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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희 제 (?ㅡ1227)
고려후기의 무관. 원래는 군산도사람이였으나 그의 조상이 개경에 와서 살게 되면서 개경사람으로 되였다. 처음에는 감목관으로 되였다가 산원으로 승급하였으며 그후에 충청도안찰사로 되였다. 대담하고 지략이 있는데다가 의례경험이 있을뿐아니라 말재주가 있어서 외국사절을 접대하는 일도 잘하였다. 장군으로 전직되여 의주 분도장군으로서 당시 자주 기여드는 금나라와 동진국의 침략자들을 용감한 반타격과 능숙한 외교전술로 걸음마다 분쇄하였다. 1227년 전라도순문사로 전직되여 활동하던 중 당시의 집권자 최이의 미움을 받아 체포되게 되자 바다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김희제는 비록 무관이였으나 시문에도 능하여 외래침략자들을 격멸하는 전장에서 그리고 외교활동에서 사람들을 감탄케 하는 시들을 지었다. 그가 지은 시와 명시구들이 단편적으로 전해진다.
한자시. 이 시는 《고려사》에 올라있는데 제목이 없다.
장수로서 임금의 중임을 받고 외국과의 치욕을 씻지 못한다면 장차 무슨 낯으로 대궐의 의식에 참가할것인가 한번 장검을 휘두르며 만산(오랑캐산)을 가리키니 호적의 무리들이 막 쓰러져 넘어가누나
우리 용사들 산넘고 들을 지나 다섯강을 건넜나니 적군의 성곽이란 성곽 모두 재더미로 되였도다 축배를 드니 대장부의 심회 화창하기는 하다마는 돌아가야 님께 알릴길 바이 없으니 도리여 부끄러운 땀만 흘리노라
시는 김희제가 의주 분도장군으로 있을 때 금나라 장수 우가하가 마산에 주둔하면서 가만히 의주, 정주, 린주를 침략하였고 또 김희제가 서북면 병마부사로 임명되였을 때 우가하가 자기 군대를 몽골병으로 가장시켜 의주, 정주에 침입하려 하였으므로 석성을 공격하여 적을 크게 친 후에 지은것이다. 시에서는 외래침략자를 격멸하고 나라의 안녕과 겨레의 안정을 지켜낸 장수의 기쁨과 긍지가 노래되고있다. 시에서는 먼저 국경방비의 무거운 임무를 받은 장수로서의 자각과 책임감, 침략자를 용서치 않으려는 투쟁결의가 노래되였고 다음부분에서는 그러한 자각밑에 단호하게 외적을 쳐부신 환희와 격정이 반영되였다. 시는 외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한것을 기뻐하면서도 부질없는 걱정을 앞세우고 부끄러운 생각까지 고백하는 제한성을 나타내고있으나 그 어떤 외적의 침입도 기어이 물리치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애국충정이 깃들어있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졌다.
김희제의 외교술과 무관으로서의 기개
김희제는 풍채가 좋고 지혜와 용맹을 겸하였으며 력사에 정통한데다가 수완이 있고 언변이 좋으며 결패가 있어 당시에 권력자였던 최이의 신임을 받고 출세하게 되였다. 그는 외교술에도 능하였다. 김희제는 고종왕 8년(1221년)에 몽골사신이 우리 나라에 왔을 때 그들의 거치른 행동을 위엄과 수완으로 눌러놓아 이름을 날렸다. 몽골사신 저고여가 왔을 때는 고려측 접대관에게 불손하게 굴다가 연금당하는 일이 생겨 서로의 관계가 긴장된것을 김희제가 들어가서 존엄있게 타일러 저고여가 허리를 굽히게 만들었다. 그 다음번에 온 몽골사신 저가는 23명의 남자와 1명의 녀자로 구성된 일행을 데리고 와 나라의 선물을 내라고 희떱게 굴었다. 김희제가 담력과 지략이 있고 지식이 넓으며 외교경험과 수완이 많다고 하여 접대관으로 나갔다. 저가가 김희제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안지녀대왕이 사신을 보내고 접대받지 못하였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는가?》 김희제는 이렇게 무례한 위압자세를 취하는자에게는 더 고압강경자세로 대해야 한다는것을 알고있는 까닭에 히죽이 웃으면서 응수하였다. 《지난해에 귀국의 〈신세〉를 졌고 오늘에는 사절이 우리 나라에 찾아왔으니 영접하는 례식이라든가 나라의 선물을 증정하는 일에 대하여 감히 성의를 다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도호부(상대국의 지방통치기구의 하나)에서 직접 우리 사람 한명을 쏴서 그 생사를 아직도 알수 없는 형편이니 만약 살아나면 그대의 복으로 될것이요, 죽는 경우에는 사절일행이 반드시 구류당할것이다.》
또 한번은 몽골에서 희속불화가 사신으로 왔는데 왕이 환영연을 차렸다. 그런데 희속불화 등이 무례하게도 활과 화살을 가진채로 연회장에 들어가려고 하였다. 이때 김희제가 그들의 앞을 막아나서면서 가슴이 뜨끔하게 침을 놓았다. 《두나라가 서로 우방으로 되였으니 모두 례복을 갖추고 서로 회견해야 할것인데 이제 당신이 화살집과 활집을 띠고 연회에 출석하니 례의상 어떻다고 할것인가.》 오만한 희속불화가 어찌할바를 모르고 쩔쩔매면서 즉시에 무기를 풀어놓았다.
외국사신이 탄복한 명시구
김희제가 동진국사신을 접대하러 나갔을 때 있은 일이다. 그전에 이미 김희제가 여러번 외국사절의 접대관이 되여 몽골의 한다하는 사신들을 능숙하게 대하여 서북방 린근국가들에 그의 대담성과 지략이 널리 알려진 시기였다. 그러니 이번에 오는 동진국사신이 그 소문을 듣지 못했을수 없었다. 몽골사신들은 김희제의 능란한 외교술과 위엄에 제압되였던터이라 그것을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아무튼 동진국의 사신은 접대관 김희제에게 다른 방식으로 대하였다. 그 사신은 아마 자기의 문학적능력을 과신하는 사람같았다. 김희제와 첫 상면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동진국사신은 느닷없이 시 한구를 읊었다.
동군초보난(봄의 신이 이제야 따뜻한 날씨를 알리는구나)
이것은 김희제가 들으라는 소리이고 김희제가 이 시구에 짝을 맞추라는 의미였다. 이 사신은 김희제가 장수라는것은 알고있었지만 그가 한다하는 시의 능수인줄은 아마 알지 못하고있었던 모양이였다. 그래서 실패한 몽골사절과 다른 측면에서 외교적허세를 부려볼 심산인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타산은 오산이였다. 동진국의 사신이 시구를 읊는 소리가 멎자 마치 한사람이 첫시구를 외운데 련이어 다음 시구를 읊듯이 김희제의 입에서 시구가 터져나왔다.
북제이수한(겨울황제가 이미 추위를 걷어갔도다)
동진국사신은 이 시구를 듣자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김희제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뜻밖의 명시구에 놀랐던것이다. 무관인줄 알고있는 김희제의 입에서 이런 시가 나올줄은 꿈에도 몰랐던 동진국 사신은 자기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이라는 체면도 잊어버리고 다급히 물었다. 《무슨 의미로 이런 대구를 지었습니까?》 시짓기를 할 때 상대가 짝을 맞춘 대구에 대해 잘됐다 못됐다 하고 평하는 일은 있을수 있지만 무슨 의도로 그런 대구를 지었는가고 묻는것은 마치 서당 학생이 글뜻을 깨닫지 못해서 선생에게 해석을 청하는것처럼 한수 깎이고들어가는 말인줄 동진국사신이 어찌 모르겠는가, 벌써 그런 질문을 한것자체가 한수 깎인 자기 체면을 생각하지 못할만큼 탄복했다는 표현이였다. 김희제는 상대가 그럴수록 오히려 상냥한 어조로 품위있게 대답하였다. 《그대가 봄이라는 뜻으로 첫구를 읊었으므로 나도 그에 맞추어 화답하였을뿐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이 외국사신도 몽골사신들이 그러하였던것처럼 다시는 트집을 잡거나 허세를 부리지 못하고 김희제가 하자는대로 고분고분 응하다가 돌아갔다.
국경경비의 무거운 임무를 자각하고
김희제는 외교무대에서만 나라의 존엄을 지켜낸것이 아니라 나라의 변방을 지키는데서도 완강하고 헌신적이여서 적들의 침입을 절대로 용서치 않았다. 그는 고종왕 10년에 의주 분도장군이라는 의주지방의 경비사령관으로 있었는데 금나라 무관 우가하가 마산에 주둔해있으면서 도적고양이처럼 우리 나라 국경연선의 고을들에 기여들어온 일이 있었다. 김희제는 즉시 이놈들을 치자고 조정에 보고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출전명령이 없었다. 이런 때 승인없이 전투를 진행한다는것은 군법에 걸릴수 있는 일이였다. 그러나 외적이 침입했는데 한개 국경지구를 책임진 무관으로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을수 없었다. 김희제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무장한 병사 100명을 보내여 적장 우가하의 병영을 기습하였으며 적 3명을 포로하였다. 나머지 적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내빼다가 압록강에 빠져죽은 놈이 많았다. 여기서 또 물자를 가득 실은 적선 22척 등을 로획하였다. 비록 전투명령을 받지 않고 진행한 전투였으나 승리하였던 까닭에 조정에서도 아무말없이 김희제를 서북면 병마부사로 보내였다. 고종 13년에 금나라 장수 우가하가 자기 군대를 몽골병으로 가장시켜 또다시 의주, 정주에 침입하려 하였다. 이때 우리측의 병마사 리윤함이 별장 김리생과 대관승 백원봉에게 병사 200여명을 주어서 보내여 압록강을 건너가 적의 석성을 치고 선무부통 등 적 5명을 죽이였으며 말, 소, 병장기를 로획하였다. 그러나 적의 괴수 우가하는 잡지 못하고 돌아왔다. 병마부사 김희제는 판관례부 원외랑 손습경과 감찰어사 송국첨과 서로 의논했다. 《우가하가 우리 나라의 은혜를 배반하고 우리 변방의 인민을 략탈하나 방어하는자가 없으니 이는 국가의 수치로 된다. 응당 서로 협력하여 놈들을 쫓아가서 토벌하여 국가의 수치를 벗어야 한다.》 김희제는 이렇게 호소하고 보병과 기병 10 000여명을 선발하여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손습경은 좌군을, 송국첨은 우군을 각각 맡게 하였다. 그들은 20일분의 식량을 가지고 가서 석성을 공격하였다. 우가하가 군대를 보내여 성을 구원하려고 하였다. 김희제 등이 그와 맹렬히 싸워 적을 크게 이기고 70여명의 머리를 베였다. 이어서 석성을 들이치자 성주가 군사를 데리고 나와 항복하였다. 그는 손을 스스로 결박하고 입에 흙덩이를 물고 울면서 하늘을 향하여 항복을 맹세하였으며 포위를 해제하여달라고 애걸하였다. 김희제는 그들앞에서 우가하의 배은망덕한 죄를 규탄하고 돌아왔다. 이때 김희제의 심정은 착잡했다. 그는 적을 치러 갈 때 우유부단한 조정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다만 최이에게만 알리고 떠났던것이다. 싸움은 승리로 마무리되였으나 조정의 승인없이 출전했다고 간신들이 시비하면 일이 복잡하고 심각해질수 있었다. 김희제는 자기의 이러한 심정을 담아 청로진에서 시를 지었던것이다.
장수로서 임금의 중임을 받고 외국과의 치욕을 씻지 못한다면 장차 무슨 낯으로 대궐의 의식에 참가할것인가 …
우리 용사들 산넘고 들을 지나 다섯강을 건넜나니 적군의 성곽이란 성곽 모두 재더미로 되였도다 축배를 드니 대장부의 심회 화창하기는 하다마는 돌아가야 님께 알릴길 바이 없으니 도리여 부끄러운 땀만 흘리노라
송국첨이 이 시에 화답하여 시를 읊었다.
인(어진것)으로 등을 삼고 의(의로운것)로 날을 삼았으니 이것이 바로 장수(김희제)의 신기로운 칼이랍니다 바다를 향하여 한번 휘두르면 고래와 이심이가 도망치고 륙지를 향하여 한번 휘두르면 서우와 코끼리가 쓰러지거늘
하물며 저따위 만산(오랑캐산)에서 굶주리고 미친 개들이야 채찍끝으로 때려도 가히 제어하리라 아침에 다섯강을 건느고 저녁때에 개가를 드리니 한없는 기쁨에 봄빛이 만발하여라
손습경이 또 이 시에 화답하였다.
변방의 요새지엔 가마도 없고 종도 없어서 전공을 기록할데 바이 없다한들 시마저 없을소냐 판자에 한편 적어 후래자에게 알리려 하였더니 저마다 먼저 보려 쓰러지고 엎드려지네
옛날 맹명이 하수를 건너 진나라의 수치를 풀었으나 만약 공에게 비긴다면 응당 말석에 앉아야 하리 래년이라 또 돌아오면 천산을 평정하게 되리니 세번 쏘는 화살에 한번인들 헛발 있을손가
김희제는 두사람이 시로 자기를 위로하고 고무해주는데서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서울(개경)거리 거닐던 이내몸 바다속 사람으로 된단말인가?》
김희제가 전라도순문사가 되여 라주에 나가있을 때였다. 어느날 꿈에도 생각해본 일이 없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개경에서 김희제를 체포하려고 관리들이 들이닥친것이다. 그것도 김희제가 누구보다도 믿고 의지하던 최이가 보낸 관리들이였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엄연한 현실이였다. 최이가 김희제를 잡아들이라고 령을 떨군 리유는 무근거한것이였다. 얼마전 일이였다. 아직 김희제가 최이 가까이에 있을 때였다. 한번은 최이가 병을 만나 자리에 누웠는데 병이 심하여 도저히 차도가 없었다. 김희제도 근심이 되였다. 그래서 김희제는 관상쟁이인 중 연지를 찾아갔다. 그것은 연지가 최이의 상을 보고 이런저런 소리를 했다는 말이 귀에 들어왔기때문이였다. 찾아가서 알아보니 최이의 병이 별로 근심할것까지는 없을듯 하여 가만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김희제의 반대파인물이 물고늘어졌다. 그자는 최이를 찾아가서 《김희제가 연지를 찾아다니면서 공을 모해하려고 합니다.》라고 고해바쳤다. 의심이 많은 최이가 이 소리에 넘어가서 눈이 뒤집혔다. (겉으로는 나를 제 하내비처럼 따르는척 하더니 김희제 이놈, 네가 감히 길러준 주인의 발뒤꿈치를 무는 미친개노릇을 해, 이놈에게 군사들이 있은즉 그냥 뒀다가는 큰 랑패를 볼게 틀림없다.) 최이는 당장 김희제를 잡아들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이 이쯤 됐으니 김희제가 아무리 올라가서 그렇지 않다고 변명해보았댔자 최이가 그전날처럼 자기 말을 들어줄 까닭이 없었다. 일단 잡혀가는 날에는 그 지독한 최이네 감옥에서 목없는 귀신이 될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였다. 죽을바에야 남의 손에 맞아죽을게 있는가 제손으로 제 목숨을 끊는것이 깨끗하지. 이렇게 결심하니 한순간 당황하였던 가슴이 어느정도 진정되였다. 《아무래도 죽는바에야 한마디 할 말을 남기고 죽겠으니 너희들은 거기서 잠간 기다리라.》 그는 죽음에 림박한 사람같지 않게 태연자약한 기색으로 시 한구절을 읊었다.
백가지로 돌보아준 님의 은혜를 갚고저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며 몸을 잊고 충성다했더니 어이타, 하루아침에 님의 버림 받아 서울(개경)거리 거닐던 이내몸 바다속 사람으로 된단말인가?
읊기를 마치자 김희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서울인 개경쪽을 바라보았다. 최이는 자기가 믿고 키워준 김희제가 배반했다고 체포령을 내렸지만 이 시각 김희제는 자기가 그처럼 믿고 충직하게 받들어준 최이가 죽이려고 하는데 대해 지금까지 느껴본일이 없는 허무감과 분노, 원한으로 몸을 떨었다. 전쟁판을 메주밟듯 하던 무관의 폭발적인 분격은 곁에 있던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무서웠다. 그를 잡으러 내려왔던 관원들도 멍청하니 김희제의 행동을 바라보고있을뿐이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희제는 성큼성큼 섬돌을 내려서서 관가의 큰문밖으로 나가 바다가 바위우에 올라서더니 따라오던 사람들이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바다물에 몸을 던졌다. 김희제는 나라를 위해 외적과는 무자비하게 싸워이긴 용맹한 애국장수였으나 나라를 어지럽힌 무신통치의 해독성을 알지 못하고 그 우두머리의 한 사람인 최이를 믿고 따르다가 종당에는 그 최이때문에 자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렇듯 곡절많은 그의 운명이 그대로 그의 창작에도 반영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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