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3 장

4

 

《모야!-》 《모야!-》

《아이구, 후도로구나!》

운동장에 새겨넣은 윷놀이판에서는 떠들썩한 함성이 뻗닿게 울리고있었다. 윷놀이경기가 벌어지고있는것이였다.

이제 공장은 머지않아 공장창립일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그날에 진행될 윷놀이경기를 위한 직장부서별 예선경기가 벌어지고있는것이였다. 경기에 참가하는 팀의 선수들과 응원자들도 달아올랐지만 점심참인지라 모두가 모여와 어깨성을 쌓고 구경하는 옆사람들의 기세도 올랐다.

함성과 웃음소리, 깨알 흘러내리는듯한 처녀들과 녀인들의 다사한 입담. 운동장은 떠나갈듯했다.

다소 늦게 윷판으로 달려나온 옥림도 사람들의 등뒤에 발돋움을 하고 서서 소리치고 가슴을 조이고 했다. 경기를 하는 팀이 아버지가 속해있는 사무성원들의 팀이여서 더 그랬다. 문득 옥림의 귀전에 앞에서 윷놀이경기를 지켜보는 처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공장의 <3쓩> 인 부지배인동지가 왜 안보이니? 자기네 부서경긴데…》

《<3쓩>은 무슨 <3쓩>이야? <3도> 도 못되는 사람을 놓고.》

다소 비양조로 울리는 그 말에 옥림은 흠칫 놀라 그 처녀들을 여겨보았다.

《이젠 부지배인동지가 <3도>가 됐니?》

《<3도> 도 못된다는데. 아예 꼽히지도 못해. 자기도 그걸 아는지 경기장에도 아예 못나오지 않니?》

《건 왜 그렇게 됐니?》

《공장종업원들의 살림집문제를 해결한다고 기초만 파놓았던 살림집을 부지배인동지가 나서서 아예 다시 메워버린다더라.》

《뭐?!》

《사람이 지배인사업을 대리할 때에는 돋보이고 능력도 있어보이더니 새 지배인이 임명된 다음부터는 아예 명색뿐인것같애. 어디 공장에 있는지 없는지 알겠니? 기초를 메워버리는데나 나서지.》

《지배인이 됐으면 살림집을 지었을지도 모르지 뭐.》

《글쎄…》

《자기만을 위해 힘을 쓰는 사람은 일단 목적이 이루어지면 변하는 법이야. 부지배인은 아마 지배인이 되고싶어서 살림집건설을 시작했을거야. 그러니 지배인이 된 다음에 살림집을 끝까지 지었겠는지 안지었겠는지는 두고봐야 알지뭐.》

옥림은 피가 나오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에 대한 험담을 더는 참고 들을수가 없었다. 옥림은 앞에 있는 처녀의 잔등을 탁 쳤다. 뒤를 돌아본 처녀의 눈이 삽시에 커졌다.

《아니, 너?! …》

옥림은 새파래진채 소리쳤다.

《언니, 살림집기초를 메우는게 뭐 우리 아버지 혼자결심인것같애요? 지배인동지도 승인하고 지시했으니 지배인동지도 <3모>에서 빼라요.》

처녀들은 당황하고 놀라서 입을 하 벌린채 굳어졌다. 옥림은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은 얼굴로 함성이 들끓어 일어나는 윷놀이경기장을 떠났다. 정신없이 걸었다. 하지만 조용한 공장휴식터에 이르니 약이 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근심이 갈마들었다.

대중의 눈처럼 정확한 저울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3쓩》이며 《3도》를 가르는 처녀들의 평가는 언제나 정확했고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유감없이 공감하군 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는 거기서 제외되였던것이였다.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힘소리를 오늘 처녀들에게서 다시 들은것도 의미심장했다.

그날저녁 옥림은 아버지를 찾아가 함께 퇴근했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아버진 정말 지배인이 되고싶어서 아빠트기초를 팠나요?》

아버지는 흠칫 놀라 옥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옥림은 낮에 윷놀이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얼굴색은 컴컴해졌다. 말없이 걷기만 하다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딱히 지배인이 되고싶어서 기초를 팠겠니? 그때는 정말로 공장을 위해서 큰일을 해보고싶어서 기초를 팠다. 하지만 파놓고나니 너무도 힘든 일이라는걸 깨달았지. 난 죽을 기를 다 써보았지만 아빠트를 올리지 못했다. 내 힘은 정말 거기까지뿐이다.》

옥림은 놀라서 멎어서기까지 한채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또 힘소리다. 한없이 무기력해진듯한 아버지의 얼굴이 낯설게 안겨온다. 중언부언하는 목소리도 처음 듣는듯이 느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어떤 초능력을 가진 존재로 보는구나. 내 힘도 제한되여있다는걸 도무지 리해해주려 하지 않거던. 아빠트기초를 다시 메우자고 한건 지배인도 찬성한 일인데 사람들은 나만 욕하지. 어쩌겠니? 귀먹은 욕이니 들어드는 수밖에.》

막막하고 구슬픈 기운이 가슴속으로 흘러갔다. 아버지와 딸은 집에 당도할 때까지 제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현듯 가슴에 밀려든 아버지에 대한 놀랍고도 불안스러운 인식은 어린 처녀를 당황해지고 심란해지게 만들었다. 이 며칠사이에 아버지에게서 찾아보게 된 모순점들이 막막하고도 두려운 기운을 안고 가슴속에서 가시덩굴마냥 엉켜도는듯했다.

그날 저녁 여느때처럼 밤공부를 하려고 책상앞에 마주 앉은 그에게 어머니가 다반에 과일과 간식을 담아가지고 들어왔다. 옥림은 망설이다가 나가려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픔을 호소할 때와 같은 눈길로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니는 놀라고 의아해서 딸을 내려다보았다.

《너 왜 그러니?》

옥림은 웃어보이려고 애썼다. 그러나 잘되지 않아 얼굴을 어색하게 이그러뜨리며 더듬더듬 물었다.

《엄마, 엄만… 아버지와… 어떻게 결혼했나요? 련애를 했나요?》

그 말을 하는 옥림의 얼굴은 삽시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머니의 눈은 둥그래졌다.

《원, 애두! 새망스럽게!》

《아니야, 엄마! 난 꼭 알고싶어요.》

옥림은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서있었다. 불현듯 싸늘해지고 시름겨워진듯한 얼굴로 서있었다. 이윽고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아무리 자식이래도 알지 말아야 할건 알지 말아야 하는거다.》

어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는 무거운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옥림은 굳어진듯 앉아서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나가버리자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서려돌았다. 옥림은 그 침묵이 이즈음에 와서 자기가 때없이 느끼군 하는 집안의 분위기였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옥림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합이 분명 아름답지 못했다는것을 예감했다. 강철민을 두고 아버지가 하던 말이나 방금전의 어머니의 태도가 그것을 말해주고있는것이였다.

그렇다면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불만과 랭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것이 아닐가? 어머니가 말하던 그 《힘》이란 바로 아버지의 진실하지 못한 사랑관을 두고 한 말이 아니였을가?

녀인들의 심리에 대한 이러한 일화가 있다. 외국에 출장차로 갔던 어떤 사람이 일을 끝마치고 귀국하려고 비행기표를 샀다. 출발을 앞두고 안해에게 돌아간다는 전보를 치자고 마음먹었다. 나의 사랑 누구에게 하고 첫 머리를 떼고 돌아간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전보료금을 물자고 보니 취급원이 요구하는 돈보다 약간 모자랐다. 남은 돈을 계산하지 못했던것이였다. 취급원이 녀자였다. 전보를 치자면 글자를 줄여야 했다. 생각하다가 나의 사랑이라는 말을 빼버리자고 했다. 그러자 취급원녀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됩니다!》

그리고는 자기 손가방을 열고 돈을 꺼내드는것이였다.

《정 그렇다면 <사랑> 이란 글자값은 제가 물어드리지요. 녀자들에게는 그 말이 제일 귀중해요!》

바로 그 녀성의 본능으로 하여 어머니는 사랑에서 진실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아픔과 불만을 표시한것이 아닐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옥림은 겁이 났다.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난 지금 아버지에 대한 한두사람의 뒤소리때문에 너무 흥분하고있어. 뒤소리만으로 인간을 다 평가할수는 없는거야. 아버지는 지배인이 될수도 있었던것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받고있어.

여기까지 생각하자 지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서인지 지배인을 탓하고싶어졌다.

지배인동지, 지배인동지도 살림집기초를 메우는데 동의했으니 사람들의 타매와 질시를 받아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지배인동지는 뒤전에서서 아무 책임도 없는 사람이 되였군요. 온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리유때문일거예요. 하지만 결국 지배인동지도 《힘》이 없는 사람이예요. 가정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업에서만은 그렇다고 봐요. 난 이제 아빠트기초문제처럼 모든걸 우리 아버지가 책임지게 될가봐 무서워요. 우리 아버진 분명 지배인동지의 피해를 당하고있어요.

눈앞에 떠오르는 지배인의 얼굴을 그려보며 옥림은 자기와 아버지를 구원하는 심정으로 있는 힘껏 지배인을 탓했다. 처녀의 방에는 오래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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