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제4장 운명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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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지서의 처 최씨는 여기저기 아픈데가 많았다.

특히 소화기가 나빴다. 쩍하면 설사를 하고 명치와 가슴을 아파했다. 원래 최씨를 단골처럼 치료해주던 의원은 그래도 개경에서 소문난 의관이였다.

어느날 몹시 갈증을 느낀 최씨는 씨원하게 찬물을 들이켰다.

그랬더니 곧 설사를 하고 조금후에 물이 당겼는데 갈증을 참지 못해 물을 걸탐스레 들이마시니 다시금 물같은 설사를 쫙쫙 하였다.

하인을 파하니 제꺽 의관이 달려왔다.

맥을 보고 혀를 자상히 살펴본 그는 단언했다.

《리질이오이다. 이 약을 쓰면 단박에 나을것이웨다.》

허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의관이 지어준 약을 먹었으나 조금도 설사가 수그러들지 않았던것이다.

설사가 멎지 않으니 입술이 초들초들 말라들면서 하루새에 부하던 몸이 훌쭉 꺼져내렸다.

초췌한 그 모습을 본 하인이 제꺽 한마디 여쭈었다.

《마님, 리의원께 한번 보이시오이다. 못고치는 병이 없다 하오이다.》

《뭐, 리의원?》

팽지서 처도 리상로에 대한 소문을 들었었다. 허나 시골에서 올라온 의원이라는게 딱 마음에 걸렸다.

그런 촌의원이 과연 왕경의 의관들보다 더 낫단 말인가?

그런 속에 최씨의 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중해져갔다.

연방 설사를 하니 볼이 훌쭉 처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게 말이 아니였다. 남편이라는 팽지서는 요새 어디에 가붙어있는지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이제는 시골서 온 의원이건 송도의원이건 가릴 형편이 못되였다. 하여 최씨는 다급히 하인을 앞세우고 리상로의 집을 찾았다.

망진(병자의 얼굴을 보고 병을 진찰하는것)과 맥진을 찬찬히 하고난 리상로는 제꺽 단언하였다.

《이런 설사는 약으론 못고치오이다.》

팽지서의 처가 락심한 기색으로 말하였다.

《약으로 못고치면 난 어떻게 하나?》

《마님의 설사는 활설이라고 하는데 비위가 나쁜데다가 목이 마를 때 물을 조리있게 마시지 못하면 이런 병이 생기게 되오이다.

활설이란 밤낮 한정없이 설하며 음식을 적게 먹고 몸은 여위면서 차고 손발이 싸늘한 증상이 나타나는 설사오이다.》

리상로는 설사증의 병증을 가리는 묘리를 잘 알고있었다.

활설은 다른 설사와는 달리 병자의 손발이 싸늘해지고 몸이 차며 숨결이 빠른 증상이 특징적이였다.

의관의 약이 효험을 보지 못한것은 설사의 병증을 정확히 가리지 못했기때문이였다.

최씨는 당장에 낯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럼, 내 병을 못고친다는건가?》

《아니올시다. 이런 활설은 약으로써가 아니라 뜸으로 떼야 하오이다.》

《뜸? 뜸이면 뜸, 침이면 침, 어서 설사만 떼주게나.》

리상로는 목뒤의 대추혈에 다섯장의 뜸을 떠주었다.

뜸을 뜨니 과연 그다음날로 설사가 멎었다.

리상로가 쓴 이 대추혈이 참 명혈이였다.

즉 이 침혈로는 12경맥의 모든 양경 즉 수삼양경과 족삼양경 그리고 독맥이 교차된다. 이것을 교회혈이라고 한다.

여섯개의 양경맥과 독맥이 교차되므로 그 적응증 또한 매우 많은 침혈이였다. 즉 양기를 통하게 하며 뇌를 튼튼하게 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작용과 안신(정신을 안정시키는것)진정작용이 있다. 또 모든 양경의 교회혈로서 청열작용이 세므로 모든 열증에 다 쓴다.

백날기침, 목림파절염, 풍진, 돌림감기 등 감염성질병과 기관지염, 기관지천식, 페기종, 페결핵, 자한, 식은땀 등 호흡기계통질병, 전간, 소아마비, 반신마비, 파상풍, 어린이경풍, 기운목 등에 쓰이며 신경계통의 질병치료에도 쓰인다.

또한 현대에 와서 방사선 및 화학료법에 의하여 생긴 백혈구감소증, 허리아픔, 어지럼증, 입쓰리, 다리에 힘이 없는데, 어깨와 잔등아픔 등에 쓴다. 이와 함께 면역기능을 높이는 작용이 있으므로 말라리아, 장티브스 등 감염성질병, 전염성질병에 효과가 있다.

리상로는 대추혈의 이 치료작용을 응용했던것이다.

최씨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여기저기 소문내기 시작했다.

《원, 세상에. 송도량반들과 의관들이 시골서 온 의원이라구 눈을 희번득거리며 깔보더니 저들이 못고친걸 그 시골의원이 한번의 뜸으로 싹 떼버렸어.》

원체 비위가 나쁜 최씨는 한달이 지나 소화가 잘 안되더니 또다시 설하게 되였다.

그러자 그는 곧장 리상로에게로 달려갔다.

이때에도 리상로는 배꼽우에 소금을 올려놓고 뜸을 떠주어 배가 아프면서 설사하는 증상을 단번에 떼주었다.

최씨는 환성을 내질렀다.

《임잔 과시 명의야!》

그때로부터 최씨는 자그마한 병이라도 생기면 리상로에게 달려가군 했다. 리상로만 있으면 질병치료에서의 고민이 전혀 없었다.

이 과정에 최씨는 리상로의 높은 의술을 체험할수 있었다.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어느날 최씨는 약을 가지러 리상로에게 와있었다. 리상로에게서 치료맛을 단단히 본 최씨는 약도 하인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와서 가져가군 하였다.

이날 중년의 남자가 찾아와 리상로에게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코가 땅에 닿도록 극성스레 인사를 하는 그를 보며 최씨는 리상로에게 무슨 병을 고쳐주었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리상로는 웃음을 지으며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어제 리상로의 집으로는 명치와 배를 호소하는 병자가 찾아왔다.

명치가 딱 매달리우고 그 아픔은 가슴에로까지 뻗쳐갔으며 입안에서는 느침이 질쩍하게 돌았다.

격심한 아픔으로 그는 명치와 가슴을 쓸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아이고 가슴이야, 아이고 명치야. 의원님, 좀 살려주시오이다.》

아픔은 세차게 발작했다가는 좀 느슨해지고 이제는 잦아드는가부다 하면 또다시 격심하게 발작하군 했다.

병자의 호소를 듣고 그를 찬찬히 진찰하고난 리상로는 단언하였다.

《이건 회충으로 인한 가슴앓이요.》

《회충? 그럼 내 배에 벌레가 들어있단 말이오이까? 아이고! 이걸 어쩌나. 그런 더러운 벌레가 내 배에 들어갔으니 그걸 어떻게 꺼낸단 말이오이까?》

병자는 당장 죽을것처럼 야단을 쳤다.

리상로의 경험에 의하면 이런 때에는 침보다 약에 의한 치료가 더 효험이 있었다.

리상로는 침착하게 왕진가죽주머니에서 한가지 약재를 꺼내놓으며 알려주었다.

《이건 생지황이요. 이것을 짓찧어 즙을 낸 다음 농마가루와 함께 반죽해서 수제비를 만들어 자시오. 그럼 알도리가 있을것이오.》

아픔으로 이그러진 울상을 하고있던 병자가 급한 창황중에서도 한마디 하였다.

《아니, 이렇게 중한 병을 그런 간단한 방법으로두 고칠수 있소이까?》

《어서 내 말대로 하시오.》

집으로 돌아온후 중년남자는 리상로의 말대로 김이 문문 나는 생지황즙과 농마가루로 만든 수제비를 먹으니 한식경이 지나 아픔이 싹 없어졌다. 하여 오늘 리상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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