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10월 11일 《우리 민족끼리》

 

 민족의 원시조를 찾아주신 불멸의 업적 길이 전한다

 

10월 11일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단군릉이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창조물로 훌륭히 개건된지 20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온 겨레는 신화적존재로 여겨오던 단군이 민족의 시조라는것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단군릉을 훌륭히 개건하도록 하시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불멸의 업적을 감회깊이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단군릉발굴사업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민족의 원시조를 찾게 되였으며 우리 나라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동방의 선진문명국이고 우리 민족이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이라는것을 떳떳이 자랑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단군은 지금으로부터 반만년전에 오늘의 평양에 수도를 정하고 동방에서 처음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우리 민족의 원시조이다.

단군이 태여나고 성장하던 때는 원시사회말기 부유해진 특권층과 공동체의 일반성원들사이의 빈부차이가 커지고 그 대립이 격화되여가던 시기였다.

단군은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창쓰기, 칼쓰기 등 무술을 련마하였으며 자연과 사회의 리치를 알기 위해 애썼다. 그 과정에 원시공동체사회가 안고있는 일련의 심각한 사회정치적문제들을 해결할 원대한 포부도 품게 되였다. 그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추장이 된 단군은 원시적인 정치기구를 부족들사이의 대립을 억제하기 위한 폭력기구로, 보다 강력한 권력기구로 점차 개편하여나갔다. 이러한 사회적변혁에 기초하여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단군은 마침내 반만년전인 B. C. 30세기초에 우리 나라 력사상 첫 고대국가를 세웠다. 이때 세운 나라의 이름을 옛 기록에서는 《조선》(고조선)이라고 하였고 그 건국자를 《박달임금》이라고 하였다. 후세에 와서 《박달임금》을 한자로 옮겨쓰면서 《단군》이라고 하였다.

단군은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고 국력이 강화되자 주변세력들을 통합하면서 령토를 넓혀나갔다.

단군이 세운 고조선은 수천년동안 존재하면서 오늘의 조선반도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차지한 아시아의 강대한 국가로 발전하였다.

단군은 죽은 후 자기가 살던 평양에 묻히였다.

단군이 동방에서 이른 시기에 국가를 세움으로써 우리 나라에서는 원시시대가 끝나고 우리 민족은 국가시대, 문명시대에 들어서게 되였다. 단군에 의한 고조선의 성립은 우리 민족사에서 국가성립의 시원일뿐아니라 민족형성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단군이 세운 고조선국가가 강화발전되면서 우리 민족은 단군을 원시조로 하여 하나의 피줄을 이어받고 하나의 강토에서 같은 언어를 쓰면서 살아온 단일민족으로 될수 있었으며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진 민족으로 세상에 자랑떨칠수 있게 되였다.

하기에 력대로 내려오며 우리 선조들은 단군을 우리 민족의 원시조로 숭배하면서 단군의 후손임을 대대손손 자부해왔다.

그러나 일제의 악랄한 민족문화말살책동으로 하여 지난 시기 단군과 고조선의 력사는 심히 외곡되고 단군은 실재한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존재로 치부되였었다.

단군이 신화적존재가 아니라 실재한 인물인가,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가 하는것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조선고대사를 과학적으로 정립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인 동시에 우리 인민의 민족적자부심을 더욱 높여줄수 있게 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일제에 의하여 무참히 외곡되였던 단군과 고조선의 력사와 관련한 문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비로소 새롭게 밝혀지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원시조를 찾아내는것을 단순한 학술적문제가 아니라 반만년의 민족사를 주체적관점에서 재정립하고 민족의 존엄을 떨치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보시고 여러 기회에 일군들에게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비록 신화적인 전설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시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전국 각지에 있는 단군유적들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고증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단군문제해명의 기본열쇠는 단군릉발굴에 있다고 하시면서 릉을 발굴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하여 단군릉의 지위와 단군의 실체를 밝히는 단군릉발굴사업이 진행되였다.

단군릉은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에서 서쪽으로 좀 떨어진 대박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경사면의 기슭에 위치하고있다. 대박산은 단군을 상징하는 《박달》에서 유래된것이며 아달산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이 도읍을 정하였다는 《아사달》과 관련하여 나온 이름이다.

애국문화계몽운동가인 장지연의 문집인 《위암문고》에는 《평안도 강동군 서쪽 3리에 큰 무덤이 있는데 둘레가 410자이며 민간에서 단군묘라고 한다. 몇해전에 일본고고학자들이 그것을 팠는데 그안은 모두 벽돌모양의 돌로 쌓았으며 네벽에는 옛 선인과 신기한 장수의 모습이 그려져있다.》라고 씌여져있다.
 여기에서 말한 《옛 선인》과 《신기한 장수》가 단군의 그림이였다는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삼국사기》에서도 단군을《선인왕검》이라고 하였는데 그것과 《옛 선인》과는 잘 통하기때문이다.
 발굴결과 두사람분의 뼈가 나온것, (주로 팔다리뼈와 골반뼈인데 이를 감정한데 의하면 한사람은 남자의 뼈이고 한사람뼈는 녀자의것이였다.) 금동관 앞면의 세움장식과 돌림띠조각이 각각 1개씩 나온것, 패쪽을 여러개 련결하여 만든 띠의 패쪽 1개가 드러난것, 쇠로 만든 관못이 관대우에서 6개체분이 나온것, 도기쪼각이 여러점 나온것이다.
 사람의 뼈는 최신과학의 전자상자성공명년대측정법으로 감정한데 의하면 단군과 그 부인의 뼈라는것이 과학적으로 확정되였다.

(5 000년이 지나도록 뼈가 삭아 없어지지 않고 그렇게 잘 보존되여있은 원인은 유골이 부식되지 않는 토양속에 묻혀있었으며 석회암지대에 묻혀있었기때문이다.)

이처럼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조치에 의하여 진행된 단군릉발굴결과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이 발견되고 단군이 5천여년전에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였다.

지금까지 전설로만 전해져오던 단군이 실재한 인물로 고증됨으로써 우리 나라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동방의 선진문명국이라는것이 명백하여졌으며 우리 선조들이 이 땅에서 오래전부터 살아왔다는것이 확증되게 되였다. 

단군릉에서 유골이 나오고 그것이 5천여년전의것으로 확증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 누구보다 기뻐하신분은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으로 몸소 강동땅을 찾으시여 대박산기슭의 명당자리에 최상의 수준에서 단군릉을 개건확장할데 대한 웅대한 설계도를 펼쳐주시였으며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는 몸소 단군릉 최종형성도안을 보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단군은 민족의 원시조인것만큼 단군릉을 시조의 무덤답게 동명왕릉보다 더 크게 세워야 한다고 하시며 새로 개건할 릉건설의 형식과 규모도 몸소 밝혀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단군릉개건완공을 보지 못하시고 우리곁을 떠나실줄 어떻게 알았으랴!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온 겨레, 온 인류가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를 잃은 커다란 슬픔에 잠겨 땅 치며 통곡하던 주체83(1994)년 7월중순 어느날이였다.

이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주체83(1994)년 7월 6일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면서 단군릉의 최종형성안을 보아주시고 빨리 건설하여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이 다 와보게 해야 한다고 하신 가르치심은 단군릉건설과 관련한 유훈이라고, 일군들은 수령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여 릉건설을 다그쳐 끝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5 000년사를 그처럼 귀중히 여기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단군릉복구위원회를 꾸려주시고 힘있고 전투력있는 단위들에 건설을 맡겨주시였으며 릉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들을 지장없이 보장하도록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꽃피우시기 위해 시조릉을 먼 후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도록 최상의 수준에서 개건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유훈 관철의 첫 사업으로 단군릉개건공사를 정해주시고 그 방도를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 몸소 건설주, 시공주가 되시여 단군릉개건공사를 위해 그처럼 마음쓰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의 손길에 의하여 단군릉은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로동당시대의 대기념비적건축물로 웅장하게 일떠서게 되였다.

온 민족과 세계가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으로 비통함을 금치 못해하던 시기인 100일중앙추모회를 며칠 앞둔 주체83(1994)년 10월 11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단군릉개건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되게 되였다.

하기에 단군릉을 돌아본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은 《평양은 민족의 혈맥이 용용히 높뛰는 민족성, 주체성의 대화원이다. 민족을 위해 바치신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고귀한 생애는 민족의 정통성을 되찾아주신 특기할 공적으로 엮어져있고 민족을 령도해오신 주석님과 국방위원장님의 한평생은 민족의 주체성을 만방에 떨치신 불멸할 업적으로 빛나고있다.》고 하면서 반만년의 민족사를 빛내여주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끝없이 흠모하며 칭송하였다.

단군릉의 발굴과 개건과정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의 우수성도 뜨거운 민족애, 조국애를 지니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만 빛을 뿌리게 된다는 진리를 새겨주고있다. 

 

 

 

                           단군릉돌범상              단군릉문기둥                           단군릉기적비                            단군릉청동검탑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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