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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 명 설 화
겨울날이
전하는 이야기 해방된 조국의 첫 겨울이였던 주체34(1945)년 12월 어느역앞 개울가에서였다. 그곳에서 빨래하는 한 소녀의 언손을 녹여주는 고마운 은인이 있었다. 그분은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당시로 말하면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께서 함경북도에서의 사업을 끝마치시고 돌아오시는 길이였다. 역구내에 머무르고계시던 그이께서는 아침일찍 역앞의 마을을 돌아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있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소녀를 보게 되시였다. 맨머리바람에 기운 옷을 입고 개울가에 앉아 얼어드는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빨래를 하고있는 그의 모습은 김정숙동지에게 가슴 아프게 안겨들었다. 급히 소녀에게로 다가가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추운때 네가 맨발로 나와서 얼음구멍을 까고 빨래를 하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하시면서 추위에 꽁꽁 얼어든 그의 두손을 꼭 감싸쥐시였다. 그러신후 집은 어디며 이름은 무엇인가, 나이는 몇인가, 집에는 부모들이 있는가 등 그의 생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친부모의 살뜰한 정과 따뜻한 손길에 소녀는 너무도 일찌기 헤여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정이 되살아나 흐느끼였다. 그 소녀는 4살 되던 해 아버지를 잃고 이듬해부터 지주집 아이보개로 들어가 14살이 되는 그때까지 남의집 머슴살이를 해왔다. 해방이 되였으나 의지가지할데 없는 그는 여전히 종전대로 생활하고있었다. 이러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김정숙동지의 가슴은 터지는듯 아프시였다. 그이께서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네가 남의 집에서 구박을 받으며 일만 하다나니 이렇게 키도 크지 못했구나라고 하시고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소녀의 애처로운 정상에서 그와 같은 이 나라의 수많은 어린이들의 모습을 그려보신듯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윽하여 소녀의 두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의지가지 없다고 슬퍼 말아라.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너희들의 아버지이시란다. 지금 장군님께서는 너같은 아이들이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시기 위하여 애쓰고계신단다. 남의 집살이도 인차 끝날터이니 머리를 쳐들고 떳떳이 살아야 한다. 이제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를 잘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가는 훌륭한 일군이 되여야 한다.…》 순간 소녀는 가슴이 뜨거워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일찌기 부모를 잃고 혈육의 정이란 받아보지 못한 자기에게도 그렇듯 따뜻이 품어주고 동정해주고 앞길을 걱정해주는 어버이품이 있다는 생각이 가슴에 밝은 해빛처럼 스며들었던것이다. 그날 몸소 팔소매를 걷어올리시고 빨래를 빨아 그릇에 담아 소녀에게 주시면서 그 발이 다 얼겠다고, 어서 들어가보라고, 이때까지 고생속에 살아왔으니 이제부터 보란듯이 활개치며 살아야 한다고 하시며 힘껏 떠밀어주시던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의 인자하신 모습은 온 겨레의 가슴에 뜨겁게 새겨져있으며 봄빛같은 그 미소는 오늘도 이 강산에 넘쳐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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