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회)
제 10 장
7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김세천과 축구화개발실 사람들은 부러진 축구화바닥을 연구하고 분석한데 기초하여 축구화바닥의 보다 리상적이고 현실적인 재료와 배합비률을 찾아냈다. 그에 기초하여 열한컬레의 축구화를 다시 만들어 선수들에게 신겨보기로 했다. 기술과장은 오늘 저녁중으로 새로 만들 축구화바닥을 사출기로 밀어내겠다고 했다. 김세천은 그러라고 했다. 또 한가지 일을 끝낸듯한 안도감속에 오늘 저녁은 좀 일찍 퇴근하리라 마음먹었다.
입원을 하라는 병원의 요구를 뿌리치고 나온것도 사실은 가슴아파하는 딸애때문이였다. 딸애를 너무 혼자 두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 딸애와 이야기도 나누고 또 이제는 다 떨어진 심장발작때 쓰는 구급약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즈음 하루에 두번, 세번씩 구급약을 먹다나니 약이 다 떨어졌다.
김세천은 퇴근준비를 서둘렀다. 책상우에 펼쳐놓은 재단프레스도면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는듯싶어 일찍 퇴근하기가 서슴어졌다. 그래서 그는 한숨을 쉬고나서 설계도면들을 말아서 철궤안에 넣었다. 이때 급한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문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기술과장이 들어섰다. 또 《룡이 오를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흠칫해졌다. 아닐세라 기술과장은 급하게 부르짖었다.
《기사장동지, 야단났습니다. 사출기가 새로 만드는 축구화바닥을 밀어내지 못합니다. 나가다가는 떡떡 멎어서서 오가리를 만들어버립니다. 사출반사람들이 사출기를 잡는다고 막 야단입니다.》
가슴이 덜컥해지는감을 느끼며 김세천은 굳어져버렸다. 사출기에 그동안 여러번의 시험을 거친 초미세다공발포설비를 새로 만들어 설치하다나니 그런 일이 생긴것같았다. 혹은 새롭게 재료와 조성을 선택한 축구화바닥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한숨을 쉬고나서 퇴근하려던 생각을 포기하고 기술과장과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집에 가지 못하는것이 마음에 알끈해왔다. 그는 미련을 털어버리듯이 고개를 흔들고나서 사출직장쪽으로 걸어갔다. 어수선해진 현장의 공기가 페부에 와닿는듯싶었다. 사출직장장이 김세천을 보고 다가왔다. 오가리처럼 된 축구화바닥을 내보였다.
《기사장동지, 사출기가 막 웅웅 소리를 내며 멎어섭니다. 고작 축구화 몇컬레 밀려다가 사출기를 잡겠습니다.》
모두가 김세천의 얼굴만을 바라본다. 김세천은 아무말없이 숨죽인 사출기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새롭게 만들어 설치한 초미세다공발포설비도 유심히 살폈다. 현장은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해졌다. 이윽고 그는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시한번 해보기요.》
현장안에 조용한 술렁거림이 퍼져갔다. 김세천은 팔소매를 걷고 나섰다.
《혼합물의 온도를 최대로 높여보기요. 이를테면 모든 음식이 따거울 때는 만문해지듯이 온도를 최대로 높이고 바로 온도가 최대로 올라간 시간에 사출시간은 최대로 단축하는 방향에서 기계를 조절해보기요.》
그들은 다시금 달라붙었다. 실패와 좌절, 실망과 기대사이를 오고가기를 그 몇번… 그들은 드디여 축구화바닥을 모두 밀어낼수 있었다. 열컬레남짓한 축구화바닥을 위해 밤이 깊도록 전투를 한것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더없이 기뻤다. 그들은 소리높이 웃고떠들었다. 모두가 희색이 만면한 기술과장을 시까슬렀다.
《아이구, 또 룡이 올랐수다.》
《그런데 이젠 룡이 그만 올라서 천지조화를 피워야 하지 않겠소? 아직 그럴 때가 안됐소?》
《글쎄말이야. 룡은 올라가면 비도 내려주고 꼬리를 휘둘러 칠보산 같은 명승도 만들어낸다는데 저 룡청해기술과장은 축구화 하나 못만들어내니.》
《우리 축구화를 저 하늘에 가붙게 잘 만들자고 그러니 걱정들마소.》
김세천도 로동자들과 어울려 시름없이 웃고떠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굳어졌다. 무엇인가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희미하지만 선뜩한 그 어떤 령감같은것을 느꼈던것이였다. 재단프레스의 동작수행을 보다 윤활하고 섬세하게 할수 있는 장치의 희미한 실머리가 그의 머리속에 떠올랐던것이였다. 김세천은 소스라쳐놀란 사람모양 눈을 흡뜬채 까딱도 하지 않고서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사무실로 향했다. 누군가가 무엇이라고 말했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걸어갔다. 방해를 당하면 모든것을 다 잊어버릴가봐 겁이 났다. 그는 온몸을 한껏 긴장시킨채 조심조심 걸었다. 사람들이 그러는 김세천을 의아해서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듯한 심정으로 방에 들어왔고 책상앞에 마주앉았다. 조바심을 쳐가며 급하게 휘갈겨 쓰는 글씨로 그 착상을 적어나갔다. 다 쓰고는 마치 제가 쓴 글이 아닌듯이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기뻐서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쳤다.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였다.
그는 자기가 적어놓은 착상을 흥분이 사라지기 전에 즉시 설계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그에 기초하여 프로그람을 빨리 짤수 있는것이다. 그는 사도판앞에 마주앉았다. 그 순간 문득 심장쪽이 불안스럽게 두근두근하는듯한감을 느꼈다. 지나치게 흥분해서 그럴것이다. 그는 심장을 달래듯 슬그머니 사도판앞을 물러났다. 버릇처럼 책상서랍을 열고 약통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가 약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그 약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가려 했었다는 생각도 떠올랐다. 그는 빈약병인줄 알면서도 공연히 꺼내들어 흔들어보고서는 책상우에 놓았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미안한대로 안해에게 약을 가지고 나오라고 부탁하고싶었던것이였다. 전화는 해옥이가 받았다.
《아버지!》
나직하게 울리는 딸애의 목소리를 들으니 괴로와하는 딸을 위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공장에 찾아온 어린 딸애를 일을 하느라고 잊어버렸던 어제날이 또다시 떠오른다. 김세천은 자기의 격한 심정이 전해질가봐 흔연해지자고 애를 쓰며 말했다.
《해옥이구나! 밥은 먹었니?》
《예! 아버지, 오늘도 못들어오시나요?》
《그래, 미안하구나!》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시나요?》
《공장에서 먹었다.》
김세천은 흔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심란해진 딸의 기분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목소리를 밝게 내자고 무진애를 쓰며 말했다.
《해옥아, 아버지가 말이다. 방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 래일쯤엔 너한테 고운 옷하구 구두를 사가지구 들어가야겠다구 마음먹었단다. 좀 큼직한걸루 말이다.》
딸애가 어렸을적에 그는 집과 딸에 대한 생각을 감감 잊고 일에 몰두하다가는 일이 좀 완만해지거나 하던 일을 성과적으로 끝냈을 때에는 그동안 못준 사랑을 봉창하느라고 안절부절을 못하군 했다. 안해의 표현대로 한다면 《공화국에서 제일 큰 려행가방》에 당과류와 옷과 신발을 그득히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가군 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고운 옷과 신발을 모두 욕심을 내서 사다보니 아직 어린 딸애에게는 꼴불견이라고 할만큼 큰것들도 많았다. 딸애는 그 고운 옷과 신발을 빨리 입고싶고 신고싶어서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앞에 그것을 몸에 걸치고 나서군 했다.
《아빠, 봐요. 이젠 맞지요?》
훌렁한 옷과 큰 신발을 신고 두팔을 벌리고 선 딸애를 바라보며 김세천은 소리내여 웃군 했다.
《그래, 맞는다. 맞아! 우리 김해가 그새 컸구나.》
김세천은 딸애를 번쩍 추켜들고 소리나게 볼에 입을 맞추어주군 했다. 바로 그 시절의 감미로운 추억을 되살려주는 자기의 말에 김세천은 스스로 즐거워지고 감동되여버렸다.
《김해야, 너한테 어릴 때처럼 큰 옷에 큰 신발을 사가지고 들어갈가? 아직두 네가 그걸 입구 신겠다고 할가? 이젠 우리 김해 다 컸을가? 더 크지 않을가?》
《아버지두 참!》
미소를 짓는 딸애가 눈에 보이는듯싶었다. 김세천의 얼굴에도 미소가 흘러갔다.
《김해야, 난 그 시절의 네 모습을 다시 보고싶구나!》
《아버지!》
《김해야, 너무 마음쓰지 말아. 봄은 추운 겨울이 안아키우는거다. 봄은 겨울속에서 와.》
《아버지!》
딸애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아버지, 미안해요! 내가 너무 자기 생각만 하면서 아버지, 어머니를 괴롭혔어요. 날 용서해줘요.》
《그래! 우리 김해는 아버지의 자랑이다, 알겠니? 떳떳하구 강하게 살거라! 네가 훌륭하다면 훌륭한 사랑은 꼭 널 찾아온다.》
《아버지!》
차분하고 살뜰한 목소리가 그를 감싸안는듯싶었다. 가슴이 찌르르해오는감을 느끼며 김세천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일이 바빠 못들어가니 먼저 자거라. 참, 어머니가 곁에 있니?》
《어머니는 외삼촌네 집에 갔어요.》
《거긴 왜?》
《맛있는걸 가져오겠다면서…》
보나마나 밥을 잘 먹지 않는 딸을 위해 갔을것이다. 김세천은 약을 부탁하려던 생각을 포기하고말았다. 딸애가 이제 오기도 힘들거니와 또 공장에 오기가 무척 괴로울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뭘 부탁할게 있나요?》
《아니, 아니다. 어서 자거라! 내 오늘 밤에 힘껏 일하구 래일은 너와 함께 있겠다.》
《아버지, 정말이나요?》
《그래, 정말이다. 나도 좀 쉬는겸 우리 물놀이장이랑 동물원에 가보자, 엄마랑 함께!》
그 순간 김세천은 그것이 자기 일생에 처음으로 되는 일이며 약속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미안하고 쑥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기뻐졌다. 전화기에서 한결 가벼워진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좋아요!》
오래간만에 시름없이 웃는 딸애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밝아졌다.
《그럼 좋은 꿈을 꾸거라!》
《예! 아버지, 그런데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그래!》
전화는 끝났으나 그윽하고도 즐거운 생각에 사로잡힌 김세천은 한동안 멍해진 눈길로 앉아있었다. 래일은 정말로 하루 쉬리라 결심했다. 그러자 래일이 기다려졌다. 즐거운 명절을 기다리는듯한 느낌이였다. 어서 일을 끝내고싶은 욕망이 솟구쳐올랐다. 그는 서둘러 사도판앞에 다가앉았다. 탐구와 노력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새벽녘 김세천은 설계를 끝내였다. 한없는 기쁨과 허탈감에 사로잡혀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제야 무섭게 달려드는 피로를 느꼈다. 잔등이 얻어맞은듯이 아파왔다. 그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이였다. 김세천은 차거운 쇠붙이가 심장을 쿡 찌르는듯한 둔한 아픔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굳어졌다. 극심한 아픔이 심장쪽에서부터 머리끝으로 뻗어오는듯했다. 불시에 눈앞이 캄캄해왔다. 저도 모르게 책상쪽을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 책상우에 올려놓은 빈약병이 눈에 띄웠다. 선뜩하고도 절망적인 느낌, 눈앞으로 딸애의 얼굴이 쏜살같이 날아지나갔다. 그다음은 안해의 얼굴이…
(아, 물놀이장과 동물원에 가자고 약속했는데…)
극심한 아픔에 점점 흐려지는 의식을 느끼며 김세천은 경황없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어떤 위안처럼 빈 약통을 손에 쥐였다. 아픔을 이겨내고 흐려지는 의식을 다잡으려고 헛되이 애를 쓰며 안타깝고도 미안쩍게 중얼거렸다.
(물놀이장과 동물원에 가야겠는데…)
그의 손에서 빈약병이 서서히 쭈그러들었다.
…
비는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하늘도 땅도 모두 비에 푹 젖어버린듯했다. 어디나 물빛이고 물소리다. 그속으로 김세천의 령구를 실은 장의차는 천천히 움직여갔다. 가족들의 요구로 공장을 돌고있는것이였다. 장의차는 생전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온 공장을 한바퀴 돌았다. 모든 종업원들이 달려나와 자기들의 영웅과 작별했다. 비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숙여 인사를 보냈다. 장의차는 목메인 경적소리를 길게 울렸다. 사람들속에 서있던 한경철은 저도 모르게 장의차앞으로 달려나왔다. 병원에서 도망치듯 달려온 그의 옷자락밑으로 환자복이 희끗거렸다. 그는 장의차앞을 막아섰다. 어쩌겠다는 생각도 없이 저도 모르게 달려나와 섰다. 용서받지 못할 자책과 아픔으로 모질게 찢겨진 사랑. 그는 장의차안에 해옥이가 있으리라는것을 알았다. 그는 흐득흐득 느껴울며 온몸으로 장의차를 막고 서있었다. 밖에서도 울고 안에서도 울었다. 장의차는 비속에 멎어선채 움직이지 못했다. 온 차체에 뽀얀 비말을 일으키는 비방울과 차창에 줄줄이 흘러내리는 비물. 장의차는 다시금 목메인 경적소리를 울렸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여갔다. 한경철은 저도 모르게 장의차의 차체를 쓸어안았으나 장의차는 그대로 움직여갔다. 한경철은 비칠거리다가 진창투성이가 된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피를 내뱉듯 목놓아 웨쳤다.
《기사장동지이!-》
…
로력영웅 김세천은 이렇게 갔다. 그는 자기 한생의 마지막힘과 지혜마저 이 땅에 깡그리 다 바치고 갔다. 인생의 진정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어머니조국과 당을 위하여 그는 한생을 초불처럼 태우고 갔다. 자기의 온 한생으로 조국앞에 수많은 창조물을 남기고 갔으며 조국의 부강과 번영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그 정과 뜻을 남기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