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1장 운명의 회오리

4

 

묘청은 서경천도에서 개경의 정지상을 업는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지반과 터가 든든한 서경의 세력을 리용하기로 작정하는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일의 적임자들로 백수한과 현재 서경분사의 관리들인 조광, 류감, 조창언, 안중영들을 점찍어두었다.

묘청은 서경천도와 같은 거창한 큰일은 결코 말만으로는 안되며 자기의 뜻이 저항에 부딪쳤을 때에는 힘으로써 평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그 힘이란 곧 군사였다.

묘청은 이 일을 병부상서 류감과 그의 아들인 중랑장 류호에게 위임했다. 군사를 일으키는 일이 물망에 오르자 류호는 곧 석산을 찾아갔다.

천동의 아버지 석산은 체격이 건장하고 두눈이 부리부리하면서도 호방하게 생긴것이 그 용모와 같이 성격도 사내다왔다.

그는 결패가 있고 담이 셌을뿐 아니라 인정이 후더분한 사내였다.

마을사람들은 물론 그 린근고을의 사람들도 석산을 무척 따랐으며 집안의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그와 마주앉아 곧잘 상론하군 했다.

석산은 억울한 일이 있으면 두팔을 걷어붙이고 서경분사에 달려가 송사를 하군 했다. 그의 결패있는 기질과 백성들속에서 지니고있는 인망으로 하여 송사된 문제들이 해결된적이 한두번만이 아니였다.

서경분사의 관리들은 신분이 량인인 석산이 고와서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의 휘하에 들어있는 민심이 두려워 석산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이따금 응하군 하였다. 이런 석산을 중랑장 류호도 잘 알고있었다.

중랑장 류호는 백성들속에서 영향력이 센 석산에게 서경천도의 뜻을 자상히 이야기해주면서 여차하면 군사를 일으키는 문제를 그에게 부탁하였다.

석산은 짙은 눈섭을 꿈틀하며 마깝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그럼 우리가 량반님들의 권력싸움에 말려들란 말이시유?》

《이보게, 그게 아닐세. 지금 개경량반들이 무슨 추태를 부리고있는지 아나? 옛날 우리 고려를 아버지처럼 개여올리던 녀진족것들에게 되려 굽신거리면서 할애비처럼 모시려고 한다네. 그것도 진상품까지 개여바치면서말이네.》

석산은 저도모르게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에잇, 쓸개빠진 놈들!》

석산은 민족적자존심도 없이 사대외교를 주장하는 개경의 량반들과 조정의 처사가 그지없이 증오스러웠다.

하여 그는 옛 고구려의 존엄을 되찾는 일에 백성들속에서 군사를 일으켜달라는 류호의 부탁을 쾌히 받아들였다. …

 

내시랑중 김안이 급히 정지상의 집으로 왔다.

그는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기거주, 페하께서 곧 서경순행을 떠나신다 하오.》

《알고있소. 인차 거둥하실거요.》

《알고있었소?》

《그렇소. 페하께 서경행을 단행하시게 상주문을 올렸댔소.》

한동안 생각을 굴리던 정지상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빨리 이 사실을 정심법사에게 알려야겠소.》

《제 벌써 파발을 띄웠소.》

《참 잘하셨소.》

드디여 이들은 이제부터 보다 더 큰 보폭으로 자기의 길을 힘있게 내짚기로 작정하였다.

파발로부터 전갈받은 서경분사의 관리들은 흥분에 떠있었다.

《페하께서 거둥하신단 말이지요? 이번 일이 잘돼야 할터인데…》

조광과 류감, 안중영을 만난 파발은 재차 영명사에로 향했다.

파발의 말을 들은 묘청의 둥그런 얼굴이 불그스레하게 달아올랐다.

드디여 기다리던 큰뜻의 서막을 열어야 할 때가 다가온것이다.

그는 두손을 합장하고 웅얼거렸다.

《오- 페하께서 이 서경땅으로 거둥하신단 말이지.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그의 어조에는 확고부동한 의지가 어려있었다. …

드디여 임금께서 서경땅을 순행하였다. 태조임금의 훈유에 따라 왕들은 한해에 몇번씩 서경땅을 순행하도록 되여있는것이다.

묘청은 숨을 크게 들이쉬였다. 그리고는 후유- 하고 깊이 들이쉰 숨을 길게, 조용히 내뿜었다.

아무리 결패와 담기가 용용한 사내라 해도 임금을 알현한다는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였다. 더구나 가장 어려운 문제를 설득시켜야 하는것이다. 과연 결말이 어떻게 끝나겠는지?

불안과 위구심이 없지 않았다. 무거운 중압이 그의 두어깨를 사정없이 짓누르고있었다. 드디여 묘청은 영명사의 문을 조용히 나섰다.

마당에는 여전히 온 천하에 위용을 뽐내듯 돌사자가 무게있게 웅크리고 변함없이 앉아있었다. 묘청의 두눈이 번쩍 빛났다.

(내 저 사자와 같은 용맹과 기질로 기어이 서경천도를 단행하리라!…)

묘청이 행재소(임금이 왕궁을 떠나 먼길을 갈 때 일시 머무는 곳)에 도착하니 개경에서 인종왕을 수행한 재추(문무재상)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있었다.

묘청이 도착하자 이들은 인종왕에게 안내하였다.

《법사, 어서 드시오. 페하께서 기다리고계시오.》

묘청은 흔연스러운 기색으로 행재소안으로 들어섰다.

누런빛을 뿌리는 금빛색보료를 얹은 평상우에 인종왕이 위엄있게 앉아있었다.

그옆에는 두명의 내시가 두손을 모으고 정중히 시립해있었다.

묘청은 인종왕앞에 부복하고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소승 문안드리옵니다.》

인종왕이 번들거리는 묘청의 민대머리를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그대가 영명사의 정심법사이느뇨?》

묘청은 머리를 들며 삼가 아뢰였다.

《그렇소이다.》

《음- 내 정지상과 내시랑중 김안, 백수한에게서 법사에 대한 소리를 많이 들었노라. 법사가 그렇게두 령험스럽다면서?》

《과찬의 말씀이로소이다. 미천한 소승의 재주를 그렇게 치하하시오니 몸둘바를 모르겠소이다. 소승은 다만 나라의 왕업과 사직이 길이 부흥하기만을 일일천추로 고대하고있을뿐이옵니다.》

인종왕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래, 어디 한번 법사의 말을 들어보자.》

묘청은 다시한번 머리를 굽석하였다.

《황송하옵니다.》

묘청은 마음을 바싹 가다듬었다. 드디여 때가 온것이다.

웅글은 목소리가 마치 념불을 외우듯 느릿느릿 흘러나왔다.

덤비지도 않는 침착한 그의 태도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다소 안도감을 부어주었다. 아무리 담기가 있고 의기가 도도한 묘청이라 해도 임금앞에서 삼가 아뢰이는 간언인지라 이마에서는 진땀이 번들거리고있었다.

《페하, 소승이 보건대 개경은 이미 왕도의 기운이 쇠진해졌나보오이다. 근년에 개경에서 련이어 일어난 재변은 모두 그런 까닭으로 생각되나이다. 하여 그 변란으로 궁궐까지 다 타버렸던것이오이다.

그러니 마땅히 왕기가 왕성한 이곳 서경으로 옮겨앉으시여 부디 국위를 떨치셔야 한다고 생각하나이다.》

지금 묘청이 임금에게 아뢰는 궁궐이 타버린 재변이란 리자겸의 란을 두고 하는 소리이다. 고려에서는 중앙집권적인 봉건통치체제가 더욱 약화되고 통치배들내부에서는 권력싸움이 빈번히 일어났다.

11세기말부터 국왕과 외척관계를 맺고있던 리자겸은 막강한 세력으로 자라나 그 권력이 절정에 이르게 되였다.

이런 유리한 기회를 타고 리자겸은 무관인 탁준경(리자겸의 아들 리지원의 장인)과 결탁하여 1126년 2월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군사를 내몰아 왕궁을 포위습격하여 불지른 다음 국왕을 협박하여 리자겸의 집에 억류하고 반대파관료들을 무자비하게 모조리 처형하였다.

나라의 권력을 틀어쥔 리자겸은 녀진족과 사대외교를 하면서라도 대외적마찰을 피하고 자기 세력을 공고히 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고려조정의 문무대신들속에서 리자겸일파에 대한 반항의 기운을 높여주었다.

인종왕은 이러한 틈을 타서 그해 5월 리자겸의 심복이였던 탁준경을 돌려세워 리자겸일파를 제거하였다. 이로써 조정안에서 오래동안 큰 세력으로 남아있던 외척세력을 드디여 청산할수 있었다.

이듬해 3월 국왕은 서경량반관료들의 도움을 받아 탁준경마저 체포하여 귀양보냈다. 허나 당시 혼란된 사회질서를 바로잡을수 없었고 백성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은 더한층 강화되였다.

이것이 바로 묘청이 지금 인종왕에게 아뢰는 궁성의 재변이다. …

묘청의 아뢰움을 듣노라니 인종왕의 눈앞에는 무시무시한 동란이 일었던 리자겸의 란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때 궁궐이 무서운 불길에 휩싸이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에서 오싹하는 전률이 일었다.

잠시 동안을 두었던 묘청은 다시 입을 열었다.

《페하, 서경 림원역의 땅은 풍수가들이 말하는 대화세(큰 명당자리)인데 만약 이곳에 궁궐을 짓고 옮겨앉으면 천하를 병탄할수 있사오며 금나라가 스스로 공물을 바치고 항복할뿐 아니라 이웃의 여러 나라들도 고려에 복종하게 될것이오이다.》

묘청의 말은 개경은 음양도참설로 보아 《땅의 기운》이 쇠퇴하였으므로 수도로서 적당하지 못하며 반대로 서경은 《왕의 기운》이 도는 곳이므로 이곳으로 도읍을 옮겨야 왕실의 운명을 연장하며 나라의 위력을 내외에 떨칠수 있다는것이였다.

인종왕에게는 귀가 솔깃한 말이였다. 현재 인종왕에게 있어서 제일 골치거리가 금나라와의 대외관계였다. 태조와 선왕들께선 금나라 녀진족들을 한손아귀에 거머쥐고 쥐락펴락했었다.

헌데 지금은 이게 무슨 꼴인가.

선왕들께 차마 면목이 없었다. 인종왕은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 정녕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두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는 인종왕을 동행한 재추들이 긴장한 눈길로 초조하게 바라보고있었다.

드디여 인종왕이 두눈을 번쩍 떴다.

《좋다. 짐은 법사의 말에 동의하노라.》

(아! 하늘이시여…)

쿵- 하고 묘청의 가슴속에서는 이름할수 없는 희열이 세차게 굽이쳤다. 묘청은 저도모르게 부르짖었다.

《황은이 망극하오이다.》

그 다음날, 인종왕은 수행한 재추들에게 어명하여 백수한을 데리고가서 림원역의 지세를 보고 궁궐을 지을 자리를 확정하게 하였다.

그 이후부터의 일은 얼음판에 박밀듯 거침없이 나갔다.

인종왕은 그해 11월에는 내시랑중 김안으로 하여금 엄동설한에도 서경에 새 궁궐을 짓는 공사를 추진하게 하였다.

혹한의 추위속에서 새 궁궐을 짓는 일이 맹렬히 진행되였다.

온 서경땅의 백성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쪼들리면서 이 부역에 시달릴대로 시달리게 되였다. 새 궁궐의 공사로 서경백성들에게 들씌워지는 부담과 고역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허나 묘청과 서경출신의 량반들은 열에 떠서 돌아갔다.

그들은 백성의 고역은 안중에 없었으며 그보다 자기들의 계책이 눈앞에 펼쳐지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희한한 현실만이 눈앞에 보였다.

드디여 다음해(1129년) 2월 서경에 새 궁궐이 완성되였다.

이 궁궐의 이름을 대화궁이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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