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4장 운명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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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념을 못했다.
그는 연해연방 치하를 금치 못해하였다.
《아니! 이보게, 정말 그렇게 흔한것이 신통한 효험을 내나?》
리상로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님, 이 방법이 별치 않아보여두 아주 효험있는 방법이오이다.
이렇게 하면 회충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후에 반드시 설사하는데 이때 길이가 1자(1자는 0. 303m)가량되는 회충이 나오고 다시는 앓지 않소이다. 옛 의서에는 이에 대하여 〈…두 사람이 가슴앓이로 거의 죽게 되였는데 이 약을 먹였더니 회충이 나오고 모두 나았다.〉라고 씌여있소이다. 이외에 한두가지 방법이 더 있소이다.
참기름 1홉을 날것으로 먹어도 좋소이다. 회충으로 인한 가슴앓이에 효험이 좋지요.
옛 의서에는 이 치료의 효험에 대하여 이렇게 썼소이다.
〈어떤 사람이 허리아픔이 명치에까지 뻗치면서 발작하여 숨이 끊어질듯하였다. … 기름을 먹이니 눈이 없는 뱀같은것을 게웠다.〉
참기름은 가슴앓이나 랭증이거나 열증 할것없이 다 치료하오이다.
뱀장어도 좋은데 여러가지 기생충으로 가슴앓이가 생겨 담연(거품이 섞인 느침)을 많이 게우는걸 치료하오이다. 이 고기를 슴슴하게 구워 3~5번 먹으면 깨끗이 낫소이다.》
이때로부터 최씨는 리상로를 송도부중에서 으뜸가는 의원으로 개여올리기 시작했다. 리상로에 대한 최씨의 믿음은 절대적인것이였다.
이 놀라운 소식은 의관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
하여 어느날 그는 슬그머니 최씨를 찾아왔다.
《마님, 이젠 병이 다 나은가보오이다. 이 의관을 찾지 않으니 말이오이다.》
최씨는 흔연스럽게 대답했다.
《웬걸, 아직도 위탈이 종종 나군 한다네.》
《헌데 왜 소관을 찾지 않소이까?》
《음- 내 이즘 이 송도부중에서 아주 용한 의원을 한명 찾아냈다네. 그래서 그가 날 치료해주고있어.》
정작 그런 말을 들으니 의관은 매우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그는 내색치 않고 말했다.
《리상로말이웨까?》
《임자두 알고있었나?》
《네, 송도에서 소문이 짜하게 돌고있지요. 허나 마님께서 그런 촌스러운 의원에게 고귀한 몸을 맡기신단 말이오이까?》
《앗따! 물에 빠진 사람 지푸래기라도 걷어쥔다구, 다 죽게 됐는데 언제 시골이요 송도요 가릴 형편이 됐나? 그저 의원이란 병을 고치는게 장땅이야. 안 그런가?》
원체 도도하기 그지없는 의관의 성정이 최씨의 그쯤한 입질에 주춤할리 만무하였다.
그는 기세당당하여 입을 열었다.
《원, 마님두. 의술의 우렬을 그렇게두 료량하시지 못하신단 말이오이까? 그건 소경 문고리잡은 격이오이다.
의술이란 얼마나 오묘한 술법과 리치를 담고있는것인지 아시옵네까? 소관두 이웃나라의 대명의였던 화타의 〈화타중장경〉과 편작의 〈편작내경〉, 〈편작외경〉 등의 고명한 의서를 다 떼고나서야 오늘의 술법에 이를수 있었소이다. 헌데 그 리상로라는 촌의원이 화타가 누구이구 편작이 누구인지를 안답디까? 더우기 〈화타중장경〉과 같은 유명한 의서를 만져나 보았답디까? 아마 듣노니 처음일것이오이다.
절대로 그런 시골의원께 몸을 맡기면 안되시오이다.
지금은 막 던진 돌 굴뚝에 들어가듯 우연히 몇번은 고쳐냈지만 아마 종당에는 큰 사고를 칠것이오이다.》
허나 기염을 돋구는 의관의 이 말도 별로 효험을 내지 못했다.
《아이구, 화타구 불타구 난 그런건 모르이. 어쨌든 내가 보기에두 그 리의원은 분명 명의야.》
푸르딩딩한 최씨의 말에 의관은 입을 쩝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허어- 변괴로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다니. 그런 시골의원에게 감히 몸을 맡기다니…》
그러거나말거나 최씨는 의관의 말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는 다른 걱정거리가 있었다.
며칠후 최씨는 리상로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자기가 아니라 서방인 팽지서때문이였다.
팽지서는 여전히 설란이 대준 처방대로 꼬박꼬박 섭생을 지켰다.
그러자니 자연 마누라에게 잔소리를 끊지 못하게 되였다.
여느때없이 귤껍질을 얻어와라, 파흰밑둥을 꼭 넣어라 하며 머리털이 희게 들볶는 남편의 이러한 변동이 마누라의 의심을 부쩍 일으켰다.
최씨는 종종 묻군 했다.
《아니, 여느땐 입에 잘 대지도 않던 푸초요, 김치를 꼭꼭 찾지 않는가 하면 파는 꼭 흰밑둥만 고르라니 웬일이오이까?》
《응? 그거… 뭐 소화가 잘되는 약이라더구만.》
귀가 빠져 처음 듣는 소리에 최씨의 눈은 더욱 커졌다.
《그건 갑자기 어디서 얻은 처방이오이까?》
《조정에 용한 의관이 한명 있는데 그가 나를 진찰해보고 하는 말이 꼭 이 처방대로 해야 한다고 합데.》
《오- 황의관말이오이까?》
《아니, 조정엔 용한 의관이 황의관밖에 없다던가? 유명한 의관이 또 있다네.》
허나 최씨는 그렇게 노둔한 사람이 아니였다.
다리를 약간 절뿐이지 남편 팽지서는 특별히 병이 없었다. 오장륙부도 성성했고 하루세끼 놋바리의 밥도 깨끗이 비우군 했다.
나이에 비해 혈기도 퍽 좋았다. 헌데 이즈음 별안간 식성이 변해 자기를 깜짝깜짝 놀래우군 하는것이다.
처음에는 이에 대하여 심상하게 생각했던 최씨는 점차 바싹 신경을 강구고 은밀히 남편의 거동에 눈을 밝히기 시작했다.
한달가까이 끈질기게 눈여겨 살피던 최씨는 드디여 남편의 긴 꼬리를 밟게 되였다.
남편이 조용히 남치구의 애첩인 설란을 찾군 하는것이였다.
최씨는 배암같이 꿈틀거리는 질투와 분격을 금치 못했다. 영악스러운 그의 눈에서 푸른 린광이 번뜩이였다. 용서할수가 없었다.
허나 최씨는 우직하고 매련이 없는 그런 미련둥이는 아니였다.
앙큼하면서도 꾀바른 그는 다른 부인들처럼 소란을 피우고 바람난 녀인의 머리끄뎅이를 잡아채는것과 같은 무지스러운 일은 하려 하지 않았다. 송곳이를 감추고 차거운 미소로 조용히, 허나 치명적인 징벌을 가하기로 작정하였다.
어느날 그는 자기가 절대적으로 믿는 고명한 명의 리상로를 찾아가 절절히 부탁하였다.
《이보게, 리의원, 내 집에 참 골치아픈 일이 생겼네. 이건 리의원만이 풀어줄수 있는 일이네.》
리상로의 곁에는 아들 청송과 서지번이 앉아있었다.
리상로는 의아쩍은 기색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시오?》
《이거참, 그대로 토설하긴 참으로 창피스러운 일이오나 아무래두 의원님껜 이실직고를 하고 조언을 구해야 할것같네. 우리 문중에 바람난 사내녀석이 한명 생겼수. 글쎄 촌수가 좀 먼 친척이긴 하오만. … 글쎄 그 집에서 그때문에 부부의 정이 흐려지구 싸움질이 그칠새가 없사오며 여러 사람들이 속을 태우고있네.
문중의 사람들이 아무리 신칙해도 듣지 않는다오.
하여 그 바람난 사내녀석의 기를 아예 꾹 눌러버리는 약을 좀 지어주었으면 해서 그러네.》
참으로 딱한 부탁이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리상로는 입을 열었다.
《그런 약은 망탕 지어주는게 아니지요. 정 꼭 그래야 한다면 본인 당자와 부인을 데려오시우다. 그들의 말을 들은 후 깨도가 된 다음에 약을 지어주지요.》
이것 또한 야단이였다. 본인당자라면 팽지서를 데리고 이 집에 나타나야 한다는건데 친척의 병치료를 구실로 여기에 온 최씨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는 더 말을 붙여보지 못하고 돌아서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