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1장 운명의 회오리
6
서경의 새 궁궐이 완공된 일로 하여 서경천도계획은 거침없이 추진되여나가는듯하였다.
임금이 직접 새 궁전에 들어 여러 신하들의 축사를 받았다.
흡족한 인종왕이 여러 신하들을 위하여 연회를 차렸다.
경술8년(1130년) 기세좋게 발걸음을 뗀 서경천도의 일은 점차 궂기기 시작했다.
서경의 사탑이 갑자기 불타버렸던것이다.
묘청의 반대파들은 이 사소한 사건도 그냥 스쳐지나려 하지 않았다.
김부식을 비롯한 개경의 관리들은 이것은 왕궁을 서경으로 옮김에 있어서 매우 불길한 조짐이라고 간하여 서경천도를 극구 반대하였다.
김부식은 정지상, 묘청, 백수한을 끝없이 미워하였다.
그는 풍수설로 인종왕의 마음을 사고있는 그들을 증오하였다.
김부식은 개경을 짓밟고 서경이 부흥하는것을 절대로 용납할수 없었다.
당시 문호로 자처하던 김부식은 정지상이 남다른 시적재능을 가지고 자라 세상에 유명해지자 그를 은근히 시기하기 시작하였다.
정지상에 대한 김부식의 시기심이 더 심하게 된것은 그들이 절간에 놀러갔다가 서로 시짓기를 한 뒤부터였다.
그때 정지상은 이런 시구를 읊었다.
절간에서 념불을 다 마치고나니
하늘이 유리처럼 맑구나
김부식은 이 시구를 듣고 감탄하면서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정지상은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김부식은 자기보다 재능이 뛰여난 정지상을 없애버릴 간악한 마음까지 먹게 되였다.
김부식은 당시 문무를 다 갖춘 재상으로서 이름이 났으나 그는 금나라와의 관계에서 굴욕적인 사대외교를 주장한 반동관료였다.
김부식은 금나라에 대한 자기들의 사대외교관계를 반대하는 서경출신 량반들의 주장에 절대로 동의할수 없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부나비와 같은 자살행위라고 생각하였다.
김부식의 이와 같은 태도와 립장은 몇명의 개경량반들과 서경출신량반들사이에 대립과 불신, 알륵을 더욱더 날카롭게 대치시켜놓았다.
서경땅에 궁궐이 일어선지도 어언 6년세월이 흘렀다.
허나 김부식을 비롯한 사대주의자들의 완강한 반대로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는 일은 실현될수 없게 되였다.
서경천도를 기어이 단행하려는 묘청의 열의는 조금도 식지도 주춤거리지도 않았다. 그는 서경천도를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끊임없이 계책을 톺던 묘청은 이번에는 대동강을 써먹기로 하였다.
그는 대동강의 신비스러운 기운을 직접 인종왕에게 보여주기로 하였다. 묘청과 백수한을 비롯한 서경량반들은 그 일을 상론하였다.
백수한이 물었다.
《법사께선 혹 무슨 묘한 계책이라도 가지고있는게 아니오이까?》
《대동강의 신비로운 기운을 리용하자는것이요.》
《어떻게 말이오이까?》
《떡으로 조화를 부리자는것이요.》
《떡이요? 원, 무슨 말인지…》
《내 말을 좀 들어보시오. 우린 임금께서 대동강을 시찰하실 때 어떤 수를 써서라두 대동강의 수면우에서 신기한 빛을 뿌리도록 해야 하는데 그 비결은 바로 떡에 있소.》
《아니, 떡이 어떻게 그런 신기한 조화를 부린단 말이오이까?》
《이제 내 말을 들어보오. 떡을 물독만큼이나 크게 빚은 다음 그속에다 콩기름을 잔뜩 채워놓아야 하오.
그리고 페하께서 대동강을 시찰하시기 한겻전에 떡에 손가락만한 구멍을 뚫고 대동강바닥에 가라앉히면 떡안에 있던 기름이 솔솔 새나와 수면우에 떠오르게 되오.
물우에 뜬 기름이 해빛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소?
아마 오색령롱한 빛을 끊임없이 내뿜을것이요. 그래, 어떻소?》
백수한과 거기에 모인 서경분사의 량반들은 탄성을 질렀다.
《거 정말 기막힌 계책이올시다.》
《역시 생각하는 품이 다르오이다.》
어느날 묘청과 백수한은 인종왕에게 서경행차를 권하였다.
《페하, 대동강에 서기(상서로운 기운)가 어리였는데 이것은 신룡이 침을 토하는것이오이다. 이런 신비로운 일은 천년에 한번이나 있을가말가 하는 보기 드문 일이오이다.》
이 말은 인종왕의 귀를 솔깃하게 하였다. 태조께서 자못 중시한 서경땅의 대동강을 인종왕도 잘 알고있었다.
인종왕은 이들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한달후 인종왕이 서경순행차로 왔다.
묘청은 백수한과 짜고 임금의 행로를 굳이 대동강을 거치도록 잡았다. 요란한 왕의 행차가 대동강가에 이르렀다.
황금빛 수레우에서 내린 인종왕은 보기만해도 마음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탁 트이는 대동강을 바라보았다.
함치르르한 녀인의 머리채마냥 푸르른 아지를 실실이 내리드리운 수양버들이 대동강가에 운치있게 늘어서있었다.
참으로 대동강의 경치는 절경이였다.
흐뭇한 마음으로 대동강을 굽어보고있는 인종왕에게 묘청이 아뢰였다.
《페하, 저기 저 대동강우를 좀 보사이다.》
인종왕이 두눈을 쪼프리고 묘청이 가리키는쪽을 바라보았다.
《엉?》
늠실거리는 대동강의 수면우에서 반짝이는 오색령롱한 빛이 구슬같이 발산하고있었다. 문무대신들의 두눈들이 불시에 둥그래져 그 신기한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묘청이 다시금 경건한 어조로 여쭈었다.
《페하, 저게 바로 대동강의 서기올시다. 신룡이 침을 토해서 찬연한 오색구름을 만들었으니 이는 비상히 상서로운 징조올시다.
저런 신비한 광경은 실로 보기 드문 일이온데 페하께서 이 서경땅에 행차하시오니 하늘의 신선들도 머리를 숙이고 저같이 희귀한 정경을 전하께 삼가 바쳤소이다.
그러하오니 페하께서 이 서경의 궁궐에 계시오면 틀림없이 하늘의 상서로운 기운을 받아 왕업이 대대손손 부흥할것이오이다.》
인종왕은 흡족한 심경으로 대동강을 굽어보았다.
묘청이 개여올리는 귀맛좋은 소리가 싫지는 않았다.
흔히 왕에 대한 칭송은 그의 눈을 어둡게 하는 법이다.
인종왕은 묘청의 말을 달게 받아들였다.
허나 묘청의 반대파들인 임원애, 문공인, 리중들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묘청의 거동을 주시하는 그들의 눈길과 사고는 언제나 랭철하였다. 그들은 조정에서부터 김부식의 침을 단단히 받았던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런 현상을 쉬이 믿을리가 없었다.
(여기엔 분명 무슨 쪼간이 있어.)
임금의 행차가 대동강가에서 물러가자 그들은 다급히 고을의 측근 관리인을 불렀다.
《저건 틀림없이 묘청과 백수한이 꾸며낸 계책일거요. 그러니 우리가 시키는대로 빨리 조처하여 알아보시오.》
《네?!》
아직도 어리둥절해하고있는 관리에게 리중이 귀띔했다.
《이 고을에서 말다래(말안장 량옆에 늘어뜨리여 말탄 사람의 옷에 땅의 흙이 튕기는것을 막는 네모난 가죽)에 기름칠하는 장인을 찾아보오. 내 생각이 틀림이 없다면 그 내막을 밝혀낼수 있소.》
관리는 다급히 말다래에 기름칠을 전문하는 장공인을 찾아 대동강가에로 데려내왔다.
미간을 쪼프리고 한동안 대동강의 수면을 세세히 살펴보던 장공인이 대뜸 입을 열었다.
《나리, 저건 그 어떤 신비한 빛이 아니라 물우에 뜬 기름방울이 내는 빛이올시다.》
《뭐?!》
대신들은 경악실색하였다.
《그게 정말인가?》
《나리께서 정 믿지 못하겠다면 이제 보여드리리다.》
장공인이 옆의 젊은이에게 눈짓을 하자 젊은이가 푸르른 대동강에 첨버덩 하고 뛰여들었다.
잠시후 그는 묘청과 백수한의 계책의 산물인 물독만한 큰 떡을 찾아내왔다. 장공인이 맥없이 축 늘어진 그 떡을 발로 꾹 누르니 과연 누런 콩기름이 밖으로 분수처럼 뿜어져나왔다.
대신들은 다시한번 경악하였다.
다음날로 임원애, 문공인, 리중들은 임금에게 상주문을 올렸다.
《묘청과 백수한 등은 갖은 간악한 모략을 다하고있사오며 황당한 소문으로 민심을 현혹케하고있소이다.
하여 우로는 임금을 현혹케 하고있사오며 조정의 일부 대신들도 이 일에 끌려들어가고있소이다.
신들은 장차 불측의 환란이 있을가 몹시 우려하면서 묘청패당을 만인의 면전에서 처형하여 그 화근을 제거할것을 삼가 아뢰나이다.》
허나 인종왕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직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결국 대동강을 리용하여 서경천도의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려던 묘청과 서경량반들의 계책은 수포로 돌아가고말았다.
묘청의 두릿두릿한 두눈에서는 열광이 이글거리고있었다.
분격으로 하여 그의 둥그런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두툼한 입술을 으스러지게 가무려물고 부르짖었다.
(오라질 놈들, 서경천도를 반대하는자는 절대로 용서치 않으리라. …)
묘청은 드디여 정변을 결심하였다.
을묘13년(1135년) 정월에 들어서자 묘청은 서경분사관리 조광, 류감, 안중영, 조창언, 류감의 아들 중랑장 류호앞에서 정변을 선동하였다.
조광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정변이라니? 이건 배신이고 역신의 행위요.》
묘청은 조광의 덴겁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배신은 무엇이고 역신은 또 무슨 가당치 않은 말이요?
우리가 서경땅에 궁궐을 세운지도 6년세월이 흘렀소. 그래 이런식으로 나가다간 백년이 지나도 서경천도가 이루어질것같소이까?》
류감과 류호, 안중영은 이에 적극 호응해나섰다.
《옳소이다. 절대로 말로써는 안되오이다. 군사를 일으켜야 하오이다.》
모두가 호응하자 조광도 이에 찬동해나섰다.
1135년 1월(인종13년) 묘청은 드디여 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은 먼저 군사를 일으켜 서경과 서북지방에 와있던 개경에서 파한 관리들과 개경출신의 량반들을 모조리 서경에 있는 소금창고에 가두었다.
그리고 개경으로 통하는 절령(황해북도 자비령)을 무력으로 차단한 다음 서북면 여러 성의 군대들과 서경부근 목장의 말들을 끌어들여 력량을 크게 보강하였다.
정변을 일으킨 묘청은 조광, 류감, 안중영 등과 상론하여 나라이름을 《대위》(큰일을 한다는 뜻)라고 선포하였으며 《천개》(천지개벽한다는 뜻)라는 년호를 제정하였고 군사는 《천견충의군》(하늘에서 파견한 충의로운 군대라는 뜻)이라고 칭하였다.
대위국의 왕은 개경의 인종왕을 데려을 계획으로 국왕을 따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조정의 관료들과 지방주, 군의 장관들은 서북출신들로 임명하였다.
이후 묘청과 조광 등은 서경안의 문무관료들을 이끌고 관풍전에 모여 정사를 토의했고 군사를 편성하여 상경(개경)으로 쳐들어갈것을 계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