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청년학생들의 선군정치주제의 론문경연에서 발표된 글]

 

선군정치가 《한》반도평화에 끼치는 영향

 

리 은 애 (수원통일사랑청년회)

목 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북측이 선군정치가 남에도 영향을 주고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2. 이북의 주장대로 북은 항상 미국의 전쟁위협을 겪고있는가?

Ⅲ. 미국을 상대하기 위한 선군정치

 

Ⅰ. 서 론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변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있다. 정말로 정세의 대변화가 예상되는 2007년 하반기라 할수 있는것이다.

이북에서는 이 모든 정세의 변화를 자신들의 주동에서 펼쳐나가고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본적인 힘을 선군정치라고 규정하고있다. 그렇다면 선군정치란 무엇인가?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만들어 조국을 보위하며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본보기로 하여 혁명의 주체를 튼튼히 꾸리고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하여 전반적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는 정치방식입니다.》

이북에서 말하는 선군정치란 《군사를 제일 국사로 내세우고 인민군대의 혁명적기질과 전투력에 의거하여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전반적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는 혁명령도방식이며 사회주의정치방식》을 뜻한다.

이러한 선군정치에 관한 남과 북의 시각은 현저히 다르다. 북은 선군정치가 나라와 민족의 안전을 철저히 담보하는 영원한 조국수호로선이며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만년터전을 다지는 강성대국건설로선이라고 이야기하고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남에서 선군정치에 관한 연구나 토론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때문에 일반 국민들에게 《선군》이란 단어는 매우 낯설며 선군에 대한 견해나 시각도 사실상 정립되여지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선군정치에 대해 이남에서 관심이 증폭된것은 작년 제19차 북남장관급회담에서 북의 권호웅내각책임참사가 한 선군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발언이였다. 이것은 이북의 선군정치가 북뿐만이 아니라 남에도 영향을 미치고있음을 이야기하고있는것이기에 이를 둘러싼 론란이 일기도 했다. 이북이 군대를 제일로 앞세워서 자신의 조국과 사회주의를 보위한다고 하는것이 어떻게 이남에도 영향을 미치고있기에 남이 북측의 선군의 덕을 보고있다는 말인가? 그리하여 여기서는 북측이 말한 이남이 선군의 덕을 보고있는지ㅡ즉 북의 선군정치가 남에도 영향을 미치고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본 론

 

1. 북측이 선군정치가 이남에도 영향을 주고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우선 2006년 북남장관급회담에서 론란이 되였던 권호웅참사의 발언을 먼저 살펴보자.

제19차 북남장관급회담 북측대표단 단장인 권호웅내각책임참사는 12일 《선군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주고있으며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있다》고 발언하였다. 권단장의 이 발언은 이북의 미싸일발사나 핵무기개발 등이 남측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의미를 담고있는것으로 풀이된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권단장이 한 발언은 우리 조상들이 침략세력을 제압할 힘을 가지고있지 못했기때문에 나라를 빼앗겼고 그래서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침략국에 대응할수 있는 힘ㅡ무력ㅡ핵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일면으로는 타당한 이야기다. 힘이 없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아픔은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력사적사실속에 증명된 사실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이남국민들은 북의 선군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사실에는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남국민들가운데 상당수가 아직도 《북》을 위험세력으로 보고있기때문이다. 오히려 북의 선군정치는 군대를 우선시하는 정책이기에 일부 이남국민들로선 더 큰 위험으로 볼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이북은 누구로부터 북뿐만아니라 남측까지도 보호한다고 주장하는것일가? 북은 미국을 민족의 원쑤로, 이북뿐만이 아닌 우리 민족의 백년숙적으로 규정하고있다. 그리하여 북은 이북 대 이남과 미국이 아닌 우리 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줄곧 주장해온것이다. 북은 미국의 항시적인 전쟁위협속에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권호웅참사의 발언도 이러한 미국의 《한》반도전쟁위협으로부터 이북은 자신들뿐만이 아닌 이남까지도 보호하고있다는것이다.

이북은 자신들의 군사우선의 선군정치가 없었다면 《한》반도에서 이미 전쟁이 일어났을것이라 주장하고있다. 즉 선군정치가 있기때문에 자신들이 미싸일과 핵을 비롯한 군사선행의 원칙을 지켜올수 있었고 그 힘으로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고있다는것이다. 결국 이북이 주장하는 선군의 덕이라는것은 미국의 전쟁위협으로부터 북의 선군정치가 《한》반도평화를 유지할수 있게 해준다는것이다. 《한》반도평화는 북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므로 이남도 북의 선군덕을 보고있다는 주장인것이다.

 

2. 그렇다면 이북의 주장대로 북은 항상 미국의 전쟁위협을 겪고있는가?

사실상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이 항상 존재해왔다는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북이 미국의 전쟁위협을 받는것인지 아니면 이남과 미국이 북의 전쟁위협을 겪고있는것은 아닌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전쟁부터 줄곧 북은 미국과 계속적인 대결과정에 있었다. 조선전쟁의 당사자들은 정전협정당사자인 북과 미국이였다. 전쟁이후 북미간 평화협상을 통해 량국관계는 정상화되여야 했으나 미국은 북의 붕괴를 노리고 제재와 봉쇄를 일삼으며 이남에는 미군을 주둔시키고 핵무기를 들여왔다.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평화협정체결과 무기반입금지사항을 완전히 무시한것이다. 이후에도 미국은 북의 체제붕괴를 노려 《팀 스피리트》훈련 등 각종 전쟁훈련을 벌리고있으니 북에게 미국은 언제나 자신을 침략할수 있는 위험한 존재가 되여버린것이다.

흔히 2차 핵위기라 불리는 1993년과 1994년의 북미관계의 시작은 1993년 1월에 미국이 《팀 스피리트》훈련재개를 선언하고 3월 실제 훈련에 들어가며 시작된다. 이에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방침을 선포한다. NPT탈퇴는 미국을 압박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각종 제재를 하려하기 시작한다. IAEA와 유엔을 통해 북에 대해 제재를 하려 했으나 이북은 대북제재를 전쟁행위로 간주한다고 공표하였다. 국제사회는 북의 전쟁불사를 우려했지만 결국 이북은 협상의 주도권을 획득했으며 유엔안보리는 대북제재를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 이북은 6월 11일 북미공동선언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미국은 1994년 5월에도 대북적대정책을 지속하여 북은 녕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에서 페연료봉을 인출하는것으로 대응하였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은 다시 고조되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리사회는 대북기술지원을 중단했고, 이북은 IAEA탈퇴로 맞섯다. 이에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를 추진했으나 북은 대북제재는 곧 전쟁행위로 간주한다며 무력사용가능성을 공표했다. 이런 위기조성의 결과 북은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에 림할수 있었고, 결국 김일성주석과 카터회담으로 군사적대결을 피하고 미국과의 협상국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10월 체결된 제네바합의, 11월 북의 핵동결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미국은 제네바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한편 실제로는 북의 붕괴를 전망하고있었던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북은 90년대 대자연재해와 미국의 군사적압박, 국제적고립으로 인한 식량난과 전력난으로 경제적어려움에 봉착해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제네바기본합의의 경수로제공의무를 태공하고 경제제재해제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998년 8월 미국은 《금창리핵시설의혹》을 제기하면서 북이 제네바기본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금창리시설에 대해 사찰을 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이에 이북은 《근거없는 모략》이라고 비판하면서, 《사찰》이 아닌 《참관》은 허용하되 군사시설을 공개하는만큼 미국이 참관료 60만t의 식량을 지불해야 한다는 선에서 합의했다. 그러나 금창리는 텅빈 굴로 확인되였다.

한편 미국이 금창리핵시설의혹에 열을 올리고있을 때 이북은 8월 31일 대포동에서 3단형 우주발사체를 발사하였다. 《백두산1호》라고 명명된 이 우주발사체는 인공위성 《광명성1호》를 궤도에 안착시키고 알라스카앞바다에 떨어졌다. 흔히 《대포동미싸일》이라고 불리는 인공위성 《광명성1호》는 미국에게 이북의 체제붕괴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특히 미국패권의 결정적토대인 핵체제붕괴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같은 미국의 판단은 1999년 5월 25일 대북정책조정관이자 전 국방부장관인 패리를 대통령특사로 임명, 이북을 방문하게 하는것으로 드러난다.

이북의 자국방위를 위한 《억제력》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조건에서 결국 미국은 북과의 평화공존을 명시한 패리보고서와 《조미공동콤뮤니케》를 채택한다. 2000년 10월 12일 채택된 《조미공동콤뮤니케》는 《평화보장체계》, 《사전론의를 위한 미국무장관 알브라이트 북방문》, 《미대통령방문》을 명시하고있었다. 이 문서는 한마디로 조미국교정상화를 의미한다.

클린톤의 이북방문은 미국 민주당의 대선패배로 무산된다. 새로 등장한 부쉬정부는 대북적대정책을 고수할것인가, 《조미공동콤뮤니케》대로 관계정상화의 길을 걸을것인가 사이에서 전략적공백상태를 맞는다. 그러나 미국은 북을 《악의 축》이라 지목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을 모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특히 2003년은 《제네바기본합의서》에서 규정한 미국의 경수로제공시한. 그러나 미국은 2002년 8월에야 겨우 경수로기초공사에 들어간 상태였다. 미국의 제네바기본합의서는 미국의 경수로제공의무위반과 동시에 이북의 핵동결공약이 무산되는것을 의미한다.

2003년 이북은 핵확산금지조약탈퇴와 핵무기개발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미국의 세계핵통제전략은 붕괴된다.

이에 부쉬정부는 기존의 《선핵포기 후대화》원칙을 스스로 접고 6자회담을 제안한다. 같은 해 미국은 핵문제와 대량살상무기문제가 없는 이라크와는 전쟁을 벌렸지만 이북과는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해결책이 나오지 않자 결국 2005년 2월 10일 북은 6자회담불참과 핵무기보유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한편 이북은 2.10핵보유선언에서 《회담에 참가할 명분마련과 회담결과를 기대할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마련될 경우 6자회담에 복귀할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은 북은 주권국가이며 침공의사가 없으며 6자회담안에서의 량자협상을 공식천명했다. 결국 13개월만에 4차 6자회담이 재개됐으며 6자가 합의한 최초의 《9.19베이징공동성명》이 발표됐다.

《9.19베이징공동성명》을 보면 1994년 《제네바기본합의서》에서 한발 더 나아간 정치회담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두 문건은 모두 《한》반도비핵화와 관계정상화의 과제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또한 조미관계정상화뿐만아니라 조일관계정상화를 명시했지만 행동 대 행동의 구체적리행과정을 합의한것은 커다란 발전이다. 특히 이북에 대한 《경수로제공》이 문자화되였으며 6자가 모두 합의의 《증인》이 되였다.

그러나 미국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9.19공동성명발표 다음날 곧바로 북의 위조지페문제를 거론하며 금융제재가 시작되였음을 선포했다. 이에 북이 발끈했고 6자회담은 미궁에 빠져들고 말았다. 미국의 약속지연에 이북은 7월 5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미싸일 7발을 종류별로 발사하여 미국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번엔 미국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재제를 더 강화하였다. 결국 이북은 북미대결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판단을 하고 핵실험을 강행한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제재로 인해 6자회담이 미궁에 빠져들었고 이를 타개하고 9.19공동성명을 실행하는 과정이 명시된 2.13합의문이 나왔다. BDA문제로 인해 순탄치 않지만 결국 미국이 이를 해결하고 대화의 자리에 다시 나오고있는 상황인것이다.

이처럼 해방직후부터 지금까지 북미관계는 최악의 앙숙관계가 되였으며 약국의 관계정상화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꼬여버렸다. 계속되는 북미간의 대결속에서 북은 미국과의 관계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미국은 사실상 북을 제압하려 했으므로 앞에선 합의하고 뒤에서 번복하면서 계속 지연되고있는것이다. 북미간의 지난 대결사를 살펴보면 이북이 일관된 자세로 림하고있는 반면 미국은 계속 말을 바꾸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우에서 살펴본 북미대결의 과정에서 이북은 당연히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전쟁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고 전쟁을 막기 위한 자위적조치로서 더욱더 자위적무장력을 증강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하여 결국 핵무기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필요로 했고 사실상 핵무기개발 천명이후 북미간 관계의 급진전이 이루어지고있는 과정인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본다면 북이 주장하는 미국으로부터의 전쟁위협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있음이 분명하다.

우의 내용들은 김일성주석 생존시부터 현재까지 북이 공식적으로 밝히고있는 립장이다. 미국에 관해서는 분명한 전쟁불사의 내용을 담고있고 실제 언론에서도 북이 미국에 대한 전쟁발언과 위협은 많이 언급이 되여왔다. 하지만 이남에 대해선 자신들의 총대ㅡ즉 군력ㅡ는 남에 대한 전쟁위협이 아니며 그러한 의도가 없다는것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있음을 알수 있다. 적어도 동족인 이남에 관해서 전쟁의사는 없다는것이다.

 

Ⅲ. 미국을 상대하기 위한 선군정치

우에서 살펴보듯 북의 립장에선 조선전쟁이후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전쟁위협을 느끼고있으며 이에 대한 대비로 군사력증강에 힘써온것으로 보인다. 약한자는 곧 짓밟힌다는 력사적교훈속에서 미국과의 힘의 대결속에 자신들의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국에 맞설 군력이 필요했고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핵을 개발했다는것이다. 그리고 이 핵으로 인해서 미국이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처럼 전쟁을 일으켜 북정권을 붕괴시키지 못하고있다는 주장인것이다. 또한 이런 군력중심정치를 선군정치로 정식화하고있는것이다.

결국 북이 말한 남도 북의 선군의 덕을 보고있다고 하는것은 미국이 이북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면 이남도 자동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므로 자신들의 선군정치로 이남까지 전쟁으로부터 보호를 받고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북미간의 대결속에서 북의 선제공격이든 미국의 선제공격이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남과 북은 모두다 심각한 피해를 입을수밖에 없다. 남북은 《한》반도를 터전으로 하는 운명공동체이기때문이다. 남과 북이 공동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선 서로에 대해서 더욱 잘 알고 리해하면서 공동의 의견을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것이 쉽지만은 않다. 《선군》이라는것이 이남에서는 아직까지 생소한 단어이기에 《선군의 덕》이라는 발언이 나왔을 때 막연히 남이 북의 덕을 입고있다는 뜻으로 비춰지면서 그 본을 두고 론쟁이 벌어진 측면도 적지 않았을것이다.

《한》반도를 터전으로 한 운명공동체로서 남과 북이 서로를 리해하고 믿음을 갖기 위해선 서로를 잘 아는것이 중요할것이다. 이번 론문을 준비하면서도 대중적인 연구물들이 많지 않아 여러가지 자료를 찾기 힘이 들었다. 모든 열린공간에서 연구와 활발한 론의, 토론으로 오해나 불신없이 남북이 서로에 대한 진의를 파악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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