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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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순간 김세천은 자기의 이 복잡한 심중을 두고 딸애와 이야기를 나누고싶어졌다. 그는 딸을 책상앞 걸상에 앉혔다. 무슨 말부터 할것인가를 망설이였다. 그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현장기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현장에서 무슨 문제가 제기되였던것이였다.
《여기 앉아 조금만 기다리거라. 좀 있다가 나와 할 얘기가 있다.》
김세천은 바삐 방을 나섰다. 인차 오려고 했지만 시간이 퍼그나 걸렸다. 그런데 다시 방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딸이 한발을 벗은채로 엉거주춤하고 서있는것이 아닌가?
《아니, 너 왜 그러고있니? 무슨 일이냐?》
김세천은 놀라서 물었다. 딸애는 소리내여 깔깔 웃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아버지가 나간 다음 방으로 지배인 김윤화가 들어섰다. 방에 들어선 김윤화는 해옥을 보고 반겼다.
《넌 점점 더 고와지는구나. 이젠 대학을 졸업했니?》
《졸업배치를 기다리고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기뻐하겠구나!》
김윤화는 해옥의 대학생활과 앞으로의 결심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면서도 왜 그런지 해옥의 발치를 자꾸만 내려다보았다. 하도 주의깊게 내려다보는 시선이여서 해옥은 당황해졌다. 자꾸만 대화가 동강나고 어색해졌다. 해옥은 몇번이나 자기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발치에는 별다른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가 새로 사 신은 수지운동신이 눈에 띌뿐이였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꾸만 해옥의 발치를 주시하던 김윤화가 끝내 참지 못하겠다는듯 해옥에게 말했다.
《해옥아, 미안한대루 그 신발을 좀 보자꾸나.》
참으로 난처하고 거북한 청인지라 해옥은 얼굴이 붉어져 어쩔바를 몰라했다. 김윤화가 량해를 구하듯 웃어보였다.
《다르게 생각 말아. 우리야 신발생산자들이 아니냐. 네 그 신발이 좀 새로워보여서 그래. 그 신발이 어느 공장 신발이니?》
해옥에게서 신발을 받아든 그는 신발을 깐깐히 살펴보았다. 문득 방문을 열더니 복도쪽에다 대고 누구인가를 큰소리로 찾았다. 그가 들어오자 함께 신발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보세요. 가죽인가 했는데 합성수지예요. 그리구 여기에 이렇게 주름을 세개 잡았어요. 단순하게 처리했지만 얼마나 새로운감을 줘요. 신발바닥은 복잡한것같지만 역시 사출기로 통채로 찍어낸거예요. 공정을 단축하고 원가를 절약했겠군요.》
두사람은 신발을 돌려가며 이리저리 살펴보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미안한대로 잠간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그 신발을 들고 방을 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신발 한짝을 들고나간 김윤화가 시간이 흘러도 돌아올념을 안했다. 해옥은 그만 난처해지고 당황해졌다. 신발이 없으니 어디로 갈수도 없고 아버지를 만나려 방에 들어서는 사람들앞에서도 한다리가 거북한 자세로 엉거주춤해야 했던것이였다. 어떤 사람은 방에 들어왔다가 해옥을 자세히 살펴보며 묻기까지 했다.
《처음보는 동문데… 다릴 상했소? 아, 발을 상한 모양이구만! 신발을 따로 주문하자구? 그럼 차라리 준비실장동무한테 가는게 낫겠는데… 내가 부축해달라오?》
이처럼 난처하고 당황한 일이 어디에 있으랴?
사연을 안 김세천은 어이없는듯 허허 웃었다. 딸애도 웃었다.
《얼마나 신발생각에 옴했으면 저러겠나요. 제 멋만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돈을 줘도 남이 신던 신발을 들고다니지 못할거예요.》
김세천은 즐겁고도 사려깊은 기운이 어린 딸의 얼굴을 처음이라도 보듯 바라보았다. 조금후에 기술준비실장이 해옥의 신발을 들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거 미안합니다! 지배인동지가 기술과장동지랑 개발실 사람들을 모아놓고 형지를 뜨고 원가계산을 하느라구… 나보구 제꺽 가져다주라고 했는데 지배인동지의 이야기를 듣는 정신에 그만… 이거 안됐습니다. 기사장동지!》
딸애는 그저 웃기만 했다. 준비실장이 돌아간 다음 딸애는 말했다.
《우리 엄마와 꼭같은 보통녀자가 큰 공장을 맡아안구 저렇게 애쓰는걸 보니 정말 돋보여요. 이제 이 공장은 일이 잘될거예요. 의욕을 가진 사람이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버지, 지배인동지를 잘 도와줘요. 영웅답게!》
딸애는 순진한 믿음과 기쁨이 어린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김세천은 자기가 딸애에게 아무것도 말할수 없음을 깨달았다. 딸애에게는 기사장사업을 그만두려는 자기의 결심이 현실을 겁내는 일종의 도피의식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것이다. 그는 끝내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딸을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의자에 그린듯이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것이였다.
문득 심장쪽에서 싸늘한 아픔이 뻗쳐왔다. 호흡이 가빠왔다. 또 심장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것이였다. 책상빼람을 뒤져 약통을 꺼내들었다. 혀밑에 약을 밀어넣고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의사들은 그의 협심증이 이제는 위험계선에 들어섰다는것을 한두번만 경고하지 않았다.
《쉬여야 합니다. 무리하면 돌이킬수 없는 일이 일어날수 있습니다. 흥분, 과로, 과음 절대금물입니다.》
차츰 아픔이 사라져가고 호흡이 편안해져가는것을 느꼈다. 그래도 눈을 감은채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앉아있을수 없었다.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것이다. 오늘 현장에서는 초미세다공발포시험이 진행된다.
초미세다공발포기술은 신발창에 나노급의 발포구멍들을 뚫고 거기에 공기를 쏘아넣어 신발을 가볍게 하는 기술이다. 공장에서는 이 기술을 새로 개발하고있는 축구화에 도입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축구화를 만드는데서는 두가지 문제가 제일 난문제였다. 수입자재로 만들면 모든것이 쉬웠으나 우리 나라에 흔한 수지로 만들어야 한다는것이 첫번째 힘겨움이였고 무게가 세계적수준의 축구화처럼 가벼워야 한다는것이 두번째 힘겨움이였다. 축구화의 무게가 단 10g만 무거워도 경기전 과정을 달리는 선수들에게는 무거운 육체적부담으로 되는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신발창에 나노급의 발포구멍들을 뚫고 거기에 탄산가스를 쏘아넣는 초미세다공발포기술을 받아들이기로 한것이였다. 축구화뿐만이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하는 다른 신발들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도 이 기술은 반드시 완성해야 하는 기술이였다.
김세천은 발포구멍을 뚫고 공기를 쏘아넣는 기계를 외국에서 사올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사출기에 자그마한 부대설비를 만들어다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고있었다. 여러차례의 시험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오늘 또다시 새로운 시험이 있는것이였다.
김세천은 아직도 뻐근한 압통이 남아있는 심장부위를 누르며 심호흡을 하고나서 현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시험은 첫시작부터 어망처망하게 꼬여돌아갔다.
원료의 배합을 맡았던 기사가 배합비률을 헛갈리는 바람에 다시 배합하여야 했다. 시험을 거듭하였으나 발포구멍을 뚫고 공기를 쏘아넣는 설비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조작을 맡은 기사는 안타까운 나머지 압력을 지나치게 높였다. 사출기가 깨져나갈듯 흠칫거리며 와르릉 소리를 질렀다.
시험은 중지되였다. 현장에 정적이 깃들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김세천만을 바라보았다. 배합비률을 헛갈렸던 기사와 압력을 지나치게 높였던 기사는 고개를 숙인채 숨소리도 없이 서있었다.
일단 일에 들어가면 롱담이나 객담을 모르며 인상이 꿋꿋해서 죽을둥살둥 모르고 일하는 김세천이였다. 일이 잘되였을 때에는 일없지만 잘 안되였을 때에는 저부터가 안절부절을 못하며 사람들에게 압박감을 안겨주군 하는 그였다. 일이 이쯤되였으면 얼굴빛이 달라져서 실수한 기사들을 한참이나 여겨보거나 짤막하지만 맺히리만큼 아픈 말을 해주어야 정상일 그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세천은 태연하고 지어는 곰살궂기까지 한 얼굴로 배합비률을 헛갈린 총각기사에게 말했다.
《요즘 련애를 건다는 처녀 생각을 했나? 왜 그런걸 다 헛갈려?》
롱조였으나 총각기사는 그것이 뜻하는 다른 의미가 있는것이 아닌가싶어 긴장해진채 김세천을 바라보았다. 사출기가 깨져나갈것처럼 흠칫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겁이나 뒤걸음을 쳐서 구석에 박혀들었던 처녀기사는 돌아보는 김세천과 눈길이 부딪치자 저도 모르게 손을 가슴에 모두어 잡고 숨을 딱 멈추었다. 기계기사라는 처녀가 철부지 처녀애처럼 겁을 낸다고 꾸중을 들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장은 뜻밖에도 그 처녀기사를 향해 빙긋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들 마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 않소. 모두 자기가 맡은 부분들을 다시 확인하고 연구해서 실패원인들을 찾자구.》
예상외로 너그러워진 기사장의 태도가 다행이라기보다는 놀라와서 사람들은 말없이 서있었다. 여전히 김세천이 어려워서 말들을 삼가한채 자기 일들에 열중했다. 어느덧 퇴근시간이 퍼그나 지났다. 김세천은 헌헌한 목소리로 오늘은 그만하고 퇴근하자고 말하고는 돌아섰다.
그 순간 김세천은 총각기사에게 조용히 속살거리는 처녀기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혹시… 기사장동지가 한잔 한게 아닐가요?》
《글쎄…》
김세천은 그들의 어이없는 억측에 절로 웃음이 새여나왔으나 못들은척 하고말았다. 휴식날이나 지어는 명절날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김세천은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술 한잔을 권하기 즐겨했고 그때는 아무리 일이 잘못되여도 절대로 성을 내지 않았다. 말 한마디도 정이 푹푹 들게 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기사장이 술 한잔이 들어가면 사람이 호인이 된다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기사들은 바로 그것을 념두에 두고 말하고있었다. 일에만 들어서면 자기도 모르게 안절부절을 못하면서 사람들의 기분을 무시하는 자기의 성미가 한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하루이틀에 생겨난 성미가 아니고 역시 하루이틀에 고쳐질 성미가 아닌것이다. 하지만 기사장사업의 마지막시기가 될지도 모르는 지금에까지 사람들에게 불쾌한 인상을 남기고싶지 않은것이 이즈음 김세천의 심정이였다.