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10월 9일 《우리 민족끼리》
련방제통일을 위하여 (4)
통일국가의 전모와 그 실현방도를 밝힌 설계도인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 제시된 때로부터 34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이 제시된 뜻깊은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우리 겨레는 가장 합리적이고 공명정대한 통일방도를 밝혀주시고 련방제방식으로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고있다.
통일의 유일한 출로
주체82(1993)년 4월 10일 미국 윌리암 캐리대학 고려연구소 소장인 한 재미교포가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의 갑작스런 평양방문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바로 한달전 미국땅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소집에 관한 공보를 들은 그는 회의소식을 초조히 기다렸다.
그때로 말하면 미국의 《핵》사찰요구에 대응하여 온 나라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명령이 하달되고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공화국정부성명이 발표된 후였다.
이제 공화국은 이 회의를 통해 더 강경한 대응책을 제시할것이다, 이것은 그의 생각이자 세계의 예측이기도 하였다. 외국의 한 통신도 《북조선의 련속적인 타격에 만신창이 된 미국과 불순세력들은 북조선의 최고인민회의소식을 벼락이 칠 때의 개구리처럼 두눈만 굴리며 공포속에 기다린다.》고 평하였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얼마후 발표된 회의소식은 그의 예상, 세계의 예측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회의에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제시되였던것이다.
세계가 《깨여져나가던 지구를 맞붙여놓은것과 같은 사변》이라고 한 이 경이적인 소식에 접한 그는 경탄과 격정을 누를길 없어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고저 평양에 온것이였다.
소망대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접견을 받은 그는 그이께서 발표하신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아주 훌륭한 조국통일대강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통일련방국가의 대통령이 되셔야 한다고 자기 소견을 말씀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게 웃으시며 자신께서는 련방국가 대통령이 될것을 희망하지는 않지만 하루빨리 조국이 통일되기를 바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현 단계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유일한 출로는 전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것입니다. 조국을 통일하자면 북과 남, 해외에 있는 전체 조선민족이 대단결을 이룩하는것밖에 다른 출로는 없습니다. 전민족이 단결하면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해나갈수 있습니다.》
그러신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에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발표하게 된 취지와 항일무장투쟁시기 발표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의 호상관계로부터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의 기본사상과 구체적인 조항별 내용, 그 인식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말씀하시였다.
오랜 시간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면서 재미교포의 머리속에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발표, 해방후 4월남북련석회의소집, 7. 4북남공동성명의 발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제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의 발표로 이어지는 어버이수령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의 위대한 업적이 하나의 맥락을 이루며 정리되여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도 있고 계급의 리익보다 민족공동의 요구와 리익이 더 중요하다는 민족우위, 민족중시사상에 기초하시여 사상과 리념, 제도와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온 민족이 단합할데 대한 사상을 밝히시고 그것을 일관하게 구현해오시였으며 마침내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의 발표로써 주체적인 민족단합사상을 최상의 경지에서 정립하신것이였다.
재미교포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자신의 격동된 심정을 담아 이렇게 격찬하였다.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은 김일성주석께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바쳐오신 끝없는 로고와 사색과 탐구에 의하여 마련된 민족단합의 위대한 강령이다.》
로목사가 올린 식전기도
주체70(1981)년 7월 3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외에서 조국을 방문한 한 로목사를 접견하시였다.
그는 미국에 있는 《조국통일촉진회》 회장이며 《한국인교회련합회》 고문이며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해외한국인련합》의장단 성원인 전 남조선숭전대학교 총장 김성락이였다.
그로 말하면 평양태생으로서 평양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목사를 하다가 1936년 미국에 건너간 이후로 미국, 남조선에서 학계, 종교계에 있다가 1960년대초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안젤스련합 장로교회의 목사로 있으면서 미국종교계에 일정하게 영향력도 있고 미국정객들속에서도 친면이 넓은 사람이였다. 그는 또한 조선사람으로서는 미국당국으로부터 년봉금을 타는 유일한 사람이였다. 그는 오래동안 미국에서 종교활동을 하는 과정에 반공의식에 물젖을대로 물젖어있었다.
그는 1980년말에 평양에서 보낸 조국의 정당, 사회단체들의 명의로 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방도를 담은 편지를 받고 그것을 상세히 알아보는 한편 인생말년에 고국산천을 찾아보려는 개인적소망도 있고 해서 평양으로 찾아왔었다.
하여 그는 조국땅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 마중나온 일군들에게 고향인 평양을 조용히 방문하고 조용히 돌아가겠으니 자기와 관련하여 일체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였었다.
해방전에 평양에서 목사로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그가 평양을 못 잊어 찾아왔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그를 만나주시고 늦게나마 통일을 위한 길을 걸으려는 그의 민족적량심을 귀중히 여기시여 애국지사라고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목사와의 담화석상에서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절박한 문제는 조국을 통일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은 반드시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실현하여야 합니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이 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고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면 사대주의를 철저히 반대하고 민족적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친히 오찬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를 식탁으로 초청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선생이 식전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고 권고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로목사는 무척 당황해하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얼굴색이 붉어지고 숨소리가 높아지기까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평생을 지켜온 신자의 도리를 어겨서야 되겠는가고, 어서 기도를 드리라고 재촉하시였다.
사실 그는 그 자리에서만은 신자의 도리를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하느님》께 기도드리는것을 그만두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에 감복되여 절절한 어조로 우리 민족의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시며 만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신 김일성주석님의 건강을 축원하며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나라의 완전독립을 기원한다는 뜻깊은 기도를 드리였다.
이날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은 인생의 새봄을 맞이하였다고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는 평양을 떠나기에 앞서 처음 도착하여 당부한것과는 달리 비행장에서 스스로 기자회견을 요청하고 기도를 올릴 때의 소감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저는 주석님의 말씀을 어길수 없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충심으로 김일성주석님을 위하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