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9월 25일 《우리 민족끼리》

 

반만년의 민족사를 빛내주시여 (1)

 

온 겨레의 가슴가슴에 커다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며 혁명의 수도 평양에 우뚝 솟아있는 단군릉.

 

    

 

풍치수려한 대박산기슭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서있는 민족의 시조릉을 바라보느라면 여기에 깃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숭고한 조국애, 민족애가 뜨겁게 안겨온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가진 인민이며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인민입니다.》

우리 겨레는 대대손손 이 땅에 태를 묻고 반만년의 오랜 세월 찬란한 력사와 문화를 창조해온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그러나 력사의 유구성과 찬란한 문화전통이 저절로 지켜지고 빛나는것은 결코 아니다. 땅속의 보석도 태양의 빛을 받아야 빛을 뿌리는것처럼 민족의 력사와 문화도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빛내여주는 은혜로운 품이 있어야 빛날수 있다.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단군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첫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우리 민족의 원시조이다. 그러나 단군은 20세기 후반기까지만도 신화적인 존재로 인정되여왔었다. 그러다보니 조선고대사의 첫 국가인 단군조선의 실체에 미지수가 남아있었다.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로 남아있게 된것은 우리 조상들이 자기의 원시조를 신성시하였기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주되는 원인은 일제의 악랄한 민족말살정책때문이였다.

일제는 식민지통치기간 조선민족의 넋을 빼앗고 야마도민족에 동화시키기 위하여 《내선일체》, 《동조동근》을 뇌까리며 단군관계서적들을 비롯한 조선고대사를 서술한 책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리는 전대미문의 만행을 감행하면서 단군조선의 력사를 영원히 말살해버리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문화통치》를 표방한 일제총독은 《조선청년들에 대한 교육시책에서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체 력사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의 혼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자기 선조를 경시하고 멸시하게 하며 조선청년들로 하여금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할것이니 그때에 일본의 사적과 일본인물, 일본문화를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기대될것이다.》라고 떠벌이였다.

우리 민족이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자기의 건국시조를 찾지 못하고있는것을 두고 그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마음쓰신분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이시였다.

오래전부터 단군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원시조를 찾아내는것을 단순한 학술적문제가 아니라 겨레의 가슴마다에 애국의 넋을 심어주고 민족의 존엄과 긍지를 안겨주기 위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보시였다.

유구한 우리 민족사를 민족의 원시조와 함께 빛내이시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래전부터 력사학자들에게 민족에게는 시조가 있기마련이라고 하시면서 단군이 실재한 인물인가를 빨리 해명할데 대하여서와 고조선력사문제를 주체사관의 관점에서 옳바로 해명할데 대하여 간곡히 이르시였다. 친히 력사자료들과 건국사들을 연구하기도 하시고 력사학자들과 학술적인 담화도 진지하게 나누시며 단군의 실체를 찾을수 있는 방향과 방도들을 일일이 밝혀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로고는 실로 끝이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러 기회들에 력사학자들에게 단군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킬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바쁘신 속에서도 그 연구정형을 알아보시며 귀중한 가르치심들을 주시였다. 구월산과 묘향산에 깃든 단군전설과 강동군의 단군릉에 관한 자료를 몸소 료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82(1993)년 1월 단군릉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도록 해주시였다.

단군릉발굴의 결과 단군과 그의 안해의 뼈로 인정되는 두사람분의 유골이 나왔다.

첨단과학기술을 적용하여 현대적측정기구로 측정한 결과 그것이 반만년전의 단군과 그 안해의 유골이라는것이 과학적으로 확증되였다. 세월의 락엽속에 신화적인물로 영영 묻힐번 하였던 단군이 실재한 인물로 확인되고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가 과학적으로 정립되게 되였으니 그것은 민족사에 특기할 대경사였다.

이 땅우에 반만년 민족사의 시원을 열어놓은 원시조를 찾기 위해 모든 대책을 다 세워주시고 단군릉을 찾아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리도 기쁘시여, 그리도 반가우시여 년로하신 몸으로 단군릉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

주체82(1993)년 9월 27일은 조선민족의 5 000년사가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경의를 드려야 할 력사의 순간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으로 친히 대박산기슭을 찾으시여 한생토록 심혈을 기울이신 중대한 력사문제가 드디여 해결되게 된것을 두고 그리도 기뻐하시며 단군릉을 원시조의 릉답게 개건할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박산을 바라보시며 단군릉을 개건하려는 자리로는 이 야산마루가 제일 좋겠다고 친히 자리도 잡아주시고 릉을 조선민족의 원시조의 무덤답게 더 크고 웅장하게 개건할데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단군의 유골은 우리 민족이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는것을 증명하여주는것이기때문에 유골이 영구보존되도록 하는것이 단군릉을 꾸리는데서 기본으로 되여야 한다고 고귀한 지침도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단군과 그의 안해의 유골을 영구보존하여 후세에 길이 전할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도들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후 단군릉개건을 위한 관계부문 일군들의 협의회를 친히 지도해주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단군이 조선민족의 원시조라는것이 확증된것만큼 단군릉을 건국시조의 무덤답게 잘 개건하여야 합니다.》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대를 두고 력사의 칭송, 민족의 격찬속에 길이 전해질 어버이수령님의 력사적공적은 주체83(1994)년의 나날에도 끊임없이 쌓아졌다.

잊지 못할 7월 6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느라 바쁘신 속에서도 단군릉의 최종형성안을 보아주시고 활달하신 필체로 

 

《1994년 7월 6일 

    김 일 성》

이라고 친히 비준하여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단군릉을 위해 그리도 마음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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