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9월 21일 《우리 민족끼리》
혁명적동지애의 귀감으로 빛나는 불멸의 모습
평양시 대성구역 대성산의 주작봉마루에 자리잡고있는 혁명렬사릉을 찾는 사람들은 혁명적동지애의 귀감으로 빛나는 김정숙어머님의 반신상앞에서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김정숙의 관념속에는 자기라는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굶어도 좋고 얼어도 좋고 아파도 좋다, 그러나 동지들이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내가 죽는 대가로 동지들을 살릴수 있다면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웃으면서 죽음의 길을 택할것이다 하는것이 바로 김정숙의 인생관이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이 말씀에 인간을 불처럼 사랑하시였고 동지를 위해서라면 물과 불속에라도 서슴없이 뛰여드신 백두산녀장군의 한생이 뜨겁게 어리여있다.
주체22(1933)년 어느날 《민생단》으로 몰린 혁명동지를 구원하기 위하여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견결히 투쟁하시던 김정숙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 가슴을 울려주고있다.
당시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반《민생단》투쟁을 극좌적으로 벌리고있었으며 그로 하여 수많은 혁명가들이 귀중한 생명을 잃는 가슴아픈 참변이 벌어지고있었다.
그때 부암의 골짜기에서는 《민생단》을 심판하는 군중대회가 있었는데 심판장에 나온 사람들속에는 최희숙동지도 있었다. 배타주의자들은 그가 무슨 곤난에 대한 말을 했다고 《민생단》으로 몰아 사형하려고까지 하였다.
최희숙동지는 공청원으로서 일찍부터 혁명에 참가하여 잘 싸운 동지였다. 그러나 그때 누구도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된 그를 옹호해나서지 못하였다.
자칫하다가는 자신까지 《민생단》으로 몰릴수 있었던 그때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설사 생명을 바친다 해도 기어이 동지를 구원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견결히 싸우시였다.
적들에게 두눈을 빼앗기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소리높이 웨쳐 오늘도 영생의 삶을 누리고있는 훌륭한 혁명가 최희숙동지의 한생에는 이렇듯 백두산녀장군의 위대한 동지적믿음과 사랑이 뜨겁게 깃들어있다.
마안산에서 《민생단》루명을 쓴 100여명 대원들을 견결히 보증해나서신 김정숙어머님의 투쟁은 또 얼마나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는것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생단》혐의를 받고있는 매 사람들의 하소연을 다 들으신 다음 그때까지 《민생단》혐의를 받지 않은 대원들에게 동무들은 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으시였을 때였다.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있는 그때에도 김정숙어머님께서는 그들을 보증해나서시였다.
장군님, 저는 이 동무들을 믿습니다. 이 동무들은 먹을것도 먹지 못하고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고생하면서 왜놈들과 용감히 싸운 동무들입니다. 이 동무들은 절대로 《민생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억울한 루명으로 생사기로에 놓인 동지들을 목숨을 바쳐서라도 구원하시려는 그이의 불굴의 희생성이 이렇듯 《민생단》혐의를 받은 사람들, 그것도 한두명이 아니라 100여명의 대원들을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보증해나서실수 있게 한것이였다.
김정숙어머님께서 지니신 뜨거운 혁명적동지애는 간고하고 시련에 찬 항일혈전의 나날 항일유격대원들로 하여금 오로지 사령관동지만을 굳게 믿고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끝까지 싸워나갈수 있게 한 크나큰 힘이였다.
마동희동지도 어머님의 뜨거운 동지적사랑에 눈굽을 적시며 조선혁명이 승리할 때까지 사령관동지의 전사답게 용감히 싸우겠다고 맹세를 굳게 다진 항일혁명투사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후 마동희동지는 그 맹세대로 적들에게 체포되였을 때 스스로 혀를 끊어 비밀을 지키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정녕 김정숙어머님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우리 인민이 우러러 따르는 숭고한 동지애의 빛나는 귀감이시였다.
항일의 나날 어버이수령님을 호위하시고 대원들의 생활을 돌보아주시느라 김정숙어머님께서는 한시도 편히 쉬신적이 없으시였다.
언제 일어나고 언제 쉬는지 도무지 알길 없다고 하던 전우들의 가슴뜨거운 추억에는 그이의 헌신의 모습이 짙게 어려있다.
바로 그렇게 동지들을 친혈육보다 더 귀중히 여기시였기에 김정숙어머님께서는 그들로부터 사려깊은 어머니로, 친근한 누나로, 불같은 혁명동지로 존경받으시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어머님께서 지니신 뜨거운 인정미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남들의 정을 받는것도 좋지만 남들에게 자기 정을 줄 때가 훨씬 더 좋다는것이 김정숙동무의 인생철학이라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이런 남다른 인생철학을 지니신 김정숙어머님을 인민들은 끝없이 사랑하였고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그것은 13도구경찰서에 체포된 김정숙어머님을 《량민》으로 인정하는 량민보증서에 500명의 도천리인민들이 도장을 누른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김정숙어머님께서 인민들한테서 그런 신임을 받으실수 있은것은 그이께서 한몸을 내대고 헌신하신 결과였다. 인간을 불처럼 사랑하고 남을 위한 희생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으며 동지들을 위해서라면 물과 불속에라도 뛰여드시는 김정숙어머님의 희생성이 낳은 결과였다.
제대로 쉬지 못하시는 백두산녀장군께 대원들이 이제는 쉬라고 권할 때면 조국이 해방되면 푹 쉬겠다고 늘 외우시더니 정작 조국이 해방되였을 때에는 또 수령님의 건국위업을 받들어 낮에 밤을 이어 사업하신 김정숙어머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렇게 가보고싶어하시던 고향 회령에도 한번 못 가보시고 꿈결에도 찾으시던 일가친척들도 혁명동지들의 자녀들을 찾은 다음에 찾겠다고 미루어오시였다.
자신을 위한 일은 언제나 뒤로 미루시고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과 동지들,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바치신 김정숙어머님!
참으로 백두산녀장군 김정숙어머님의 한생은 동지를 위하고 인민을 위하고 혁명을 위하여 불같이 사신 위대한 혁명가의 한생, 혁명적동지애의 빛나는 한생인것으로 하여 조선혁명사에 찬란히 빛나고있다.
오늘 우리 혁명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따라 혁명적동지애의 위력으로 힘차게 전진하고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숭엄한 모습을 우러르며 천만군민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동지애로 시작되고 승리를 떨쳐온 우리 혁명의 자랑찬 력사를 대를 이어 빛내여나갈 불타는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진다.
본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