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9월 22일 《우리 민족끼리》
《승리한 협력사》
남조선의 인터네트에 현 당국이 6. 15자주통일시대에 이룩하였던 경이적인 사변들과 성과들을 주목하며 반통일적이며 동족대결적인 《5. 24조치》를 지체없이 해제하여야 할것이라고 주장한 글이 실렸다.
글에서는 먼저 현《정부》가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선수단과 더불어 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북의 방침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국방부는 《북응원단은 미인계일뿐》이라며 민족의 화해협력에 찬물만 끼얹은데 대해 렬거하고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이로써 현 당국은 북남교류협력의 호기를 놓쳐버렸다.
이번 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해 북남교류의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했던 많은 경제인들에게 북응원단파견 파탄은 그야말로 안타까운 상황일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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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해서 세계적불황속에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기업들의 출로를 제공하고 나아가 경제의 근본적체질개선과 통일에 이바지할 북남경제협력의 력사와 성과를 살펴본다.
지난 북남경제협력의 력사는 《남과 북이 모두 승리한 협력사》, 《통일을 앞당긴 협력사》로 표현할수 있다.
북남의 교류협력은 2000년 북남수뇌상봉의 결과 발표된 6. 15공동선언에 립각하여 인도적차원의 교류와 일반적상업거래를 뛰여넘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으로 상징되는 산업협력으로 확대발전하였다. 또 북남협력은 2007년 북남수뇌상봉으로 발표된 10. 4선언에 의해 물류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 자원개발로부터 농업과 관광협력확대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적이고 전면적인 교류협력단계로 한층 더 발전할수 있는 계기와 조건을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북남은 량측이 공히 일자리창출로부터 부가가치생산에 이르는 다방면에 걸친 경제적리익을 얻을수 있었다.
북남경제협력확대가 미치는 긍정적영향은 북남간 사회문화적인 신뢰형성에도 기여했다. 또한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인적왕래가 증가하면서 북남주민들사이의 접촉이 잦아지는만큼 상대방에 대한 리해가 증진되고 신뢰도 쌓이게 된것이다.
이전까지 산발적으로 벌어지던 북남경제협력은 1998년 금강산관광이 시작되면서 본격화되였고 2000년 북남수뇌상봉 이후 개성공업지구 개발을 통해 산업간 협력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관광객 937명을 실은 《금강》호의 출항은 분렬력사상 기념비적인 사변이였다. 원래 민족의 명산중 하나로 이름높았던 군사분계선 이북의 금강산을 이남주민들이 직접 가볼수 있는 길이 합법적으로 열렸던것이다.
금강산관광은 오랜 분렬로 갈라져 살아온 북과 남의 주민들이 서로의 삶을 리해하고 나아가 통일을 앞당기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는 협력사업이였다.
게다가 금강산관광사업은 관광을 통해 북과 남이 경제적리익까지 누릴수 있으니 이만한 교류협력사업이 없었다. 실제로 남측 사업주체인 현대아산에 따르면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 전면 중단될 때까지 10년간 약 2 00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파급효과를 발생시키고 2 000여명의 일자리를 새로 만든것으로 보고되였다. 이를 통해 침체되였던 강원도지역경제, 특히 속초일대가 금강산관광으로 상당히 활성화되기도 했다.
금강산관광의 성공은 이후 개성지역관광으로 확대발전되였으며 2007년 북남수뇌상봉 당시 직항로를 리용한 백두산관광을 추진한다는 합의도 가능케 했다.
개성공업지구 개발사업은 본격적인 북남산업간 협력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개성공업지구는 지난 2004년말 시범단지에서 본격적인 공장가동 이후 1단계 개발을 완료하고 2014년 6월현재 모두 7개 업종, 125개 업체가 운영중에 있다.
개성공업지구는 군사분계선 이남의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높아 중소기업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이 확인되였다. 2012년 민주통합당(당시) 심재권의원실 조사결과에 의하면 당시 123개 개성공업지구 입주기업들은 남측 협력업체가 약 6 000여개에 달하고 이들사이의 거래규모만 년평균 48억US$나 되였다. 개성공업지구 업체들과 남측 기업들사이의 련계가 깊다보니 개성공업지구 입주업체들의 생산활동이 경제 전체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효과, 생산유발효과는 47억 4 368만US$에 달하고 부가가치는 같은 기간동안 13억 7 817만US$에 이르렀다. 취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상당한것으로 나타났다. 개성공업지구에서 북측 근로자가 1만명 늘어날 때 개성공업지구와 련계를 맺고있는 남측 기업의 고용자도 5천명정도 증가하는것으로 나타났다. 개성공단이 이미 경제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가 된것이다.
개성공업지구가 본래 궤도대로 2, 3단계를 향해 확대개발된다면 중소기업의 북남협력을 통해 재벌중심의 산업구조가 가지고있는 취약점을 대폭 손질할수 있게 된다.
농업분야도 빼놓을수 없다.
2009년 한해동안에 남측으로 반입된 북측 농림수산물은 9만 7 500t정도가 됐다.
북남경제협력이 심화발전하는만큼 북남사이의 왕래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왕래가 증가하는만큼 통일이 가까워질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지난 10년간의 교류협력은 통일이 얼마든지 현실로 될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볼수 있다.
1998년에 년간 2억 2 200만US$에 불과했던 북남교역액은 2002년 6억 4 100만US$로 세배가까이 증가한데 이어 2007년에 이르러 17억 9 700만US$까지 다시 세배가량 확대되였다.
인적 왕래 역시 급증하였다. 북남사이의 인적왕래는 1998년 3 000여명수준에서 2008년 18만 6 775명으로 60배가 확대되였다. 여기에 2008년 한해동안 30만명에 달했던 금강산과 개성의 관광인파까지 포함한다면 북남의 인적왕래는 10년사이에 무려 160배가 늘어난 셈이다. 이와 더불어 같은 기간 선박운항은 600회에서 1만 1 891회로 약 20배, 차량운행은 0회에서 20만 9 149회로 증가하기도 했다. 가히 혁명적변화라 할수 있다. 만약 이런 속도로 북남왕래가 증가했다면 분렬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속도 또한 그만큼 빨라졌을것이다.
이처럼 북남경제협력은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 두차례의 북남수뇌상봉에 의해 담보되며 심화발전할수 있었다. 특히 경제협력을 통해 북과 남이 모두 성과를 얻을수 있었던것은 수뇌상봉의 합의와 같이 유무상통, 공리공영에 립각한 민족내부거래원칙을 명확히 했기때문이였다.
지난 10년간의 경제협력은 조선반도의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통일을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북남교류협력은 2010년 리명박《정부》의 대북적대시적인 이른바 《5. 24조치》로 인해 동결 혹은 중단된이래 오늘에 이르고있다.
현《정부》는 년초 《통일대박》을 주장하며 《드레즈덴선언》,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 이른바 《대북정책》을 발표해왔지만 정작 북남교류협력을 차단하고있는 《5. 24조치》는 여전히 유지하고있다.
현《정부》는 빈말이 아니라 실천행동으로 북남사이의 교류협력을 가로막는 《5. 24조치》부터 해제하여야 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