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1장 운명의 회오리

5

(1)

 

리상로는 여전히 정지상에게서 글공부를 착실히 하고있었다.

어느날 리상로는 아침일찍 정지상의 집을 찾았다. 그가 방으로 들어서니 아련하게 생긴 랑자가 정지상의 앞에 나부시 앉아있었다.

《상로가 왔느냐? 거기에 앉아 기다리거라. 내 미현의 그림을 먼저 보아주고 시작하자.》

리상로는 랑자를 알고있었다.

그는 홍이서대감의 외동딸 홍랑자였다.

규방의 아녀자로 글공부는 어울리지 않았으나 그의 필치가 뛰여나 홍대감은 정지상에게서 가르침을 받게 하였다.

리상로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랑자에게로 쏠렸다.

여러번 정지상의 집에서 랑자를 보았으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였다.

련꽃인양 환한 얼굴에 맑고 깨끗한 살결, 함치르르한 머리태, 눈섭은 버들이요 영채도는 두눈은 맑은 호수마냥 그윽하였고 앵두알같은 빨간 입술은 리상로의 마음을 저도 모르게 울렁거리게 하였다.

그는 얼른 랑자에게서 눈길을 떼고 그앞에 놓여있는 그림에 눈길을 주었다. 그림은 랑자가 그린 자화상이였다.

(야!)

리상로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옥같이 아름다운 그림속의 랑자는 마치 꽃의 왕 모란꽃을 방불케 하였다. 랑자의 그림재주가 보통이 아니였다.

리상로는 화폭에 눈길을 오래 유지할수 없었다. 어쩐지 그림속의 랑자가 자기를 보며 웃는것같아 그이상 더 바라보기가 면구스러웠다.

정지상이 입을 뗐다.

《음- 과시 네 재간이 보통이 아니로다.》

이어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정지상이 말을 이었다.

《이 자화상은 참 잘 그렸다. 꼭 미현이 네 용모와 신통해.

하지만 그림이란 그저 곱게, 아름답게만 그리려 해선 안돼.

그림에 있는 랑자는 지금 웃고있지만 전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질 않아. 그럼 그것이 어데서 표현되는가?

인물화에서 기본은 눈이야. 눈빛에서 그 감정을 읽을수 있지.》

잠시 동안을 두었던 정지상은 느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럼 눈에 대하여 한번 말해볼가?》

랑자도 리상로도 정지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의 몸에는 오관(오장과 관련시켜 본 5개의 기관 즉 코, 눈, 입, 혀, 귀 )이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요긴하면서도 오묘한 리치를 가지고있는것이 바로 눈이야. 그림기예에서는 이 눈을 잘 그려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고서도 그 사람의 감정과 마음의 움직임을 적지 않게 알수 있다고 했어.

진정 눈은 사람의 마음을 매우 예민하게 비친다고 할수 있지. …》

정지상의 말은 간단하고 통속적인것같았으나 심원한 리치가 깃들어있었다. 비록 랑자에게 하는 훈시였지만 정지상의 말에 리상로가 더 심취되여있었다.

정지상의 말은 계속되였다.

《이 눈빛이 상대방의 심리와 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것은 우리가 늘 느끼는바이야. 부드러우면서도 온화한 눈빛에 의해 푸근한 정서를 느끼게 되는가 하면 엄엄하고 위엄있는 눈빛에 의해 위압감을 느끼기도 하지. 서리차고 매서운 눈빛에 공포감을 느끼는데 이때에는 온몸에 소름까지 돋게 돼.

이렇게 사람은 눈에 의해 마음이 끌리기도 하고 반대로 눈을 마주 바라보기도 힘든 싸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

그러니 몸의 칠정(희, 노, 우, 사, 비, 공, 경) 다시말하여 기뻐하고 성내고 근심하고 생각하고 슬퍼하고 겁내고 놀라는 일곱가지 성질에서 기본이 눈이라는것이다. 눈은 무시할수 없으며 어떤 면에서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칠수 있어.

자화상을 그리는데서는 바로 이 눈빛을 잘 그려내야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수 있고 그것이 곧 좋은 그림으로 될수 있다는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지상의 앞에 얌전히 앉아있는 랑자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여있었다. 정지상의 훈시가 끝나자 랑자는 나부시 절을 올리고 방안을 나섰다.

리상로는 자못 서운했다.

리상로의 용모는 제법 준수하였으며 키도 훤칠했다.

하여 동네에서도 끌끌한 사내라는 평판을 자주 듣군 한다.

이런 리상로를 틈틈이 훔쳐보는 랑자들도 있었다. 허나 오늘 홍랑자는 자기에게 곁눈질 한번 하지 않았다. 그래도 랑자의 아릿다운 용모와 함께 미현이라는 이름은 리상로의 머리속에 뚜렷한 자욱을 남겼다.

문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리상로를 보며 정지상이 가벼운 헛기침을 어험- 어험- 하였다.

신칙의 기색이 어려있는 그 기침소리에 리상로는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정지상의 앞에 정중히 나앉았다.

리상로는 자기가 지은 시를 정지상앞에 내놓고 그에 대한 의견을 자자구구 들었다. 허나 어인 일인지 정지상나리의 말보다 아련한 랑자의 모습이 더 자꾸 안겨왔다. …

한편 천동은 그림그리기에 정신이 팔려 밖에 나가있는 때가 많았다.

어느날 천동이가 밖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렇게도 억세고 실하던 아버지 석산이 상반신을 훌렁 벗고 방바닥에 넙죽 엎드려있는것이다. 그앞에는 흰 상투와 한뽐씩이나 되는 허연 수염발을 내리드리운 의원할아버지가 점잖게 앉아있었다.

천동은 자못 놀랐다.

천동이가 어머니곁에 다가가 울상이 되여 물었다.

《아버지가 왜 그러세요?》

《허리를 다치셨다. 아예 일어나 앉지도 못하신다.》

천동이가 놀란 눈길로 아버지 석산을 바라보았다.

일생 그 어떤 병마에도 끄떡없으리만큼 박달나무와 같이 다부지고 단단하게 보아오던 아버지였다. 허리를 다쳤다고 하지만 지금도 상반신에서는 울끈불끈한 근육들이 힘차게 살아움직이고있었다.

진찰을 다 끝낸 의원이 허연 수염발을 내리쓸며 입을 열었다.

《요통증에 들었구만. 이런 요통을 허로요통이라고 하지.》

허리아픔을 의원들은 요통이라고 한다.

허리아픔도 증상은 서로 어슷비슷하지만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즉 풍사 다시말하여 바람이 신경에 침입하여 생기는 풍요통, 습한 곳에 오래 앉아있거나 비와 이슬 등 습기를 받아 생기는 습요통, 한사와 랭기가 신경에 침입하여 생기는 한요통, 콩팥병에 들어 허리가 아픈 신허요통, 타박으로 어혈이 들어 생기는 어혈요통, 무거운 짐을 들거나 떨어지면서 허리를 접질러서 생기는 좌섬요통 등 무려 10가지종류의 허리아픔이 있다.

허리아픔이 우의 어느 종류에 속하는가를 잘 진단하여 그에 알맞게 적중한 치료를 가하는데 바로 단번에 명중하여 허리증을 뗄수 있는 치료의 비결이 있는것이다.

석산이 지금 앓고있는 허로요통이란 몹시 힘든 일을 하거나 무리한 운동으로 허리가 상한 요통증이였다.

천동의 어머니가 의원을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에그, 그 왕궁인지 궁궐인지에 시달리우더니 억대우같은 사람이 나중엔 종시 이렇게 거꾸러지지 않았겠어요.》

의원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음- 그놈의 궁궐이 사람을 죽여. 내 궁궐이 서는 기간 허로요통에 들어 주저앉은 사람들을 헤아릴수 없이 많이 치료했네.

그래두 이건 약과야. 돌에 치우구, 깔리우구 온 육신을 탕친 사람들이 한둘이라구, 쯔쯔.》

천동은 눈이 둥그래졌다.

으리으리하게 우뚝 일어선 궁궐을 놓고 자기와 부모들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달랐던것이다.

천동은 서경에 웅장하게 솟아오른 궁궐을 보고 열에 떠서 흥분과 희열에 잠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서경땅에 일떠선 궁궐은 백성들의 땀과 기름, 피에 절어 한치한치 솟아오른 희생의 대가였다.

허나 량반들은 이 궁궐의 건설에 품 한자루, 쌀 한톨, 금전 한잎 털리운적이 없었다.

천동은 아버지를 보며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의 한모퉁이를 겨우 느낄수 있었다.

잠시후 의원이 침통에서 굵직한 동침을 꺼내들었다.

천동의 녀동생이 새별같은 두눈에 겁기를 한껏 담고 엄마에게 매달렸다.

《엄마, 무서워.》

담대하기 그지없다는 석산도 의원쪽으로 상반신을 돌리고 물었다.

《아니, 침을 놓소이까?》

의원이 흔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없네. 하나도 아프지 않네.》

이윽고 의원의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이 허리부위의 이곳저곳을 더듬더니 어느한 곳을 꾹 눌렀다.

《으- 응.》

석산이 상반신을 흠칫 떨었다.

그의 이마에는 밭고랑같은 주름발이 깊이 건너갔다.

《이 아시혈에 침을 놓으면 아마 즉효를 볼걸세.》

침대를 가볍게 쥔 의원의 손이 잽싸게 움직였다.

눈깜짝할새에 굵다란 동침은 마치 두부속에 들이박히듯 석산의 허리근육을 푹 꿰질렀다.

《그래, 임자 아픈가?》

《아니, 벌써 놓았소이까?》

의원의 침술은 그야말로 귀신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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