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1장 운명의 회오리

8

 

묘청의 정변시작은 량반통치배들의 정권쟁탈전으로 출발한것이였으나 그것이 이제는 서경인민들이 자기의 사랑하는 고향을 지켜 개경관리들을 반대하는 농민전쟁의 성격을 띠였다.

서경의 량반관료들의 내심은 복잡해도 군사들과 백성들의 기세는 충천하였다. 이 도도한 흐름을 타고 조광과 안중영을 비롯한 관리들도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단호한 립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개경에서 투항을 권고하여 보내온 시어사 김부와 내시 황문상을 처단함으로써 자기들의 반항의지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서경을 고수하기 위하여 백성들과 군사들은 대동강연안을 따라 선요문으로부터 다경루에 이르기까지 성을 새로 쌓았다.

김부식은 혀를 깨물었다. 대군이 접어들면 쉽사리 무너질줄 알았던 서경성은 너무도 단단했다.

그는 생각했다.

(안되겠다. 우선 대동강의 물길부터 장악해야 한다.)

김부식의 계략에 따라 활쏘기에 능한 군사들과 수군 4 000여명을 실은 병선 140여척이 대동강을 따라 상류에로 올라오고있었다.

이 소식은 개경군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하던 서경군 렴탐에 의하여 재빨리 서경성안에 통보되였다.

이 수군을 막기 위해 천동의 아버지 석산의 부대가 나섰다.

배가 대동강 상류에로 올라오다가 물이 얕아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였을 때 나무단을 그득 싣고 불길이 활활 솟구치는 자그마한 목선 10여척이 여울에 걸려 갈팡질팡하는 전함쪽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이어 전함은 불길에 휩싸였다.

쩌렁쩌렁한 석산의 웨침이 울렸다.

《궁수들은 활을 날려라. -》

줄소나기와 같은 화살이 전함쪽으로 날아갔다.

관군은 거의나 전멸되고 병쟁기와 전함은 모두 불타버렸으며 전함을 지휘하던 형부상서 김태수와 록사 정준도 역시 활에 맞아죽었다.

이날의 승전은 서경군사들과 백성들의 사기를 크게 돋구어주었다.

첫 공격에서 실패한 김부식은 5군을 총동원하여 서경성에 대처하여 작은 성들을 쌓게 한 다음 장기전을 시도하였다.

김부식은 그해 3월에 5군을 총동원하여 다시금 서경성을 공격하였다. 성곽우에서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끓어번지고있었다.

충차가 성문을 들이받는 둔중한 소리가 쿵- 쿵- 울렸다.

성문과 성벽쪽으로 김부식이 지휘하는 5군들이 벌떼와 같이 밀려들고있었다.

서경성안의 군사들이 성곽우에 붙어 맹렬히 활을 쏘아댔다.

성곽우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아낙네들이 펄펄 끓는 물을 가득 담은 물동이를 이고 잽싸게 오르내리고있었다. 군사들은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성벽에 매달려올라오는 관군의 머리우로 무자비하게 쏟아부었다.

여기저기서 《으악!-》하는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녀인들과 소년들은 화살을 날리는 군사들사이에 끼워 돌과 기와를 아래로 집어던지고있었다.

온 서경성안의 백성들이 다 떨쳐나섰다.

허연 수염발을 펄펄 날리며 의원이 고령의 나이답지 않게 이리저리 달리며 부상자들을 치료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뒤로 천동이가 의원의 뒤를 딱 붙어다녔다.

의원이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군사를 붙잡고 소리쳤다.

《천동아, 백초상!》

백초상이란 아궁이나 굴뚝에 생긴 검댕이를 말한다.

피를 멈추는데서는 제격이다.

《알았소이다.》

커다란 가죽주머니에서 천동은 다급히 시꺼먼 검댕이가루를 넘겨주었다. 의원은 피가 흘러내리는 상처에 가루를 뿌리고 다급히 흰천을 감아주었다.

백초상을 뿌려주어도 피가 잘 멎지 않는 부상자들에게는 다급히 푸초즙과 무우즙을 내서 먹이군 하였다. 피를 멈추는데서는 매우 효험이 있는 약재였다.

워낙 부상자들이 많은지라 의원은 모든 약재와 수단을 다하여 그들을 치료하였다. 푸초즙과 무우즙이 미처 마련되지 못하자 의원은 천동에게 소리쳤다.

《천동아, 얼른 집에 내려가 참먹을 있는대로 다 가져오너라.》

《네, 먹이요?》

《이녀석, 빨리 가거라.》

잠시후 천동이가 헐떡거리며 열개의 시꺼먼 먹을 들고 나타났다.

의원은 다급히 생지황즙에다 그 먹을 갈아 피가 멎지 않은 군사들에게 먹이였다. 생지황즙이 떨어지자 우물물에 타서 먹이기 시작했다.

과연 의원의 처방은 신통했다. 겉에 백초상을 뿌리고 약즙을 먹이니 피가 단박에 멎군 했다.

그 복새통속에서도 천동은 의원의 신비한 의술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접전의 조용한 틈에 천동이가 물었다.

《할아버지, 먹도 약이 되오이까?》

《그래. 원체 검은 약은 다 피를 멈추는 작용이 있지.

검은 먹을 생지황즙에 갈아 먹이거나 새로 길어온 우물물에 갈아 먹이면 모두 피나기를 다 멈출수 있어.》

다음날 부상자들이 련이어 나자 의원은 아예 성곽우에 올라서 허리를 뻣뻣이 펴고 여기저기로 뛰여다녔다.

의원의 앞뒤로 화살이 휙휙 날아지나갔다.

천동은 아짜아짜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할아버지, 위험하오이다. 머리를 숙이소이다.》

《천동아, 꼼짝 말고 그자리에 있어라.》

이쪽저쪽으로 종횡무진하던 의원의 입에서 갑자기 《헉-》하는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의원은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할아버지-》

천동은 나는듯이 의원에게로 달려갔다.

천동이가 다급히 뛰여가보니 의원은 차디찬 성곽의 포석우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가슴팍에는 두대의 화살이 깊숙이 박혀있었다.

천동은 애절하게 부르짖었다.

《할아버지, 죽지 마세요. 눈을 뜨시라요. -》

천동의 두볼로는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가쁘게 숨을 헐떡이던 의원이 힘겹게 두눈을 떴다.

《천동아… 사내가 울긴… 그쳐라. 이렇게… 전장에서… 죽는건… 장한 일이다. … 눈물을 거둬라. …》

이윽고 의원의 목이 맥없이 옆으로 뚝 떨어져내렸다.

천동의 애절한 곡성이 터져나왔다.

《할아버지!-》

김부식은 경악실색하였다.

그는 5군이 총동원하여 맹공격을 들이대면 얼마 못가서 성이 쉽게 떨어지리라고 타산했었다. 허나 서경성은 너무도 철옹성같이 단단했다.

서경군사들과 백성들의 투쟁기세가 얼마나 드셌는지 김부식은 놀랐다. 일년이 넘도록 서경반란자들을 짓누르지 못하는데 대해 추궁해오자 김부식은 계략을 바꾸어 장기전을 결심하였다.

장기전은 서경성 사람들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하였다.

가장 치명적인것은 식량이였다. 10월에 들어서면서 성안의 식량이 거의나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하여 할수없이 로약자들과 부녀자들을 추려 성밖으로 내보냈다. 이때라고 생각한 김부식은 드디여 새로운 최종공격을 펴기로 하였다.

그는 10여일간 공격을 멈추었다.

아우성과 결전의 소용돌이가 멎고 잠시 평화가 깃든듯 하였다.

김부식은 지금처럼 우직하게 성을 들이쳐서는 절대로 승산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열흘이상이나 고요한 정적을 조성한 김부식은 전군을 세개군으로 편성한 후 주요군장들에게 상을 후하게 주었다.

그리고는 이들 부대가 각각 서로 다른 성을 각개로 들이치도록 하였다. 이 공격에서 가장 중요한 요는 공격시간이였다.

김부식은 이 시간을 야밤삼경으로 잡았다.

굶주리고 지칠대로 지친 서경성안의 군사들이 이 시간에는 거의나 다 노그라졌을 때이다.

김부식의 타산은 맞아떨어졌다.

깊은 밤인지라 파수병을 내놓고는 거의 모두가 곯아떨어져있었다.

열흘이상이나 접전이 없자 8각에 한번씩 진행되던 순라도 뜸해져있었다.

드디여 김부식의 계략대로 벼락같은 공격이 시작되였다.

한 부대는 양명문으로, 다른 부대는 함원문으로 또 다른 부대는 홍례문으로 쳐들어갔으며 김부식자신은 금군을 데리고 광덕문을 공격하였다. 여기저기서 북소리와 고함소리가 울리고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정신을 차린 서경군들이 결사적으로 맞섰으나 그 력량상차이는 너무도 컸다.

서경군은 점차 밀리우기 시작했다.

관군은 승전의 기세를 타고 마침내 성을 함락하였다.

2년간 그렇게도 결사적으로 항전하던 서경성은 이렇게 함락되고야말았다.

며칠째 공격이 없자 자기 집에서 혼곤히 잠들었던 조광은 아비규환의 생지옥과 같은 아우성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이때 요란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전령이 황황히 뛰여들었다.

《시랑님, 성이 함락됐소이다. 지금 관군이 우리 군사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있소이다.》

《뭣이?!》

조광은 대경실색하여 잠옷바람으로 대문밖에 뛰쳐나갔다.

온 성안에는 화광이 일었고 여기저기서 아우성과 울부짖음소리로 차고넘쳤다.

조광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이젠 끝장이구나.)

그는 비청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잠시후 조광은 음울한 기운에 젖어 부인 강씨와 마주앉았다.

죽음을 각오하니 되려 마음이 평온해지는듯싶었다.

조광이 비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부인, 미안하오. 이 못난 랑군을 만나 제명을 다 살지 못하고 이렇게 가게 하는구려. 흑흑…》

강씨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너무 비감마소이다. 그 뜻을 따르겠소이다. 전 후회하지 않소이다.》

이어 두개의 청자고뿌에 누르끼레한 술이 그득 부어졌다.

독주였다. 조광이 먼저 그 잔을 입에 가져갔다.

강씨도 조광을 따랐다. 조광의 손이 후들후들 떨고있었다.

먼저 조광이 술을 쭉 들이켰다. 이에 뒤질세라 강씨도 조심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정신이 흐릿해왔다.

이어 조광은 비칠거리며 일어나 미리 들여다놓은 기름이 그득 들어있는 커다란 항아리를 장검의 자루로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를 내며 시누런 기름이 콸콸 흘러내려 방바닥을 질벅하게 적시였다.

조광은 그우에 불길이 날름거리는 청심대촉을 휙 내던졌다.

그리고는 강씨와 나란히 방안에 누웠다. 그들의 정신은 이미 희미해져가고있었다. 뱀의 혀와 같이 널름거리던 시뻘건 불길은 이어 온 방안을 휩쓸었다.

잠시후 그 불길은 조광의 집전체에로 삼단같이 번져갔다.

성이 함락되자 랑중 유위후 등 3명은 목매여 죽고 정선 등 6명은 칼로 자결하였다.

서경성을 점령하고 성안의 질서를 엄격히 정돈한 후 김부식은 표문(임금에게 보고하는 글)을 올리게 하였다.

조정의 령에 따라 최영, 대장군 황린 등 주모자 7명은 목을 베여 3일간 장거리에 매달게 하였다.

붙잡은 서경량반들은 수도의 옥에 감금하였다.

완강하게 저항한자는 《서경역적》이라고 새겨 바다섬으로 류배 보내고 그보다 죄가 좀 경한자는 서경이라는 두글자를 새겨 천민지역인 향, 부곡에 나누어 소속시켰다.

그 나머지는 지방주, 군, 현에 나누어 배치했고 처자들은 자기 의사에 따라 거주시켜 량인으로 만들었다.

정변의 주모자들인 조광, 최영 등 7명과 정지상, 백수한, 묘청, 류감 등의 자식과 처자, 동생들은 동북 여러 성의 노비로 보냈다.

무자비한 서경정벌을 단행한 김부식은 그 공로로 인종왕에게서 큰 치하를 받고 화려하고 사치한 의복과 금주전자를 하사받았다.

임금은 그의 벼슬을 올려주었고 고대광실 한채를 주도록 하였다. …

묘청의 정변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묘청의 정변을 일으킨 봉기자들의 주장은 개경집권량반들의 사대외교에 대한 반항의 표시인 동시에 개경의 정통적권위를 극복하고 고구려의 옛 수도인 평양에 수도를 옮김으로써 나라의 위력을 떨치며 금나라의 압력을 물리치자는것이였다.

묘청의 정변은 본질에 있어서 지배계급내부에서의 정권쟁탈전이였으나 사대주의를 반대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의의를 가진다.

또한 서경군지휘층의 동요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은 투쟁의 예봉을 착취계급을 반대하는데로 돌림으로써 이 투쟁은 마침내 각지에서 발발한 12세기 농민전쟁의 서막을 열어놓은것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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