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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세 재 (1132ㅡ1193)
고려시기의 시인. 자는 덕전이다. 고려중엽에 활동한 《해좌칠현》의 대표적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시절에 벌써 깊은 지식과 뛰여난 창작적재능을 보여주어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그는 머리가 뛰여나게 좋은데다가 글읽고 시짓기를 즐겨하였고 탐구심이 강하여 공부하는 속도가 빨랐다. 그러나 과거에는 별로 관심하지 않았고 과거시험을 위한 문체를 습득하는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다나니 과거를 보아도 합격하지 못했고 애초에 과거급제하려니 하고 생각하지조차 않았다. 나이 50대에 이르러서야 과거급제라는것을 하였지만 원래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량반선비의 도리와 체모를 지키려고 하지 않다나니 집권자들에게 용납되지 않아 벼슬을 받지 못했다. 이런 형편에서 이름있는 문인 리인로가 그의 사람됨과 재주가 아까워서 세번씩이나 그를 추천하였지만 끝내 부결되였다. 오세재자신은 부결이 되겠으면 되라지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로 집권세력에게 굽어들지 않고 계속 학문탐구와 창작에만 전심하였다. 모진 생활의 고통속에서 당대현실에 대한 불만을 품고있던 그는 무인통치배들에 의하여 정계에서 배척당하고 불우하게 살고있던 리인로, 림춘, 조통, 황보항, 함순, 리담지 등 시인들과 시회를 뭇고 서로 깊이 사귀였고 시로써 당대현실을 비판하였다. 오세재는 리규보와도 창작적련계를 맺고 그에게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오세재의 시작품들은 《동문선》과 《대동시선》 등에 실려 전해지고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창바위》와 《눈을 앓으며》를 들수 있다. 오세재는 환갑을 바라보는 늘그막에 과거급제는 하였으나 벼슬을 받지 못한 몸으로 불우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다가 경주지방으로 유람하던중에 생을 마쳤다. 시인 오세재자신이 불우하였던것처럼 뛰여난 그의 문학작품도 대부분 흩어져서 후세에 전하여지지 못하였다.
《 창 바 위 》
한자시.
북쪽 령우에 아아히 솟은 바위 사람들은 그를 일러 창바위라 부르네 소소리 높이 솟은 서슬푸른 그 기상 마치도 하늘을 찌를듯하구나
번개불로 긴 창자루 벼리였나 찬서리로 뾰족한 날을 세웠나 창바위같은 병장기를 만들어 얄미운 원쑤놈들 무찔러버리리라
시는 원쑤무리들을 짓부셔버리고 나라의 안정을 이룩할데 대한 애국적지향을 격조높이 노래하였다. 창바위는 명산들에 흔히 있는 바위이름이다. 개성에는 북쪽의 천마산에 창바위가 있다. 시에서는 번개불로 자루를 길게 맞추고 서리발로 날을 벼린듯 한 우뚝솟은 창바위의 억센 기상에 비유하여 원쑤무리를 짓부셔버리고 정의와 나라를 지킬 강의한 애국사상을 표현하였다. 하늘높이 곧추선 바위의 모양과 기상을 세부적으로 정확히 포착하고 그것을 애국적사상감정과 결부하여 위엄있고 격조높게 노래함으로써 12세기 시가문학으로서는 보기 드물만큼 높은 사상성과 품위있는 형상성의 조화를 이룩하였다. 또한 능란한 과장과 재치있는 비유, 수사학적감탄 등 여러 수법들을 적중하게 살려 격동적인 시상과 씩씩한 양상에 어울리는 예술적형상을 창조하였다.
소년열정가의 노력
소년시절은 아무리 철이 일찍 들고 글공부하기를 남달리 좋아하는 아이라 하여도 역시 년령적특성이 있어 장난이 심하며 놀기 좋아하고 한가지 일을 직심스럽게 계속해나가기 갑갑해하는 나이이다. 오세재는 그런 소년시절에 글공부를 시작하였다. 천성이 자유분방한 오세재였으니 어릴 때부터 누가 억지로 시켜서는 굴레벗은 망아지같은 이 소년을 책상앞에 붙들어둘수 없었을것이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세재는 소년시절부터 집안 어른이 강요한것도 아닌데 제스스로 책상에 붙어앉아 떠날줄 몰랐다. 그가 글공부에 일찍부터 취미를 붙이게 된데는 형들의 말없는 영향이 컸다. 큰형 세공, 둘째형 세문이 피타게 공부하는것을 제 눈으로 본 오세재는 자기도 그렇게 공부해야 한다는 자각을 가지게 되였던것이다. 막상 글을 읽어보니 하나씩 지식을 터득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까다롭고 모를것이 많았다. 그럴수록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글공부에서 형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승벽을 자극하였다. 어린 세재가 글공부에 열성을 부려나갈수록 그의 부모는 이 아들에게 대여줄 교재가 딸리는것이 근심되였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비싼값을 주고 책을 사서 대줄 형편이 못되였던것이다. 부모들이 이런 근심을 하는것을 눈치챈 오세재는 당돌한 생각을 하게 되였다.
《얘, 너 무슨 책을 그리 정신없이 베끼느냐?》 형들이 물었지만 세재는 들은둥만둥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베끼기만 하였다. 형들이 궁금해서 책뚜껑을 들춰보니 그것은 경서였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도 분수가 있지 이발도 나지 않은 주제에 콩밥 먹겠다는 격으로 아직 어린것이 힘든 교재인 경서를 얻어다 베끼는것이 아닌가. 한편 놀랍기도 하였으나 벌써 경서를 공부하겠다고 접어드는 동생의 대담성과 열성 그리고 그동안 공부의 키가 쑥 자란것이 대견하였다. 《얘, 너 벌써 경서공부를 하겠다고 베끼니?》 그 말에는 오세재가 가만있지 않았다. 《못배울게 뭐요.》 《그래 한가지도 아닌 6가지 경서가 한두책도 아닌데 그 많은 책을 매번 이렇게 베껴서 공부하겠다는거냐?》 《어찌겠소. 그 많은 책을 살 돈이 집에 없으니 제손이 보배라는데 이 손으로 베껴서라도 공부해야지요.》 《시작은 좋다만 꽤 끝까지 해내겠니?》 《사나이 말 한마디가 천금 무게라고 했는데 한번 시작한 일을 끝장내지 못하면 졸장부지요.》 소년 오세재는 과연 자기의 결심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그는 방대한 량의 6경을 남의 집에서 빌려다가 처음부터 마감까지 다 제손으로 베껴서 공부하였다. 제손으로 베껴 본 책이니 한번 배우기만 하면 기억력이 좋은 소년의 머리에 책의 내용이 쏙쏙 들어갔다. 이렇게 공부하는것이 좋은것은 둘째치고 글공부를 하기 위해 좋은 조건이 마련되기를 앉아서 팔짱끼고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제힘으로 그 조건을 마련하면서 공부하는 기풍이 강해져서 좋았다. 력사에 소년시절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공한 문인들과 장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제손으로 방대한 량의 힘든 교재를 다 베껴서 공부한 그런 소년열정가, 소년노력가는 드물었다. 이렇게 공부한 오세재였지만 봉건사회의 통치배들은 그의 재능이 나라를 위해 발휘되도록 해줄 대신 한생을 가난과 불우한 처지에서 보내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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