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1장 운명의 회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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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동은 의원의 침구술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약 일각(15분)동안 류침(침을 꽂아놓고있는것)한 후 의원은 침을 뽑고 재차 어른주먹만한 부항을 그자리에 붙이였다.
부항단지안에서 널름거리던 시뻘건 불길이 퍽 사그라지더니 허리부위의 근육을 힘있게 물고 세차게 빨아들이기 시작하였다.
힘차게 허리근육에 박혀있는 부항은 도무지 사람의 힘으로써는 다시금 떼낼것같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살을 물고있었다.
천동은 여전히 짙은 호기심에 넘쳐 부항단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세게 붙은 부항단지를 어떻게 떼낼가?)
다시 일각이 지나자 의원은 억세게 박혀있는 부항의 한쪽귀퉁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강한 음압을 담고있던 부항의 한쪽모서리에 통기가 형성되면서 퍽-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볍게 부항단지가 홀랑 떨어져내렸다.
(히야, 정말 신기하구나.)
천동은 의술이라는 신비한 술법을 보니 그에 대한 호기심 또한 그지없었다. 부항을 뗀 자리에는 시꺼멓게 죽은 피가 질벅하게 흐르고있었다.
《음- 죽은 피를 쭉 빨아냈으니 어혈이 풀리면서 이제 효험이 아주 좋을걸세. 어디 한번 일어나 앉아보게나.》
석산은 믿어지지 않는지 의원에게 물었다.
《정녕, 이젠 일어나 앉아두 된단 말이웨까?》
《글쎄 한번 일어나보라니까.》
석산은 상반신을 얼리며 주춤주춤 일어나앉았다. 그는 허리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돌리다가 눈이 둥그래져서 웨쳤다.
《아니, 이거 정말 일없소이다.》
흡족한 기색을 짓고있는 의원이 허연 수염발을 내리쓸며 일렀다.
《그럼, 이젠 일어서 보라구.》
《예? 일없을가요?》
《음, 괜찮을걸세. 어서.》
석산은 또다시 주춤주춤 일어섰다. 그리고는 다시금 환성을 올렸다.
《하, 거 참 조화로다.》
천동은 물론 어머니도 자못 신기한 눈길로 의원을 바라보았다.
석산이 휘둥그래진 두눈을 끔쩍이며 물었다.
《의원님, 어떻게 한번의 치료로 이런 기이한 효험을 내오이까?》
《이게 바루 유명한 자락부항료법이라는거네.
침을 놓은 다음 부항을 붙여 피를 조금 뽑아내는 방법이지. 이렇게 하면 침반응효험이 두배, 세배이상 커진다네.
임자와 같은 허로요통이나 어혈이 든 좌섬요통 그리고 해소(기침)가 멎지 않고 세게 날 때 잔등의 페유혈에 이런 자락부항을 쓰면 백발백중이야.
예로부터 침을 놓은 다음 피 한방을 내면 소 한마리 잡아먹은것과 같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만큼 침을 놓은 자리에서 어혈이 든 피를 뽑아내면 효험이 좋다는게야.》
석산은 머리를 끄덕였다.
천동은 의원의 말 한마디한마디를 귀를 강구어들었다.
모든것이 새로이 듣는 말이였다.
천동이 어머니가 청했다.
《의원님, 우리 이 애도 좀 봐주사이다.》
그러자 어린 처녀애의 초롱초롱한 까만눈이 동그래지며 기겁하여 어머니의 손에 매달렸다.
《엄마, 난 침 안맞을래.》
느슨한 어조로 의원이 물었다.
《어데가 아프게?》
《네, 얜 때때로 배가 쌀쌀하게 아파하면서 자주 설하군 하지 않소이까.》
의원이 누그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런건 침까지 맞을 필요가 없어. 저애가 그렇게 아픈건 대장염이 왔기때문이야. 내 쉽게 치료할수 있는 방법 몇가질 대주지.》
《그런 방법도 있소이까?》
《암, 있구말구.》
의원이 왕진가죽주머니에서 하얀 가루를 꺼내들었다.
《이게 백반을 가루낸거야. 이 가루를 식초로 쑨 쌀가루풀로 반죽해서 가시련밥만한 환(0. 5g정도)을 만들라구.
그리구 그 환을 어른은 한번에 다섯알정도씩, 애한테는 두알씩 하루 세번 먹이라구. 그럼 알도리가 있을게야.
다른 방법은 벼짚을 스무돈(한돈은 3. 75g)정도 물에 달여 찌끼를 건져버리고 다시 걸죽하게 졸여서 하루 세번 빈속에 먹이라구.
또 다른 방법두 있어. 도토리 열돈정도에 생강 세돈정도를 물에 달여 꿀을 약간 두고 풀어먹이라구.
도토리 한가지만을 닦아서 한번에 어른은 열돈정도, 아이는 다섯돈정도 먹여두 아주 효험이 좋아.》
듣고보니 모두 주변에 흔한것들이였다.
(정말 그런것들이 약이 될가?)
무슨 문제든지 짙은 호기심을 안고 파고드는 성미인 천동의 머리에 이런 의문이 불쑥 갈마들었다.
천동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흔히 보아온 지푸래기나 도토리, 생강 등이 그렇게도 좋은 효험을 낸다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녀동생의 고민거리를 잘 알고있었다. 비위가 썩 씨원치 않고 대장이 나쁜 그는 항상 미간을 쪼프리고 늘 배가 아프다고 종알거리군 했다.
녀동생은 하루에도 두세번씩은 설한다. 한창 피여날 생신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가칠가칠해보였다.
닷새가 지난 후 천동은 아버지의 약을 가지러 의원의 집을 찾았다.
방안에 들어서니 네댓명의 병자들이 앉아있었다.
천동은 의원에게 꾸벅 절을 하였다.
의원이 반색하였다.
《오- 천동이냐, 어떻게?》
《의원님, 어머니가 아버지의 약을 가져오라고 했소이다.》
《좀 기다려라. 병자들을 마저 본 다음 보자꾸나.》
천동은 방안 한켠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약 한식경이 지나 병자들이 다 돌아가고 마지막 늙은 병자의 배에 침을 꽂았을 때였다.
《의원님, 계시우?》
《누구시오?》
잠시후 하인 한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별감댁 하인이 아닌가? 어떻게 왔나?》
《우리 주인마님이 물어오라는것이 있어 왔소이다.》
《별감댁에서 뉘가 앓는가?》
《주인마님은 아들손주를 보아 좋아하는데 얼마전부터 작은주인마님이 머리와 온몸으로 찬바람이 자꾸 들어온다고 하고 또 어떤 때는 온몸이 화끈 단다 하며 식은땀을 흘리군 한다 하오이다.
그리고 손과 발, 배와 잔등이 시리고 어지럼증이 있다 하오이다.》
《음, 산후탈증상이로군. 내 알으켜줄터이니 한번 써보라구 전하게.
굴조개껍질과 밀기울을 각각 같은 량을 닦아서 골고루 섞어 한번에 한돈씩 돼지고기국과 함께 먹으면 효험이 있을거네.》
《고맙소이다.》
하인이 물러가자 누워있던 늙은 병자가 의원에게 물었다.
《참, 우리 로친이 요새 특별히 앓는데는 없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여기저기 몹시 불편해하는데 그런데 쓰는 약은 없소이까?》
《집사람의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나?》
《예순여섯이우다.》
《음- 예순여섯이면 그럴수 있지. 이제 내 말을 한번 좀 들어보게나. 사람이 나서 열살이 되면 오장륙부가 비로소 안정되고 혈기가 통하기 시작하며 원기가 오르내리기때문에 행동이 민첩해지기 시작하네. 스무살이 되면 혈기가 왕성해지기 시작하게 되며 힘살이 더 자라기때문에 걸음이 빠르고 잘 달리게 되지.
그리고 서른살이 되면 오장이 왕성해지고 힘살이 딴딴해지며 혈맥이 왕성하고 충실하기때문에 잘 걸을수 있게 되네.
허나 마흔살이 되면 오장륙부와 12경맥이 모두 왕성해지다가 정지되면서 주리(땀구멍)가 성글어지기 시작하고 타액이 없어지며 수염과 머리털이 희기 시작하고 기혈이 보통정도로 왕성하면서 변동되지 않기때문에 앉기를 좋아하지.
쉰살이 되면 간기가 쇠약하기 시작하고 담즙도 줄어들기때문에 우선 시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그건 간이 눈을 주관하는 장기이기때문이야. 그럼 예순살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가?》
의원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천동은 의원의 말에 완전히 심취되여버렸다. 나이든 병자도 의원의 말에 한껏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의원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예순살이 되면 신기가 쇠약하기 시작하여 근심과 슬픔이 많으며 혈기가 쇠약하기때문에 눕기를 좋아하게 되지.
일흔살이 되면 비기가 허약하기때문에 피부가 마르게 된다네.
여든살이 되면 페기가 쇠약해져 넋이 나가기때문에 헛소리를 잘하게 되는데 그것은 페가 기를 주관하는 장부이기때문이지.
아흔살이 되면 신기가 마르고 나머지 네개 장의 경맥도 몹시 허해지게 되는데 나중에 백살에 이르면 오장이 모두 허해지고 정신이 없어지며 형체와 뼈만 남아서 사람은 자기의 생을 마치게 되네.》
의원의 말은 여기서 끝났다.
인생의 건강과 성장, 로쇠과정의 상태를 이렇듯 속속들이 다 꿰들고있는지 천동이가 감탄의 여운을 미처 거두어들이기도 전에 의원의 말이 또다시 시작되였다.
《늙으면 정과 혈이 모두 줄어들고 칠규(몸의 일곱개의 구멍)가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래서 울 때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고 도리여 웃을 때 눈물이 나오며 걸죽한 코물이 많이 나오고 귀에서는 매미우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게 되지.
또 음식을 먹을 때에는 입이 마르고 잘 때에는 침을 흘리며 오줌이 자기도 모르게 나오고 대변이 몹시 굳거나 설사가 나며 낮에는 몹시 졸리지만 밤에 자리에 누우면 잘 자지 못하게 된다네.
이게 바루 늙은이의 병이네.》
《하, 과시 의원님은 명의요. 로친을 보지 않고도 어떻게 그리 귀신같이 맞히오?》
《음-》
의원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는 잠간 병자의 배에 꽂은 침대를 뽑아주었다.
치료를 하고난 의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내 말은 아직 안끝났네. 늙은이의 병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우리 나라의 의술력사는 자못 깊은지라 우리 선조들은 오래오래 장수하는 아주 좋은 방법들을 수많이 터득하였지.
내 이제 쉽게 할수 있는 방법 몇가질 알으켜줄터이니 한번 가서 해보라구. 이건 위병을 앓는 자네에게도 좋은 처방이네.》
천동은 자기가 아버지의 약을 가지러 왔다는것도 다 잊고 의원의 말에 심취되여 그의 다음말을 초조하게 기다리였다.
의원이 계속하였다.
《건강장수하는데는 흰죽이 아주 좋네. 새벽에 일어나서 죽을 먹으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위를 보하며 진액(몸안에 있는 체액을 통털어 이르는 말)을 생기게 하며 하루종일 마음을 상쾌하게 하여 보하는 힘이 적지 않지. 그러되 쌀을 푹 퍼지게 하여 끓여먹어야 하네.
잣죽도 아주 좋다네. 오래동안 잣죽을 늘 쑤어먹으면 몸이 거뿐해지고 오래 살며 늙지 않게 되네.
한가지만 더 강조한다면 늙은이들을 보양하는데는 소젖을 일상적으로 먹는것이 아주 좋다는것이네.
소젖 한되에 싸래기를 조금 넣고 죽을 푹 쑤어 늘 먹으면 늙은이의 건강장수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네.》
천동은 오늘 참으로 커다란 수확을 거두었다.
아버지의 약한첩과 많은 비방들을 알게 되였다.
그는 범상하게 생각했던 의술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어찌보면 그림의 세계보다 더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다음부터 천동은 그림그리기보다 종종 의원네 집을 찾군 했다.
의원할아버지에게서는 많은 민간료법들이 마를줄 모르는 샘물처럼 끝없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때로부터 천동의 걸음은 더욱 잦아졌으며 의술에 대한 그의 조예는 나날이 더 깊어져갔다. 그는 지금에 와서 되려 자기 마음이 그림이 아니라 의술쪽으로 더 쏠리고있음을 부인할수 없었다.
천동의 마음속에서는 의술을 배우고싶은 욕구가 조용히 굼닐고있었다. 일단 자기 마음이 동하여 확고한 결심이 서면 그 무엇도 주저하지 않고 그 길에 뛰여들려 하는것이 천동의 기질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