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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 명 설 화
적들속에 솟아난 《지휘처》
도천리나 13도구, 14도구는 신갈파에서 압록강을 건느고 고개를 넘어 수십리 떨어져있는 중국 동북지방의 외진 산골이다. 그곳에도 장이 서기는 하였지만 흰쌀이나 광목, 로동화같은것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고장사람들은 아들딸잔치를 하자고 해도 신파장에 갔고 백두산장수들한테 들여보낼 군량미와 군복감도 신파장에 와서 사갔다. 이 기미를 알아챈 왜놈들은 쌀과 천이 산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밤낮으로 장마당과 나루터를 감시했다. 순사놈들은 장군들의 짐을 뒤지다가 쌀이나 천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마구 때리고 빼앗아갔다. 신파경찰관주재소의 순사놈들이 어찌나 눈알을 부라리며 모질게 굴었으면 《올빼미》라는 별명까지 붙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발악을 해도 백두산대장군님만 믿고 따르는 인민들의 마음을 막을수는 없었다. 어느 장날이였다. 신파로 건너오는 압록강나루배는 새벽부터 만원이였으며 신파장마당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밀려들어 발들여놓을 자리가 없이 붐비였다. 여기저기서 싸구려소리가 울렸으며 물건값을 흥정하느라고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였다. 벌써 칼찬 왜놈순사들이 새까맣게 쓸어나와서 꽥꽥거리며 돌아쳤다. 하지만 강건너온 녀인들은 누구도 흩어져가지 않았다. 그들은 이고온 감자와 산나물같은것들을 다 팔았지만 물건을 사지 않고 가게방주변을 빙빙 에돌기만 하였다. 싸전두리에도 한무리의 녀인들이 둘러서서 쌀값을 묻기도 하고 쌀알을 깨물어보기도 하면서 서성거리기만 하였다. 그들모두는 남모르게 흘끔흘끔 광선사진관 2층창문만 바라보았다. 어제저녁에 구장이 집집을 찾아다니면서 장마당에 가서 어떻게어떻게 하라고 귀뜀해주었던것이다. 그때 이 고장의 구장들은 거의다 백두산장수들을 도와나선 의로운 사람들이였다. 한낮이 되여 소방대마루에서 고동소리가 길게 울리고 장군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음식점들로 흩어져갈무렵이였다. 광선사진관 2층창문이 활짝 열리더니 자주색저고리를 입은 젊은 녀인의 환히 웃는 모습이 나타났다. 《아니, 저게 옥순아재가 아니우?》, 《무산집새애기가 틀림없소.》 녀인들이 놀라서 수군거리고있는데 그 녀인이 목에 걸쳤던 수건을 내리워 창턱에 걸어놓았다. 녀인들은 그것을 보고 술렁댔다. 《아니, 저것 보우. 올빼미가 제둥지로 날아갔다는 신호가 아니우?》 《옳수다. 순사놈들이 다 밥먹으러 간 모양이우. 어서 서두르자구.》 녀인들은 마음놓고 천과 신발, 쌀을 사가지고 석전양복점으로 갔다. 그들이 구장이 일러준대로 광선사진관도장이 찍힌 사진을 내보이자 양복점주인은 구면친구처럼 반갑게 맞이하며 물건을 받아들였다. 이제 날이 어두워지고 사진관창문에서 불이 세번 꺼졌다, 켜졌다 하면 천과 식량, 신발들을 나루배로 왜놈들모르게 강을 건너보내게 된다고 하였다. 점심대접까지 받고 양복점을 나서 다시 물건을 사러 가게방으로 가는 녀인들은 백두산장수들한테 많은 군량미와 천, 신발을 보내게 된것이 너무 기뻐 새힘이 솟는것만 같았다. 녀인들이 여러 가게방들에서 쌀과 천을 또 흥정하고있는데 사진관창문에 다시 나타난 그 녀인이 창턱에 걸어놓았던 수건을 거두어 목에 둘렀다. 《어서 피하자구. 올빼미가 다시 떴다는구려.》 녀인들은 산 물건을 꿍져가지고 재빨리 붐비는 장군들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왜놈순사들은 호각을 불며 이리저리 돌아쳤지만 헛물만켜고 돌아섰다. 녀인들은 그 꼴을 바라보며 깨고소한 웃음을 지었다. 광선사진관은 정말 왜놈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멋진 지휘처, 백두산장수들한테 보낼 수많은 물자들을 마련하는 녀인들의 투쟁을 왜놈들이 욱실대는 시내 한복판에서 능숙하게 이끌어나가는 믿음직한 지휘처였다. 그 지휘처에는 녀인들이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옥순아재》, 《무산집새애기》라고 허물없이 부르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서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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