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10월 1일 《우리 민족끼리》

 

범죄사건기록으로 보는 천인공노할 미제의 만행 (39)

 

미제가 《해방자》의 탈을 쓰고 남조선에 기여든 때로부터 우리 민족은 69년동안이나 둘로 갈라져 불행과 고통을 겪고있다. 미제는 남조선에 첫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짐승도 낯을 붉힐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으며 오늘도 남조선에 수많은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여 조선반도의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가고있다. 우리 민족은 미제의 이러한 만행을 절대로 잊을수도 용서할수도 없다.

미제가 남조선땅에서 감행한 야수적만행들의 일부를 사건기록들을 통해 폭로한다.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놈이 현지주민들에게 총탄을 퍼부어 한 녀성을 사살한 범죄사건기록 

(1949년 3월 4일)

 

사건발생장소: 인천

가해자: 김순이 (녀자, 35살, 인천 부평 신대동 49)

피해자: 레이몬드 제이. 애디슨 (백인, 18살, 19308316, 군사우편 235-1, 제510공병대 신병)

범죄명: 살인

사건개요:

1949년 3월 4일 12시 45분경 제510공병대 3초소의 보초병 애디슨신병은 …자기 구역으로 오면서 조선녀인들이 …발견하였다. 보초병을 발견한 녀인들은 즉시 자기들이 들어온 울타리를 넘어 구역밖으로 나갔다. …애디슨은 돌아가는 녀인들의 왼쪽방향으로 사격하였다. …김순이는 잔등에 총탄을 맞아 사살되였다. …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1. 1949년 3월 4일 16시경 제55헌병중대의 당직중사 로버트 엘. 싼더스중사(6276771)는 …1949년 3월 4일 12시 45분경 조선녀성 한명이 제510공병대 3초소 보초병의 총에 맞았다고 통보하였다. …

… … …

6. 결론:

우의 조사로부터 다음과 같이 결론한다.

a. 애디슨신병은 1949년 3월 4일 제510공병대 3초소에서 근무수행중 …조선사람을 총으로 쏴죽였다.

 

범죄수사대 사건취급자

져우지프 에쓰. 피셔

진 술 서

진술자: 레이몬드 제이. 애디슨

질문: 그때 당신은 몇발을 발사하였는가?

대답: 한발입니다.

질문: 총탄을 발사할 때 당신은 조선사람들이 울타리밖에 있다는것을 몰랐는가?

대답: 알았습니다. …

… … …

진 술 서

진술자: 리기송 (23살, 미군사병들과 동행하였던 경찰, 인천 부평동)

대답: 1949년 3월 4일 나는 두명의 미군사병들과 함께 찌프차를 타고 아스콤기지의 북쪽에서 순찰근무를 서고있었습니다. …한명의 미군사병이 총탄을 발사하였습니다. …

질문: 당신은 총탄을 발사한 사병이 서라고 소리치는것을 들었는가?

대답: 듣지 못했습니다.

… … …

 

 

- 당시의 사건조사보고서와 진술자들의 진술내용 -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놈이 무고한 현지주민에게 총을 쏴 치명상을 입힌 범죄사건기록 

(1949년 3월 7일)

 

사건발생장소: 서울

가해자: 찰스 이. 켈러 (백인, 18293126, 군사우편 235-2, 제72전투공병중대 신병)

피해자: 박종철 (17살,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범죄명: 총을 쏴 치명상을 입힘

사건개요:

1949년 3월 7일 제555야전포병대대 병영에서 근무를 서던 보초병 찰스 이. 켈러신병이 박종철을 총으로 쏴 심하게 부상을 입혔다는 통보가 들어왔다.

켈러는 사건취조시 자기는 고의적으로 박종철을 총으로 쐈는데 그것은 그가 병영부근에서 나가지 않고 또 자기에게 돌을 던졌기때문이였다고 말하였다.

켈러가 감행한 총격사건을 목격한 펜신병은 진술에서 박종철은 켈러가 물어주어야 했던 담배를 받으려고 병영근방에 왔으며 그에게 보초소근방에서 나가라고 하자 박종철이가 자기와 켈러에게 돌을 던졌다고 진술하였다.

박종철은 … 켈러가 자기를 향하여 총을 쏘았다고 진술하였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1. 1949년 3월 7일 군사우편 235-2, 제555야전포병대대 위병하사는 박종철이 미군보초병이 쏜 총에 맞아 부상당했다고 통보하였다. …

2. … … …

총알이 박종철의 오른쪽넙적다리로 들어가 복부로 나왔는데 매우 심하게 부상당한것 같았다. …

… … …

6. …박종철은 1949년 3월 6일 일요일에 켈러에게 《론슨》형 라이타를 팔았는데 켈러는 라이타값으로 담배 3갑과 껌 3통을 자기에게 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켈러가 그때 박종철에게 담배 2갑과 껌 2통만 주면서 나머지는 후에 주겠다고 하였기에 박종철은 그가 아침 7시부터 9시사이에 병영구내에서 보초를 선다는것을 알았기때문에 1949년 3월 7일 나머지 물건들을 받으려고 거기로 갔다고 했다. 박종철은 정문보초가 그를 쫓았지만 그는 켈러를 만나려고 계속 기다렸으며 켈러가 나타났을 때 보초가 그에게 돌아가라고 하면서 돌을 던졌다고 말하였다. 박종철은 자기가 맞받아 돌을 한개 던지자 켈러가 자기를 향하여 총을 쐈다고 말하였다.

7. 결론:

우의 조사로부터 다음과 같이 결론한다.

a. 찰스 이. 켈러신병은 1949년 3월 7일 7시 45분경 제555야전포병대대 구내에서 박종철을 해치려고 위험한 무기, 즉 《M-1》소총으로 그에게 사격하는 폭행을 감행하였다.

b. 아무리 도발이 있었다고 해도 사격을 유발시킬만한 근거는 불충분하며 정당방위를 할 필요도 동반되지 않았다.

 

범죄수사대 사건취급자

랄프 이. 브라운

 

 

- 당시의 사건조사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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