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1장 운명의 회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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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의 어마어마한 관군이 서경의 정변군을 토벌하러 출병하였고 서경천도를 개경에서 추진하고 주관하던 관리 정지상과 백수한, 김안이 김부식에 의하여 목이 달아났다는 소식은 바람과 같이 날아와 서경성안으로 새들었다.
그들의 죽음은 묘청과 조광, 류감과 안중영에게 있어서 커다란 타격으로 되였다. 허나 묘청의 얼굴은 아직도 푸르딩딩하였다.
정변지휘부에서는 알륵과 분렬이 생기게 되였다.
조광을 비롯한 일부 량반관료들은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겁에 질려 안절부절 못했다.
(아! 이러다 앉은자리에서 날벼락을 맞을건 아닌고…)
기실 조광과 곽응소, 윤첨과 조창언은 일이 이렇게까지 번져나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단지 서경천도가 순조로이 진행되면 그 바람을 타고 큼직한 벼슬자리를 따낼 권력욕으로 이 일에 뛰여들었었다.
허나 지금의 일은 너무도 험악하게 번져지고있었다.
이들은 밤낮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날 길을 부지런히 모색하였다.
드디여 곽응소와 조창언, 윤첨은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한 용단을 내리기로 하였다.
이들 셋은 머리를 맞대고 무서운 살인음모를 꾸렸다.
이 일은 윤첨이 집행하기로 하였다.
윤첨은 우선 묘청과 류감의 동태를 면밀히 살폈다.
그들이 모이군 하는 병부상서 류감의 방은 관청복도에 주런이 늘어서있는 자기 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맞은켠에 있었다.
술시(19~21시)경이 되면 묘청은 어김없이 이 방에서 중랑장 류호와 함께 군사공격방안을 상론하군 하였다.
이들의 동태를 파악하자 윤첨은 지체없이 자기의 수하심복인 별장을 은밀히 불러들였다. 우직한 별장은 칼부림의 능수였다.
《자네는 내가 주는 비밀령을 하나 수행해야겠네. 이번 일은 실수가 없어야 하네.》
《나리, 뭣이오이까?》
얼굴이 불깃불깃하고 무지하게 생긴 난봉군같은 별장의 얼굴이 윤첨을 바라보고있었다.
《지금 상층관리들속에서 관군에 투항하려는 배신자들이 나타나고있네.》
《네? 그게 누구들이오이까?》
《정심법사와 병부상서 류감 그리고 중랑장 류호들이네.
이들은 매일 저녁 모여앉아 우릴 배신하구 관군에 투항할 쑥덕공론을 벌리고있네. 그러니 자넨 오늘 저녁 날랜 부하들을 데리고 그놈들을 제껴야겠네.》
별장은 묘청과 류감, 류호를 알고있었다. 칼부림과 술밖에 모르는 별장이라도 윤첨의 말이 거짓이라는것을 알았다.
윤첨이 별장을 구슬렸다.
《이 막중한 령을 잘 수행하면 내 자넬 단번에 중랑장으로 승진시키고 록봉을 후하게 주겠네.》
벼슬과 재물이라는 유혹에 별장은 다른 생각은 다 지워버렸다.
《나리, 맘을 푹 놓으시오이다. 칼부림에서야 소인을 당할자 있소이까?》
어둠이 깃든 술시 마지막시간, 일곱명의 사나이들이 관청복도를 따라 살금살금 병부상서 류감의 방쪽으로 다가가고있었다.
그 맞은켠 윤첨의 방에서는 윤첨이 문틈으로 이들의 거동을 칼날같은 신경을 도사리고 살피고있었다.
윤첨의 심장은 쿵- 쿵- 세차게 두근거렸다. 이 거사에 자기의 생사가 달려있는것이다.
잠시 문밖에서 방안의 동정을 살피던 별장이 뒤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눈짓을 한 후 벼락같이 방안으로 뛰여들었다.
지형도를 앞에 놓고 묘청과 머리를 맞대고있던 류감이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다.
《뭔가?》
《이 배신자야, 내 칼을 받아라!》
별장과 일곱명의 괴수들이 류감과 류호가 어쩔새없이 번뜩이는 칼로 무자비하게 그들의 가슴팍을 푹 들이박았다.
《으악-》
배신자들의 불의적인 기습에 류감과 류호는 꼬꾸라지고말았다.
묘청은 후닥닥 뛰쳐일어섰다.
《이게 무슨짓인가?》
별장이 살기찬 두눈을 희번덕이며 검을 추켜들고 묘청에게 다가섰다.
《스님, 고정하시우. 배신자들을 처형하라는 윤첨나리의 분부올시다.》
《뭐, 윤첨이?》
묘청은 대뜸 사태의 진상을 파악했다.
(개자식, 종시 배신하구말았구나.)
개경의 관군에만 너무나 신경을 쓰던 나머지 그는 대내에 배신자가 생길수도 있다는것을 소홀히 했던것이다. 허나 이제는 되돌려세울수도 없는 아찔한 낭떠러지앞에 나선것이다.
별장이 씨벌였다.
《자, 이젠 그만 속죄하시고 스님들이 그처럼 달콤하게 외우시는 극락세계로나 가보시지요.》
그리고는 검을 버쩍 추켜들었다.
묘청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만!》
별장을 쏘아보는 묘청의 두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살인을 전문으로 여기는 별장도 묘청의 서슬푸른 기상에 주춤거렸다.
묘청은 이발을 으드득 갈며 부르짖었다.
《아! 배신자를 가려보지 못하여 정녕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구나. 통분하도다.-》
격노한 심장의 박동을 담은듯 그의 온몸에서는 시퍼런 피줄이 굵직하게 돋아올라 펄떡거렸다.
순간 묘청은 별장의 손에서 검을 휙 나꾸어채여 자기 목에 댔다.
다음순간 《윽-》하는 야생적인 고함소리와 함께 묘청의 목에서 검이 번뜩 빛을 뿌렸다.
굵직한 목대에 돋아난 애기손가락같은 피줄에서 분수와 같이 붉은피가 쫙 내뿜었다.
묘청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지더니 철써덕-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바닥을 들이받았다.
문밖에서 안의 동정을 엿보던 윤첨은 기겁초풍하였다.
아! 죽음, 얼마나 무서운가.
방금전까지만 해도 부나비와 같이 펄펄 뛰면서 뜻과 웅지를 부르짖던 사람이 죽은 개처럼 너부러져있지 않는가.
윤첨은 온몸을 후드득 떨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조금만 더 주저했더라면 저
다음날 이른새벽 윤첨은 곽응소, 조창언과 함께 묘청과 류감, 류호의 머리를 나무함에 넣고 황급히 성에서 빠져나와 관군에 투항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배신적인 행위는 실로 어리석기 그지없는짓이였다.
개경의 재추들은 묘청과 류감, 류호의 머리를 저자거리에 내걸고는 조광을 위시로 한 서경의 관리들모두가 무릎을 꿇고 항복하라고 요구하였다.
조광은 개경의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날에는 끝장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조광이 응하지 않자 개경의 관리들은 윤첨과 투항자들을 가차없이 옥에 처넣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광의 얼굴은 새까맣게 질려버렸다.
조광은 개경에 아무리 빌붙어야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절감하였다.
하여 그는 할수없이 정변군과 행동을 같이하지 않으면 안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