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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청년학생들의 선군정치주제의 론문경연에서 발표된 글]
공훈국가합창단을 통해 바라본 선군시대 문학예술
정 준 영, 김 도 현, 정 지 혜 (조선대학교) 목 차 Ⅰ. 서 론 : 이북사회를 이끄는 힘, 선군정치 Ⅱ. 본 론 : 선군시대의 문학예술 1. 문학예술의 사명 2. 군인문화와 공훈국가합창단 Ⅲ. 결 론 : 공훈국가합창단은 북의 선군정치실현의 중요한 수단이자 무기이다
Ⅰ. 서 론 : 이북사회를 이끄는 힘, 선군정치 현 이북사회를 리해하는 주제어는 선군이다. 선군정치는 1995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다박솔초소방문으로 더 높은 단계에로 실현되였다는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선군정치라는 단어가 이남에 알려지기 시작한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이남국민들에게는 2006년 7월 11일 시작된 제19차 북남장관급회담에서 한 북측단장 권호웅내각참사의 기조발언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대부분 북의 연구자들은 선군정치를 1990년대 초 동구권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 대북 무역거래감소,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생산감소 등의 해결방안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동원된 비상체제라고 보고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북의 주장과 달라 이북사회를 옳바로 인식하는데 있어 오유를 범할수도 있다. 북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어제 오늘에 시작된것이 아니다. 혁명의 개척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우리의 사회주의정치사전반이 곧 선군령도사라고 말할수 있다. 이 독특한 선군정치의 위력이 성스러운 혁명실록이 엮어진 지난 5년간에 최상의 경지에서 발휘되였다》라는 문장에서 보듯이 선군정치의 시원을 김일성주석의 항일운동시기로 보고있으며 이것을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계승, 발전시켰다는것이다. 이와 같이 선군정치는 일시적으로 제기되는 정치방식이 아니라 북의 전략적인 정치로선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선군정치란 말그대로 군대를 제일국사로 내세우는 정치방식이다. 이북이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고 인민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듯이 북에서 군대는 가장 앞장에서 국가의 난관을 극복해나가면서 이러한 모범들을 국민들에게 널리 확산시킨다. 이북사회에는 여러 계층이 존재하는데 이 안에서 사회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집단을 주력군이라고 부른다. 북의 주장에 의하면 선군시대 혁명의 주체는 수령, 당, 군대, 인민의 통일체(선군통일체)이며 주력군은 군대이다. 이처럼 북은 주력군을 통해 안으로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강성대국》을 이루고 밖으로는 제국주의자들의 압력을 막아낸다고 밝히고있다. 이북은 선군정치과정에서 《혁명적군인정신을 정식화》하며 특히 이북의 전력난속에서 안변청년발전소, 태천발전소 등을 건설해내여 인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이러한 군대에 의한 투쟁기풍을 전체 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혁명적군인정신》의 전파로 강계정신이 알려지고 라남의 봉화, 성강의 봉화 등이 알려진것이다. 이것은 이북이 목표로 하는 《강성대국》의 건설에 성큼 다가가는 성과를 가져오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군사에 힘을 집중시키면 문화발전은 약화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선군정치가 문학예술부문에서 어떻게 실현되고있는지 알아보자. 본 론문에서는 이를 위해 북의 군인문화를 대표한다고 알려져있는 공훈국가합창단이 어느 위치에서 선군시대를 반영하고있는가를 알아보겠다.
Ⅱ. 본 론 : 선군시대의 문학예술
1. 문학예술의 사명 문학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며 시대를 선도한다고 한다. 자본주의사회인 이남의 문학예술과 사회주의사회인 이북의 문학예술은 사회체제의 차이로 인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도 서로 다를수 있다. 해당 민족의 문화는 그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반영하기때문에 민족의 정신이 담겨져있다. 민족문화에는 민족의 자주정신이 담겨져있으므로 민족자주정신이 없는 민족은 마치 넋을 잃은 육체와도 같은것이다. 일제시기에 민족문화말살정책이 이루어진것을 보면 이를 잘 알수 있다. 현대의 이남사회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있기때문에 문화에서 미국적색채가 진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문화는 마치도 일제시대와 같이 민족고유의 전통문화를 심각하게 침해하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현재 이남의 문화를 살펴보면 퇴페향락적이며 개인주의적인것들이 지배적인 풍조로 되고있다. 그러다보니 이남문화는 국민들의 정서와 생활상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담아내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쉽게 례를 들어 노래가사를 비교해보자. 이남의 노래가사는 대부분 연인들의 사랑과 리별을 주제로 담고있다. 이에 비하여 북의 노래가사는 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의 과제를 담아내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있다. 북에서 불리워지는 《병사는 벼이삭 설레이는 소리를 듣네》라는 노래를 살펴보자.
하늘엔 따사론 해빛넘치고 땅우엔 금나락 설레이네 농장벌 지나던 병사는 벼이삭 물결치는 소리를 듣네 아 인민의 기쁨이 커가는 소리 병사의 가슴에도 파도쳐오네…
이렇듯 북의 노래가사에는 사회주의혁명과 건설, 인민의 생활상을 담은 내용들이 사용되고있다. 이러한 모습은 북이 노래를 혁명의 주요수단의 하나로 사용하고있음을 보여준다. 이북에서 밝히고있는 문학예술의 사명은 다음과 같다. 《혁명적문학예술의 중요한 사명은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개조하며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는것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인간학은 자주성에 대한 문제, 자주적인 인간에 대한 문제를 내세우고 새시대의 참다운 인간전형을 창조하여 온 사회를 주체의 요구에 맞게 개조하는데 이바지하는 문학이다.》 이와 같이 이남의 상업적가요와는 달리 이북의 노래는 정치적사상을 반영한다. 이 경우 반영하는 정치적사상은 선군시대를 반영하는 내용으로 된다. 비단 노래뿐만이 아니라 북의 자료에 의하면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우리 당사상사업의 위력을 비상히 높여나가는데서 영화를 통한 사상교양사업을 잘하는것은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라고 하여 영화를 통해서도 전파를 하고있다.
2. 군인문화와 공훈국가합창단
1) 군인문화 오늘날 이북에서는 시대를 상징하는 군인문화가 사회주의문화건설의 본보기로 되고있다고 주장한다. 세상 어디에도 군인문화라는 말조차 있어본적이 없었다. 이전의 여러 나라들에서 군대는 억압과 폭력,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리용되여왔기때문이다. 선군시대에 와서 력사상 처음으로 군인문화라는 새 시대어가 생겨나고 이북군대에서 사회주의문화의 본보기가 마련되여 인민들의 문화생활에 기여하게 되였다. 군인문화가 시대를 상징하는 사회주의문화의 본보기로 되는것은 북의 군대가 사회전반의 혁명과 건설을 밀고나가는 주력군의 역할을 담당하고있는데 기인하는것으로 보는것이 옳을것이다. 시대를 선도하는 집단의 문화가 시대의 문화이다. 그리고 이북이 군대의 혁명적군인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삼고있다는데 관심을 돌려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군인문화가 시대의 문화이며 이북사회 문화발전의 추동력이 되고있다. 군인문화를 대표한다고 알려져있는 공훈합창단에 대해서 알아보자.
2) 공훈국가합창단
① 공훈국가합창단의 기원과 창단 문학예술은 어느 시대나 민족성, 그리고 사회상을 표현함으로써 그 시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참고자료로써 활용된다. 특히 이북사회에서는 문학예술이 단순히 사회를 표현한다거나 어떠한 유희를 위해서만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라 사회주의혁명과 국가건설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정치나 경제, 군사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북은 북의 문학예술이 김일성주석이 이끌었다고 하는 항일무장독립투쟁에서부터 조선의 인민대중을 항일운동에로 나서게 하는 주요한 무기로서 사용되였다고 주장한다. 그 사례를 알아보자. 《녕안땅에 울리는 하모니카소리》란 사례에서 드러나는것처럼 항일유격대는 이때부터 아동유희대, 하모니카중주대, 연예선동대를 꾸리고 문학예술활동을 펼쳐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음악예술은 가사에서부터 조선의 독립이나 조선민중들의 생활상을 담으면서 쉽게 그들에게 파고듦으로서 항일무장독립투쟁의 위력한 무기로서 그 역할을 하였다는것이다. 이후 김일성주석은 이북사회를 건설해가는 과정에서도 문학예술을 중요한 사업으로 보고 예술단체를 만들데 대한 구상을 하게 되고 그에 대한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공훈합창단의 전신인 조선인민군협주단을 창단하게 된다. 조선인민군협주단은 1947년 2월 22일 한 예술소조의 공연속에서 《김일성장군의 노래》라는 제목의 음악공연을 함으로써 첫발을 내디뎠다고 알려져있다. 이후 공훈합창단은 1995년 12월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전문합창단으로 독립하게 된다. 공훈합창단이 독립된 단체로 창단기념공연을 한날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날인 1995년 12월 24일이였다.
② 공훈국가합창단의 활동 공훈합창단은 1995년 독립예술단체로 나온 이후 10여년간 75여차례 공연, 400여곡을 창작하였다. 주요공연곡목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동지애의 노래》, 《장군님 백마타고 달리신다》, 《승리의 열병식》, 《문경고개》, 《압록강 2천리》 등이며 외국곡들도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6편의 합창조곡 《선군장정의 길》을 북에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작품으로 평가하고있다. 이북은 공훈합창단이 선창과 합창, 합창과 관현악, 무반주합창, 민족악기와 서양악기를 배합한 기악반주, 합창의 음악성, 조곡형식의 새로운 령역에서 합창예술발전에서 제기되는 복잡하고 중요한 리론실천적문제들을 새롭게 해결하고있으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확고한 실력으로 받들고있는 북의 최정예예술단체, 뛰여난 실력과 전투력을 갖춘 가장 리상적인 예술집단, 선군이 요구하는 실력형의 최고문예단체로서 세계합창예술의 절정에 당당히 올라섰다고 주장한다. 공훈합창단은 요청음악회도 할수 있고 화선음악회도 벌릴수 있으며 대경축공연도 진행할수 있다. 또한 공훈합창단에서는 조국과 인민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 수여된다는 로력영웅칭호자들과 《김일성상》계관인들, 수많은 인민예술가, 인민배우, 공훈예술가, 공훈배우들이 배출되였다. 이북사회에서 공훈합창단은 선군혁명의 나팔수로 불리며 활동하고있다. 북에서 《나팔수》란 용어의 의미는 모든 일에서 앞장서서 달려가도록 선동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써 북에서는 나팔수란 용어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있는것으로 보인다. 이북에서는 공훈국가합창단을 혁명의 수뇌부를 옹호보위하는 총폭탄으로,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을 위훈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혁명무력의 나팔수로 값높이 내세워주시며 우리 장군님께서 선군의 길에 높이 울려주신 《천만이 총폭탄되리라》,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 《신심드높이 가리라》와 같은 수많은 혁명의 노래들이 있었기에 이 땅우에는 수령결사옹위정신, 혁명적군인정신, 《강계정신》, 라남의 봉화가 더욱 세차게 타번질수 있었고 강성번영의 징조를 알리는 거창한 창조물과 혁신의 새소식들이 련이어 태여나게 되였다라고 말한다. 공훈합창단이 선군시대의 나팔수역할을 할수 있었던것은 노래가 담고있는 내용에서 잘 드러난다. 이북이 절세의 위인의 선군장정에 새겨진 영웅적인 혁명행로,세계사적업적에 대한 불멸의 혁명찬가라고 주장하는 선군장정의 길을 통해서 선군정치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보자. 합창조곡 《선군장정의 길》 가사(첨부자료 참고)에서 보다싶이 공훈합창단이 창작하고 공연하는 노래는 선군정치를 펼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모습, 북의 인민과 군대가 일심단결하는 모습, 나라를 지키는 군대의 모습, 신념과 의지 등이 주된 내용으로 되고있으며 이는 선군정치와도 잘 통하고있다. 뿐만아니라 공훈합창단이 공연하는 활동령역도 선군정치와 밀접한 련관이 있다. 다음 북의 자료를 보면 공훈합창단의 력사에 선군정치가 밀접히 련관되여있음을 알수 있다. 어느 해인가 우리 장군님께서 원쑤들이 이 땅에 새로운 침략전쟁의 불을 지르려고 발악하던 그때 일군들에게 자신께서 중히 가지고계시던 대단한것을 내려보내겠다고 하시며 노래 《천만이 총폭탄 되리라》의 악보를 보내주신 사실에서도, 우리 장군님께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그 어려운 시기 희천을 비롯한 자강도의 로동계급을 찾아가실 때마다 몇십만석의 쌀이 아니라 공훈국가합창단의 노래를 안고가신 사실에서도 우리는 신념의 노래, 투쟁의 노래로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해온 합창단의 력사를 가슴뜨겁게 읽게 된다. 또한 북의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공훈합창단의 노래로 천만군민에게 보내는 《신년사》도, 《시정연설》도, 《격려사》도 대신하시였으며 공훈합창단의 공연을 보시며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으시고 선군장정의 험로를 또다시 이어가군 하시였다라고 한다. 이상의 자료를 통해서 공훈합창단이 선군시대의 나팔수역할을 수행하고있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공훈합창단은 선군시대의 나팔수답게 문학예술작품들을 창조해내면서 선군정치를 실현하고있다.
Ⅲ. 결 론 : 공훈국가합창단은 선군정치실현의 중요한 수단이자 무기이다. 지금까지 선군정치가 문학예술부문에서 어떻게 구현되고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연구분석을 통해 몇가지의 결론을 내릴수 있다. 첫째, 선군정치에서 주력군이 인민군대인것처럼 문학예술분야에서도 군대소속예술단의 활동이 선도적역할을 하였다. 국가의 난관들을 모범적으로 헤쳐나갔던 군대를 인민들이 따라배우듯 앞으로 군대소속예술단의 활동이 이북문학예술의 전반을 이끌어갈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이전에는 주로 예술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선군혁명로선》을 담은 수준이였다면 이제는 《선군문학예술》로서 하나의 예술분야를 개척했다는것이다. 주요작품들이 내용면에서 선군시대를 반영하였고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북의 주장을 통해볼 때 앞으로도 《선군문학예술》의 본격화가 예상된다. 셋째, 《선군문학예술》은 선군정치실현의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이북은 선군사상을 주요골간으로 하는 문학예술을 통해 선군사상을 전파하였다. 이것을 통해 공훈국가합창단은 선군시대의 나팔수가 되였다. 우리가 알아본바와같이 북의 선군문학예술의 중심에는 공훈국가합창단이 있다. 이 집단은 선군시대의 주력군인 인민군대로서 문학예술분야에서 선군사상전파에 큰 축을 담당하고있다. 공훈국가합창단은 북의 선군정치실현의 중요한 수단이자 무기인것이다.
《첨부자료》 1.
《녕안땅에 울린 하모니카소리》 ㅡ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993년. 출판사《오름》 ㅡ
민중을 위하여 싸우는 군대가 민중들한테서 랭대를 받을 때보다 더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것이다. 일제시대 항일투쟁을 하던 원정대가 로야령을 넘는 첫 순간부터 이런 랭대에 부딪치게 되였다. 풍요하고 기름진 녕안땅이 곡창지대로 잘 알려진 녕안사람들은 우리에게 밥조차 잘 지어주려 하지 않았다. 이 고장 사람들은 원정대가 멀리서 나타나면 《고려홍군》이 왔다면서 무작정 동네에 나가 돌아다니는 아녀자들을 불러들이고 문부터 닫아걸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우리의 동정을 살폈다. 정치사업을 하려고 마을에 나타나서 군중들을 모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좀처럼 응해주지 않아 시국강연조차 할수 없었다. 어떤 대원들은 녕안사람들이 본래부터 그런 랭혈인들이라고 단정하거나 녕안사람들이 의식수준이 낮아 그렇다거나 녕안현에 토지가 많은 대신 그것을 경작해야 할 농민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때문에 사회계급적관계에서 적대적모순이 생기지 않으며 따라서 계급투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이러한 주장들은 곧 강력한 반격에 부딪쳤다. 고장마다 민심이 조금씩 다른것은 사실이지만 손님대접을 후히 하고 그들의 편의를 친절하게 봐주는 중국사람이나 조선사람의 미풍량속이 이 고장이라고 하여 달라질수 없는것이다. 또한 의식수준이 낮은 사람은 원래 혁명을 할수 없다면 혁명을 할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것인가. 주민이 적고 땅이 넓어서 적대적모순이 조성되지 않는다는것도 현실을 잘 모르고 내리는 피상적인 판단이다. 그런 리론대로 한다면 인구밀도가 높은 독일이 인구밀도가 희박한 로씨야보다 계급적모순도 더 첨예하고 혁명승리도 먼저 달성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가. 이것은 궤변이다하고 그 론거를 일축해버렸다. 녕안사람들이 혁명을 리해하지 못하고 원정대를 적대시하게 된 원인을 찾으려면 무엇보다먼저 항일혁명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죄악에서 찾아야 할것이다. 녕안땅에서 항일운동이 활발해지자 일제는 항일유격대와 민중들사이에 쐐기를 박기 위하여 일찍부터 비렬한 반공선전을 집요하게 벌려왔다. 정치사상적계몽이 비교적 굼뜨게 진행되여 온 녕안에서 그 선전은 주민들속에 쉽게 먹혀들어갔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파세를 확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여 녕안민중들을 무모한 폭동과 시위로 내몰았던 초기공산주의자들로 인해 혁명의 종착점은 죽음이라는 두려움과 허무함도 그 원인이요 반쏘반공선전열을 올리던 조선의 일부 민족주의자들로 인한 왜곡된 인식과 《신민부》라는 행정기구를 만들어놓고 군자금과 군량미를 받아낸다는 리유로 걸핏하면 수탈을 해나가는것도 그 원인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런 력사적근원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녕안민중들을 박정하다고 탓할수가 없었다. 원정대가 물질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것은 문제도 아니였다. 가장 심각한 고충으로 되는것은 북만민중들에게 혁명의 씨앗을 심어주려고 한 우리의 중요한 원정목적을 달성할수 없게 된것이였다. 민중들이 정녕 우리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면 원정대가 북만을 혁명화하는 길은 영영 막히게 되는것이다. 녕안사람들을 혁명대로에로 불러내자면 어데든지 돌파구를 열어야 하였다. 나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적정도 알아볼겸 주민들의 동향도 알아볼겸 정치공작조를 파견하였다. 그 정치공작조에는 한다하는 선전선동명수들이 망라되여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인솔해가지고 주민들속으로 들어갔던 5중대 정치지도원은 지친듯한 표정으로 내앞에 나타났다. 《또 실패입니다. 아무리 구수한 말을 해두 마이동풍입니다. 녕안사람들과 거래를 하는 바엔 차라리 소귀에 사서삼경을 불어넣는게 낫겠습니다.》 그는 이런 보고를 하고나서 절망적으로 머리를 떨었다. 《하여튼 녕안사람들이 문제는 문제입니다. 동만경험을 배우려구 참관단까지 보내면서 공을 들였는데 요지부동이란 말입니다. 참관단이 돌아온 다음 겨우 아동단학교를 하나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아이들이 50명쯤 모여 오골오골하더니 웬걸 그것두 룡두사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민중이 자기의 리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혁명가들을 외면한다면 그 민중을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수수천년을 헤아리는 우리의 유구한 민족사에서 민중이 나빠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는 한평생 민중을 좋은 민중과 나쁜 민중으로 구별해본적이 없었다. 력사의 오점을 남겼거나 그 력사를 우롱한것은 한줌도 못되는 통치배들이였지 민중이 아니였다. 물론 개별적인간들 가운데는 역적도 있고 수전노도 있고 사기군도 있고 협잡배나 야심가나 패덕한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쌀에 뉘만큼도 안되는 소수자였다. 이 세상 전부를 대표한다고 할수 있는 민중이라는 거대한 집체는 항상 력사의 수레바퀴를 진두에서 성실하게 굴려왔다. 그 력사에 거북선이 필요하면 거북선을 만들었고 피라미드가 필요하면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시대가 피를 요구할 때 민중은 육탄이 되여 서슴없이 화구앞으로 죽음을 맞받아나갔다. 문제는 녕안사람들의 심장부로 통하는 지름길을 발견해내지 못한데 있었다. 정치공작조도 분명 격동적이고 호소적인 반일선전을 하였을것이다. 녕안사람들이 그런 연설을 적게 들었겠는가. 귀가 아프게 들었을것이다. 독립군도 구국군도 비적들도 그런 연설을 다 한다. 그러니 정치공작조의 정치공작이 성공할수 있었겠는가. 잘못은 그들이 무작정 민중을 가르치려 한데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자신들을 민중의 선생이라고 여겼고 민중을 자기의 학생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던가. 민중을 무지에서 광명으로 인도하는것이 우리들의 사명인것만은 틀림없으나 우리가 자신들을 민중의 선생이라고 치부하는것은 너무나도 주제넘는 일이 아니겠는가. 민중의 심장속 깊이에로 침투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하지만 그 심장이 받아들이는 통행증은 단 한가지밖에 없으니 그것이 바로 진심이다. 진심만이 우리의 피와 민중의 피를 하나의 동맥속에 융합시킬수 있는것이다. 진심으로 민중의 아들이 되고 손자가 되고 형제가 되여 군중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녕안땅에서 영영 민중의 버림을 받게 될것이다. 우리 원정대의 아동유희대가 녕안에 와서 공연을 할 때에는 매번 공연장소에 군중이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아동유희대도 혁명을 호소하고 유격대도 혁명을 부르짖었는데 왜 민중이 아동유희대는 환영하고 유격대는 외면하였겠는가. 군중이 많이 모일수 있는 비결이 어데 있는가? 《그 아이들이 이 고장사람들한테 귀엽게 굴었지요. 유희대공연으로 녕안사람들의 혼을 쭉 뽑아놓고는 공산명월처럼 방글방글 웃으면서 그들을 감화시켰답니다. 애들이 내 아버지, 내 어머니한테 정을 주듯이 정을 주는데 아무리 목석같은 녕안사람들인들 왜 녹아나지 않겠습니까.》 《유희대공연도 공연이지만 아이들이 민심을 얻었지요. 그 아이들의 품성에는 나도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팔도하자마을청결은 이 아이들이 다했습니다. 새벽일찍 일어나서는 온 동네를 다듬이돌처럼 반반하게 정돈해 놓지요. 낮이면 밭에 가서 어른들 일손도 돕구요.》 《그 애들이 나이는 어리지만 철은 다 들었지.》 《아이들이 또 사람은 얼마나 따르는지…. 어른들만 보면 십리 밖에서부터 아동단경례를 붙이구 〈할아버지〉, 〈아버님〉, 〈아재〉, 〈누나〉, 〈언니〉하면서 찰찰 감겨 돌아가는데 … 하여튼 평이 대단했습니다.》 우리의 선전선동대가 실패한것은 바로 민중에게 그런 진정을 바치지 않았다는데 있는것이다. 그들은 북만사람들을 혁명화해야겠다는 실무적인 목적만 생각하였지 민중들에게 정을 주고 친숙해지려는 궁리는 하지 않았다. 북만민중이 우리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였다. 우리는 정치공작의 형식부터 바꾸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지휘관들과 함께 그 방도를 토의한 결과 홍범이라는 대원이 하모니카의 달인이라는것이다. 홍범을 비롯한 하모니카의 중주단을 꾸려 전날 선전선동대가 실패하고 돌아온 그 마을에 들여보냈다. 중주단의 활동은 마을 한복판에 있는 어떤 집 마당의 눈을 치는 작업으로 시작되였다. 너렁청한 그 마당에 보초를 세우고 맨 선참으로 펼쳐놓은것은 바로 홍범 외 1명이 출연하는 하모니카 2중주였다. 중주단의 나머지 성원들은 그 2중주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그러자 가까운 골목에서 팽이를 돌리던 두세명의 조무래기들이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울바자앞으로 달음박질해왔다. 다른 골목에서도 아이들이 바지괴춤을 춰올리며 오락장으로 뛰여왔다. 2중주는 《총동원가》로부터 《아동가》와 《어데까지 왔니》로 얼른 곡목을 바꾸었다. 홍범의 하모니카에서 경쾌한 음향에 홀딱 반해버린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어떤 아이들은 동네방네로 뛰여다니며 간도에서 온 《고려홍군》이 댄스를 한다고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광고를 들은 어른들이 먼 발치에서 팔짱을 지르고 혁명군의 오락회를 구경하였다. 어떤 어른들은 오락장가까이에까지 바싹 다가와 《고려홍군》의 《풍각쟁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구경군들의 수효가 40ㅡ50명쯤 되자 하모니카중주단은 《아리랑》을 연주하였다. 그런데 이 《아리랑》이 온 동네를 다 불러내고야 말았다. 관객의 수는 100명, 200명으로 불어났다가 다시 300명 계선으로 껑충 뛰여올랐다. 이런 때에 고보배가 나서서 《평안도수심가》를 불렀다. 그 청승맞은 노래가락에 흥취가 오른 수백명의 마을사람들은 오락장을 가락지 모양으로 완전히 에워싸고 《고려홍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선률에 귀를 귀울였다. 고보배는 노래를 마지막까지 다 부르지 않고 중도에서 툭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좀 신파끼가 있는 억양으로 연설을 시작하였다. 《여러분. 여러분네들은 고향이 어디십니까? 경상북도라구요. 함경남도, 강원도, 네네, 물론 평안남도 출신도 있겠지요. 제 고향은 구태여 묻지 말아주십시오. 거 뭐 제가 재세를 하는건 아닙니다. 전 고향이 어딘지 모르고 살아온 놈이웨다. 조선은 조선인데 그저 해변가라는것밖에는 모릅니다. 조선에서 살다가 부모등에 업혀 강을 건넜는데 두만강인지, 압록강이였던지 그것두 알턱이 없지요. 네네, 난 원래부터 그런 반편입니다.…》 사람들은 고보배의 입담에 심취되여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수군수군 소감도 나누었다. 고보배는 간도에 들어와서 가랑잎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자라던 경위와 유격대원이 되여 왜놈들을 요정내던 몇가지 장면들을 고사처럼 구수하게 엮어대다가 축음기 소리판을 뒤집어 끼우듯이 슬쩍 혁명에 대한 계몽으로 넘어갔다. 《여러분, 우리의 한결같은 소망이 뭘가요. 그건 조국으로 돌아가는것입니다. 조국으로 돌아가자니 왜놈들이 떡 버티고있습니다. 그래 그놈의 오랑캐들을 가만 내버려두어야 하겠습니까? 난 참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총잡구 유격대원이 된거지요. 왜놈의 씨종자를 없애려고 녕안에두 왔구요. 북만에서 돌아치는 일본군대 더 건방지다지 않겠나요.》 하모니카중주단은 이렇게 마을을 흐물흐물하게 해놓은 다음 다시 한번 항일선전을 하고 혁명군원호를 호소하였다. 하루전에 정치공작조가 들어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마을에 가서 하모니카중주단이 이처럼 놀라운 실적을 올릴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진행한 선전공작의 통속성과 진실성에 있었다. 우리는 이런 경험에 토대하여 군중들속에 더 깊이 들어가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녕안현의 수십개 마을을 점차적으로 혁명화하였다. 동만에서 온 《고려홍군》과 녕안민중들을 갈라놓고있던 철의 장벽은 마침내 제거되였다. 《고려홍군》이 지나간 고장들에서는 당대렬이 늘어나고 공청과 부녀회, 아동단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이 급속히 확대되였다. 민중들은 자기를 동정하고 리해해줄줄 아는 사람들앞에서는 그가 누구든지 서슴없이 마음의 문을 열어제낀다. 그리고 불타는 열광으로써 그들을 품어안는다.
《첨부자료》 2. 선군장정의 길 가사 《선군장정의 길》 작사 : 리범수, 작곡 : 엄하진
서곡 : 조선은 말한다
아 세계여 아 들으라 아 조선은 아 말한다 피눈물에 잠겼던 이 나라가 어떻게 일떠섰는가 아 세계여 아 조선은 말한다
제 1 악장 : 선군의 닻은 올랐다
1. 피눈물 흐르는 내 조국 강산에 시련의 광풍이 휘몰아친다 생사의 판가리 갈림길에서 장군님 선군의 닻을 올렸네
2. 그 어이 조국을 다시 잃으랴 그 어이 또다시 노예가 되랴 수령님 넘겨준 유산을 지켜 장군님 선군의 닻을 올렸네
3. 하늘이 불타고 땅이 꺼져도 조국과 인민을 일떠세우리 태양의 성지에 맹세 다지고 장군님 선군의 닻을 올렸네
제 2 악장 : 장군님의 전선길이여
1. 시련의 언덕을 넘어온 피어린 전선길 얼마냐 죽음을 각오한 그 길에 사선의 고비도 많았네 전선길 전선길 장군님의 전선길 조국의 운명을 지켜준 결사의 길이여 길이여
2. 다박솔 선군의 고향에 첫 자욱 새겨져 몇해냐 백두산 총대를 앞세워 력사의 새길을 열었네 전선길 전선길 장군님의 전선길 민족의 존엄을 빛내준 영광의 길이여 길이여
3. 혁명의 붉은기 휘날려 철령의 진달래 불타고 선군의 명산인 오성산 불멸의 그 자욱 전하네 전선길 전선길 장군님의 전선길 폭풍도 우뢰도 길들인 헌신의 길이여 길이여
4. 정의와 진리의 전선에 백승의 보검은 번개쳐 원쑤는 항복을 고하고 벗들은 환호성 높아라 전선길 전선길 장군님의 전선길 총대로 천하를 다스린 태양의 길이여 길이여
제 3 악장 : 승리의 력사로 영원하리라
봄빛은 어디서 비쳐왔는가 달리는 야전차 차창이런가 준엄한 겨울을 멀리 몰아낸 전선길 천만리 잊지 않으리
추억은 무엇을 안고오는가 쪽잠도 그립던 그 나날인가 전선길 눈비에 마를새 없던 색날은 야전복 잊지 않으리
조국은 얼마나 높아졌는가 이 땅은 얼마나 넓어졌는가 선군의 총대로 받들어올린 새 조선 탄생을 잊지 않으리
장군님 걸으신 선군장정의 길 승리의 력사로 영원하리라
제 4 악장 : 장군님께 영광을
1. 승리가 어떻게 찾아왔는가 총대가 말해주네 선군의 포성을 높이 울리신 장군님은 우리의 승리 (후렴) 만세 만만세 선군승리 만만세 영광 영광 드리네 장군님께 영광을
2. 강계에 넘치던 선군의 노래 승리로 메아리치네 고난의 령넘어 락원을 펼친 장군님은 우리의 승리 (후렴)
3. 조선의 우렁찬 승리의 함성 온 세상 울려퍼지네 선군의 대강국 우뚝 세우신 장군님은 우리의 승리 (후렴)
종곡 : 빛나는 선군장정의 길이여
아 세계여 아 들으라 아 조선은 아 말한다 새 세기를 이끄시는 선군태양 그 위업 총대로 떨치리라 아 빛나라 아 장군님의 선군장정의 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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