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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8경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대홍단의 감자꽃바다》! 대홍단에 무연히 펼쳐진 감자꽃바다를 볼 때마다 우리 인민들은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토록 마음쓰시며 제대군인대부대를 몸소 보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은정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새겨보고있다. 지난 《고난의 행군》시기 제국주의반동들의 악랄한 반공화국책동과 경제적봉쇄 그리고 여러해째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하여 우리 인민이 겪은 식량난은 참으로 혹독하였다. 알곡생산을 늘여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하여 늘 마음쓰시면서 그 방도를 모색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산이 많고 랭해가 심한 우리 나라에서는 감자농사를 많이 하여 식량문제를 푸는 길로 나가야 한다고 보시고 감자농사에 큰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주체85(1996)년 5월 31일 량강도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도당책임일군에게 량강도에서 감자농사를 한번 잘해보라고, 감자농사를 해야 우리 나라에서 먹는 문제를 풀수 있다는것을 명심하고 우리 함께 감자농사를 잘해보자고 강조하시였다. 주체87(1998)년 1월중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량강도를 또다시 찾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 해의 감자농사정형을 료해하시고 《량강도에서는 감자농사에 힘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 감자농사를 잘하여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수확감자종자해결, 재배방법개선, 연구기관과 필요한 시설마련 등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방도들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대홍단군에서는 감자농사에서 혁명을 일으켜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전변시킬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마련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을 지펴주시기 위하여 그해 10월 1일 몸소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대홍단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감자농사에서 혁명을 일으킬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담화를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감자농사에서 혁명을 일으켜 먹는 문제를 풀려고 하는것은 우리 당이 내놓은 중요한 방침이라고, 우리 당은 농업생산을 추켜세우기 위하여 감자농사에서부터 혁명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량강도는 감자농사를 대대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나가며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자강도와 강원도, 황해북도에서도 감자농사를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감자농사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일으키는 사업은 하나의 혁명인것만큼 본보기단위가 있어야 한다고, 대홍단군종합농장을 본보기로 꾸려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후 대홍단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자도 쓰시지 않으신채 찬바람을 맞으시며 눈덮인 포전머리에 한시간나마 서계시면서 내가 왜 대홍단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로, 사회주의리상촌으로 꾸리려고 하는지 아는가, 이곳은 수령님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력사의 땅이고 항일혁명선렬들의 피가 스며있는 혁명전적지이기때문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대홍단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로, 사회주의리상촌으로 꾸리시려는 자신의 의도를 일군들이 깊이 새기고 더욱 분발하도록 깨우쳐주시는 간곡한 가르치심이였다. 그후에도 장군님께서는 감자파종기, 수확기, 분무기와 함께 150HP뜨락또르를 수십대나 보내주시고 전국이 대홍단군감자농사를 돕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주체87(1998)년 10월 1일 대홍단군에 대한 현지지도는 온 나라에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을 지펴올린 력사적인 현지지도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감자농사를 대대적으로 하자면 로력이 더 많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대홍단군종합농장에 당원제대군인들을 한 1,000명 보내주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직후에 현대적인 농장을 꾸리기 위하여 여기에 제대군인들을 보내주시였습니다. 나는 오늘 적들의 고립압살책동을 짓부시고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는 시기지만 감자농사를 잘하기 위하여 여기에 제대군인들을 보내주려고 합니다.》 순간 일군들은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감격에 겨워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홍단군종합농장에 제대군인들을 1,000명 보내주어 감자농사를 지으면서 그들이 로농적위대의 핵심이 되여 조국을 보위하게 하려고 한다고, 대홍단군종합농장에서 당원제대군인들을 1,000명 받으면 계급구성이 달라지게 될것이고 그들이 농장의 핵심이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음해 봄에 제대군인들을 보내주면 새해의 진군을 다그치는데서 아주 좋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이윽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홍단군종합농장에서는 제대군인들을 받을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다음해 4.15까지 살림집을 적어도 200~300세대는 지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명년봄에 제대군인들을 보내주겠다고, 그들과 함께 감자농사를 한번 잘해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끌끌한 당원제대군인 1,000명이 대홍단으로 달려오게 되였고 감자농사에서는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게 되였다. 한해후에 또다시 대홍단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제대군인가정에 들리시였다. 아직은 고향의 부모들도 자식들의 집을 찾지 못하였고 안해도 친정집에서 이사짐조차 가져오지 못한 그런 때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먼저 이들의 가정을 찾아주신것이였다. 살림집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친자식의 살림살이를 살피듯 부엌의 간장병까지 보아주시고 살림방의 침대에 앉으시여 생활형편을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그들부부에게 군사복무는 어디에서 하였는가고 다정하게 물어주시고 군복에 달려있는 훈장을 보아도 이 동무들이 군대에서 일을 많이 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지금 각오도 좋다고 하시면서 이런 동무들이 대홍단군의 기둥이 되여야 한다고, 백두삼천리벌을 동무들에게 맡긴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대홍단군의 기둥, 이것은 그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시는 그이의 한없는 사랑과 크나큰 믿음이였다. 그 사랑, 그 믿음을 안고 제대군인들은 혁명적군인정신을 발휘하면서 힘찬 투쟁을 벌리였다. 그리하여 대홍단군에서는 주체89(2000)년에 군이 생겨 처음보는 흐뭇한 결실을 마련했다. 이것은 감자농사혁명의 포성이 울린지 2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대홍단군감자농사가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홍단에 달려온 제대군인들은 감자생산을 정보당 40t, 50t 나아가서 70t, 80t까지 올릴 때 경애하는 장군님의 감자농사혁명방침을 관철했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다고 하면서 더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투쟁을 계속 벌려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준마를 타고 감자농사의 앞장에서 내달리는 제대군인들은 오늘 대홍단정신, 대홍단기풍으로 끊임없는 비약을 이룩하고있으며 온 나라가 대홍단의 모범을 따라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키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대홍단군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에 의하여 전국적으로 감자재배면적이 많이 늘어나고 ha당 감자생산량이 그전의 몇배로 부쩍 늘어났으며 온 나라에 감자풍년가가 높이 울렸다.
정녕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수 있는
또 하나의 전망이 열리게 되였다. 김 진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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