈과 결심을 되살려 시 한수를 지어서 역사의 벽에 써붙여놓고 떠났다.

그가 떠나간 후에 젊은 선비 두사람이 이 역관에 들렸다가 김인경이 써붙여놓은 벽시를 읽어보았다.

한 선비가 목소리도 랑랑하게 시를 읊조렸다.

 

어찌 하늘을 향하여 원한의 심정을 품을소냐

귀양살이 오지마는 고을원이 되였거니

어느때건 령각에서 황각으로 오를 때면

원이 되여 오던 길이 재상길로 되리로다

 

《허허 참, 담이 앞산만큼 큰 어른이 지은 시인걸.》

《짓긴 잘 지었는데 허풍이 심하군.》

《그건 무엇을 두고 하는 소린가?》

《이것 보게나. 〈령각에서 황각으로 오른다〉는 이 말 말일세. 령각은 장수가 나가있는 지방의 관가를 말하는것이니 여기서는 고을원이 있는 곳인게고 황각은 중앙관청의 최고기관인데 벼슬이 뛰여오른다해도 이렇게 계단 차이가 까마득한데로 대번에 뛰여오르겠다니 허풍이 지나친게 아니고 뭔가.》

《이 사람아, 그래도 이 시에는 포부가 있고 배심이 있네. 그게 얼마나 좋은가. 나는 이 시를 쓴 어른이 꼭 시에 쓴대로 될줄 아네.》

《어째서 말인가?》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지만 아예 쳐다보지조차 않으면 올라갈수 있는 나무가 어디 있겠나.》

이런 이야기가 쫙 퍼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인경은 형부상서, 한림학사라는 급이 높은 중앙관원으로 올라갔고 련속하여 직위가 더 올라갔다.

사람들은 김인경이 어떻게 자기의 앞일을 그렇게 신통히도 맞히는가고 혀를 찼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배심이 든든하면 범도 잡고 하늘의 별도 따지만 매사에 쭈그러드는 사람은 닭의 목도 못 비튼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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