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식

 

《  정  한  론  》

 

《정한론》이란 19세기중엽 일본군국주의자들이 들고나온 《조선정복론》을 말한다.

《정한론》은 일본에서 도꾸가와막부통치말기 봉건제도의 위기를 반영하여 발생하였으며 1868년 《명치유신》이후에는 해외침략을 위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국가정책으로 되였다.

《명치유신》을 계기로 자본주의길에 들어선 일본군국주의자들은 해외침략의 첫 목표를 조선에 두고 침략책동에 미쳐날뛰였다. 일본의 《정한론》자들은 《부국강병》과 《국가흥륭》을 실현하며 《천황국가의 위력》을 자래우자면 우선 무력으로 조선을 《정복》하여 예속시켜야 한다고 로골적으로 떠벌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정한론》에 따라 1868년말부터 먼저 간교한 《정한외교》에 달라붙었다. 《조일국교수복》이라는 미명밑에 감행된 《정한외교》는 조선에 외교적압력을 가하여 불평등적이며 예속적인 조약을 강요하는데 기본목적을 두고 조선에 대한 내정탐지 및 파괴모략책동을 감행하면서 기회가 성숙되는데 따라 무력침공을 할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것이였다.

그러나 이 모략이 파탄되자 1873년 8월 악명높은 《정한론》자인 사이고 다까모리는 무력으로 전조선을 《정복》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즉시 무력을 출동시킬것을 주장해나섰다. 이에 따라 명치정부는 사이고를 《조선파견대사》로 임명하고 조선출병을 결정하였다. 당시 미국지배층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을 길잡이로 조선을 강점할 야망을 품고 놈들의 조선침략을 적극 부추겼다.

그러나 이때 이와꾸라, 오구보 일파는 《정한시기상조론》을 들고나오면서 사이고, 이다가끼 일파의 《즉시정한론》을 반대하여나섰다. 두 파사이의 싸움은 1873년 10월 《정한시기상조론》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정한시기상조론》자들은 《즉시정한론》자들보다 더 교활하고 간악한 《정한론》자들이였다. 놈들은 저들이 침략전쟁준비를 완성하지 못한 조건에서 당시 유미렬강들의 여러 차례의 무력침공을 물리친 조선인민의 영용한 투쟁을 타산하여 전쟁준비를 철저히 갖추고 《더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침략하자는 자들로서 본질상 《즉시정한론》자들과 차이가 없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그후 《정한》을 구체적으로 모의하고 면밀한 준비를 갖추었으며 1875년에 《운양》호사건을 도발하고 조선에 대한 무력침략을 본격적으로 벌리였다. 《정한론》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야말로 력사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기 위하여 날뛴 조선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임을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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