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1장 운명의 회오리

7

(1)

 

서경반란으로 개경의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정지상은 묘청의 정변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무슨 날벼락인고?)

지금에 와서야 정지상은 묘청과 자기가 주장하는 서경천도의 의도가 달랐다는것을 깨달았다.

정지상은 사대를 추구하는 김부식과 달리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 고려의 존엄을 빛내려는 의도에서 서경천도를 주장했으나 묘청에게는 정권을 뒤엎는 역신의 의도가 깔려있었던것이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였다.

정변이 성공하면 죄가 가벼워지겠으나 실패하는 날에는 역신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운명을 피할수 없는것이다.

또 가족들의 운명은 참사를 면치 못할것이였다.

불길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세차게 두드렸다. 이것은 그 어느모로보나 불행한 전말의 시초였다.

그는 몇년전에 있었던 리자겸의 란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들고일어났던 그들의 기세도 처음에는 얼마나 충천했던가!

그때에는 그 무서운 기세로 왕궁까지 다 불태워버렸었다.

허나 종당에는 몽땅 진압되여 처참한 처형을 받거나 귀양살이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조정의 문무대신들의 목이 나떨어졌던가. …

(아!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정지상은 미구하여 들이닥칠 무서운 검은구름을 예감하며 불안스러운 마음을 고시르고있었다.

정지상의 우려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개경의 조정은 김부식을 총지휘자로 하는 서경에 대한 토벌군을 조직하였다.

인종왕은 대신들을 불러 출병문제를 상론하고 김부식에게 부월(전투지휘용도끼)을 주어 출정을 명령하였다.

관군을 출병시키기 전에 인종왕은 내시 류경심, 조진약 등을 서경에 파하여 군사행동을 중지할것을 선유한다는 취지를 전하게 하였다.

서경성안에 있는 관풍전에서 이들과의 회담이 진행되였는데 정변자들의 태도는 여전히 도도하였다.

그들은 《바라건대 주상은 서경으로 옮겨오시라.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변고가 생길것이오이다.》라는 글발이 담겨진 봉서 한통을 검교첨사 최경에게 넘겨주어 개경에 보냈다.

며칠후 묘청과 정변자들은 재차 다음과 같은 글월을 개경에 띄웠다.

《페하께서 일찌기 음양의 지당한 예언을 믿으시고 대화의 궁궐을 창건하시여 천하의 주인이 되시려는 뜻을 펴시였사온데 송악의 신하들이 주상의 뜻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만 향토를 그리워하면서 서경천도를 방해했을뿐 아니라 나라에 공헌이 되는 일까지 방해하고있소이다.

인심은 두려운것이며 뭇사람의 분노는 막기 어려운것이오나 만일 주상께서 친히 서경땅으로 오시오면 병란이 수습될수 있을것이오이다.》

이 서신을 본 김부식은 이발을 으드득 갈았다.

그는 서경으로 출전하기 전에 먼저 한가지 일을 처리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지반을 닦는데서 제일 장애물인 정지상과 그의 측근들부터 제거하는것이였다. 하여 평범한 관리를 시켜 한명씩 성문밖으로 유인해오도록 하였다.

차마 극악한 음모가 기다리고있는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이들은 성문밖에 누가 찾아왔다는 관리의 말을 듣고 흔연히 성문쪽으로 향하였다.

먼저 백수한이, 그다음은 정지상이, 맨나중에 김안이 성문에 나타났다.

김부식은 그들이 성문을 나서는족족 날랜 군사들을 시켜 벼락같이 달려들어 포박하였다.

김부식이 정지상에게 바싹 다가들어 씨벌였다.

《정지상, 감히 역적모의를 꾀하고 무사할줄 알았느냐?》

김부식과 정지상은 서로 날카롭게 대립되여있었다.

정지상이 불이 황황 이는 눈으로 김부식을 쏘아보았다.

《난 역적모의를 꾸미지 않았소. 고구려의 넋을 잇자는것이 어찌 역신이 된단 말이요?》

김부식은 이죽거렸다.

《흥, 넋을 잇는다는 구실로 감히 개경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도 할 말이 있는가?》

정지상은 두눈을 번뜩이며 추상같이 웨쳤다.

《평장사, 똑똑히 알아두시오. 난 그 반란과 아무런 인연도 없소. 성왕님을 받들어 충의를 다하려고 했을뿐이요.

아! 분하구나. 내 오늘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간다만 사대를 일삼는 당신같은 매국노는 구천에 가서도 피값을 받아낼테요. 퉤이-》

격노하여 내뱉은 정지상의 허연 침발이 김부식의 넙적한 얼굴에 휙 날아가 게발렸다.

김부식의 눈은 살기로 번뜩였다.

《이 역적놈들의 목을 쳐라. -》

김부식이 고함을 치자 정지상과 백수한, 김안의 등뒤에 바싹 다가붙어있던 군사들이 장검을 빼들고 그들의 목을 내리쳤다.

순간 그들은 선지피를 쭉 뿌리며 통나무와 같이 털써덕 넘어졌다.

오늘과 같은 때를 기다리던 김부식은 묘청정변을 계기로 정지상에게 묘청과 내통했다는 트집을 잡아 그를 이렇게 처형하였다.

이것으로써 김부식은 천하 신동이라 불리우던 정지상을 제거하였다.

후일 그에 대한 일화가 전해지고있다.

정지상을 죽인 뒤 김부식은 이제는 이 세상에서 자기를 압도할 시인이 없다고 생각하며 우쭐댔다.

그러다 어느 하루 시 한구절을 지어놓고 천하명구라고 자랑하였다.

 

천오리 버들가지 푸르고

만점의 복숭아꽃 붉고나

 

이날밤 김부식은 제 흥에 겨워 시구를 읊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죽은 정지상이 생시처럼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치며 꾸짖었다.

《천오리인지 만점인지 누가 세여보았느냐? 이따위도 시라고 짓는단 말이냐?》

정지상은 김부식에게 얼굴도 들지 못하게 욕설을 퍼붓고는 붓을 들어 시구를 고쳐주었다.

 

오리오리 버들가지 푸르고

송이송이 복숭아꽃 붉고나

 

고친 시를 본 김부식은 얼굴이 뜨거워 아무말도 못하였다.

이후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부식은 자기보다 뛰여난 훌륭한 시인을 죽인 불안과 공포로 하여 제명을 다 살지 못하고 뒤간에서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